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희 <교사형>은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대표작입니다. 저예산 영화지만 칸영화제에 출품되면서 해외에 오시마 나기사 붐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죠. 후속작인 <감각의 제국>(1976)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며, ‘오시마 나기사’라는 이름은 전 세계 시네필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오시마 나기사 팬이라면 <교사형>을 모를 수가 없지요.
<교사형>의 주인공 R은 재일조선인 살인사건인 ‘고마쓰가와 사건’의 이진우를 모델로 삼았습니다. 극 중 R이 ‘누나’라고 부르는 치마저고리 차림의 여성(이진우와 교류하는 박수남 감독)은 오시마 나기사의 부인인 고야마 아키코가 연기했습니다. 하지만 <교사형>의 어디에도, 박수남 감독이 출판한 이진우와의 서간집이 바탕이 됐다거나 혹은 원작이라는 사실에 관한 언급이 없습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 <교사형>에 대해 처음 들으신 건 언제였나요?
박수남 “오시마 나기사가 당신의 허락 없이 영화를 만들었답니다”라고 누가 그러더군요. 그 후로 <교사형>을 본 사람에게서 전화를 여럿 받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영화가 박수남 감독을 얕보고 있다, 명예훼손이다,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라고 했습니다. 동시에 “너무 끔찍하니까 안 보는 게 낫다”라는 의견도 있었고요. 저도 자존심이 있으니까요, 굳이 나서서 찾아보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박마의 세월이 한참 지난 뒤 서울에서 열린 영화제에 초대받았는 데 그곳에서 <교사형>도 상영하더군요. 어머니와 함께 처음으로 <교사형>을 보려고 했는데, 조금 보는 것만으로 어머니의 상태가 나빠져서 극장을 나왔어요. 결국 앞부분만 봤어요. 정말 견딜 수 없었습니다.
박수남 표절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그렇게까지 했을 줄은 몰랐어요. 애초에 내 허락 없이 영화를 만든 것 자체가 표절이잖아요? 그렇게 샅샅이 뒤져서 훔쳐갔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마의가 아라이 가오루의 비교 조사 결과를 읽어줬을 때 정말 놀랐어요. 나한테 소중한 부분을 그 남자가 통째로 훔친 거예요.
양영희 오시마 나기사 감독 외에도 <교사형>에는 세명의 시나리오작가가 있었어요.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에서 그들 중에 감독님을 만나거나 자문을 구한 사람이 있었나요?
박수남 전혀 없었어요. 몇번 영화화 제안이 들어오긴 했지만 오시마 나기사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한 적은 한번도 없었고요.
양영희 <교사형>이 칸영화제에 초청되면서 일본에서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세계의 오시마”라는 별명을 얻게 됐죠.
박수남 그때 “일본의 누벨바그”니 뭐니 떠들었죠. 저는 그것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양영희 박수남 감독님의 지인들이 <교사형>를 보지 말라고 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영화를 보고 철저하게 분석해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으셨나요?
박수남 전 그런 일은 절대 하지 않는 타입이에요.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고요.
양영희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에서 박수남 감독님이 이 사건을 언급하는 짧은 장면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공개적으로 논의하지 않으신 부분이죠.
박수남 항의 성명을 발표한 적이 없어서, 공식적으로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와 이진우의 서간집을 위조하고 헐뜯으며 작가를 모욕했다는 사실은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입니다. 특히 그 사람 자신이 예술가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죠. 그 남자의 행동, 그 근본에는 여성과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있었습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