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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ituary] 모두의 기억 속에 당신이, 고 이순재(1935~2025)

배우 이순재가 91살의 나이로 별세했다. 지난해 10월께 건강 문제로 활동을 중단한 뒤 2025년 11월25일 새벽 눈을 감았다. 고인은 2024년 드라마 <개소리>로 90살에 KBS 연기대상을 수상하고,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로 무대에서의 삶에 헌신하면서 한국 현역 최고령 배우라는 수식을 최후까지 체현했다. 배우 이순재는 TV드라마와 영화, 연극을 평생 넘나들며 철저하고 근면한 직업인의 정도를 걸었다. 특히 그는 사극, 가족드라마, 시트콤, 예능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당대 사랑받는 장르의 중심에서 함께 나이 든 한국 방송 역사의 산증인이다. 약 70년, 어느 배우가 품었던 헌신의 세월을 돌아보았다. 영화 개봉작 가운데 유작이 된 <대가족>의 양우석 감독, <하이킥>시리즈의 김병욱 PD, 예능 <꽃보다 할배>의 나영석 PD가 보낸 추모의 말도 함께 전한다.

“선생님 곁에 있으면 방향을 잃지 않았습니다. 작은 끄덕임 하나가 우리 후배들에게는 늘 잘하고 있다는 응원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느 날 저에게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는 게 절대 만만치가 않다. 항상 겸손하고, 늘 진심으로 살아야 한다’라고 하셨는데 그 말의 울림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11월27일 고 이순재 배우 영결식, 김영철 배우의 추도사) 영원한 현역으로 불렸던 배우 이순재가 지난 11월25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살.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1천명 이상의 조문객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빈소를 찾아 문화훈장 가운데 최고 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배우의 금관문화훈장은 2021년 윤여정, 2022년 이정재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1935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이순재는 만 3살 때 서울로 이주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겪으며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진학 후 <햄릿>속의 로런스 올리비에에 매료돼 배우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해 1964년부터 TBC 전속 배우로 활동했고 출연작 중 자료가 소실된 것을 제외하고도 타계 전까지 드라마 출연작만 140편이 넘는다. 그를 영화계로 이끈 <초연>(감독 정진우, 1966), 경제개발 속 청년의 좌절을 그린 <막차로 온 손님들>(감독 유현목, 1967), 한국 최초 괴수영화 <대괴수 용가리>(감독 김기덕, 1967) 등 1960년대 한국영화의 믿음직한 주·조연으로 이름을 알렸다. 1970년대엔 박경리 원작을 영화화한 김수용 감독의 <토지>(1974)에서 김지미와 함께 주연을 맡았고 김호선 감독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에서는 장애를 가진 영자의 남편 역으로 근대화의 그늘에서 고통받는 인물을 연기했다. 남다른 발성과 대사 전달력이라는 특유의 장점은 드라마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TBC가 KBS에 흡수된 이후 방영된 51부작 <풍운>(1982)의 흥선대원군으로 카리스마 있는 긴 연설 장면들을 소화하면서 이순재의 사극, 시대극 전성시대가 열렸다. 특히 연기 생활 중 여러 차례 소화한 실존 인물이 부지런한 직업인의 행로를 드러낸다. 최초로 MBC 작품에 이름을 올린 <제2공화국>(1989)부터 <제3공화국>(1993), <코리아 게이트>(1995), <삼김 시대>(1998)까지 윤보선 대통령 역할만 네 차례 소화했고, 영화 <세종대왕>(1978)을 시작으로 드라마 <파천무>(1990), <공주의 남자>(2011)를 통해 조선시대 장군 출신 좌의정 김종서 역할만 세번 맡았다. 허준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집념>(감독 최인현, 1976)에서 허준 역으로 열연한 이후 드라마 <동의보감>(1991), <허준>(1999)에서는 두 차례 허준의 스승 유의태로 분했다. 1991년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선 가부장적이지만 속정 깊은 대발이 아버지 역을 맡아 시청률 65%를 기록하며 전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장단음 구분 및 한국어 10모음 체계상 발음을 엄격히 구현하고 노년기에도 뛰어난 암기력을 자랑했던 배우의 역량은 이처럼 평생을 쉼 없이 일했던 드라마 작업 속에서 깊이 새겨진 흔적이었다.

70대에 찾아온 제2의 거침없는 전성기

1987년 배우 이순재는 <물망초> 출연 후 영화 활동을 중단하고 민주정의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해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후 낙선했고, <사랑이 뭐길래>의 전 국민적 인기에 힘입어 1992년 제14회 국회의원 선거에 다시 출마하여 당선됐다(민주자유당 소속, 서울 중랑구 갑). 1993년 민주자유당 당무위원 겸 부대변인을 맡았으나, 배우로서 본업에 충실하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향후 불출마 의사를 굳혔다. 1996년 5월 국회의원 임기 종료 후 드라마 활동을 활발히 재가동하면서 시청률 64.8%를 기록한 <허준>의 성공에 함께했다.

21세기, 이순재도 함께 변화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급격하게 젊어졌다. 가족극은 줄어들고 원로배우들에게 주어지는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이순재 역시 그 틈새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야 했다. 72살에 출연한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6)이 그의 연기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근엄한 이미지를 뒤집고 첫인상과 달리 허술한 매력을 자랑하는 가장이자 한의원 원장 역할을 소화하면서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다. 가부장의 보수성과 세대 차이를 정면으로 풍자하는 시트콤에서조차 그는 성실한 희극인의 자세로 임했다. 70대 이후에 더욱 유연해진 행보는 추창민 감독의 <그대를 사랑합니다>(2010)에서 까칠한 표정 안쪽에서 수줍은 소년의 사랑을 느끼는 노년의 모습으로, 장진 감독의 <굿모닝 프레지던트>(2009)에서 수백억원대 로토 당첨으로 속앓이하는 대통령의 코미디로 확장된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경륜이 명예로 굳어지는 대신 과거의 권위를 내려놓을 줄 아는 힘으로 변모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했다. 2013년부터 방영된 tvN 예능 <꽃보다 할배>시리즈에서는 최고령임에도 지치지 않는 체력과 의욕으로 ‘직진 순재’라는 또 다른 별명을 얻었다. 사전 미팅에서 배낭여행을 해본 이전 경험을 묻는 질문에 6·25전쟁의 피난을 떠올렸을 만큼, 평생 유유자적하게 사는 유희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던 직업인이 동료들과 유럽 여행 내내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는 모습이 신선함과 존경심을 이끌어냈다.

연기는 공부, 완성은 없다

연극 <리어왕>

80대 후반까지도 이순재는 연극무대에 오르는 것을 자신의 본분으로 여겼다. 2016년 <장수상회>, 2017년 <앙리할아버지와 나>, 그리고 2021년 87살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대작 <리어왕>에서 최고령 리어왕 역을 맡아 3시간이 넘는 장기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2022년에는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그의 마지막 공연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2024)다.

2024년 9월25일부터 10월31일까지 방영된 KBS 수목 드라마 <개소리>는 이순재의 유작이라는 뜻깊은 의미로 남게 됐다. 드라마 속 주인공 ‘국민 배우 이순재’는 위상이 크게 추락하는 사건을 겪고 거제도로 도피한 뒤 은퇴한 경찰견 소피를 만난다. 그가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이웃과 연대하며 개를 통해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이야기다. 90살에 서울과 거제를 20회 이상 오가며 촬영에 임한 그는 건강이 악화되는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암기력을 보여주었다고 동료들은 회고한다. 지난해 연기대상 무대를 통해 함께 연기한 개와 베스트 커플상까지 받은 그의 모습은 인생의 마지막까지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배우가 만들어낸 진풍경이었다. 같은 해 12월 개봉한 <대가족>에서 이순재는 큰스님 역을 맡았다. 배우 오영수가 캐스팅됐으나 성추행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자 이순재양우석 감독을 도와 전면 재촬영한 경우였다. 극 중 큰스님은 주인공의 스승으로, 제자가 속세의 일로 혼란스러워할 때 평생의 수련을 통해 체득한 조언을 건넨다. 고인이 대중 앞에 마지막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후 연말 KBS 연기대상에 참석해 역대 최고령인 90살로 대상을 수상한 당시였다. 배우 김용건과 최수종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 오른 그는 시청자를 향해 “연기에 완성은 없다. 잘할 순 있어도 완성은 아니”라며 배우로서는 끝내 엄밀한 미완으로 남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끝을 예감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담담한 인사 역시 전했다. “시청자 여러분, 정말 평생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