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를 따지자면 50줄에 들어선 준 할아버지. 그래도 헐렁한 차림보다는 근사한 양복이 몸에 더 달라붙는 남자 리처드 기어가 이제서야 아버지가 됐다. 1994년 신디 크로퍼드와 헤어진 뒤 오랫동안 사귀어 온 여자친구 캐리 로웰(38)이 2월6일 뉴욕에서 4kg의 건강한 아들을 순산했다. <007 살인면허>에 출연한 적 있는 캐리 로웰은 전 남편이었던 <프랙티컬 매직>의 감독 그리핀 듄과의 사이에서 9살된 딸이 있다.
리처드 기어, 아버지가 되다
-
숫자 ‘7’이 항상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청춘이 공포로 변하는 영화 <가위>(안병기 감독)에 캐스팅된 여기 7명의 인물들은 고통의 순간들을 행운이라 여길 만한 준비가 기꺼이 되어 있다. 기존의 도회적이고 통통 튀는 느낌 대신 청순하면서도 맑은 이미지를 전해줄 혜진 역은 김규리, 직선적인 성격에 자신감이 넘치는 선애 역은 최정윤, 인기를 몰고 다니는 대학 야구선수 현준 역은 유지태, 냉정하면서도 촉망받는 변호사 역은 유준상이 맡는다. 성인 연기를 보여줄 정준이 영화감독 지망생 세훈, 스크린 앞에 처음 서게 되는 미스코리아 출신 조혜영이 탤런트 미령을 연기하고, 베일에 싸인 채 죽음을 부르는 매혹적인 경아 역에는 하지원이 캐스팅됐다. <가위>는 젊은 영화를 추구하는 만큼 세련되고 모던한 영상에도 공을 들일 생각이다. 2월9일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간 <가위>는 5월쯤 관객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가위>에 캐스팅 된 7명의 배우들
-
MTV에서 뮤직비디오 감독과 가수로 처음 만난 나카노 히로유키(中野裕之·42)와 호테이 도모야스(布袋寅泰·38)는, 아무래도 그들의 ‘출신성분’을 속이지 못한다. 영화감독과 배우로 재회한 두 사람의 합작품 <사무라이 픽션>만 봐도 그렇다. 이들은 가장 고전적인 이야기인 사무라이극을, 영상과 음악이 랑데부한 세련된 현대극으로 탈바꿈시켰다.
나카노 히로유키는 일본 최초로 뮤직비디오 전문 프로덕션을 설립한 영상작가. 국경을 넘나들며 유명 뮤지션의 비디오 클립을 만들어왔고, 인터넷과 공연예술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호테이 도모야스는 일본 최고의 록 기타리스트로, ‘X-재팬’의 큰형격인 그룹 바우위 출신. 현재 음반 프로듀서로도 활동중이며, <사무라이 픽션>에서 연기와 영화음악을 동시에 소화해냈다. 두 사람 다 영락없는 사무라이의 후예지만, 각자 한국과 묘한 인연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 나카노 히로유키 감독은 <사무라이 픽션>으로 지난 2회 부천국
<사무라이 픽션> 감독 나가노 히로유키·배우 호테이 도모야스
-
“건방진 꼬마 녀석.” 참을 만큼 참았다. 손목만 남은 손이 허공에서 덮쳤을 때도, 음산한 여자가 공동묘지를 돌며 사지가 찢기거나 생매장당해 죽은 조상들의 사연을 읊어댈 때도, 페스터는 엄마와 황금을 위해 모든 고난을 감수했다. 그러나 웬스데이 앞에서만큼은 사기꾼의 조심성을 유지할 수가 없다. 정신나간 어른들 틈에서 혼자 냉랭한 눈빛을 보내는 아이. 항상 검은 상복 차림이지만, 오히려 나이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젖살이 도드라지는 <아담스 패밀리>의 크리스티나 리치. 순진한 어린아이에 대한 환상을 여지없이 깨뜨리던 그 아이가 조금씩 나이를 먹어 이제 열아홉살이 되었다. 성장이 순탄했을 리 없다. <귀여운 바람둥이>로 영화를 시작한 열살짜리 반항아는 한번도 어른들이 기대하는 천진함을 보여준 적이 없으니까. 심지어 순도 100%의 아동용 영화 <캐스퍼>에서조차 아빠에게 훈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도대체 이런 아이가 어디에 있을까.
“‘담배를 피우는 10대
“순진함은 애초부터 없었어”, <슬리피 할로우>의 크리스티나 리치
-
-
이 남자 행복하다? 요즘 좋으시겠다고 말문을 열었더니 그저 얼굴에 엷은 웃음기만 슬쩍 피운다. 그동안 은행원 겸 반칙 레슬러로 살면서 귀밑으로 꽤 길었던 머리를 어느새 <공동경비구역>의 ‘북한군답게’ 잘라 올린 채 쌀쌀한 겨울 오후의 스튜디오에 나타난 송강호. 지난 설 연휴에 개봉한 <반칙왕>이 벌써 서울에서만 20만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들이면서 그는 다시 한번 독특한 웃음의 파장을 일으키는 중이다. <넘버.3><조용한 가족>의 전력이 한층 무르익은 코미디 연기는, 일상의 틈에서 기발한 리듬과 뉘앙스로 웃음의 묘를 끄집어낸다.
지리멸렬한 일상에 찌든 은행원 임대호가 레슬링을 배우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해가는 <반칙왕>은 송강호가 가장 많이 나온 영화. 57회 쯤 되는 전체 촬영분 가운데 그가 빠진 장면이 약 2회 정도 밖에 안 되는, ‘첫 주연작’이란 수사가 부담스러웠던 작품이다. 그에게 대호는 ‘나 자신일 수도 있고, 주변
“안 되면 운명이야, 하하”, <반칙왕>의 송강호
-
“사람 살려. 사람 살려요.” 고립무원 무인도에서 외롭지만 꿋꿋이 살아온 팀 로빈슨 크루소. 무인도 생활 7주년을 기념한 자축 파티를 벌이던 중, 모닥불의 불티가 야자수에 옮겨 붙으면서 섬 전체를 태워버릴 만큼의 엄청난 화재를 일으키고 만다. 불을 피해 바닷가로 도망 나온 로빈슨은 때마침 이 불기둥을 보고 찾아온 선박에 의해 구조를 받게 된다. 허겁지겁 배에 오르기는 했지만, 멀리 사라져 가는 붉은 섬을 바라보는 로빈슨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그동안 살고 있던 이층집은 물론이고, 힘겹게 가꾸어놓은 논과 밭도 송두리째 날아가버렸다. 품종 개량으로 일곱 가지 맛을 내는 야자수도 이제 생산 단계에 이르렀는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절벽 위에 설치한 전용 번지 점프대는 어떻게 하나?
“그래 그 섬에서 혼자 살았다고?” 뱃사람들에 이끌려 선실로 내려간 로빈슨은 외눈박이에 외다리에 갈고리 손을 가진 선장을 만나게 된다. “네, 육지에서 살았는데. 집 사서 대출금 갚고 나니까 마누라가 이혼하
[이명석의 씨네콜라주] 노땡큐 탈출
-
<어우동>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만큼 김원두 사장의 간섭 또한 지나쳤다. 각색에서 특히 심했는데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우선은 그가 원하는 대로 끌려갔다. 그 대신 나는 과거의 사극과 달리 근래에 들어와 복식사 연구가 활발해진 만큼 소도구와 의상에 대해선 새로운 고증을 하고 싶었다. 전통복식 연구가인 석주선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단국대학교 석주선 박물관엔 아주 예쁜 기생전모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아직까지 사극에서 기생전모는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어서 빨리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나는 기생전모가 깜찍하게 어울리는 신인을 찾아 <어우동>의 역할을 맡기고 싶었다. 여러 차례의 카메라 테스트를 하던 중, 어느 날 여배우 김보연에게서 한복이 아주 잘 어울리는 후배가 있으니 한번 만나보라는 전갈이 왔다. 탤런트 조진원이라고 했고 본명은 조영숙이었다. 그녀를 만나던 날 우연히 쌍무지개가 뜨는 것을 보았다. 강북강변대로 위에서였다. 나는 말만 들었던 쌍무
이장호 [43] - 아, 끔직한 대작영화여, <어우동>
-
“사실 난 죽은 놈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통통하고 싱싱한 뺨을 가진 놈을 가장 좋아하지요. 송장이 찾아올라치면 난 대문을 걸어버리지요. 고양이가 죽은 쥐를 싫어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슬리피 할로우>를 보던 중에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를 놓고 주님하고 내기를 하면서 했던 말이 뜬금없이 떠올랐는데, 악마조차 이런 실정인 걸 사람들은 왜 귀신이야기를 좋아할까 싶어서였다. 귀신 입장에선 자존심 상할 얘기지만, 심지어 무서워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대체 왜 무서워하겠나.
그들이 더이상 우리 삶에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뻔히 아는데. 누가 저승 문턱을 넘으면 이젠 관계의 안전거리가 충분히 확보됐다 싶어, 비로소 긴장 풀고 덕담을 베풀기 시작하는 게 사람인데. 죽은 이들이 무서워지는 순간은, 산 사람들이 욕심탱천한 저의로 그들을 불러냈을 때뿐인데.
예를 들어 박정희의 유령이 무서운 건, 그를 무덤에서 불러일으킨 살아 있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고, <슬리피
[아줌마, 극장가다] 진짜는 따로 있어, <슬리피 할로우>
-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은 도입부가 매우 겸손하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는 명창 조상현의 <사랑가> 대목이 깔리는 크레딧 시퀀스가 끝난 뒤 화면은 조상현의 판소리 완창 공연이 열리는 어느 극장을 찾아 들어가고 조상현이 소리 공연을 시작하면 영화 <춘향뎐>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조상현의 소리 가락에 따라 판소리 리듬을 온전하게 화면으로 번역해 보여주려는 극중극 구조로, 임권택판 <춘향뎐>의 소박하지만 야심에 찬 미학의 서두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소박하지만 야심에 찬 시도라는 것은 말장난이 아니다. <춘향뎐>은 드라마보다는 조상현의 판소리를 화면전개의 동력으로 삼는 파격을 취했다. 장르개념으로 붙잡기에는 좀 멋쩍은 감이 있지만 판소리판 뮤직비디오로 부를 만한 <춘향뎐>의 신종 장르 형식은 고금을 통틀어 유례가 없다. 임권택 감독은 조상현의 판소리를 화면으로 옮겨내면서 조심스럽게 소리와 화면의 이음새를 찾는다. 그
고운 그 자태, 놀 줄은 모르는구나, <춘향뎐>
-
프리미어, 미드나이트-신진들의 학예회?
굳이 디카프리오 해프닝 때문만이 아니어도, 원작소설 자체가 일으킨 커다란 반향만으로도 모두가 기다려마지 않았던, 게다가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 한편으로 선댄스의 개국공신 중 하나로 추앙받는 매리 해론의 신작이기에, <아메리칸 사이코>에 걸린 기대는 올해 프리미어 프로그램 전체를 대표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가는 다소 갈리는 듯. 그러나 대체로 <나는 앤디워홀…> 이후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감독은 여전히 강한 카리스마와 인간성 파괴에 대한 심도있는 통찰력으로 여피문화의 세기말적 극단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크리스천 베일의 선한 얼굴 뒤에 숨은 섬뜩한 연기는 압권. 이미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라 있다. 그외 작품들은 굵직한 작가들이 보따리를 풀어놓았던 예년보다는 최근 몇년간 선댄스를 디디고 막 일어선 감독들의 학예회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사실 많이 알려진 배우들의 등장 외에는 별로 건
[현지보고] 선댄스 2000 [2]
-
2002년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스키휴양지답지 않게 눈이 시원스럽게 내리지 않은 채 2000년 벽두의 선댄스영화제를 맞이한 파크시티. 그러나 올해 선댄스에 모인 모두는 폭설을 맞은 듯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디지털 함박눈이 내린 것이다. 애당초 올해 디지털 상영프로그램이 본격화하고 관련행사들도 많이 마련돼 어느 정도 대세의 흐름이 파악되리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른 속도로 구체화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이름하여 ‘닷컴딜’(.com DEAL). 바로 인터넷 판권 구매를 일컫는 신조어. 이 새로운 형태의 거래 덕분에 단편영화작가들이 디지털붐의 1차 수혜자로 지목됨에 따라 올해 선댄스에서는 맘껏 기를 펴고 다닐 수 있었고, 단편상영장마다 포진된 각 배급사 관계자들이 서로 탐나는 영화를 선점하려고 영화도 끝나기 전에 부지런히 휴대폰을 들고 다급한 통화를 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선댄스에 디지털 폭설, 단편도 돈이 된다
과연 영화제 중반부터 각종 구매소식이
[현지보고] 선댄스 200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