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찢기고 피를 토하는 사육신의 뒷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고문을 받으면서도 단종(박지훈) 복위의 당위성을 고하는 외침을 들으며 왕은 차마 식사를 들지 못한다. 그때 세조의 최측근인 한명회(유지태)가 단종을 찾아오고 이후 유배지인 강원도로 향하는 단종의 걸음이 이어진다. 16살에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왕. 조선의 왕 중 가장 단명한 비운의 왕. 이것이 익히 알려진 계유정난 이후 단종의 역사다. 영화 <단종애사> <관상> <나랏말싸미>, 드라마 <한명회> <왕과 나> <공주의 남자> 등 단종의 서사는 1950년대부터 다양하게 다뤄져왔다. 세조와 비교해 위태로운 어린 왕으로 빈번히 묘사되던 전과 달리 <왕과 사는 남자>가 주목한 것은 힘없이 스러진 왕의 전사가 아니다. 단종이 유배지에서 반격을 도모한 과정, 그 곁을 지킨 엄흥도(유해진)의 관계가 <왕과 사는 남자>의 중심축이다.
극의 무대는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 한명회가 속한 궁, 금성대군(이준혁)의 거처다. 마찬가지로 유배를 떠난 금성대군이 조용히 단종의 복위를 준비하는 사이 한명회는 금성대군의 동태를 살피는 동시에 단종을 주시한다. 한명회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세조를 대리하는 자이며 그런 한명회의 눈을 자청한 이가 바로 촌장 엄흥도다. 가족과 마을의 안위 외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렇게 단종 거처의 감시자가 된 엄흥도가 이홍위의 움직임을 감지한다. 그가 한양으로 향한다는 것을 관아에 고하는 대신 엄흥도는 이홍위의 편에 선다. 훗날 삼대가 멸할 위험까지 무릅써가며 왕의 시신까지 거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남은 기록은 많지 않으나 목숨을 건 엄흥도의 결단을 기반으로 영화는 상상을 가미한 답을 제시한다. 극 중 단종은 주민들과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상 혹은 벌을 주겠다”며 권력으로 찍어 누른 한명회보다도 백성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질 줄 아는 단종에게 촌장 엄흥도는 충심을 다한다. 백성들의 글 선생이 되어주고 겸상하며 고충을 듣는 이홍위는 엄흥도의 눈을 통해 나약한 왕이 아닌, 어질고 심지 곧은 선왕으로 새롭게 해석된다. 이홍위의 죽음을 막을 힘은 없었지만 세조의 왕위 찬탈을 미화한 사료에 맞서 엄흥도는 기꺼이 사건의 목격자이자 내레이터가 되어준다.
금성대군을 필두로 한 단종 복위 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후 이야기는 예견된 비극을 향해 나아간다. 무력해진 왕과, 그 곁을 지키며 그에게 생의 의지를 되찾게 해준 백성들과의 관계가 공들여 서술되었기에 후반부 단종의 죽음, 시신 수습 장면을 예사로이 넘기기 어렵게 만든다. 코미디와 드라마가 조합된 리듬, 반란을 꾀한 무신들의 대전 등 사극에 기대하는 여러 요소가 <왕과 사는 남자>에 적절히 배합되어 있다.
단종과 엄흥도에 관한 단 몇줄의 기록에서 출발한 <왕과 사는 남자>를 두고 장항준 감독은 말한다. “우리가 진짜 알아야 할 역사의 본질은 기득권의 서사가 아닌 뒤편에 있는 것들”이라고. “단순히 승자와 패자로 나뉜 과거의 궤적이 아니라 실현되지 못한 과정에 관한 이야기, 작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들” 말이다. 비극이자 야사로 치부되던 단종의 역사, 엄흥도의 역사를 스크린을 통해 확인할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