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이진우와 박수남 감독이 주고받은 옥중서신(<죄와 죽음과 사랑과>, 산이치쇼보 펴냄, 1963)과 <교사형>의 각본(<교사형 오시마 나기사 작품집>, 시세이도 펴냄, 1968)을 비교 분석한 결과 11개의 도용을 발견했다.
1. <죄와 죽음과 사랑과> 149쪽(이진우→박수남)
“일전에 어느 프로테스탄트인 죄수가 눈에 색정을 풍기며 여인을 보는 자는 이미 간음을 범했다는 성서의 구절은 좀 지나친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했어요. 이런 경우, 색정이란 어느 범위까지를 이르는가가 문제가 되겠지요.”
<교사형 오시마 나기사 작품집> 152쪽
신부 색정을 품고 여인을 본다면 이미 마음속으로 간음을 저지른 것입니다.
검사 그런 말을 합니까?
신부 예수님 말씀입니다. 하느님조차 성욕과 상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하셨습니다.
2. <죄와 죽음과 사랑과> 151쪽(이진우→박수남)
“상상의 반복이 과연 일종의 자신감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피해자를 봤을 때, 자전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아요. 나는 멋지게 해낼 거예요. 이와 비슷한 장면은 이미 상상에서 행한 바가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면 이 자신감은 어디서온 것일까? 아마 그것은 상대적인 자신감이었을 거예요. 만약 충동적으로 범행을 결심했다면 그 자신감은 충동과 같이 절대적이었을 테지요.”
<교사형 오시마 나기사 작품집> 164쪽
R 몇번이고 몇번이고 반복해서 범죄를 상상하는 사이, 무언가 자신감 같은 게 생겨난다는 건…. 자전거를 탄 여자를 어떤 식으로…. 그런 상상도 반복했다고나 할까요…. 상상했던 대로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옵니다. 제가 상상했던 장면과 똑같습니다. 자신감 같은 것이 솟아오릅니다.
3. <죄와 죽음과 사랑과>151~152쪽(이진우→박수남)
“그때 그녀는 왼쪽을 달리고 있었어요. 만일 그녀가 오른쪽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나는 범행을 단념하자고 생각했어요. 나는 현실이 상상과 어긋나면 범행에 자신이 없었던 겁니다. 그녀의 모습에서는 욕망을 느낄 수 없었어요. 마치 남자 같은 외형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상상이 나에게 욕망을 느끼게 하였어요. 그러니 이 상황에서 그녀에게 욕망을 느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회를 놓쳐버려도 좋았겠죠. 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 상황이 상상한 그대로가 되는 것이었어요. 이 복잡한 동기를 잘 표현하기가 어렵군요. 어쨌든 나는 그녀를 오른쪽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어요. 자전거에 탄 채로 그렇게 굴러떨어져본 적은 없어요. 그럼에도 나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어요. 아마 상상의 반복이 그런 자신감을 만드는데 힘이 된 것 같아요.”
<교사형 오시마 나기사 작품집> 164~165쪽
R 하지만 그녀는 왼쪽 길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상상대로라면 오른쪽을 달려야 할 텐데. 나는 잠시 망설입니다. 만약 그녀가 오른쪽으로 오지 않는다면, 이건 상상도 현실도 아닌 이상한 상황이 됩니다. (중략) 오른쪽을 달리지 않는 한, 그만두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몸이 멋대로 움직여 그녀를 오른쪽으로 끌어당깁니다. 지금, 현실과 상상은 일치합니다. 이러면 실패하지 않지요. 다시금 자신감을 느낍니다. 상상했던 대로 손을 뻗어 목에 감고, 여자와 함께 쓰러집니다. 이건 꿈이다. 내가 늘 하는 짓 아닌가.
4. <죄와 죽음과 사랑과> 155~156쪽(이진우→박수남)
“우리는 어떤 상태에서 일어난 일은 그 상태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내가 내 사건을 나 자신의 것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상태의 단절을 느끼기 때문이겠지요. ‘내가 그 일을 저질렀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그런 일을 한 나다. 그런데도 그녀들이 나로 인해 죽음을 당했다는 생각은, 왜 베일 너머로만 느껴질까.’ 이 문제가 신앙 안에서, 마음 속에서 몇번이나 되풀이되었어요. 그러할 즈음에 나는 누나와 만났던 것이지요.”
<교사형 오시마 나기사 작품집> 166쪽
R 그 사람들, 내가 죽인 사람들은 현실의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뭔가 이렇게 베일에 가려진 형태로밖에 떠오르지 않아. 왜 그럴까.
R 누나, 그런 때 난 누나를 만났어.
5. <죄와 죽음과 사랑과>155~156쪽(이진우→박수남)
“우리는 어떤 상태에서 일어난 일은 그 상태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내가 내 사건을 나 자신의 것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상태의 단절을 느끼기 때문이겠지요. ‘내가 그 일을 저질렀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그런 일을 한 나다. 그런데도 그녀들이 나로 인해 죽음을 당했다는 생각은, 왜 베일 너머로만 느껴질까.’ 이 문제가 신앙 안에서, 마음 속에서 몇 번이나 되풀이되었어요. 그러할 즈음에 나는 누나와 만났던 것이지요.”
<교사형 오시마 나기사 작품집> 168~169쪽
R 꿈속에서 베일 한장을 통해서만 느껴지는 피해자들을 매우 생생하게 느끼는 일이 때때로 일어나게 되었다.
6. <죄와 죽음과 사랑과> 156쪽(이진우→박수남)
”언젠가부터 나는 누나가 정말 좋아졌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누나 생각이 나자 크게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누나는 다리를 다쳤는데도 일부러 집까지 찾아와주었어요. 누나가 버스 정거장을 잘못 알고 한 정거장 먼저 내려버렸어요. 그래서 집까지 걸어가는 도중에 운좋게 자전거 뒤에 탈 수 있었지만, 나는 우리 집 근처의 일들을 잘 알고 있고, 또 내가 한 일이 있으니만큼 만약 누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으로 가슴이 아팠어요. 나쁜 짓을 하면 나쁜 것만 눈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 정말 맞는 말이에요.”
<교사형 오시마 나기사 작품집> 166~167쪽
R 어느새 누나를 너무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어느 날 문득 누나를 떠올렸을 때 갑자기 누나가 걱정됐다. 그때 누나는 다리를 다쳤는데 일부러 우리 집에 찾아와줬다. 버스 정거장을 잘못 알고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걸어가야 했다. 우리 집 근처는 아주 위험하다. 나 같은 범죄자들도 많다. 만약 누나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갑자기 누군가가 내 심장을 쥐어짜는 것 같았다. 나는 나쁜 상상만 하기 때문에, 이럴 때도 가장 나쁜 일을 상상한다. 누나가 살해당하거나 강간당하면 어떡하지. 내가 그 사람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7. <죄와 죽음과 사랑과> 156쪽(이진우→박수남)
“그래서 나는 누나를 굉장히 걱정했는데, 그 순간 피해자가 생각났고, 그것이 이전에 없던 강한 쇼크를 주었기 때문에, 그 일이 뭔가 깊은 의미를 지닌 것처럼 느껴졌어요.”
<교사형 오시마 나기사 작품집> 167쪽
R 나는 하루 종일 가슴이 아팠고 심장이 이상하게 격렬하게 뛰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었다. 나는 갑자기 피해자들을 떠올렸고 위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죽인 사람들… 그 사람들은 사라졌다. 나 때문에….
8. <죄와 죽음과 사랑과> 187쪽(박수남→이진우)
“네 아버지의 연로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유치환이라는 시인이 망국의 비애를 노래한 <송가>라는 시를 항상 떠올려요.쫓기인 카인처럼/ 저희 오오래 어두운 슬픔에 태었으되/ 어찌 이 환난을 짐승이 되어선들 겪어나지 못하료.”
<교사형 오시마 나기사 작품집> 153쪽
女 쫓기인 카인처럼/ 저희 오오래 어두운 슬픔에 태었으되/ 어찌 이 환난을 짐승이 되어선들 겪어나지 못하료.조국의 시인, 유치환의 시야. 네 아빠의 얼굴을 보면 이 시가 생각나.
9. <죄와 죽음과 사랑과> 150쪽(이진우→박수남)
예를 들어 우리는 여배우의 수영복 차림의 사진을 자위행위의 재료로 하기 일쑤지요. 처음에는 시각에 의해서 성욕을 자극 시키지요. 그런데 그것은 언제나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아요. 행위는 습관화되어 가지만 상상은 습관화되지 않지요. 행위는 반복되지만 상상은 반복됨이 없이 확대되어 가는 것이지요. 거기에서 우리는 눈익은 배우의 수영복 사진을 상상에 의해서 보충해 가는 거죠.
<교사형 오시마 나기사 작품집> 163쪽
R 상상으로 여자를… 자위행위지요. 예를 들면 여배우의 수영복 사진을 자위의 재료로 삼습니다. 처음에는 사진을 보면 자극을 받죠. 하지만 대상이 사진이기 때문에 항상 똑같습니다. 상상으로 수영복을 벗기거나 찢거나 점점 특이한 것을 요구해 가죠. 하지만 하는 일은 똑같습니다. 다만 제 머릿속에서 상상만이 점점 부풀어서 바뀌어 갑니다.
10. <죄와 죽음과 사랑과> 149쪽(이진우→박수남)
성욕은 신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정신에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욕은 제한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는 거죠. 나는 닭이나 소와 성교한 사람을 알고 있어요. 또 자기 처와 1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성교를 계속하던 사람이 우연한 순간에 안면 있는 여인을 강간한 후에 죽인 일도 알고 있어요.
<교사형 오시마 나기사 작품집> 163쪽
R 성욕은 몸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게 아닐까요. 몸에는 한계가 있지만 마음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닭이나 소와 성교한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1년 내내 아내와 성관계를 거른 적이 없는 남자가 우연히 아는 여자를 강간하고 살해했습니다.
11. <죄와 죽음과 사랑과> 151쪽(이진우→박수남)
나는 상상 속에서 몇 번이고 범행을 수행하였어요. 이 길에서 이렇게 하면 틀림없이 잘될 것이에요. 아니면 이럴 땐 이렇게 하면….
<교사형 오시마 나기사 작품집> 164쪽 R 전에도 이런 일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이 상상인지 아니면 실제로 저지른 일인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상상 속에서 몇 번이고 그런 범죄를 계속한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