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션으로, 작가로 긴 시간 동안 사랑받아왔다. 이번에는 여성 뮤지션들을 위한 뮤직 페스티벌 <영희 페스티벌>을 기획했는데.
<영희 페스티벌>은 여성 뮤지션의 무대를 중심으로 하지만, 여성 예술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자리이기도 하다. 뮤지션 이상은, 김윤아, 선우정아, 해파, 수조 등의 무대는 물론 팟캐스터인 셀럽 맷(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진행자)과 비혼세(팟캐스트 <비혼세>진행자), 스탭드업 코미디언 원소윤의 무대까지 여성 예술가들의 무대가 보석함처럼 모인 자리다. 전례가 없는, 이제 처음 시작하는 페스티벌임에도 흔쾌히 참여를 결정해준 아티스트들 덕분에 규모가 큰 3일짜리 문화 페스티벌이 되었다. 성별과 상관없이 누구든 보러 와도 되는데 무대에 서는 사람들은 오후 1시부터 밤 9시까지 전부 여자다. 미국 대법관이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유명한 말이 있지 않나. 대법관 중 여성이 몇명이어야 충분하냐는 질문에 ‘전부’라고 답했던 것. 그걸 만들어보고 싶었다. 부연하자면,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남자가 나오는 경우는 충분히 많았기 때문에 이번 시도가 극단적인 행동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 <영희 페스티벌>은 뮤지션이 직접 기획한 뮤직 페스티벌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페스티벌은 음악 자본주의의 꽃인데… 진짜 잔혹하다. 잠깐 부연하면, 코로나 이전에 이미 음악의 스트리밍 유통이 일반화되면서 뮤지션 입장에서 음반 판매로 돈을 버는 구조가 힘을 잃었다. 이 맥락에서 공연과 페스티벌이 음악계의 중심 산업이 됐다.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돈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덜 부르게 되는데, 그 결정에는 어쩔 수 없이 개인의 판단이 개입한다. 그 맥락에서, 내가 여자 뮤지션으로 20년 가까이 활동하고 페스티벌 무대에 서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분명 있었고. 동시에, 운이 좋게도 나는 고등학생 때 뮤지션 세라 매클라클런이 기획에 참여한 여성 뮤지션들의 페스티벌 <릴리스 페어>가 성공하는 모습을 뉴스로 접한 세대였다. 음악성으로도 상업성으로도 당대 최고로 인정받던 여자 싱어송라이터들이 90년대 후반에 뮤직 페스티벌을 성공시킨 선례가 있었던 셈이다. 나 역시 ‘왜 세라 매클라클런은 <릴리스 페어>를 만들었을까’를 생각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 <릴리스 페어>는 수전 베가부터 셰릴 크로, 피오나 애플, 커샌드라 윌슨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여성 뮤지션들의 페스티벌이었다.
예전에는 ‘저런 게 있으면 좋겠다’, ‘나도 나가보고 싶다’ 정도였다. 하지만 세라 매클라클런은 빌보드 차트 5위 안에 든 사람이라 모든 페스티벌에 나갈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서트나 라디오에서 여성 뮤지션이 2명 연속 출연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여자 뮤지션이 한번 나오면 그다음에 당연히 남자 뮤지션이 나와야 하는 식으로. 남자 뮤지션이 계속 나오다가 여자 뮤지션이 한명 나오는 건 익숙한데, 여자에서 여자로 무대가 이어지면 너무 치우쳤다는 말을 듣게 된다. 나 역시 많이 들었고. 그러니까 내가 한번 나오면 다른 여자 뮤지션은 한동안 못 나오는 식이다. “너 요즘 좀 한다며”라는 말을 듣는 여자 뮤지션은 오후 4시나 5시쯤에 세컨드, 서드 스테이지를 배정받고, 여기서는 별로 안 어울린다는 말을 익숙하게 듣게 된다. 감히 추측해보자면 유명한 여자 뮤지션도 여름 페스티벌 기간에는 외면당한다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하고 있을 테고.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순간 정말 멋없는 징징이 예술가가 돼버린다.
- 여자 창작자로 살았던 경험의 총합이 이번 페스티벌이기도 하겠다.
아주 개인적으로는 내가 보고 싶은 페스티벌을 해보고 싶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페스티벌을. 내가 좋아하는 반찬만으로 차려진 식탁 같은 것이다. 여자들만 무대에 선다는 아이디어 자체에 부정적인 인상이 생길까 두려워하는 세대도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기쁘게도 하루 만에 매진되는 걸 보면서 세상이 먼저 바뀌어 있는데 업계 사람들이 몰랐던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뮤지션들의 무대 사이에 문화 행사를 기획해 넣으면서 판이 큰 독서 클럽 같은 느낌도 떠올렸다.
- 무대에 서는 사람도, 무대를 보는 사람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자리가 되겠다.
내가 뮤지션으로 겪은 일, 쓸데없이 뒤로 주춤해야 했던 일들을 다른 사람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언제나 있었다. 거기에 더해 멋진 여자 뮤지션들에게 ‘너 장사 되고, 너 인기 많고, 사람들이 너 이렇게 좋아해’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관객들 역시 여자 예술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고 객석에서 함께 느끼면 좋겠다. 그 자리에서 다 함께 느끼고, 더 멋있어지면 좋겠다.
- ‘여성 뮤지션들만 참여하는 뮤직 페스티벌을 꾸려보자’는 생각과 그 생각을 실제 기획으로 만들어내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올해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이 기획이 아이디어에 멈추지 않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탠 많은 여성의 존재가 있지만 결정적으로 한 젊은 여성이 나의 망상을 현실화시켜주었다. 지난해 단독 공연 제안을 받은 일이 있다. 앨범을 2013년에 마지막으로 냈기 때문에 ‘뮤지션 라이선스가 없지 않나’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단독 공연 제안을 받은 일 자체가 내겐 놀라운 부분도 있었다. 남이 뭐라 하기 전에 스스로 먼저 ‘너는 앨범도 안 냈는데 무슨 단공(단독 공연)을 해’라며 때리는 식으로. 그런데 마땅히 자격이 있다는 태도로 좋은 무대에 단공 이야기를 건넨 분 덕분에, 오랫동안 생각해온 이 페스티벌 기획을 말할 수 있었다. 그분이 “저희랑 하시죠” 하면서 급물살을 탄 것이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공연장은 지금의 마포아트센터로 바뀌었지만.
- 뮤지션 섭외를 직접 했다.
어떤 페스티벌, 어떤 무대에 서는지는 뮤지션 개인의 결정만은 아니다. 무대의 성격부터 개런티의 액수까지 여러 이유로 회사에서 뮤지션에게 제안하고 거절한다. 선우정아씨는 섭외할 때 처음 연락한 사이였지만 기꺼이 참여하겠다면서 회사를 설득해주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엄청난 뮤지션들이 모였고, 처음 이야기한 공연장에 들어갈 수 있는 최대 인원수를 금방 넘어버렸다. 문화 라인업까지 꾸리고 나니 잘 보이더라. 서로가 서로의 팬인 여자들이 그동안 모일 일이 없었던 거구나 하고. 다들 배고픈데 밥 먹자는 말을 내가 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힘든 일도 많았는데, 얼마나 힘들지 모르고 일단 저지른 다음 울면서 완성하기는 내 특기고.
- 창작자에게 있어 선배, 후배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나나 잘하자’라고 생각하는 시기가 있는데 함께할 수 있는 걸 만들어보자는 쪽으로 생각이 발전한 계기가 있을까.
나는 직접 앨범을 제작하면서 데뷔하긴 했지만 신에서 받은 게 많다는 생각이 있다. 내가 음악을 시작하던 때는 유명한 인디 레이블도 많았고. 쟤는 왜 회사 안 들어가고 CD 들고 다니면서 파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혼자 시작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받은 게 많다고 느낀다. 외면할 수도 있었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했는데 온전히 받아들여진 체험을 첫 작품에서 한다는 것은 창작자에게 큰 원동력이 된다. 그걸 대중에게서 받았다는 건 자랑거리이기도 하고. 나는 대중이 미식가라고 믿는 사람이니까. 그러다 3년 전에 거주지를 전주로 옮기면서 홍대를 중심으로 언급되는 인디신과 거리를 두고 보게 되었고, 우리 일족의 안부를 묻는 기분으로 이번 페스티벌 기획에 나선 셈이 됐다. 나 자신의 회복이 망상으로만 생각하던 일을 현실화시킬 체력이 생긴 게 아닐까 싶다. 거기에 더해, 내가 말을 편하게 걸어볼 수 있는 사람들이 부장급이 됐다. (웃음) 김사월씨가 들꽃영화상 음악상을 받고 이랑씨가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무대를 만들고. 이 호랑이들만으로도 하루가 꽉 찬다.
- 뮤지션 섭외하기부터 페스티벌 이름 짓기, 장소 정하기, 기간 정하기까지 하나하나 결정하면서 한 발짝씩 진행된다. 이 페스티벌이 되겠다고 생각한 순간은 언제였나.
선우정아씨가 페스티벌 참여에 긍정적으로 답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여기 나오고 싶은데 스케줄 때문에 못 나오는 여자 뮤지션도 많을 것 같은데, 까인다고 생각하지 말고 먼저 다 말을 걸어보면 어때요”라고. 그렇게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여러 이유로 올해 참석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순간에는 내년을 기약할 수 있겠다 싶었다. 김윤아 선배가 일찍 힘을 보태주었을 때도 감사했는데, 아무 접점이 없던 이상은 선배가 연락받고 금방 긍정적인 답을 보내주었을 때도 기뻤다. 우리 일족이라고 생각하는 이 사람들이 비슷한 마음이구나 하는 걸 확인받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섭외 속도를 늦춰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티켓 예매가 시작되고 금세 매진이 되었다. 초대권 이벤트를 진행하는 비밀보장 채널,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 이벤트에 응모하지 않으면 추가로 티켓을 구매할 수 없게 되었는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어떤 부분을 관객들이 완전히 해결해주었다. 기업 협찬이 폭넓게 들어왔다면 이번 페스티벌에 출연하는 여성 예술가들에게 더 많은 개런티를 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감사하다는 말로는 한없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이번 행사가 큰 증거가 돼서 여자들이 하는 무대가 돈이 된다는, 자본주의식 칭찬을 성립시키고 싶다. 이번에는 무대미술을 할 여유가 없어서 무대를 따로 꾸미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내년에는 이런 부분에서 보완이 가능하면 좋겠다.
- 페스티벌 이름 후보가 많았을 텐데 ‘영희 페스티벌’로 정해진 과정은.
최초의 제목 아이디어는 ‘여자 예술 페스티벌’이었다. 여자가 예술하니까. 근데 그 제목을 말리던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허들을 높이니까. 여자 예술을 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도 ‘여자 예술’로 묶이는 순간 흠칫하게 되는 사회라서. 릴리스는 이브 이전에 아담의 말을 거슬러서 에덴을 떠난 최초의 여성이었잖나. 그런데 신화를 떠올리니 바리공주는 효도의 아이콘이고, 뮤즈라는 말은 너무 싫고. 그러다 떠올린 게 영희였다. 내가 본 교과서 최초의 여자 이름이 영희였으니까. 함께하는 뮤지션들이 그 이름을 좋아해주면서 나도 나 자신을 더 긍정하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영희라는 이름의 한자 풀이를 ‘영광과 기쁨’으로 하면서, ‘영광과 기쁨’은 예술가에게도 향유자에게도 온전히 주어져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담았다.
- <릴리스 페어>는 음반으로도 발매되었다. <영희 페스티벌>관련한 기획은 어떻게 뻗어나가고 있나.
보통 음악 페스티벌은 1년 정도 준비하는데 <영희 페스티벌>은 3개월 정도의 준비 과정을 거치며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다. 마음만 앞서는 바람에 관객이 불쾌한 체험을 하지 않도록 여러 준비를 하고 있다. 화장실이 충분한가의 문제부터 안전문제까지 하나하나 챙기고 있다. ‘그냥 좋은 마음으로 했어’로 끝나는 건 싫다. 그래서 멀리 보는 대신 1회를 온전히 치르는 게 최우선 목표다. 무대에 서는 사람이 자신의 매력을 방해 없이 발산하고 관객도 그걸 방해 없이 쾌적하게 보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단지 그뿐이다. 하나 더 바란다면 내가 처음 본 공연이 한영애 선배의 공연이어서 목표를 가질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 음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이 무대를 보고 미래를 꿈꿀 수 있기를.
- 다큐 작업도 진행 중이다.
<첫여름>으로 칸영화제에서 라 시네프 1등상을 수상한 허가영 감독이 다큐 작업을 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그릇이 큰 젊은 여성을 만난 인상을 받았다. 춤을 좋아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라고 했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의 10배가 되는 이미지와 그 이야기의 깊이를 허가영 감독이 힘들이지 않은 느낌으로 보여주어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전주국제영화제 스타일이든 넷플릭스 스타일이든 어떻게 완성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람들이 이런 시기를 보냈다는 기록 영상을 나부터도 보고 싶다.
- 데뷔하고 지금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음악에 대한 생각은 어떤 변화를 겪었나.
처음에는 나를 온전히 꺼내고 싶어서 음악을 시작했다. 내가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온전히’라는 말에 매달려 음악인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고 놀랍게도 받아들여졌지만, 동시에 ‘오지은은 노래할 때 표정이 포르노배우 같아’라는 악플도 같이 받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온전히 자신을 드러낸 여자가 겪을 일을 온전히 받은 셈이다. 전주로 이사하고, 상담을 받으면서 천천히 내가 받은 상처를 인정할 수 있게 되었고, 다행히 이제 오지은 4집을 만들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책을 쓰는 활동을 중심에 두었다면 음악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는 걸 내 무의식이 완전히 받아들인 것 같다.
기획자 오지은이 말하는 <영희 페스티벌> 즐기는 법
야외에서 열리는 페스티벌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돗자리 지참, 태양을 피하는 방법으로서의 모자 지참 등의 노하우가 공유되곤 한다. 6월12일 전야제 공연을 포함해 3일간 마포아트센터의 아트홀맥, 플레이맥, 갤러리맥 3개 공연장에서 이어지는 <영희 페스티벌>을 즐기는 데는 조금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영희 페스티벌> 기획자 오지은은 시간표 보는 법을 이렇게 말한다. “요즘 가장 기쁜 말 중 하나가, <영희 페스티벌>에 좋아하는 사람이 나와서 가기로 했는데 모르는 사람도 많아서 한명씩 음악을 들어보고 책을 읽다 보니 하나하나 다 너무 좋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미친 듯이 뿌듯하다.” 즉, <영희 페스티벌>의 큐레이션은 이 페스티벌에 관심이 생긴 당신이 이미 좋아하는 것들과 미래에 좋아하게 될 테지만 아직 접해보지 못한 것들의 파티인 셈. “당신과 입맛이 비슷한 사람이 차려둔 뷔페”이기 때문에, 미리 완벽하게 계획을 짜고 오기보다 여러 무대를 조금씩 ‘찍먹’하기를 권한다. “음악 행사와 문화 행사는 서로 짧은 시간 겹친다. 뮤지션들이 무대에 오르는 문화 행사들은, 이 뮤지션들이 어떤 활동을 했고 그게 어떤 의의가 있는지 우리가 직접 활동하는 이 시대에 이야기해보려는 시도다. 홍대 여신이라고 불리던 요조와 홍대 마녀라고 불리던 오지은이 함께 앉는 토크가 대표적이다. 누군가 20년 뒤에 박사 연구 주제로 삼을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참 감사한 일이지만, 그게 왜 20년 뒤여야 하나?” 그러니 추측하자면 <영희 페스티벌>은 진행형의 영광과 기쁨을 나누는 자리가 될 것 같다. “나도 <영희 페스티벌>에 나오는 뮤지션의 전작을 들어본 건 아니다. 근데 그냥 알고 있다. ‘이건 내 취향일 거야.’ 우리가 어떤 계보 안에 있는지 서로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오시는 분들은 모든 무대를 맛있게 먹을 마음, 영광과 기쁨을 온전히 즐길 마음, 타임 테이블을 집중해서 동그라미를 칠 집중력과 펜을 지참하시면 된다. 그게 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