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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s’ Talk] “네 영화도, 너라는 사람도 정말 애정해”, <더 러닝 맨> 에드거 라이트 감독 × <미키17> 봉준호 감독 ➁

“네 영화도, 너라는 사람도 정말 애정해”

봉준호 제리 골드스미스? 우와! 제리 골드스미스가 <빠삐용>도 작업했지?

에드거 라이트 <빠삐용> 맞아! <혹성탈출> 음악도 작곡했고.

봉준호 1973년 버전 <빠삐용>속 음악은 한국에서도 정말 유명했어. 내가 어릴 때도 사람들이 다 알 정도였거든. 제리 골드스미스, 이름 오랜만에 듣네. 참, 나 LA에서 존 카펜터 감독을 만났는데, 음악 얘기를 해서 되게 즐거웠어.

에드거 라이트 네가 <괴물>(감독 존 카펜터, 1982) Q&A 한 거 봤어.

봉준호 <괴물>Q&A를 하고 내가 나중에 공포영화를 하나 만들고 싶은 게 있는데 거기에 스코어 하나 써달라고 해서 해준다고 답변을 받았어.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린다.)

에드거 라이트 진짜 만들어진다면 대박일 것 같은데!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런 얘기 했잖아. 우린 비슷한 세대다 보니 영화에 빠진 방식도 정말 비슷하다고. 밤늦게 TV에서 틀어주는 영화들 보면서 자라고, 자연스럽게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영화감독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어떤 스타일을 갖고 있는지 눈여겨봤다고. 난 10대 때 존 카펜터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딱 뭐가 좋은 건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묘하게 품위 있고 쿨하다고 느꼈어. 그게 화면비 때문인지, 아나모픽 필름 때문인지, 조명을 쓰는 방식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당시 다른 저예산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특유의 우아함과 스타일이 있었어. 그게 너무 특별했어.

봉준호 네가 <더 러닝 맨>각본을 쓸 때 왜 <뉴욕 탈출>음악을 들었는지 너무 잘 이해가 가고, 그 음악들이 이 영화에 나오는 파시스트 같은 군인들이나 쫓기는 남자와 잘 맞는 것 같아. <뉴욕 탈출>음악이 사운드트랙의 게스트 트랙으로 들어가도 좋을 것 같아.

에드거 라이트 나는 그런 영화들에서 상상력이 얼마나 풍부한지 보는 게 제일 좋더라. 사실 얼마 전에 <뉴욕 탈출>을 극장에서 다시 봤는데 생각해보니 큰 스크린으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 근데 놀라운 건, 그 영화도 그렇고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 대부분이 실제 장소를 이용해서 디스토피아 세계를 만든다는 거야. 나한테 또 중요한 영화가 있는데 너도 좋아하는 테리 길리엄의 <브라질>이야. <브라질>은 미술디자인이 진짜 미쳤는데 자세히 보면 실제 로케이션 촬영도 정말 많아. <더 러닝 맨>을 준비하면서도 그 영화를 많이 참고했어. <더 러닝 맨>으로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과도 일한 로케이션 매니저 유진 스트레인지랑 작업했는데, 우리는 이 영화를 위해 브루탈리즘 건축이나 현대적인 건물들을 많이 찾아다녔어. 그 공간들을 활용해 더 큰 세계를 만들려고 했고 여기저기 이동하면서 촬영했지. 잉글랜드 런던,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그리고 불가리아 소피아까지. 영화 속 여정이 넓게 펼쳐져야 해서 도시 세 군데를 지나 미국 메인주 같은 시골 지역도 갔어. <더 러닝 맨>은 고속도로, 공항, 이런 식으로 계속 이동하는 이야기니까. 그렇게 ‘실제 공간을 어떻게 상상 속 디스토피아로 바꿀 수 있을까?’라 생각하는 게 재밌더라고. <브라질>도 그래서 기억에 남아. 세트인 줄 알았던 곳이 실제 공간이었다는 게 흥미로웠어. ‘어, 이거 프랑스에서 찍었네?’ 싶은 장면들이 있는데, 알고 보니 다 실제 장소였던 거야.

봉준호 <더 러닝 맨>도 그렇게 효율적으로 잘한 것 같아. 그것이 이 영화가 가진 전체적인 <더 러닝 맨>세계의 느낌을 완벽히 하나의 유니버스로 구축한 것 같아서, 미리 성급하게 얘기하자면 글렌 파월이 출연하는 속편이 시리즈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야. <뉴욕 탈출>에 이어 이 나왔던 것처럼.

에드거 라이트 그건 영화가 끝나고 벤 리처즈가 어디로 가서 뭘 하게 될지는 두고 봐야지. (웃음)

봉준호 다음번에는 소화제! 감기약이 아니라 소화제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웃음) 어쨌든 신작 개봉을 축하하고 언제나 변함없는 에드거 라이트 영화를 또 한번 보게 해줘서 고맙고 기뻐. 수고했어.

에드거 라이트 알다시피 나는 네 영화도, 너라는 사람도 정말 애정해. 친구로서, 팬으로서 너와 대화하는 시간이 항상 즐겁고 조만간 얼굴 보고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

봉준호 LA든, 서울이든, 런던에서든 봐. 조만간!

에드거 라이트 아니면 불가리아에서!

봉준호 불가리아, 좋지!

에드거 라이트 곧 보자, 봉! 얼굴 봐서 너무 좋았어. 바이!

<런닝 맨>(1987) VS <더 러닝 맨>(2025)

<런닝 맨>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주연한 <런닝 맨>속 주인공 벤 리처즈는 노동자가 아닌 경찰서장으로 등장한다. 2017년 미국 경제는 붕괴하고 캘리포니아에서 대규모 식량 폭동이 발생한다. 벤 리처즈는 이 폭동을 진압하기 위한 발포 명령을 거부한다. 명령에 불복종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뒤 오히려 대량 학살자로 몰려 ‘런닝맨’ 참가자로 보내진다.

에드거 라이트 감독이 사랑한 존 카펜터의 디스토피아

<뉴욕 탈출>

에드거 라이트 감독이 10대 때 우연히 보고 빠졌다는 존 카펜터 감독의 <뉴욕 탈출>은 당시 가까운 미래였던 1997년을 디스토피아로 그린 액션영화다. 미국 대통령은 거대한 감옥이 된 뉴욕에 납치되고, 수감 중이던 전직 특수부대원 스네이크(커트 러셀)는 대통령을 구해 뉴욕을 탈출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존 카펜터 감독은 <뉴욕 탈출>이후 16년이 흐른 뒤 후속작인 을 내놓았다. 2013년, LA마저 디스토피아로 변해 있다. 대통령의 딸이 위험한 무기와 함께 LA로 도주하자, 당국은 스네이크를 LA로 급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