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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움직이는 그림, 소생하는 우정 - <룩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후지모토 다쓰키의 단편만화 <룩백>은 국내에서도 이미 의미 있는 궤적을 그린 작품이다. 2022년 단행본이 출간된 뒤, 2024년 오시야마 기요타카 감독의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해 누적 30만 관객을 넘어섰다. 만화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실사영화로 옮겨온 <룩백>은 보다 다채로운 색채로, 동시대와 호흡하는 감정으로, 역동하는 신체의 이미지로 조금씩 그 파이를 넓혀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한 차례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된 이야기를 다시 영화화하면서 원작을 재현하는 대신 실사만이 포착할 수 있는 인물의 몸과 공간, 시간의 감각을 탐색했다. 원작의 빈틈을 집요하게 파고든 상상은 어린아이들을 가로질러온 그의 시선에 걸맞게 아늑하고 슬프다. 부산을 찾은 그를 만나 그의 뒤편을 조용히 들여다보았다.

- 처음부터 <룩백>의 실사화를 염두에 두고 원작을 읽은 것은 아니었다고. 어떤 순간부터 이 이야기를 실사영화로 만들고자 생각했나.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원작자 후지모토 다쓰키를 만나고 나서였다. 처음 만난 것도 영화화를 부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만화를 써준 것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원작자가 베테랑 만화가의 어시스턴트로 일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그 만화가가 망설임 없이 선을 그어나가는 모습과 그때 들었던 펜 소리가 너무 멋있었다고 하더라. 그 이야기를 듣고 돌아오는 길에 프로듀서와 택시에서 “소리다. 그 소리를 한번 제대로 담아보고 싶다. 그렇다면 실사로 만드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 창작자이기 때문에 <룩백>이 특별하게 다가온 부분도 있었나.

내가 이 만화를 접한 것은 코로나 팬데믹 때였다. 많은 영화의 제작이 중단됐던 시기라 ‘이제는 세상에서 영화가 필요 없는 건가’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인들이 그랬다. 그런데 이 만화를 보는 순간 다시 일어서라고 격려받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창작자에게만 울림이 있는 만화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 무언가에 열중하고 몰두했던 경험이 있지 않나. <룩백>은 어린 시절 내가 느꼈던 마음을 선명하게 소환시켜줬다. 그 점이 굉장히 컸다.

- 원작 만화에서 선으로 존재하던 후지노와 쿄모토를 실사에서는 배우의 얼굴과 몸으로 구현해야 한다. 두 인물을 살아 있는 사람으로 전환하면서 반드시 남기고자 한 것과 생략한 것은 무엇이었나.

이 만화가 던지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왜 그리는가’다. 나에게 대입하면 ‘왜 영화를 만드는가’라는 질문이다. 그 질문 자체를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었고 작품의 중심에 두려고 했다. 그 전제 아래 이야기나 표면적인 표현에서 그림과 소리를 더 풍성하게 만들기도 하고 생략하기도 했다. 지금 떠오르는 건 혼잣말을 생략했다. 만화에서는 인물이 속마음을 혼잣말로 직설적으로 내뱉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만화 특유의 강렬한 리듬을 만들어내지만 실사에서는 가짜처럼 느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후지노가 ‘4학년인데 나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리는 애가 있다니 절대 용서 못해’라고 생각하는 장면을 혼잣말로 처리하지 않고 서점 주인과의 대화 속에서 표현했다. 모놀로그를 다이얼로그로 바꾼 것이다.

-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실사에서는 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처럼 구체적인 물성으로 다가온다. 두 사람이 성장하면서 그 소리에도 변화를 주었다고 했는데.

쿄모토가 샤프로 선을 한줄 긋는 장면은 만화가를 꿈꾸게 된 최초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그은 한줄은 어설프고 망설임이 있는 선이었을 것이다. 그 선을 그리는 소리가 점점 자신감을 갖게 되는 소리로 변하고, 후지노와의 만남으로 그 소리가 두개가 된다. 그리고 나중에 실제 만화가가 됐을 때는 디지털 작업의 소리로 변해간다. 소리 자체가 두 사람의 성장과정을 나타내는 하나의 축이 됐으면 했다.

- 후지노가 쿄모토를 만난 뒤 논길을 달려가는 장면에서는 촬영 전에 음악을 완성해 현장에서 들려주는 방식을 사용했다. 후반작업에서 감정을 보완하는 대신 촬영 현장에서 배우의 몸에 먼저 감정을 심어준 셈인데, 이런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쥘리에트 비노슈와 함께 작업한 <트루스>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다. 비노슈가 맡은 인물은 머릿속에서 늘 음악과 소리가 흐르는 사람이었는데, 그 연기가 정말 훌륭했다. 어떻게 그렇게 표현했는지 물었더니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음악이 완성돼 있어서 현장에서 늘 그 음악을 틀어줬다고 하더라. 그 이야기를 듣고 음악이 연기와 영화에 미치는 영향을 깊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후지노가 논길을 달리는 장면에서 고양되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촬영 전부터 작곡가에게 그 장면의 음악을 일찍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고, 논길에 스피커를 틀었다. 촬영할 때에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했다. 영화에서 허밍으로 시작해 웅장한 배경음악으로 바꾼 것도 그러한 전환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배우가 그 음악을 계속 머릿속에 품은 상태에서 연기하길 바랐다.

- 애니메이션보다 러닝타임이 약 40분 늘어났다. 늘어난 분량에서 무엇을 새롭게 보여줄지는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했나.

이 부분에 관해 먼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실사영화를 준비할 때 애니메이션이 동시에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웃음) 우리는 어디까지나 원작을 기준으로 영화화를 준비했다. 원작을 영화화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을 만들어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특히 쿄모토의 존재를 더 구체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원작에서는 쿄모토가 다소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원작자 후지모토 다쓰키 안에 있는 두 사람을 후지노와 쿄모토로 표현해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실사에서는 실제로 이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에는 정보가 부족했다. 그래서 쿄모토가 어떤 공간에서 살고, 어떤 생활을 하고, 무엇을 보고 듣는지를 상상해 보강했다. 예를 들어 쿄모토는 한텐(일본에서 에도시대에 서민들이 남녀 구별 없이 입던 방한용 외투)을 입고 있다. 이 어린아이가 왜 한텐을 입고 있을까? 할머니와 함께 살아서가 아닐까? 그렇게 조각을 맞춰나갔다. 쿄모토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고 할머니가 그림을 그리는 쿄모토를 칭찬해줬을 거라고. 할머니가 없는 지금 혼자 살아가는 모습, 혼자 다닐 수 있는 행동반경, 매일 생활하면서 듣는 소리와 보는 풍경 등을 조금씩 만들어갔다. 쿄모토에게도 하나의 인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