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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야기의 맨 처음에 서서 - ‘넷플릭스 베테랑즈’ <은중과 상연> <맨 끝줄 소년> 최경숙 프로듀서

드라마 기획 PD의 세상은 “이걸 드라마로 만들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믿기 힘든 실화를 접하면 머릿속에서는 가상 캐스팅이 시작되고, 해외 작품을 볼 때면 무엇을 빼고 더해 한국화할지 저도 모르게 전략을 짠다.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주제든 사회에 필요한 문제의식이든 이야기가 될 만한 것을 발견하면 그 이야기를 맡길 최적의 작가와 감독을 찾는 것도 이 직업의 일이다. 다시 말해 작품의 첫 세팅을 책임지는 초반부의 전투사가 기획 PD다. 최경숙 PD는 2006년에 제작 PD로 업계에 뛰어들어 <뉴하트> <수상한 삼형제> 등 대중적으로 사랑받은 작품에 참여했다. 기획 PD로 일하기 시작한 건 2013년에 CJ ENM으로 이직하면서다. 2020년부터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서 커리어를 이어오고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과 <맨 끝줄 소년>은 최경숙 PD가 있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를 만나 두 작품의 출발점부터 들었다.

<은중과 상연>, 내가 품은 질문을 이야기로 키우는 법

최경숙 PD가 <은중과 상연>의 첫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출근하는 지하철 안이었다. “오랜 친구의 안락사를 도왔다는 한 남자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남자는 암 투병으로 고통받던 친구에게 스위스에 함께 가줄 수 있느냐는 연락을 받았고 그러기로 했다. 읽는 동안 내게는 이런 부탁을 할 친구가 있나, 있다고 해도 평생의 짐이 될 부탁을 할 수 있을까 온갖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고민을 사람들이 해봐도 좋겠다 싶었다.” 최경숙 PD는 극본을 쓸 작가로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2018)을 함께 작업한 송혜진 작가를 떠올렸다. 첫 제안에 송혜진 작가는 고사했으나 설득은 최경숙 PD가 자신 있는 일 중 하나였다. “안락사가 사회적으로 논의되는 시기고, 우리가 이 기사를 읽으며 느꼈던 다양한 감정을 시청자들도 고스란히 느끼게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내겐 좋은 작품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이다.”

힘들 것을 각오하고 들어갔어도 극본 작업은 녹록지 않았다. 16부작을 염두에 두니 10대부터 40대까지 방대한 이야기가 필요했고, 두 여성주인공을 구축하는 데도 긴 시간이 들었다. 더군다나 송혜진 작가는 처음으로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극본에 도전하는 상황이었다. 어느 때보다 작품의 방향을 확실히 잡아줄 기획 PD의 역할이 중요했다. “시놉시스가 나오는 데 오래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은중과 상연 모두 송혜진 작가 안에서 나왔으나, 이중 은중이 더 작가님에게서 비롯한 캐릭터다. 상연은 작가님이 본인 안에 상연이 많지 않다며 어려워했는데, 나는 상연이 내 안에 많았고 현실에서 상연 같은 친구를 많이 봐왔기 때문에 상연이 더 쉬웠다. 그래서 상연 캐릭터에 의견을 더 내면서 살을 붙여나갔다.”

30대 시절도 최경숙 PD의 경험이 적극적으로 보태졌다. 이 시기에 은중과 상연이 영화 제작사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는 만큼 최경숙 PD는 직장 생활의 경험을 나누며 현실적인 디테일을 더했다. 대본 작업이 마무리될 무렵에는 두 여성의 역사가 교차하는 섬세한 이야기를 맡아줄 감독을 찾아야 했다. 최경숙 PD가 떠올린 사람은 조영민 감독이었다. “당시 조영민 감독이 <사랑의 이해>를 찍고 있었다. <은중과 상연>과 결이 비슷한 작품이라고 생각해 대본을 드렸고, 대본이 재미있어 하고 싶다는 답변을 받았다.”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동료들을 모으는 과정만큼이나 기뻤던 건 스위스 촬영이 성사된 일이었다. 사실 최경숙 PD는 기획 당시만 해도 스위스 촬영의 실현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았다. “많은 지원이 필요한 일이다 보니 작가님과도 ‘우리가 진짜 갈 수 있겠어요?’라는 말을 했었다. 그런데 내가 을 시작하게 한 그 기사를 넷플릭스측이 읽고는 ‘스위스를 안 갈 수가 없는데’라며 먼저 로케이션 얘기를 꺼냈다. 당시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작가님도 스위스 분량을 잘 써보겠다고 하시고. (웃음) 지금 돌아봐도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도움으로 한 작품이 완성된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맨 끝줄 소년>, 의도가 선명해질 때까지 밀어붙이기

최경숙 PD는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영화 <인 더 하우스>(2012)에 매료됐으나 원작인 스페인 희곡 <맨 끝줄 소년>의 판권을 곧바로 구매하지 않았다. “그랬다 작가를 구하지 못하면 회사 입장에선 손해이기 때문에 어울릴 작가를 물색하는 시간을 먼저 가졌다.” 고민 끝에 장명우 작가가 적임자라고 판단해 제안했고, 작가가 의지를 보이면서 판권 구매와 극본 개발을 진행했다. 장명우 작가가 공감한 최경숙 PD의 한국판 기획 방향은 “이야기를 탐하다가 이야기로 망하는 이야기”였다. “원작의 주인공인 헤르만 교사에게서 나를 봤다.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원하는 건 지금 현대인들의 공통된 현상이고,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릴 작품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이러한 의도 아래 시리즈 <맨 끝줄 소년>은 허문오 교수(최민식)를 중심으로, 사람이 어떻게 이야기에 중독되어가는지를 따라가는 심리 스릴러로 재탄생했다. 원작에서 고등학교 문학 교사와 고등학생이었던 두 인물의 관계는 국문학과 교수와 전자공학과 학생의 관계로 바뀌었다. “한국 고등학교에서 작문 과제는 현실성이 떨어지니 대학교로 무대를 옮겼다. 그런데 국문학과 사제지간은 뻔해서 재미가 없고, 문오가 이강(최현욱)에 대해 많이 알면 안되니 상관없는 과로 바꿨다. 교양과목은 어느 과든 신청할 수 있으니까 전자공학도가 문학 교양 강의를 듣는 걸로 시작했다.”

최경숙 PD의 일하는 방식은 정공법에 가깝다. 작가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게 아니라 개선점을 분명히 짚는다. “이강의 글은 소설가이기도 한 문오가 빠져들어야 하니 대단히 잘 쓴 글이어야만 했다. 그래서 장명우 작가에게 ‘후킹을 당할 만한 이강의 글을 써달라’고 했다. 그런 주문이 작가에게 얼마나 어렵고 부담되겠나. 그걸 알면서도 하셔야 한다고 했다. 그게 내가 있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과제만 던지고 빠질 리 없다. 그는 캐릭터의 특정 행동이든 전체적인 얼개든 함께 고민한다. “쓰는 건 결국 작가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인데, 그 무게를 최대한 덜어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대본을 꼼꼼히 보고 아이디어를 주는 것뿐이다. 작가님들이 날 보면 칭찬을 좀 해달라고 하는데, 일을 되게 해야 하는 내 입장에선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웃음)” <그들이 사는 세상> <우리들의 블루스> 등 노희경 작가의 작품을 다수 연출한 김규태 감독이 연출을 맡게 된 건 넷플릭스의 제안 덕분이었다. “감독님이 허문오 역에 최민식 배우가 어떻겠냐고 의견을 낸 덕분에 최적의 캐스팅이 성사될 수 있었다.” 기획 PD로 일한 지 올해로 14년차인 최경숙 PD는 드라마를 기획하고 작품의 초석을 다지는 일이 여전히 즐겁다. “어떤 작품이든 의도를 가지고 만드는데 그 의도를 시청자가 알아줄 때 혼자만 아는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을 또 누릴 수 있길 바라며 다음 작품을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