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프로텍터>는 한국의 문봉섭 작가의 각본을 바탕으로 한국 제작사(아낙시온 스튜디오)가 기획한, 이례적인 형태의 할리우드 프로젝트다. 무엇이 당신을 이 프로젝트로 이끌었나.
영화의 주제와 깊은 곳에서부터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인신매매는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범죄이자 사회적 비극이지만, 개인적 차원에서 나는 세딸을 키우는 엄마다. 만약 누군가 자신의 딸을 해치거나 납치한다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보라. 그건 부모가 꿀 수 있는 최악의 악몽일 것이다. 동시에, ‘내 아이를 해치려는 자들에게 내가 어떤 짓까지 할 수 있는가?’ 하는 상상은 우리가 잠 못 이루는 밤에 한번쯤 그려보는 어두운 판타지이기도 하다. 기술을 연마해 그들에게 반격하고, 처절하게 복수할 수 있는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건 배우로서나 엄마로서나 짜릿한 컨셉이었다.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폭력은 매우 날것이며 잔혹하지만, 과시적이거나 불필요한 폭력은 아니다. 주인공 니키가 거대 조직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아이를 되찾기 위해 무엇을 감내하고 희생해야 하는지, 그 고통의 무게를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시나리오를 처음 접했을 때 발견한 ‘한국적 질감’은 무엇이었으며, 이를 번안하는 과정에서 어떤 조율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문봉섭 작가의 원안 시나리오는 정말 아름다웠다. 하지만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문법과 달랐던 점은 등장인물이 훨씬 많았고, 곁가지로 뻗어나가는 서브플롯도 상당히 많았다는 점이다. 한국적인 서사에서는 각 캐릭터의 사연과 감정을 촘촘히 보여주는 것이 미덕일지 모르지만, 글로벌 관객이나 장르영화 관객 입장에서는 주인공 니키와 그녀에게 주어진 72시간 안에 딸을 찾아야 한다는 임무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해외 관객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끝까지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과감한 단순화 작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캐릭터를 덜어내고 소수 정예로 압축했다. 예를 들어 악당이 8명이었다면 3명으로 줄이는 식이었다. 주인공이 A지점에서 B지점을 거쳐 C지점으로 나아가는 길을 더 선명하고 확실하게 닦아주기 위한 선택이었다.
- 메가폰을 잡은 아드리안 그룬베르그 감독은 멜 깁슨, 실베스터 스탤론 등 20세기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마초 액션 아이콘들과 함께 작업해왔다. 그들과 차별화되는, 이번 작품에서 당신이 구현하고자 했던 액션 미학이 있다면.
화려한 겉치레가 있는 할리우드식 무술을 원하지 않았다. 대신 처절한 현실감, 나 같은 체격의 여성이 세배는 큰 거구의 남성을 이긴다는 게 설득력 있게 보여야 했다. 군대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힘으로 맞서는 게 아니라 상대의 약점을 찾는 게 먼저라는 것을 안다. 관절, 급소 같은 것들 말이다. 손목꺾기나 관절 부러뜨리기 같은 기술은 덩치와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 체구가 작은 여자라도 영리하고, 빠르고, 고도로 훈련되어 있고 무엇보다 ‘기습의 요소’를 쥐고 있다면 충분히 통하는 방법들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안다면 누구든 쓰러뜨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니키 캐릭터를 설계했다. 그녀는 싸움과 죽음의 메커니즘을, 그리고 사람을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법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최정예 군인이고,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 캐릭터의 가장 큰 아름다움이었다. 테스트 상영 때 여성 관객들은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한 반면, 남성 관객들은 믿기 힘들다고 하더라. 남성들은 <람보> 속 람보가 혈혈단신으로 군대를 쓸어버리는 걸 보며 ‘나도 할 수 있어!’라고 하지만, 여성이 하면 ‘저건 좀…’ 하는 식이다. (웃음) 보통 이런 하드코어 액션영화를 선호하지 않는 여성 관객들에게 <프로텍터>는 확실한 울림과 대리만족을 줄 것이다.
- 주연배우의 역할을 넘어 처음으로 프로듀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음악부터 색보정, 편집까지 후반작업 전반에 관여했다고 들었는데, 작품을 향한 집요한 애정이 느껴진다.
영화의 비주얼에 대해 확고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1980년대 찰스 브론슨 영화나 <람보>시리즈에 대한 오마주처럼, 거칠면서도 클래식한 무드로 느껴지길 원했다. 그래서 화면에 일부러 거친 질감을 넣었고, 각 장면과 캐릭터마다 고유의 색감을 부여해 감정을 시각화했다. 내게는 이 후반작업 과정이 배우로서 경험해보지 못한 흥미로운 세계였다. 음악에도 참여했는데, 작곡가 돈 셰럴과 악보를 검토하고 편곡했으며, 엔딩 타이틀 곡 작곡도 도왔다. 문 작가와는 대본 수정도 치열하게 했다. 영화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편집하면서, 편집은 관객에게 ‘지금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가이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모든 배우에게서 최고의 연기 순간을 끌어내고 싶었다. 내가 스크린에서 보고 싶은 순간들을 정확히 담아내야 했으니까.
- 이 영화를 기본적으로 ‘작은 제작비의 작은 영화’라고 표현했다. 예산의 한계를 극복하고 원하는 퀄리티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어땠나.
우리가 처음 시작할 땐 촬영 카메라가 두 대뿐이었다. 지난 15년 동안 같이 일해온 촬영감독을 섭외했는데, 마침 그가 엄청난 카메라 수집광이었다. 그가 개인 소장하고 있던 카메라 15대와 크레인 장비를 트럭에 싣고 현장에 나타났다. 덕분에 우리는 프로덕션 규모와 비주얼을 10배는 키울 수 있었다. 이들이 내 친구들이고, 나와 함께 오랫동안 일해온 사람들이고, 그들이 나를 사랑하고 기꺼이 노력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종의 ‘가족 프로젝트’였다. 나를 돕기 위해서라면 어떤 난관이라도 기꺼이 헤쳐나갈 사람들과 함께한 영화다.
- 나이가 들수록 정신력보다는 육체의 한계나 육체가 보내는 신호에 더 귀 기울이게 되지 않나. 오랜 시간 액션배우로 살아오며 평소 육체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특히 이번처럼 고강도 액션을 앞두고는 어떤 의식을 치르는지 궁금하다.
제작 기간 중에 체중이 약 9kg가 빠졌다. 촬영 기간이 딱 한달이었는데, 주 6일 촬영에 그중 절반 이상이 밤샘 촬영이었다. 20년 전이었다면 거뜬했겠지만, 이젠 아이 셋을 낳고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촬영에 들어가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내 한계에 대해 배우고 발견한다. 체력적으로 자신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캐릭터의 성질을 닮아가기도 한다. ‘전부 아니면 전무’를 고수하는 사람이랄까. 무언가에 ‘예스’라고 말하면 강박이 시작되고, 서서히 나라는 존재는 희미해지고 다른 세계로 걸어 들어간다. 마침내 촬영장에 가서야 “오, 오늘 모습이 배역에 완벽하네”라고 깨닫게 된다. 그리고 촬영이 끝나면 집에 돌아와 회복하는 데 꽤 긴 시간이 걸린다. “이제 밀라는 누구지? 밀라는 무슨 옷을 입지?” 하며 공허함을 느낀다.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배역에 줘버렸고 내 안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 그 오랜 경력에도 매분 매초 자신을 소진하는 편인 것 같다.
모든 배우가 그런 건 아니다. 훈련이 잘된 훌륭한 배우들은 안 그런다. 나는 나 자신을 믿지 못해서 스스로를 벼랑 끝까지 몰아붙이는 타입이다. 나는 배우로서 정규 교육이나 적절한 훈련을 받지 못했다. 너무 어릴 때 연기를 시작했고, 너무 어린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둬서 그냥 현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어떤 배우들은 농담을 하다가도 “액션!” 하면 돌변하고, “컷!” 하면 다시 농담을 한다. 나는 그렇게 못한다. 내가 확신을 가지려면 100% 그 상황에 빠져 있어야 한다. 규율이나 기술이 없으니, 날것의 본능에 의존하는 거다.
- 영화 속 니키와 딸에게 닥치는 무자비한 폭력처럼 현실 세계에서도 여성과 소수자는 이유 없는 혐오와 폭력 앞에 놓인다. 이에 어떻게 저항하고 행동하고 싶은가.
딸들에게 자기방어에 대해 매우 엄격한 편이다. 큰딸(배우 에버 앤더슨)에겐 태권도를 ‘억지로’ 시켜 검은띠까지 따게 했다. 딸들은 “왜 난 평범하게 발레만 하면 안돼?”라고 묻지만 “우리는 남자들이 우리를 억누르려는 세상에 사는 여성들이야. 너희는 강해져야 하고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해”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을 키워왔다. 세상은 불평등하고 그 불평등은 심화하고 있다. 세상 대부분의 곳에서 남자들은 여자가 책 읽는 것을, 맞서 싸우는 것을, 강인한 것을 원치 않는다. 그저 순종하고, 자신들을 돌보고, 자신들 아래에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럴수록 여성들은 더 똑똑하고, 빠르고, 상대의 허를 찌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무술이 가르쳐주는 것이고, 이 영화에서 내가 말하고 싶었던 요점이다. 훈련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항상 세수 앞을 내다본다면 나보다 신체적으로 우월한 상대를 이길 수 있다. 누구나 급소는 똑같이 약하니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