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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말부터 시작하는, <여행과 나날> 배우 심은경

- 표정과 동작이 크지 않은 인물인데도 ‘이’만의 얼굴이 각인된다. 책상에 앉아 오래 쓰는 사람만의 기색을 표현하는 것이 배우에겐 어떤 과제였나.

일상에 맞붙어 있는 영화다 보니 무언가를 부연 설명하듯 표현하면 오히려 넘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이 이를 통해서 자신을 비추어보도록 내가 거울이 되길 바랐다. 캐릭터가 주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이야기하던 중 감독님이 버스터 키턴의 무표정에 가깝지 않겠냐고 던져준 게 좋은 단서가 됐다. <제너럴> 등 키턴의 영화들을 다시 찾아봤다. 긴박한 상황에서 그의 몸은 바쁘지만 얼굴은 절대로 인상을 쓰거나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는다. 이 무표정의 설득력을 영화에 잘 녹여내보고 싶었다. 작품을 준비할 때 여러 참고 자료를 보면서 캐릭터의 밑그림에 나름대로의 덧셈과 뺄셈을 해보는 단계가 있다. 이번에 도움을 받은 또 다른 영화는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가 주인공인 영화 <맹크>였다. 이의 입장이 되어 <맹크>를 보면서 새롭게 느끼는 감정들이 있었다고 할까. 맹크는 저돌적이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거침이 없다. 상대적으로 이는 그런 면모에서 동떨어진 사람이니, ‘예술가라면 저렇게 자신을 더 드러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자문할 것 같더라. 스승과 대화하면서 이가 지금 닌자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말하는 장면도 있는데 과연 이가 정말 쓰고 싶은 작품이 맞을까, 곱씹기도 했다.

- 회화를 완성해나가듯이 인물을 준비하는 것 같다.

신기하게도 이번에 <여행과 나날>을 작업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영화 초반에 이가 손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장면에서 혼자 궁리를 하다가 허공에 대고 손으로 장면을 쓱쓱 그려보는 손짓을 했다. 하늘에서 새똥이 떨어지는 지문을 쓰고 있다는 설정이었다. 배우로서 인물을 준비할 때도 ‘그려 나간다’는 느낌으로 작업한다. 나 혼자서는 구도를 잡고 밑그림을 계속 고쳐 나간다면 촬영장에서 비로소 채색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모든 색채는 카메라 앞 현장에 있다.

- 버스터 키턴을 떠올리면 결국 몸짓의 마력에 항복하게 된다. 풀숏 혹은 롱숏이 많은데 움직임에 있어 염두에 둔 점은.

핵심은 타이밍이었다. 예를 들어 설원을 걷는 신이라고 하면 어느 타이밍에서 걷기 시작해서 언제쯤 멈춰 서는가, 그 지점에서 부동의 자세로 서서 뒷모습을 얼마나 보여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찍으면 찍을수록 움직임이 굉장히 중요한 영화라는 걸 자각하게 되어서 감독님하고 장면의 지속시간(duration)에 맞춰서 하나하나 세심히 맞춰 나갔다. 고전 무성영화가 주는 감탄은 결국 절묘한 타이밍으로 맞물린 움직임들의 총집합에서 오는 게 아닐까.

- 일본 촬영 전 심은경 배우가 한국에 있을 때 감독님과 이메일을 많이 주고받은 것으로 안다. 편지로는 주로 어떤 얘길 나눴나.

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염세적인 부분에 주목해서 “다자이 오사무 같은 캐릭터일까요?”라고 묻는다든가. 감독님은 반쯤 수긍하면서도 다자이 오사무적인 데카당이기보다는 앞으로도 자신만의 길을 찬찬히 걸어나가는 맑은 면모에 힘을 실었다. 돌아온 답 중에서 “나중에 어쩌면 한강 작가님 같은 인물이 되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라는 말이 기억난다. 한일의 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나누기도 했는데, 내 역할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부르면 ‘이상’(이씨)이 되니까 감독님에게 한국에 이상이라는 작가가 있다고 소개해드렸다. 같이 몇 작품 읽기도 했고. 감독님은 이상 시인과 나란히 이야기하고 싶은 인물로 건축가이자 시인이었던 다치하라 미치조의 사진을 첨부해주셨다.

- 겉으로는 평화로운 날들이지만 이는 약간 침잠해 있다. 일본어로 시나리오를 쓰는 한국인 작가로서 느끼는 이방인의 감각, 영화 앞에서 마주하는 언어 자체의 한계, 그리고 ‘나다움’을 찾아가는 고민이 감지되는데, 어쩌면 배우 심은경의 한 시절과도 닮아 있지 않았을까.

그 안에서 나의 순간순간이 보였다. 내 나라 말이 아닌 외국어로 작업을 하는 시간, 표현하는 사람으로서의 고민은 내게도 중요한 것이었다. 슬럼프는 결국 자기 안에서 출발한다. 특히 내가 하고자 하는 것, 나다움에 대한 고민은 평생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나 역시 이와 같이 아직도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다. 다만 <여행과 나날>에 무척 감사한 이유는, 이 작품을 촬영하면서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연기에 관한 고민의 일부가 해방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어떤 틀과 요구에 가두지 말고, 앵글 안에서 그저 어떤 존재 자체로서 가만히 있고자 했다. 신마다 최대치의 힘을 줘서 장면을 만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나를 잘 다독일 수 있게 된 시간이었다. 말하자면 완급 조절을 비로소 체험해본 느낌이다. (웃음) 캐릭터가 누구인지를 한 작품 안에서 점층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상생활에서 각자만의 생각과 감정이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걸 언제나 선명히 표현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스스로에게 둔감할 때도 있고. 그런 리얼리티를 품으려면 배우가 스스로 매번 너무 잘해야겠다고 마음먹기보다 ‘어떻게 잘 녹아들 것인가’를 질문하는 쪽이 나을 수도 있다.

- 그 조화로움의 경지가 훨씬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여행과 나날>에서 배운 건 소통의 굉장함이다. 작품은 혼자서 다 읽어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그걸 이번 현장을 통해서 가슴 깊이 느꼈다.

- 영화에서 이의 깨달음은 거창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맨살을 파고드는 찬 공기 속에서 불쑥 스며드는 기분 정도로 산뜻하게 묘사된다. 배우에게도 <여행과 나날>의 현장에서 비슷하게 각인된 틈새가 있었을까.

생각보다 날씨가 따뜻해서 봄이 다가오는 것을 몸으로 느끼며 촬영했다. 그래서 어느 날은 눈을 기다리느라 3시간을 현장에서 하릴없이 있었다. 야마가타 동네 주민들이 와서 스태프들과 한참 수다 떠는 풍경을 지켜보기도 했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데도 모든 스태프들이 느긋하게 웃는 현장이었다. 나중엔 주민들에게 의자를 놔줄 정도였다. 나도 쉬면서 감독님과 이런저런 영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때 문득 이 순간도 영화 같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촬영이 재개되었을 때 인위적으로 애쓰지 않고 그날 느낀 것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다. 작품과 현실이 일체가 되는 순간을 경험한 걸까?

- 이 특유의 솔직함과 담담함이 사랑스럽게 보일 때도 있다. 작품 상영 후 청중 앞에서 자괴감을 툭 내비치거나 은사의 장례식 후 그와 똑 닮은 쌍둥이 동생을 마주하고 넋이 나가버릴 때가 떠오르는데.

시나리오에서 강단 신을 처음 읽을 때 자신의 취약함을 내비칠 수 있다는 것에서 이미 그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그 장면에서 나 자신의 욕구도 읽게 되었는데 무대에 서거나 영화 GV 등에 나설 때 나 또한 종종 속에 있는 말을 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여러 염려와 조심스러움 때문에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 내가 부족한 거지’라는 얘기를 별다른 내세움 없이 툭 뱉는 모습에서 이의 용감함이 보였다. 죽은 은사의 쌍둥이 동생 앞에서 수프를 먹는 신은 미야케 쇼 감독님의 구체적인 지시가 관건이었다. 수프를 뜬 숟가락을 입 근처에 대고는 절대로 한입도 먹지 말라는 거였다. 아무리 놀랐다고는 해도 어영부영하다보면 그래도 한입 정도는 먹지 않을까요, 제안했지만 감독님은 완고했다. (웃음)

- 스승이 쓰던 카메라를 극구 사양하는 태도에서 아직은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자기 자격을 의심하는 이의 내면도 짐작해보게 됐다.

넓게 보면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는 창작자로서 자기에게 주어지는 것을 스스로 잘 활용할 수 있을지 엄격하게 따져보는 마음일 것 같다. 기본적으로 이는 남의 호의를 쉽게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타인에게 실례가 될까 걱정해서다. 그런데 쌍둥이 동생이 이에게 덥석 쥐어준다. 주변인, 그리고 환경이 끼치는 자극이 이 자신의 예상이나 의도 밖에서 새로운 걸 가져다주는 것이다. 조심하고 염려하느라 자기 안에 갇히는 성향은 나도 비슷하다. 결국 예기치 못한 주변 사람들의 한마디가 기적 같은 게 된다. 미야케 쇼 감독님 영화에 항상 흐르고 있는 감각이 <여행과 나날>에도 역시나 공생한다.

- 여행 중엔 당연히 호텔을 찾는 사람일 텐데 만실 상황으로 뜻밖에 민박도 하게 된다. 최근의 심은경에게도 스스로 설정해둔 선을 넘어 자신이 확장됨을 느낀 때가 있나.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이제는 무언가 모를 때 있는 그대로 ‘잘 몰라요’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거? 예전에는 잘 모르는 이야기가 나오거나 내가 부족하면 곧잘 당황하곤 했다. 어릴 때부터 아역배우로 활동하면서 나도 모르게 남의 평가와 시선을 의식한 흔적처럼 느껴진다. 최근에는 미야케 쇼 감독님과 시네필의 자격 문제 같은 것으로 대화한 때가 떠오른다. 종종 좋아하는 영화 이야길 할 때 ‘나 정도로 시네필이라고 할 수 있나?’를 따지게 된다. 몇몇 고전영화를 좋아할 뿐이지 영화를 아주 많이 본 건 아니다. 그런데 미야케 쇼 감독님이 내 얘길 듣더니 아무렇지 않게 본인도 비슷하다고 대꾸했다. 늘 가능한 한 더 많이 알고 잘하고 싶고 그렇지 못한 경우엔 너무 부끄러웠었는데, 그런 건 결코 중요한 게 아니었던 거다. 미야케 감독님은 굳은 마음의 벽을 허물어주는 사람이다.

- 설원에서 며칠을 보낸 뒤 이와 벤조의 이별은 담백히 처리된다. <여행과 나날>의 엔딩 신을 촬영할 때 어떤 감정을 느꼈나.

촬영할 때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그를 지켜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 거리를 지켰기 때문에 막상 마지막 순간에는 그다지 헤어짐을 의식하지 못하고 이렇다 할 감정이 선명해지지도 않았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지만 관객 각자의 감상이 다양한 신일 것이다. 서글프거나 어색하거나 혹은 웃기거나.

- 유학과 해외 활동을 경험하면서 심은경이 터득한 헤어짐의 자세도 있을까.

헤어지는 걸 되게 싫어했었다. 한번 잘 관계 맺은 사람들하고는 어떻게든 깨지지 않고 슬퍼지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일기일회라는 말이 좋아졌다. 만나면 잘 지내고, 또 언젠가 헤어질 때는 잘 헤어지면 된다. 만남만큼 헤어짐도 중요하다. 아니, 어쩌면 헤어지고 나서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이 생겨날 때가 더 중요하다. <여행과 나 날>의 마지막 장면도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의 시작이다. 이는 자기가 지냈던 곳을 청소하고 떠날 채비를 하면서 다시 펜을 든다.

- <여행과 나날> 이전에도 영화 <신문기자>, 드라마 <백만 번 말할 걸 그랬어> 등 다양한 일본 작품에서 한국인 또는 한일 혼혈의 인물을 맡았다. 타국에서 자기 정체성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 연기에 끼친 영향이 있다고 보나.

대사를 내뱉는 것에 대해서 본질부터 깊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외국어로 연기를 하다 보니 처음엔 일단 그 말을 온전히 내 것으로 체화하기 위해 한국어로 연기할 때보다 두배, 세배의 연습이 필요했다. 그렇게 언어에 치열해지는 과정 중에 지금까지 태어나서 늘 듣고 배운 언어라는 이유로 한국어 표현을 간과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됐다. 돌아가신 이순재 선생님께서 “연기는 말부터 시작한다”고 가르쳐주셨다. 그 말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일단 정확히 전달이 되어야지 그다음이 있는 거구나, 배우고 나니 연기를 대하는 자세도 묘하게 바뀌더라. 역설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것이 오히려 말이라는 틀을 뛰어넘는 방법이기도 하다. 말이 철저히 내 것이 된 다음에야 감정을 쌓아 올리는 작업이 가능해지니까.

- 과거의 심은경은 일찍 데뷔해 주연급으로 영화를 이끌어갈 만한 나이답지 않은 재능으로 회자됐다. 지금은 거기에 더해 아이콘으로서 심은경의 개성을 지지하는 층도 두터워졌다는 인상이다. ‘추구미’가 신조어로 자리 잡은 시대에 안전한 취향을 벗어나 ‘오스칼 심은경’, ’록스타 심은경’을 만든 용기의 출처는.

어릴 때는 내가 느끼는 나하고 조금 안 맞더라도 일단 열심히 소화하는 자세가 대중 앞에 서는 최선 혹은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사이 내 안에서의 분열은 커졌다. 이제 차분히 시도해보고 있는데 해보고 싶은 대로 표현하니 내가 나로서 훨씬 자연스러움을 느낀다. 나 스스로가 자연스러워야 보는 분들에게도 진심이 온전히 전해진다고 믿어보기로 했다. 나다움에 있어서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되찾고, 아직 모르는 것이 있다면 계속 성찰하고 싶다. 알을 깨고 나오는 건 자기 자신밖에 없다. 데미안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