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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무관해 보이는 두 세계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내 이름은>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국가 폭력이라는 역사적 비극과 그것이 남긴 개인의 현재를 함께 조명하는 작품. 1949년 제주의 아픈 기억을 되찾으려는 어머니 정순(염혜란)과 촌스러운 이름을 지우고 싶은 18살 아들 영옥(신우빈)의 궤적을 따라간다. 서로 다른 시간대의 사건이 펼쳐지지만 ‘이름’이라는 연결고리로 이어지며 폭력이 어떻게 반복되고 재생산되는지를 이해시킨다. 과거의 흔적은 현재의 관계 속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관객은 그것이 특정한 사건에 해당하는 게 아닌 구조적 문제로 지속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9778명의 시민과 도민이 십시일반으로 참여해 역대 극영화 크라우드펀딩 최고 수준의 성과를 기록하며 제작된 이 작품은 그 제작 과정 자체가 집단의 기억을 복원하고 상처를 치유하려는 열망으로 볼 수 있다.

정지영 감독은 오랜 시간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영화로 다뤄온 인물이다. <내 이름은>에서도 그는 특정 사건을 단순 재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폭력이 어떤 조건을 갖추었을 때 발생하는지에 몰두한다. 기존 질서 위에 외부의 질서가 개입하고 그것을 새로 정립하려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균열과 긴장, 그 틈에서 개인이 어떻게 희생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제주 4·3 사건은 지나간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살아서 작동하는 구조로 제시되며, 우리가 몸담고 사는 일상의 질서 역시 언제든 폭력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영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과거와 현재를 병치하는 방식에 있다. 제주 4·3 사건이라는 역사적 참상과 학교라는 일상적 공간이 나란히 놓이면서 무관해 보이는 두 세계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기능한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개인간의 문제를 넘어 더 큰 구조를 가진 폭력의 축소판처럼 비쳐지고 영화는 이를 장면과 장면, 사건과 사건을 연결해 실체를 구체화한다. 이 과정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름’이라는 문제다. 국가 폭력에 의해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고 정순으로 살아가게 된 인물과 촌스러운 이름을 지우고 싶어 하는 영옥의 욕망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는 듯 보이지만 같은 지점에서 출발한 문제로 시간에 의해 왜곡된 현상으로 맞닿아 있다. 영화는 제때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고 묻어둔 결과가 현재의 삶을 어떻게 뒤트는지를 짚어보고 이제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지 그 방향을 가리킨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배우 염혜란의 존재로 힘을 얻는다. 그의 연기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이 작품에서도 인물이 지나온 시간과 고통을 염혜란만의 방식으로 전달한다.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로 서사를 끌고 가는 힘은 영화를 관통하는 단단한 축이며 말해지지 않은 것들, 설명되지 않은 감정들이 염혜란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내 이름은>은 제주 4·3 사건이 현재의 우리 삶에 어떻게 살아남아 유령처럼 떠도는지를 강조하면서 우리가 이미 안다고 착각하는, 그러나 전혀 모르고 있는 역사에 대해 다시 들여다볼 것을 권한다.

CLOSE-UP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한곡의 노래.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 어린 정순(심지유)은 노랫소리에 이끌려 라디오로 다가가 스피커를 만진다. “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 악몽 같은 날에 흐르던 이 노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평화롭게 들리지만 바로 이 순간 아이의 삶은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접어든다. 한번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 잊히지 않고 인물에게 계속 되돌아오는 노래. 영화는 평온한 음악 위에 비극을 얹어놓음으로써 고통의 순간이 리플레이되도록 만든다.

CHECK THIS MOVIE

<컴 앤 씨> 감독 엘렘 클리모프, 1985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군이 벨라루스의 민간인을 대상으로 자행한 학살을 다룬 작품. 국가 폭력을 말로 설명하기보다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만드는 영화다. 한 소년의 시선을 따라가며 개인이 파괴되고 무너지는 과정을 집요하게 관찰하는 데 집중한다. 특히 인물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장면과 연출이 아닌 것 같은 사실적 연출 기법은 관객을 화면 안으로 끌고 들어가 학살의 현장에 데려다놓는 듯한 효과를 낸다. 자세한 설명을 거부한 채 그 참상을 최대한 몸으로 겪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