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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경로 - 영화 <남과 여> 수입한 배우 김재욱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내가 이 영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는 게.” 출연작이 아닌 자신의 수입작 <남과 여>를 소개하는 김재욱의 모습은 사뭇 달라 보였다. 관객으로서 작품의 인상적인 부분을 끝없이 들려주는가 하면 배우의 시선으로 두 주연이 표현한 미묘한 감정을 짚어내고, 수입 담당자로서 작품에 느끼는 애정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차기작 <은밀한 감사> 촬영을 마치기 전부터 배우 김재욱은 영화 <남과 여>의 영화 수입을 결정한 뒤 차근차근 진행해왔다고 전한다. 어떻게 작품을 홍보하는 게 효과적일지 고민 중이라는 그는 개봉 전부터 관객들과 GV를 통해 다양한 감상을 공유하고 있다. 본인에게 의미가 깊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직접 수입한다는 오랜 꿈을 실현시킨 배우 김재욱은 앞으로도 영화 수입을 지속하고 싶다는 단단한 의지를 내비쳤다.

- 영화 취향을 먼저 묻고 싶다. 원래 로맨스를 좋아하는 편인지.

내게 멜로의 이미지가 별로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웃음) 로맨스를 가장 좋아하는 장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예고편이나 포스터를 봤을 때 구미가 당긴다면 찾아보는 편이다. 잘 만들어진 영화는 계속 보는 편이기도 하고. 볼수록 신이나 색감, 대사 등 몰랐던 부분이 새롭게 보이곤 해서 이거다 싶은 작품을 만났을 땐 여러 번 본다.

- <남과 여>가 계속 돌려보게 되는 작품이던가.

사실 이름만 알고 챙겨보진 못했다. 그런데 수입을 고려하며 영화를 관람했을 때 시작한 지 10~15분 만에 완전히 몰입했다. 1960년대 중반 파리의 전경과 분위기가 너무나 잘 담겨 있었고 호감을 지닌 사람들의 대화, 긴장감, 우아한 눈빛이 마치 옆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것처럼 설레게 했다. 안느(아누크 에메)가 전남편에 관해 이야기할 때 둘의 과거가 한편의 뮤지컬처럼 펼쳐질 때부턴 헤어나올 수 없었다. 한컷 한컷 흘러가는 게 아까울 정도였다. 안느의 전남편이 스턴트맨으로 일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 것도 인상적이었고 몬테카를로 레이스 신에서 포드, 페라리 등 레이싱카들이 질주하는 모습을 다큐멘터리처럼 촬영한 것도,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산길을 질주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상대적으로 안전장치가 부족했을 저 시대에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했을까, 리스크가 있는 현장인 만큼 관객에게 강렬한 감정을 전달하는구나 하며 당시의 현장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 두 인물의 감정선이 가장 잘 드러난 부분이 어디라고 느꼈는지 궁금하다.

안느와 장루이(장루이 트랭티냥)가 처음 식사하는 자리에서 장루이의 손이 클로즈업되는 신. 그 장면으로부터 모든 게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로 배에서 내리기 전에 손이 닿을 듯 말 듯한 장면까지의 연출이 무척 좋았다. 장루이 트랭티냥 배우는 종종 속내를 알기 어려운 표정을 짓고 아누크 에메 배우는 눈빛만으로 모든 걸 설명해주곤 한다.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를 보며 멜로영화에서 캐스팅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주 오랜만에 많은 것들이 밀려든 작품이었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자마자 결정했다. 이건 내가 수입해야겠다고.

- 그 덕에 <남과 여>가 47년 만에 한국에서 재개봉한다. <남과 여>가 낯선 관객들에게도 <Un homme et une femme>라는 주제곡은 익숙할 테다.

<남과 여>는 감독이 음악부터 먼저 완성을 시킨 뒤 촬영에 들어간 흔치 않은 사례다. ‘나는 이런 무드로 이 신을 가고 싶다’는 것을 감독이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공표한 셈인데 그게 잘 맞아떨어졌다. 음악이 메워주는 부분이 많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대사가 없어도 됐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남과 여> 이전에 2020년 9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마르지엘라>로 영화 수입을 시작했다. 배우로서의 출연작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수입해 관객에게 소개하는 건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

첫째로 정말 행복하다. 어릴 때 내가 어른이 돼서 ‘이런 일을 직업으로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상상했던 걸 꿈으로 이룬 셈이다. 한국에 들어온 좋은 해외 영화들을 보고 자라며 내가 수혜를 입었듯이, 나도 좋은 영화를 수입해 다음 세대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그걸 직접 진행하고 있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

- 작품을 들여오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홍보 마케팅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현재 <남과 여> GV를 여러 차례 진행 중이고 <마르지엘라> 땐 ‘마이 마르지엘라’라는 인터뷰 프로젝트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는데.

마르지엘라는 내게 많은 영향을 미친 패션 디자이너 중 한명이다. 다큐멘터리 <마르지엘라>가 그에 관해 다룬 첫 영화는 아니지만, 마르지엘라가 직접 출연해 자신의 삶에 관해 육성으로 들려주고 아카이빙된 관련 자료를 공개한 건 그 작품이 처음이다. 게다가 첫 수입작이라 관객들에게 재밌게 소개할 방법을 고민하다 떠올린 것이 ‘마이 마르지엘라’ 인터뷰 프로젝트였다. 그에 관해 잘 알고 있거나,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모았는데 그 과정이 굉장히 즐거웠다. 내적으로 무척 풍요로워질 수 있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5년 후에 <남과 여>를 만났을 때 ‘이제 다시 영화 수입을 시작할 때가 됐다’고 직감했다.

-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들여오고 싶은 마음이 있나.

물론이다. 아직은 영화 수입·배급에 관한 지식을 배워나가는 과정이지만 때가 되면 직접 영화제에 가서 누구보다 빨리 영화를 접해 들여오는 단계에 이르고 싶다. <마르지엘라>를 수입할 때 ‘크레센트 필름’(crescent film)이라는 회사를 차렸다. 달을 좋아해서 회사 이름에 초승달을 넣었다. 달에 관해 이야기하면 대부분 보름달, 반달을 떠올리지 않나. 초승달은 상대적으로 주류라 할 순 없지만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녔다. 그것이 내가 수입하려는 영화의 결과 같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처음의 기조대로 계속해서 움직일 것이다. 그래서 <남과 여>가 잘됐으면 좋겠다. (웃음) 이 일로 큰돈을 벌 욕심은 없지만 현실적으로 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부분들이 있더라. 상영관 수가 많이 잡히지 않아 아쉽지만 그래도 극장에서 <남과 여>를 보고 싶은 분들이 찾아와주셨으면 좋겠다. 내가 이 영화를 봤을 때 느낌 감정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