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골 마을에 미술 프로젝트를 하러 간 예술가들에게 횡액이 닥쳤다. 귀에 ‘너 자신을 해치라’는 정체 모를 주술이 들려오며 끔찍한 사건이 펼쳐진다. <신사: 악귀의 속삭임>(이하 <신사>)에서 악귀의 제물로 간택되는 데에는 과거의 죄도, 인과의 사슬도 없다. 거기 존재했다는 이유로 희생양이 된다. 원인도 없이 참혹한 악귀로 변하는 친구들 앞에서 공포에 질리는 유미를 연기한 공성하는 “공포영화는 못 보는데 연기하는 것은 재밌었다”며 해맑게 웃는다. 독립영화에서는 내면을 응시하는 인물로, 드라마에서는 야무지고 명민한 전문직 캐릭터로 존재감을 쌓아온 그가 이번엔 공포에 질려 뒷걸음치다가도 동생을 구하기 위해 담대하게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 <신사>의 어떤 부분에 끌려서 선택했나.
당시 이 영화와 함께 출연을 고민하던 시리즈물이 하나 있었다. 두 작품 다 욕심이 났는데, <신사>는 일본 올로케이션에 일본 제작진과 일해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선택했다. 예전부터 해외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감독님과 처음 미팅을 했는데, 유미의 과거의 이야기를 길게 작성해서 주셨다. 여러 부분을 섬세하게 보시는구나 싶어 작품에 대해 더 믿음이 갔다.
- 학생들이 악귀에 처음 씌일 때부터 사건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관찰자이자 주체인 역할이다. 관객 역시 유미를 통해 공포가 전이되어야 하기에 리액션이 많은 연기다.
이전엔 직접 사건을 파헤치거나 설명하는 냉철한 역할이 많았다. 오컬트영화는 처음 해보는데, 아무래도 환경이 어둡지 않나. 나중에 보니 화면으로는 동작이 잘 보이지 않더라. 액션을 더 크게 했어야 하나 후회도 했는데, 공포가 큰 소리와 동작에서 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 유미는 사건의 전말에 대해 알고 싶어 하면서도 겁에 질려 있다. 극 중 긴장감을 어떻게 계속 유지했나.
우리 영화의 로케이션이 정말 좋다고 생각한다. 고베의 터널들이 주는 현장감이 이미 공포를 줬다. 그 현장에 있으면 스산하고 무서워서 자연스럽게 긴장이 됐다. 배우에게는 현장이 어떻게 완성되어 있는지가 연기에 몰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터널에서 며칠 지내다 보니 거기에만 가도 상황에 동화됐다. 산속 신사나 터널이 정말 외진 곳에 있어서 화장실 한번 가려고 해도 차를 타고 가야 하고 통신도 터지지 않는 곳이었다.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 <신사> 속 귀신은 공포영화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악귀가 아니라서 막막하지 않았나.
진짜 어려웠다. 힌두교의 악귀는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을 해도 잘 그려지지 않아서 막 찾아보고 그림도 그려봤다. 힌두교 악귀의 표정을 보고 싶어서 검색했더니 힌트가 될 만한 그림들이 좀 있었다. 다른 공포영화를 참고한 건 없었지만 감독님이 이 영화를 보면 좋겠다고 <포제션>DVD를 선물로 주셨다. 일본어 자막이라 볼 수가 없어서, 한국 자막 버전으로 구해서 봤다. (웃음)
- 영화 후반부에는 연극적 요소가 많다. 세트장도 그렇고. 배우라면 누구나 해보고 싶을 만한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도 있다.
그 장면이 무대연기를 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 무대가 나에겐 터널이었다. 멀리서 막 뛰어오는데 감독님이 컷을 외치고 “스바라시~”라며 좋아하시는 게 보였다. 잘해낸 건지 몰랐는데, 감독님이 모니터로 몇번이나 돌려보면서 칭찬해주셔서 무척 뿌듯했다. 누구나 무언가에 몰입할 때 가장 즐겁지 않나. 제대로 몰입해서 촬영하다보니 그 시간들이 정말 소중하게 남았다. 내가 열심히 했기에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가 아니라 열심이었던 그 시간만으로 내게는 충분해서 그걸로 괜찮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 김재중 배우가 연기하는 명진과는 미묘한 사이다. 과거 로맨스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서로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상대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일단 처음 선배님을 만났을 때 ‘우와! 동방신기!’ 하고 속으로 놀랐다. (웃음) 그런 아우라가 있으시니까. 내가 딱 동방신기 세대라, 친구들이 다 동방신기 팬이었다. 출연이 확정되고 친구들에게 선배와 함께 영화를 찍는다니까 다들 난리가 났었다. 선배님이 워낙 상대를 편하게 해주시고 장난기도 많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일본어를 잘하시니까 의지를 많이 했다. 통역이 필요 없으시니까, 현장에서 선배한테 일본어를 많이 물어봤다.
-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닥터 슬럼프>에서 연이어 의사 역할을 했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는 기자 역할이었다. 전문직 전문 배우다 싶은데, <신사>에서는 예술가 역할이라 더 편했을 것 같다.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나.
예대에 미술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익숙했다. 원래 현장에 가면 세트를 유심하게 보는 편이다. 친구들 중에 소품이나 미술팀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많아서, 영화 현장에서도 소품에 관심이 간다. 우리 현장에서도 사당 세트가 멋있어서 자세히 봤다. 미술팀이 공들여 만든 세트가 있으면 화면에 짧게 나오는 게 아쉽기도 하다.
- 올해 사진전을 열었다.
그룹전이었는데, 12년 정도 찍은 창문 사진을 전시했다. 내가 찍은 필름 사진 중에 안에서 밖을 찍은 창문이 많더라. 우연히 알게 된 작가님도 창문을 찍는 분이었는데 그분은 밖에서 안을 찍었더라. 둘이 얘기하다가 <안의 밖, 밖의 안: The Window as Betwixt and Between>이라는 전시 제목이 나왔다. 내가 왜 그렇게 창문을 계속 찍었을까 생각해보면 ‘새로운 세계에 대한 관심’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내 성향이, 안에 있으면 자꾸 밖을 탐험하고 싶어 하더라.
- 전시에 대해 찾아 보니 이런 문구가 재밌더라. “어디에서도 영원히 살 곳이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그건 너무 슬프지 않나.
이사를 자주 다니는 편인데, 그게 나에게 잘 맞는다고 느낀다. 영원히 머무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면 슬프겠지만, 나는 그게 힘들지 않다. 계속 같은 곳에 머무르면 다른 곳이 궁금해져서 이동하고 싶어진다. 중간에 휴일이 이틀 정도만 있어도 훌쩍 강원도로 떠난다.
- 그렇게 떠나는 것이 휴식이 되는 걸까. 불안을 잠재우게 하거나.
데뷔 초에는 불안도 크고 그랬는데 결국 태도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쁜 생각을 하면 그게 얼굴과 몸에 드러난다. 그럴 때 그냥 산이라도 올라간다. (웃음) 아, 정말 중요한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 불안해서 막 남산에 올라간 적이 있는데, 그때 캐스팅 전화를 받기도 했다.
-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로 SBS 연기대상에서 신인상도 수상했고, 이후 틈 없이 시리즈물에 출연하고 있다. 소속사도 옮기고 최근 여러 변화가 있었다.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은 생겼다. 처음에는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사진을 전공했고 카메라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초반에는 카메라가 잘 안 보였다. 이제 현장이 좀 익숙해지니까 카메라가 더 가까워지더라. 요즘은 촬영 전에 혼자 머릿속으로 콘티도 그려본다. 이해하게 되니까 두려움보다 즐거움이 더 커졌다.
- 요즘 즐겁게 본 것이 있나.
매거진 보는 걸 좋아하는데 <뉴요커>에 마돈나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그러다 마돈나의 무대 뒤를 다룬 다큐멘터리 <진실 혹은 대담>을 보게 됐는데, 푹 빠졌다. 인터뷰 준비 하면서도 마돈나 음악을 들으니까 자신감이 생기고 그랬다. 확신이 없어도 아티스트는 그냥 밀고 나가야 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연기가 늘 어렵지만 방향을 잘 알고 가고 싶다. 마돈나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영화 얘기로 왔는데, 그런 생각들을 한다. 결국은 자신을 믿고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