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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가장 깊은 어둠을 그린 얼굴, <시스터> 배우 정지소

<기생충>의 철부지 큰딸 다혜, <더 글로리>에서 학교폭력을 견디던 어린 문동은, <수상한 그녀>의 경쾌한 주인공 오두리,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 하니?>의 WSG워너비 중심 멤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그것들의 동심원을 부지런히 넓혀온 정지소는 이제 다음 단계에 발을 내디딘다. 동생의 수술비가 모자라 부잣집 이복언니를 납치하기로 결심한 해란은 정지소의 얼굴을 빌려 가장 불안한 사람으로, 그러나 원하는 게 가장 명확한 사람으로 태어난다. 어떤 순간에도 쉽게 마음 놓을 수 없는 스릴러의 강점을 살린 영화는 정지소 고유의 연기적 심연과 어둠, 호흡과 박자를 타고 안정적인 장르성에 가닿는다. 과연 이 납치극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제 막 이야기 끝에 다녀온 이는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에 응답했다.

- 차기작으로 <시스터>를 선택한 계기가 궁금하다. 어떤 점에서 작품에 이끌렸나.

평소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갈망이 컸다. 그동안 납치를 당하거나 피해를 입는 역할을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납치를 하는 입장이더라. (웃음) 물론 그럼에도 해란이 무작정 폭력에 앞장서는 인물은 아니다. 마냥 센 캐릭터도 아니다. 그런 다면성을 그려보고 싶은 마음에 함께하게 되었다.

- 자신의 입장이 공고한 태수(이수혁)와 소진(차주영)과 달리 해란은 계속해서 감정이 움직인다. 상대방에 따라 흔들리고 동요하고. 해란에 대한 정의를 완벽하게 숙지하는 게 중요했을 것 같다.

해란은 정말 어려운 캐릭터였다. 전사가 자세히 드러나지도 않고, 지금까지의 연기 경력에 비추어도 해란의 마음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현장에서 많이 헤매기도 했다. 해란은 영화 속 서술자 입장이기 때문에 태수를 바라보는 관점, 소진을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그런 지점에서 고민이 컸다. 그럼에도 진성문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이 묻고 답을 들으면서 중심을 잡았다.

- 해란은 특정 지역의 사투리를 쓴다. 평소에는 표준어를 구사하다가 동생과 이야기할 때, 혹은 감정이 조급해질 때 사투리가 튀어나온다. 결국 그 사투리가 해란에게 가장 가까운 언어라는 뜻인데 이 지점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자연스러운 체화가 중요하다.

해란의 언어 설정에 관해 처음에는 변동이 많았다. 영화 전체를 사투리로 촬영할 것인지, 아니면 전부 표준어를 쓸 것인지 오랫동안 논의했다. 그러다가 감정이 격해질 때 억양이 드러나는 것으로 조율됐다. 해란의 전사와 사정을 잘 드러내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정말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싶었다. 진짜 그곳에서 오랫동안 산 사람처럼. 일부러 관련 지역의 다큐멘터리를 여러 편 봤다. 실제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억양과 톤, 언어 습관을 관찰했다. 극영화는 정제되고 연출된 부분이 많다 보니 평소에도 생활감 높은 다큐멘터리를 주로 참고하는 편이다. 또 지역어 선생님이 보내주신 녹음본을 매일 같이 반복해 들으면서 따라 했다.

- 납치극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영화의 핵심이다. 그러다 보니 연기를 자유롭게 펼치기보다 절제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게 배우에게 중요한 미션으로 남는다.

호흡을 많이 활용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우리는 공기의 흐름을 읽는다. 불편한 감정, 긴박한 감정, 조급하고 초조해지는 감정까지. 그런 걸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박자로 많이 드러내려 했다. 들숨과 날숨의 박자도 중요하다.

- 평소 연기에도 목소리 톤, 말투, 눈빛, 손짓 등 비언어적 요소를 유연하게 활용하는 모습을 많이 포착한다. 이런 지점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인가.

꼭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게 연기 같다. 감상자 입장에서도 그런 게 제일 재미있고. 며칠 전에 영화 <터미널>을 다시 봤다. 정기적으로 정주행하는 작품이다. 언어가 안 통하는 빅터(톰 행크스)에게 입국심사 관리자가 과자 봉지를 터뜨리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게 지금 너희 나라야.”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 주변 사람들도 눈동자만 굴리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 선 이방인뿐만 아니라 관객까지도 맥락을 이해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눈빛과 목소리, 작은 제스처로 맥락이 만들어지는 게 너무 재미있다. 그런 장면을 보면 나도 디테일을 잘 만들어나가고 싶어진다.

- 위태로운 공모를 시작한 소진과 해란. 그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두 여자는 태수 앞에서 의연한 척한다. 계획이 실패할 뻔하려던 찰나에 떨어진 숟가락을 줍는 척 물건을 숨기는 장면은 숨이 막힐 정도다. 세 배우의 타이밍이 중요하다.

주영 언니가 잘 리드해줬다. 촬영장에서 흘깃 눈치를 주면 빠르게 알아들었다는 듯이 다음 행동을 밟아나갔다. 리허설 자체가 길지는 않았는데 진짜 함께 공조하는 느낌으로 맞춰나갔다. 긴박함을 보여줘야 하는 장면은 실제가 아닌데도 실제인 것처럼 집중해야만 한다. 아역배우 때부터 선배님들이 “흐름을 잘 타라”는 조언을 자주 해주셨다. 많은 배우들과 연기할 때 유독 혼자 튀지 않고 조화롭게 녹아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몰입이 깨지지 않도록 숲을 보려고 한다.

- 해란에게는 이 납치의 당위성이 명확하다. 동생 수술비를 마련하는 것. 그럼에도 그는 소진 앞에서 종종 동요한다. 해란이 되었던 사람으로서 이 지점을 어떻게 이해했나.

어쨌든 해란에게 소진은 이복언니니까. 서로 다른 삶을 살았을지언정 한 자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타고난 기질이나 성정을 생각해도 해란은 본래 납치나 감금 같은 단어와 가까운 사람이 아니다. 동생의 수술비라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 납치극만이 유일한 해결책처럼 보였던 거다. 그러니 해란의 양심이 흔들리는 모습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 해란과 소진. 영화 바깥을 상상해본다면. 둘은 어떤 미래를 맞이할까.

일단 주어진 돈을 반으로 나눠 가지지 않을까. (웃음) 생사를 함께했으니 둘만의 연결고리가 단단해졌다. 그리고 각자 잘 살면 좋겠다. 각자가 생각하는 행복의 방식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