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차주영은 잘 알지 못하는 길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배우 차주영은 늘 미지의 세계가 궁금하다.” 드라마 <원경>을 마친 이후 차주영은 전작이 남긴 여운을 해소하고 싶던 차에 <시스터>의 시나리오를 받았다. 배우 차주영의 도전 정신을 자극하는 여러 요소가 도처에 산재한 영화 <시스터>, 그 속에서 차주영은 영문도 모른 채 납치됐지만 어느 순간 납치범과 위태로운 공조를 펼치는 여자 소진을 연기한다.
- <시스터>의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바로 매력을 느꼈다고. 어떤 면모가 눈에 들어왔나.
공간의 한정성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다음엔 이야기의 흐름이 흥미롭고 과감하다고 느꼈다. 흘러갈 길이 보이다가도 미묘한 반전이 계속 등장하는 점이 드라마틱하면서 모호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언급한 이 흐름을 어떻게 한 공간에서 만들어낼지 궁금해졌다. 단 세명만 등장하는 이야기 아닌가. 밀폐된 공간에 배우 셋을 제외하곤 그 어떤 생명체도 나오지 않는다. (웃음) 그 설정만으로 금세 빠져들었다. 보통의 촬영이라면 세트를 비롯한 현장의 환경 제반과 친해지려는 노력을 한다. 그런데 <시스터>를 찍을 때는 나를 현장에 최소한으로 노출했다. 소진에겐 이 공간이 감금 장소기 때문에 그가 느끼는 감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내겐 큰 도전이었다.
- 도전 의식 역시 출연을 결정한 주요 이유였나.
정작 나는 스릴러나 호러영화를 잘 보지 못한다. 자주 놀라고 무서워한다. 그렇다 보니 <시스터>같은 작품을 만날 기회가 흔치 않다. 관객 차주영의 취향으로 인해 배우 차주영의 선택 폭이 좁다고 느낀 때도 있었다. 적어도 내 연기를 모니터할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하니까! 내가 연기하고도 무서워서 못 보는 사태가 반복되는 작품이라면 출연 결정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스터>는 플롯이 흥미로웠고 그 속에서 내가 해내야 할 것이 많아 도전했다. 쉽게 만나보기 어려운 작품인 점은 확실하다. 진성문 감독님께 작품 안에서 내가 해내야 할 것들에 대해 여러 가지를 매 순간 질문했다.
- 어떤 내용을 주로 질문했나.
아무래도 배우이다 보니 객관화가 쉽지 않다. 그래서 관객의 입장에서 계속 시나리오를 생각했다.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반경이 정당한지 답을 구하고 싶었다. 물론 장르의 특성상 숨겨진 이야기가 많고, 소진 또한 불안하고 의뭉스러운 구석이 매력인 캐릭터다. 그래서 나를 더욱더 설득하고 싶었나 보다. 평소엔 관객이나 시청자를 설득하기 위해선 내가 먼저 작품에 설득돼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소진은 영문도 모른 채 납치돼 혼란 속에서 상대는 물론 자신을 설득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내가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불편한 날것의 감정을 드러내더라도 소진을 연기할 때만큼은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위안 삼았다. 혹시 소진이 계속 클로즈업으로 등장하는 부분이 관객으로서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 그렇진 않았다.
다행이다. 그래서 소진이 최대한 사실적인 캐릭터로 비치길 바랐다. 소진의 입에 물린 재갈도 좀더 강력한 것이라면 연기적으로도 도움을 받는 동시에 관객들도 몰입할 수 있을 듯해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물론 소품팀에서는 부상 위험을 최소화하되 납득이 갈 만한 비주얼의 재갈을 만들어주었고, 언어가 제한된 채 악에 받친 소리를 질러대는 소진 때문에 러닝타임 동안 피로감을 느끼는 관객이 있을까 조심스럽더라.
- 카메라 뒤 감독의 자리, 혹은 관객의 자리에서 주로 작품을 조망하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인데도 거듭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의 심정을 고려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편이다. 그래서 작품 한편을 놓고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다고 느낀다. 평소에도 배우 차주영과 인간 차주영을 완전 분리하는 편이다. 그래서 어느 작품이든 내가 시나리오를 읽으며 의문을 느낀 부분을 관객 또한 느끼지 않도록 더욱 집요하게 파고들어 배역을 구축한다.
- 소진은 영화 속에서 납치 당시의 의상을 계속 입고 나올 수밖에 없다. 소진의 영화 속 착장은 어떻게 정했나. 자연히 납치 당시 소진의 처지 등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전사를 상상하게 되더라.
소진의 의상이 단벌이어야 한다는 점을 합의한 후 정말 많은 옷을 입어봤다. 감독님은 아무래도 소진이 결박된 상태에서 저항하는 장면이 많아서 나를 배려해주시느라 넉넉한 통의 트레이닝복을 생각하셨다. 그런데 나는 움직임이 많을 거라면 아예 움직임이 제한돼 보이는 옷을 입어야 인질로서의 인상이 강하게 날 것 같아 지금의 핏을 제안했다. 또 유혈 사태도 있을 테니 분장이 돋보이려면 어두운 색보다는 화이트 컬러가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 결투, 저항, 도주 신이 잦아 몸을 사용하는 연기가 많은 배역이었다. <원경>에서도 짧은 액션을 선보인 적 있지만 배우로서 이전에 드물게 보여준 액션 연기를 해낸다는 설렘도 있지 않았나.
아직 보여주고 싶은 액션이 정말 많다. 액션 연기는 시작도 안 한 거다. (웃음) 액션 전문 대역이 있어도 내가 할 수 있는 동작은 최대한 화끈하게, 드라마틱하게, 몸을 사리지 않고 소화하고 싶었다. 아, 이건 자랑해야지. 현장에서 몸 잘 쓴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 소진이 태수에 의해 어떤 영상을 찍는 장면이 등장한다. 서로 다른 감정과 다른 대사를 세 차례 변주해 연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철저한 계산에 의해 완성한 장면이다. 이미 구상을 완료하고 현장에 간 터라 리허설 때부터 본 테이크만큼의 에너지로 승부를 봤다. 죽지 못해 발버둥치는 소진의 마음이 담긴 장면이니 기대해달라.
- <시스터>가 개봉한 이후엔 시리즈 <클라이맥스>와 영화 <랜드>가 공개를 앞두고 있다.
장르는 물론 그 속에서 연기할 배역이 전부 다르다. 지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도전을 멈추지 않는 배우 차주영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도전 대신 안주를 택해 팬들이나 관객을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다. 전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꺼내 보이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