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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제21회 홍콩필름마트 참관기
글·사진 정지혜 2017-03-29

홍콩필름마트2017이 열린 홍콩 컨벤션 센터 입구.

제21회 홍콩필름마트가 3월 13일부터 16일까지 열렸다. 북미, 유럽, 아시아권 전역의 영화 바이어들과 셀러들이 다 모이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필름마켓이다. 중국 영화시장의 막강한 영향력을 등에 업고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려는 홍콩필름마켓의 야심이 엿보인다. 동시에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이하 사드) 배치 이후 한·중 영화 비즈니스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는 자리였다. 홍콩필름마트2017의 경향과 홍콩에 기반을 둔 영화 제작·배급사 대표들과의 인터뷰, 그리고 홍콩필름마트를 찾은 다양한 영화인들과의 만남의 현장을 사진으로 덧붙여 전한다.

홍콩의 중심부로 들어서면 횡단보도보다 찾기 쉬운 게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상업 건물들 사이로 어김없이 구름다리들이 이어진다. 구름다리는 다른 건물로 이동하는 통로이자 때로는 지하철 역사로까지 직행하게 한다. 개인 소유의 건물에 공공적 쓰임이 있는 통로가 합쳐진 것이다. 홍콩필름마트가 열리는 홍콩섬 완차이 지역의 컨벤션센터 주변에서도 이런 브리지는 흔하다. 정오가 되면 식사를 하기 위해 행사장 밖으로 쏟아져나오는 전세계 수많은 필름메이커들과 근처의 직장인들이 한데 뒤섞인다. 사무실을 나와 다리를 따라 건너편 식당가로 향하는 인파다. 거대도시 홍콩을 거미줄처럼 잇는 브리지, 그 위를 유동하는 인구. 어쩌면 홍콩필름마트가 지향하는 정체성과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땅을 효율적으로 쓰면서 전혀 다른 건물들을 이어붙여 유동과 유통을 형성하고 제3의 상권을 만들어내는 방식 말이다. 홍콩필름마트를 찾은 영화인들이 홍콩필름마트에 기대하는 바이자 필름마트가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마침 <버라이어티>의 아시아영화 담당을 맡고 있는 패트릭 프레이터를 구름다리 위에서 만났다. “홍콩 정부의 상업적 수완이 보통이 아니다. 홍콩필름마트와 홍콩 엔터테인먼트 엑스포를 동시에 열고, 곧이어 아시안필름어워즈, 홍콩국제영화제까지 연결해버렸다. 화제성과 시장성을 지속적으로 가져가겠다는 전략 아닌가.” 그의 말이 그럴듯하다. 필름마트가 ‘벨트 앤드 로드’(Belt and Road)라는 말을 괜히 하는 게 아니다. 여러 행사들을 ‘따로 또 같이’ 이어주면서 거대한 덩어리로 묶어내 시너지를 노린다.

홍콩필름마트는 영화인들의 기항지다.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5월 칸국제영화제로 가기 직전, 한숨을 돌리며 각자의 장바구니 사정을 체크하기에 딱 좋다. 필름마트에서 만난 유현택 그린나래미디어 대표는 “실거래보다는 잠재적 거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베를린, 칸에서는 서로 바빠서 차 한잔할 시간조차 없는데 여기서는 여유를 갖고 식사도 할 수 있다. 이런 게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귀띔한다. 규모 면에서 아시아 넘버1의 필름마켓답게 올해는 800여개 업체가 부스에 참가했다. 북미, 유럽권을 포함해 한국, 중국, 일본의 거대 기업들과 아시아의 중소 규모 세일즈사들이 다 모였다. 박동현 더 쿱 콘텐츠사업부 차장은 “칸이나 아메리칸필름마켓에서는 만나기 힘든 아시아쪽 관계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아시아권 세일즈사 친구들과 만나는 친목 모임도 있다”고 일정을 확인한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16년 상반기 전세계 박스오피스 경향 분석을 보면 중국은 사상 처음으로 북미 박스오피스를 앞질렀다. 상반기 관객수 7억2290만명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약 29.5% 증가했다. 중국 본토와 물리적, 심리적 근거리에 자리한다는 이점이 있는 홍콩필름마트로서는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하다. 바쁘게 부스를 돌아보던 홍콩필름마트 주최쪽인 홍콩무역발전국의 페기 리우가 하는 얘기도 마찬가지다. “홍콩필름마트는 중국 본토의 영화, TV드라마의 해외 세일즈 창구다. 특히 중국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의 잠재력을 주목해보라. 올해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연락이 와 중국을 게스트국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필름마트 맨 앞줄 목 좋은 자리에 위치한 홍콩 기반 미디어 아시아의 부스.

합작 증가세와 플랫폼 다변화

홍콩과 중국 본토의 합작 프로젝트 역시 증가세다. 지난해 홍콩에서 제작된 89편의 영화 가운데 54편이 중국, 홍콩 합작영화다. 중국 시장으로 진출하려는 세계 영화인들도 홍콩 프로덕션과 파트너가 되는 일부터 공을 들인다. 홍콩에 기반을 둔 덩치 큰 프로덕션들 역시 필름마트를 찾아 라인업 발표를 하며 신규 비즈니스 파트너를 파악한다. <일대종사>(2013) 등을 제작한 실 메트로폴은 유청운 주연의 갱스터물 <딜러/힐러>(감독 로렌스 라우)의 제작을 발표했다. 메이아 엔터테인먼트 그룹은 무협과 좀비물의 결합이라는 다분히 중국적인 영화 <드래곤 게이트 좀비인>이 프리 프로덕션 중임을 알렸다. 정바오루이와 엽위신이 공동 제작하고 엽위신이 연출한다. 메이아는 <기항지>(2015)의 옹자광 감독과 곽부성을 다시 불러 <야망의 이론>도 준비한다. 페가수스 모션 픽처스는 엽위신이 연출을 맡고, 견자단이 제작, 주연하는 <엽문4>를 만든다. 유니버설 엔터테인먼트는 <풍운2>(2009>를 만든 옥사이드 팡 감독과 <사기 전담반>을 제작, 장효전, 계륜미, 진학동의 캐스팅을 완료했다.

중국 시장은 할리우드와의 협력 가능성을 다각도로 타진하는 중이다. 성룡이 대표로 있는 중국계 미디어 그룹 스파클 롤의 자회사 스파클 롤 미디어는 필름마트 기간에 홍콩에 기반한 국제적인 세일즈사를 론칭했다. 스파클 롤 미디어는 이미 영화의 투자, 제작, 배급, 마케팅 사업과 TV용 영상 제작, 매니지먼트 사업에 뛰어든 상태다. 이번 론칭은 할리우드 시장으로 적극 나서겠다는 사인으로 읽힌다. 2013년 문을 연 원 쿨 필름 프로덕션 역시 해외 세일즈 업무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유덕화는 <폭스>와 손잡고 미니시리즈 <트레이딩 플로어>의 제작에 뛰어들었다. <대장부>(2003), <엑소더스>(2007), <담배연기 속에 피는 사랑>(2010) 등을 만들며 현재 홍콩 영화산업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팡호청은 자신의 첫 번째 영어영화 연출을 위해 할리우드로 날아가 현지 배우들과 작업할 계획이다. 플랫폼 다변화에도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중국의 검색 포털 사이트 바이두가 운영하는 동영상 서비스 아이치이(iQiyi)는 ‘온라인 엔터테인먼트의 폭발적인 성장세와 새로운 기회’라는 주제로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아이치이의 한 관계자는 “넷플릭스와 아마존이 공세적으로 중국 시장 진출을 꾀하는 건 중국 내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지난해 중국 정부는 스트리밍 사이트들에 자국영화보다 30% 적은 외국 콘텐츠만 서비스하라고 규제책을 내놨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보호무역주의하에 넷플릭스와 아마존의 본토 진출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 바이두, 알리바바, 중국 인터넷 서비스 전문업체 텐센트의 중국 내 경쟁은 치열해졌다. 아이치이는 필름마트가 열리기 바로 직전, <문라이트> <라라랜드> <세일즈맨>의 독점 서비스권을 얻으며 기선을 제압했다.

중국과의 미팅은 확실히 어려워져

반면에 한국영화 부스는 주춤하고 있었다. 한국 내 사드 배치 이후 중국정부가 중국 내 한국 콘텐츠 구입과 방영 등을 전면 중단한 상태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한국 관계자들은 ‘정치적으로 민감하다’라는 이유로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지만 “중국과 미팅이 확실히 어려워졌다”는 게 중론이다. 김희연 쇼박스 해외사업팀 차장은 “중국과 관계 맺기가 민감해졌음을 모두가 체감하고 있다. 영화 콘텐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이다보니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어서 “2015년 8월 개봉한 <암살> 이후 중국 내에서 정식으로 극장 개봉을 한 한국영화가 한편도 없다. 확실히 한국영화 수요가 하락세다”라고 덧붙였다. 롯데엔터테인먼트 해외팀도 상황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한동안 중국 바이어들이 한국 콘텐츠를 공격적으로 구매했지만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때부터 주춤하더니 급기야 올해는 구매를 보류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 상황보다는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관계를 꾸준히 이어가야 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성과도 물론 있다. 지난해 <부산행>으로 해외 세일즈에서 큰 성과를 낸 콘텐츠판다는 호러 성격이 짙은 <장산범>(감독 허정)과 하드코어 액션 <악녀>(감독 정병길) 피칭 후 고무적인 반응에 크게 만족해했다. 콘텐츠판다 해외 세일즈를 맡고 있는 이정하 팀장은 “<장산범>은 호러가 강세인 동남아시아권에서, <악녀>는 서구의 바이어들이 좋아했다. 한국영화의 주 판매처가 아시아권이다 보니 홍콩필름마트가 시간 대비 얻는 게 정말 많다. <부산행> 다음? 조만간 사고를 치지 않을까 싶다. (웃음)” CJ E&M의 장바구니도 두둑하다. 최윤희 해외배급팀 팀장은 “미팅이 많아서 미처 다 소화를 못할 정도”였다며 분주했던 부스의 분위기를 전했다.

<군함도>(감독 류승완), <불한당>(감독 변성현)에 대한 큰 관심과 <임금님의 사건수첩>(감독 문현성)의 대만, 필리핀, 호주, 뉴질랜드, 항공 판권 판매, <조작된 도시>(감독 박광현)의 세일즈 호조, CJ E&M과 베트남이 공동 제작한 <사이공 보디가드> 판매 성적도 좋았다. 최 팀장은 “동남아시아쪽 VOD 플랫폼에서 라이브러리 패키징 문의가 많다. <복수는 나의 것>(2002), <살인의 추억>(2003)의 재판매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한다. 쇼박스는 <프리즌>(감독 나현)을, 롯데는 <청년경찰>(감독 김주환)을 선판매했다. 한국 부스들은 우려와 기대 속에서 필름마트를 마쳤다.

<잉저우의 아이들>(2006)로 오스카 단편다큐멘터리 부문에서 수상한 루비 양(맨 오른쪽) 감독의 사회로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기회’라는 주제의 컨퍼런스가 열렸다. 2006년 비영리 재단으로 출발해 중화권 최대 다큐멘터리 제작사가 된 시넥스(CNEX)의 CEO 루비 첸(맨 왼쪽)은 “대만에서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을 만들고 와 공동 제작”한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HAF(Hong Kong-Asia Film Financing Forum) 시상식 현장.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아시아 판타스틱영화 제작네트워크(NAFF)상은 일본 감독 미야케 교코의 <팜파탈>(Femme Fatale)에 돌아갔다. 수상자는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방문해 프로젝트의 제작 가능성 등을 타진할 예정.

두기봉 감독은 매년 홍콩필름마트 기간이면 저녁 만찬을 차려 함께 영화 작업을 했거나 영화제에서 만난 영화인들을 초대한다. 매년 다른 식당을 찾는데 올해는 배우 고천락이 운영하는 광둥식 식당으로 안내했다. 얼떨결에 함께 자리하게 된 기자, 홍콩에 있는 옥토버 픽처스의 김철수 프로듀서, 두기봉 감독, 대만의 세일즈사 어블레이즈 이미지(ABLAZE IMAGE)의 준위 대표(왼쪽부터). 그 너머는 두기봉 감독 작품의 시나리오작가이자 <천공의 눈>(2007)의 유내해 감독이다. 두기봉 감독은 “한국 정부가 부산국제영화제를 그렇게까지 괴롭힌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로 건배를 제안하기도 했다.

“디렉터, 김성수. 마이 굿 프렌드!” 옥토버 픽처스의 공동 창립자 대니얼 유가 한국의 김성수 감독에게 페이스 타임 연결을 시도했다. 김성수 감독이 <무사>(2001)의 중국 배우 캐스팅차 홍콩에 들렀을 때 대니얼 유의 도움을 받은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대니얼 유는 프루트 챈의 <그해 불꽃놀이는 유난히 화려했다>(1998)의 프로듀서, 홍콩 무술 스탭이 100명 넘게 참여하며 화제가 됐던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의 액션 프로듀서이기도 했다.

3월 13일 홍콩필름마트와 함께 막을 올린 홍콩엔터테인먼트 엑스포의 올해의 홍보대사 여명(앞줄 오른쪽 두 번째). 그의 연출작 <와인 워스>도 이번 필름마트에 나왔다.

밴쿠버국제영화제에서 동아시아영화, 특히 중국영화를 프로그래밍하는 평론가 셸리 크레이저. “중국 본토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홍콩 자체의 영화산업은 붕괴됐다. 그나마 홍콩에 기반을 두고 중국 작업을 하는 감독으로는 두기봉, 허안화, 프루트 챈, 그리고 그 후배들로 팡호청, 헤이워드막이 있다.”

홍콩필름마트 컨퍼런스의 패널로 참여한 <문라이트>(2016)의 공동 프로듀서 앤드루 헤비아. 오스카의 작품상 호명 실수 이후 백스테이지에선 어떤 말을 주고받았을까. “모두가 대혼란이었다. 하지만 곧 <라라랜드>팀이 와서 ‘축하한다!’며 악수를 청했고 서로를 격려했다. 그 와중에 나는 라이언 고슬링과 사진까지 찍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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