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이 휩쓸고 간 농장, 수많은 돼지가 산 채로 땅에 묻힌다. 살처분 구덩이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돼지 ‘H’는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도 인간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한편 어린 시절부터 폭력과 따돌림에 시달려온 정석은 정반대의 꿈을 꾼다. 자신을 괴롭히던 군대 선임을 살해하고 숲으로 도망친 그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짐승처럼 살고자 한다. 2024년 서울독립영화제 장편 대상을 수상한 는 인간과 짐승의 경계를 뒤집어 인간다움의 조건을 묻는 잔혹한 우화다. 인간은 동물보다 우월한 존재인가. 고 허범욱 감독은 이 질문을 관념적인 논쟁 대신 육체의 고통과 변형을 통해 밀어붙인다. 혐오가 일상이 된 세계에서 괴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걸 일깨우는,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에서 보기 드문 작품이다.
[리뷰] 짐승 묻은 따에서 솟아오른 인간의 야만, 애니메이션의 야심, 작가의 뚝심,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