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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평범한 나날들의 천국, <영원>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원>

성공적인 재결합 로맨스 코미디의 조건은 한 커플이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재협상하는 것이다. 이때 인물들의 선택은 또다른 자기 발견의 은유와 같다. 1930~40년대 할리우드 스크루볼코미디의 하위 장르로 ‘재혼 코미디’를 정의한 스탠리 카벨(<행복의 추구: 할리우드 재혼 코미디>, 1981)은 재회하는 연인들의 이야기가 던지는 궁극적 질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 바 있다. “‘당신은 누구와 함께 있고 싶은가?’가 아니라 ‘당신은 누가 되고 싶은가?’가 핵심이다.” <영원>은 그 질문을 사후 세계로 데려간다. 67년 전 사별한 첫 번째 남편 루크(캘럼 터너)와 이후 평생을 함께한 두 번째 남편 래리(마일스 텔러) 사이, 극도의 혼란을 토로하는 조앤(엘리자베스 올슨)은 주어진 과제의 진위를 일찌감치 자각한 인물 같다. 환승장에 늘어선 천국행 기차편은 시시각각 출발시간을 알리고, 여자는 이제 자신의 영원을 직접 조각해야 한다.

<영원>의 망자들은 죽음 직후에 가장 행복했던 나이대로 돌아간다. 그리고 담당 코디네이터(AC, afterlife cordinator)의 지도 아래 일주일 동안 계류하며 자신만의 영원을 골라야 한다. 관광 박람회 행사장과 흡사한 환승장엔 청정 산악 지대, 사계절 햇살로 빛나는 해변, 카우보이들의 사막, 의료 면허 없이도 박진감 넘치는 응급 현장에 참여할 수 있는 메디컬드라마 세계관 등 인류의 각종 판타지를 반영한 영원 판촉 행사가 한창이다. <영원>에서 조앤, 래리, 루크는 모두 청춘의 모습으로 재회한다. 결혼과 이른 사별, 직후의 재혼까지 단기간에 변화를 겪었던 조앤의 연대기를 고려할 때 세 사람이 서로를 처음 만났을 무렵이 인생의 전성기였음을 알 수 있는 설정이다. 이쯤에서 사후 세계의 시간성이 도드라진다. 루크의 기억은 1950년대에 머물러 있고 노환에 가까웠던 조앤과 래리는 2020년대에서 왔다. 과거와 현재가 공간적으로 나란히 놓이는 것이 <영원>이 재혼 코미디의 공식에 가하는 새로운 압력인 셈이다.

<영원>

조앤을 기다리느라 반세기 넘게 환승장에 머문 바텐더 루크는 완벽한 청춘의 표상이다. 루크 앞에 서면 할머니의 영혼을 가진 조앤에게도 다시 젊음이 활짝 열린다. 22살. 춤추고 웃고 상상력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의 연인은 전쟁이 끝내버린 결혼의 비애를 잊지 못한다. 조앤 앞에 놓인 첫 번째 재혼의 가능성이란 중단된 과거를 완성할 기회인 것이다. 한편 조앤과 함께 늙어간 래리는 자녀를 양육하고 생활에 타협하는 시간을 함께 견뎌왔다. 50년 이상 동반자로 지냈으니 결혼 생활은 이미 완성형이라 해도 좋겠다. 즉 안정된 현재를 영원으로 연장하는 것이 조앤이 택할 수 있는 두 번째 재혼의 가능성이다.

영화 말미에 팽팽한 삼각관계의 긴장을 먼저 허물어버리고 화살표를 바꾸는 복병이 있으니, 두 남자 중 언더도그에 가까워 보였던 래리다. 그는 조앤의 머리 길이가 현생에서 자신이 본 적 없던 것임을 알아차리고 그녀가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었는지 간파한다. 그동안 함께한 시간을 모두 잃어버리더라도 루크와의 삶을 살아보라고 권하는 래리의 무아(無我)적인 사랑 앞에서 여자는 설득당하고 만다.

하지만 <영원>의 종장에서 이는 감동적인 오판이었음이 드러난다. 루크와의 영원을 택한 조앤에게 뒤늦은 후회가 들이닥친 터다. 조앤은 자기가 놓아버린 것이 한 남자가 아니라 그와 구축하고 단련해온 자기 자신의 삶임을 한발 늦게 정의내린다. 소동 끝에 환승장으로 돌아온 조앤이 래리와 재결합하는 결말은 A24가 앞서 내건 멜로드라마의 기수 <머티리얼리스트>(감독 셀린 송, 2025)만큼이나 맥 빠지는 결말일 수 있다. 삼각관계를 다루는 영화가 결말의 볼멘소리를 피해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하면 지나치게 호의적인 두둔일까? 예측 가능하고 표준적인 선택임엔 여지가 없지만, 맞춤형 낙원이 아닌 평범한 나날들의 연속을 천국으로 명명한 이 영화의 낙관을 냉소하고 싶지는 않다.

<영원>

<영원>은 현실의 혹독함이 무마된 사후 세계에서 퍽 감미로운 모험을 펼치는 영화다. 이 안전함은 미심쩍기도 하지만 동시에 희귀하기도 하다. 사랑을 믿는 사랑영화가 지지받기에 너무도 차가운 시대에, 할리우드영화의 향수 어린 존재 이유는 보기 좋은 구름과 같다. 그들은 언제나 먼 하늘 위에서 부드럽게 반짝이며 우리는 종종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진다. <영원>의 크나큰 전범일 에른스트 루비치가 일찍이 제목에 쓴 것처럼, ‘천국은 기다려준다’. 덧붙여 데이비드 프레인 감독은 타임라인을 새로고침하길 원하는 관객을 위해 극 중 소란으로부터 자유로운 여성 캐릭터를 하나 심어두었다. 조앤, 래리 부부의 오랜 동네 친구인 카렌은 드물게 노년의 모습으로 망자가 됐다. 삶의 끝자락에서야 레즈비언으로서의 성정체성을 자각했기에 그의 행복은 말년에 맺혀 있다. 환승 연애가 스크루볼코미디를 만나 온통 시끄러운 순간에도 카렌은 고고히 멋을 부리고 빈티지 슈트케이스를 꾸려서 1960년대 파리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탄다. “비참한 옛 벽장”을 빠져나온 이 노년 여성의 자유로운 여정을 보여줄 때 사랑에 관한 <영원>의 긍정적 어조는 어느 때보다 명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