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준상, 신성록 배우는 초연에 이어 두 번째로, 박은태 배우는 처음 <스윙 데이즈_암 호명 A>에 합류했다. 작품과 배역 유일형을 선택하도록 이끈 원동력이 있다면.
유준상 삼일절에 결혼해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신혼여행을 다녀왔을 정도로 한국 독립운동사에 관심이 깊다. <스윙 데이즈_암호명 A>를 처음 무대에 올린 해에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다녀왔다. 그날 이 작품의 재연을 곧 올릴 수 있도록 소원을 적고 기부도 하고 왔는데 바람이 이루어져 기쁘다. 유일형의 모델인 유일한 박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중에 유일한 박사에 관련된 책이 세권 정도 출간됐다. 그 책들을 모두 읽으며 유일한 박사의 삶을 면밀히 살피고 연기할수록 더욱 공부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유 박사의 삶이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명징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초연 때도 그 마음을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하고자 노력했다. 특히 일형의 마지막 넘버인 <내가 가야할 길>! 이 넘버를 부를 때면 저절로 독립투사의 마음을 되새기곤 한다. 관객들도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스윙 데이즈_암호명 A>가 다시 무대에 오르는 만큼 초연을 찾았던 관객이 느낀 감동을 한번 더 느끼러 오길 바라고, 이 작품을 접한 적 없는 관객은 극장에서 우리가 누리는 평온한 일상의 소중함을 환기하길 바란다.
신성록 <스윙 데이즈_암호명 A>가 눈물을 강요하지 않고 미소를 잃지 않는 작품이라 좋다. 초연 당시 함께 무대를 만들어갈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넘버도 좋았고 초고의 트리트먼트부터 작품의 밀도가 느껴졌다. 영화를 주로 작업했던 김희재 작가의 이야기도 무대와 인상적으로 맞물렸다.
박은태 아직 나의 일형을 만들어가는 중이라 오늘 할 말이 많을지 모르겠지만(웃음) 준상 형님과 성록 배우가 닦아둔 길에 누가 되지 않길 바란다. 지금으로선 <스윙 데이즈_암호명 A>의 소재가 가진 재미가 나를 경유해 배가됐으면 좋겠다. 창작뮤지컬에 참여할 때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치열한 고민 끝에 탄생한 텍스트 위로 배우와 제작진이 또 한번 치열하게 머리를 맞댄 채 작품을 완성하는 기쁨이 크다. 그 여정을 생각하면 설렌다.
유준상 그러고 보니 은태는 나랑 창작뮤지컬을 세 작품이나 했네? <프랑켄슈타인> <벤허> 그리고 <스윙 데이즈_암호명 A>까지.
박은태 그렇네요. 성록이도 시즌은 달랐지만 <벤허>를 같이했고요.
유준상 성록이도 나랑 세 작품 같이한 걸로. 우리 셋이 역사가 깊구나. (웃음)
흔들리지 않는 사람
- 아무래도 뮤지컬이다 보니 넘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스윙 데이즈_암호명 A>의 넘버만이 지닌 강점이 무엇이라고 보나.
신성록 선율로부터 받는 연기적 도움이 크다. 우리 작품의 넘버는 일부러 감정을 담아 부르려 애쓰지 않아도 몰입이 쉽다. 감정보다 적확한 단어로 표현하고 싶은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인류애가 넘버에 흐른다. 인간이 인간을 마주하는 휴머니즘이 생생해 초연 때도 매 공연 주체할 수 없는 감동으로 울컥했다.
유준상 외국인인 제이슨 하울랜드가 어떻게 한민족의 정서를 넘버에 담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아마 제이슨도 한국어 가사를 100%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자신의 노래를 배우들이 울고 웃으며 즐기는 현장을 보고 우리만큼 행복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박은태 나는 이제 막 넘버를 익히는 중이지 않나. 이미 이 작품을 경험한 배우들의 증언을 들을수록 기대가 크다. 내가 이 마음을 무대에서 어떻게 오롯이 표현할 수 있을지 두근거리고.
- 세 배우 모두 이전에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에 출연했더라. 유준상 배우는 드라마 <토지>, 박은태 배우는 뮤지컬 <일 테노레>, 신성록 배우는 반전이 있긴 하지만(웃음) 영화 <밀정>에서 열연했다. <스윙 데이즈_암호명 A> 속 유일형은 등장 초반부터 명확한 신념을 바탕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세 배우의 전작과 다른 출발선에 선 캐릭터다.
유준상 실제 역사에서 유일한 박사가 냅코 프로젝트에 들어가 무장투쟁을 결심한 나이가 50살이다. 지금 50대와 1940년대의 50대는 사회적 인식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나. 마침 내가 올해로 갓 50살이 돼 눈길이 가는 게(웃음) 유 박사가 당시 젊은이들과 같은 강도의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엔 여성 요원들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훈련을 받은 분 중 우리가 이름을 아는 건 암호명 A, 유일한 박사뿐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다수의 젊은이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길 기회조차 없이 알파벳 암호명으로만 불렸다. 그래서 <스윙 데이즈_암호명 A>는 공연장 곳곳은 물론 커튼콜에도 엔딩크레딧을 삽입해 작품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이름을 소중히 새긴다. 그게 우리가 이름 없이 떠난 분들에게 다할 수 있는 성의다. 실제로 유일한 박사의 원래 이름이 유일형이다. 미국에서 사업을 할 때 이름의 ‘형’자를 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워해 아예 개명했다고 한다. <스윙 데이즈_암호명 A>가 실제 역사에 상상력을 더한 이야기인 만큼 모든 캐릭터가 가명을 쓰는 듯 하지만 일형에 한해서는 본명을 사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신성록 지금 유일한 박사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해주셨는데, 나는 준상 형처럼 박사에 관련된 모든 책을 다 찾아보진 못했다. 대신 <스윙 데이즈_암호명 A>가 들려주는 일형의 궤적 속에서 답을 찾으려고 한다. 이번 공연도 초연 못지 않게 스태프, 배우들이 함께 공연 안팎에서 디테일을 챙기며 일형이 암호명 A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에 충실하고 있다. 모쪼록 유 박사의 뜻이 잘 묻어나길 바란다.
박은태 지금 두 배우가 그리는 일형도 이렇게 다르지 않나. 초연에 함께했던 민우혁 배우의 일형 역시 앞의 두분과 전혀 다른 해석이었다. 그래서 나도 무언가 다르게 해보려 이것저것 실험 중이다. 역사적 전기로 시야각을 좁혀 바라보기보다는 한 캐릭터를 바라볼 수 있는 여러 관점을 확장해둔 상황이고. 그래서 대본이든 음악이든 전부 좋은 의미에서 비틀어 바라보려고 한다.
유준상 이렇게 배우별로 다른 맛이 있기 때문에 뮤지컬을 여러 번 봐도 질리지 않는 거겠지. 가령 초연 땐 성록이 연기하는 일형만 선글라스를 꼈다.
박은태 일형은 알아갈수록 신기하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미국에 가 사업가로 성공하고, 스파이로도 활약을 한 데 이어 한국에서 100년을 넘게 운영 중인 기업의 창업주라면 분명 범인(凡人)은 아니다. 이렇게 많은 사건을 겪는데도 작품 속 일형은 언제나 초연하게 자기 길을 걸어간다.
신성록 그래서 일형이 ‘사기캐’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다. 실제 유일한 박사가 절대 뱉지 않는 말이 ‘약속’이었다고 한다. 어제 연습 중 알게 된 일화다. “다시는 위험한 짓 하지 마. 빨리 약속해”라는 상대역의 대사에 몰입하다 보니 “미안해”라는 원 대사 대신 “알았어. 약속할게”라고 애드리브를 하게 됐다. 그때 작가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리 셋을 불러 당부하셨다. “약속한다”는 말을 일형은 뱉지 않는다고. 자기 확신이 없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고 빈말을 하지 않는 게 일형이 평생 지킨 신념이라고.
- 신성록 배우가 일형을 사기캐라고 말한 것처럼, 작품 속 유일형을 구성하는 정체성이 무척 다양하다. 그는 수완 좋은 CEO인 동시에 한 여자를 지키기 위해 마음을 쏟는 로맨티스트고, 판을 읽는 승부사이자 투철한 독립운동가면서 유능한 스파이다. 한 캐릭터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오가는 와중에 고수하려는 일형 내부의 일관된 근간이 있다면.
신성록 일형이 자기 앞에 펼쳐진 과업에 대해 편안하고 능숙하게 소화해내는 모습을 물 흐르듯 연기하고 싶다. 분명 일형은 사기캐고 다양한 정체성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시행착오를 겪는다. 처음 일형은 독립운동가 베로니카의 일갈에 자신이 조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열심히 사업을 해 자금을 대는 길뿐이라며 유보적인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자기 삶을 즐기고 자기 사업에 열중하던 일형도 자신의 생각이 안일했음을 깨닫는다. 모든 걸 자기 손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사람이 그게 전부가 아님을 깨닫는 순간, 일형은 새로운 각성을 한다.
유준상 우리 작품에도 드러나지만 <대지>를 쓴 대문호 펄 벅과 유일한 박사가 실제로 돈독한 사이였다고 한다. 일형을 알아가는 데 힌트가 된 대사가 있다. 일형은 미국 전략사무국(OSS)과 정보 거래를 하고, 펄 벅에게 조선에 간 자신을 지켜달라며 당부한 뒤 “제약회사를 할 거야. 다치고 죽는 사람이 많은 시대니까. 특히 조선인은 더”라고 말한다. 이미 미국에서 성공한 사업가가 무엇이 아쉬워 조선에 가겠나. 그런데 목숨을 걸 정도의 뜨거운 동포애로 삶의 다음 방향을 결정하는 사람인 것이다. 오늘 유일한 박사의 전기적 사실을 많이 말했지만, 사실 <스윙 데이즈_암호명 A>의 유일형이 곧 유일한이라는 등식을 단언할 수는 없다. 그래도 꿈꿔본다. 내가 일제강점기 조선인이었다면? 나는 유 박사처럼 모든 걸 버리고 독립운동에 뛰어들 수 있었을까? 그래도 독립운동에 진심이었을 거라고 무대 위에서 나를 다잡으면 호국 영령의 마음이 빙의된 듯 내 안으로 들어온다. 이번에도 그런 생각을 하며 무대에 서려고 한다.
박은태 진짜 매력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 작품의 프로듀서가 며칠 전 “초연보다 더 매력 있는 일형을 그리겠다”라고 하셔서 내가 만날 일형이 더욱 궁금해진다.
낭만을 찾다
- 초연 당시 김태형 연출이 “독립운동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보여주고 싶다”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초연 당시 일형이 공연 내내 다양한 슈트와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무대를 누볐다.
신성록 거의 패션쇼지. (웃음) 이렇게 옷을 많이 갈아입는 배역이 그간 있었나 싶은 동시에 언제 또 이런 걸 누리나 싶어 무대 위에서 매번 자존감을 충전했다.
유준상 참 그게 멋스럽다. 의상을 자주 갈아입는 게 번거롭긴 하지만 옷을 갖추는 순간 몸가짐,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일형은 007, 그러니까 제임스 본드 같은 멋진 스파이다. 이번 <스윙 데이즈_암호명 A>는 초연에서 업데이트된 이야기가 많은데, 그때 펼치지 못한 첩보 작전이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 전개될 예정이다.
신성록 아날로그로 무대 위에서 직접 실연했던 초연에 비해 영상 등 구현 가능한 무대 기술도 많이 반영될 예정이다. 넘버도 새로 추가가 된다. 기대를 해달라.
유준상 요새 유일한 박사 못지않게 김상옥 의사의 이야기에 매료돼 있다. 일제의 경찰들과 1 대 400으로 대결하신 분 아닌가. 김상옥 의사의 이야기를 공부하며 우리가 미처 몰랐던 독립운동사를 함께 파헤치는 중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낭만을 찾는다. 어떤 시기에 이상을 위해 몸을 던지는 사람만이 통과할 수 있는 낭만 말이다. 이 작품이 민족의 어두운 시기를 다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지게 싸우는 사람들을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일형이 사업 규모를 키우고 독립운동에 점차 발 들이는 이야기 맞은편에는 야스오(보웅), 만용과 어린 시절 나누었던 우정의 서사가 등장한다. 이토록 깊은 우정을 무대 위에서 교류하는 건 어떤 자극을 가져다주나. 특히 만용은 그의 대의가 오로지 일형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일형에게 더욱 각별한 캐릭터일 텐데.
신성록 정말 보웅이는 아픈 손가락이다. 넘버 <스윙 데이즈>를 부를 때 일형이 야스오에게 말한다.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말아야 되는 것들이 있다”라고. 보웅이 때문에 던지는 말인데, 그 친구가 변해가는 과정은 지켜볼 때마다 가슴 아프다. 언제든 보웅에겐 손을 내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만용이 형은 눈물 버튼이다. 단순히 말하자면 일형의 모든 걸 알고 일형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인데, 그 답답할 정도로 깊은 사랑을 무대 위에서 받으면 마음 한쪽이 뜨거워진다.
박은태 그런 장면들을 빨리 연기해보고 싶다. 대본과 음악을 넘어, 실질적으로 배우와 그 감정을 나누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누구보다 잘할 자신 있다. (웃음)
유준상 좋을 거야. 우리 다 처음 <스윙 데이즈_암호명 A>를 만났을 때 은태 같은 마음이었거든. 방금 제임스 본드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서구에서 만들어진 첩보물이 멋지지만 그들이 우리와 같은 역사적 비극 아래에서 첩보를 벌이진 않는다. 그런데 우리 작품은 시대의 비극이 일형과 그의 측근들, 혹은 반대급부에 서 있는 이들까지 극한으로 몰아갔다는 점을 분명히 해둔다는 점에서 다르다.
- <스윙 데이즈_암호명 A>가 무대에 오르기까지 한달여 남았다. 지금 무대 아래에서 꿈꾸는 무대 위의 특정 순간이 있다면.
신성록 작품 후반 일형이 수많은 갈등을 뒤로하고 “나 하나 뛰어들면 하루씩, 또 누가 뛰어들면 하루씩, 그렇게 단 하루씩 앞당길 수 있다”라며 목표를 향해 전진한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스윙댄스>넘버와 함께 앙상블이 스윙 리듬에 맞춘 군무를 벌인다. 그때 동선이 앙상블 배우들 그리고 베로니카와 눈이 마주칠 수밖에 없는 구도다. 그들과 눈을 맞추면 주체할 수 없는 떨림이 온몸을 채운다. 이전까지는 인물 개인의 투지가 다음 행보를 결정하는 서사를 주로 연기했다. 그런데 <스윙 데이즈_암호명 A>에서는 오로지 타인의 마음에 감화돼 새 삶을 살아갈 결심을 굳히는 인물을 연기한다. 뮤지컬을 꽤 오래 했는데도 일형의 궤적은 전에 본 적 없이 신선하다.
유준상 무대 밖에서 개인적으로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하나 있다. 전쟁터에 내몰린 아이들을 예술로서 돕는 일이다. 인류 역사에 전쟁이 없던 날은 단 하루도 없다. <스윙 데이즈_암호명 A>가 1940년대의 이야기지만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 또한 끝없는 전쟁 속에 다음 세대를 향해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우리와 함께 울고 웃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이토록 혼란한 세상에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자문해봤으면 좋겠다.
신성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가는 것. 그 마음을 잊지 않은 채 재연 무대를 열심히 준비하려고 한다. 또 은태 형이 새로운 일형을 만들어낼 테니 궁금한 분들은 극장에 많이 찾아달라.
박은태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일형을 위해, <스윙 데이즈_암호명 A>에 새로운 관점을 더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다. 기대해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