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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다정하게 안아주기 - <하나 코리아> 배우 김주령

배우 김주령은 안도하는 중이다. <오징어 게임>을 비롯한 전작들에서 사나운 얼굴을 보여준 탓에 신작 <하나 코리아>에서도 흑화할 것 같다는 짐작을 듣곤 했는데, 비로소 관객으로부터 “숙희만 나오면 왠지 모르게 안정된다”는 감상을 전달받았다. 그거면 됐다고 끄덕이는 김주령은 혜선(김민하)의 하나원 동기이자 먼 곳에 아들을 두고 온 숙희를 실로 그런 인물로 만들었다. 말하기보다 듣기에 능한 여자는 엄마로 산 시절을 그리워하며 언니로서 소녀들 곁을 지킨다. 현장에 나설 때마다 프레데릭 쇨베르 감독이 꾸린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며, 김주령은 그 순한 존재감에 자분자분 물들었다.

- 올봄은 니혼테레비 드라마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촬영을 위해 도쿄와 서울을 오가며 보냈다.

해외 프로젝트에 늘 관심 있었기에 고민 없이 선택한 작품이다. 한국어로 말하는 역할을 맡아 부담이 적었다. 언젠가 일본어로 연기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도 했다. 기회가 되면 무조건 하고 싶다.

- <하나 코리아>를 찍으며 프레데릭 쇨베르 감독을 비롯한 외국인 스태프들과 소통한 경험이 도움이 되었을 듯하다.

물론이다. 특히 <하나 코리아> 현장에는 최성재(샤론 최) 작가가 있어 든든했다. 그가 감독이 말하는 뉘앙스까지 명확하게 통역해줘서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준비할 수 있었다.

- 시나리오의 첫인상은 어땠나.

너무 극적이지 않아서 끌렸다. 이념이나 편견을 떠나 사람에 집중한 시나리오라 와닿았는데, 내가 맡은 숙희가 따뜻한 인물이라는 점도 중요했다. 그런 연기를 많이 해보지 않아 큰 도전으로 느껴졌다.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가진 숙희에게 마음이 갔다. 아픔을 극복한 게 아닌, 아픔을 안고 사는 법을 배운 여자라서.

- 극 중 숙희는 혜선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삶의 궤적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두 사람의 대화에 언급되지 않는 숙희의 속내는 어떻게 그렸나.

말씀대로 숙희는 혜선에게 계속해서 안부를 묻는다. 표면적으로는 숙희가 혜선을 위로했지만, 숙희도 혜선에게 기댔을 것이다. 서로의 존재만으로 힘이 되었을 테니까. 숙희가 혜선을 일방적으로 감싼 게 아니라는 걸, 혜선도 숙희에게 곁을 내줬다는 걸 기억하려고 했다. 대사로 드러나지 않는 숙희의 과거를 상상하기는 조심스러웠다. 내게 평안도 사투리를 가르쳐준 선생님에게 북한 생활, 하나원 생활이 어땠는지 자주 물을 뿐이었다. 그때 들은 답은 대본에 이미 녹아 있더라.

- 숙희는 지난한 탈출기를 되새기는 혜선에게 “안 말해도 된다”라며 다독인다. 짧지만 다정한 대사들을 평안도 말씨로 뱉기 위해 연구가 필요했을 테다.

그런 말을 하는 숙희가 참 멋지다. 혜선은 한국에 오자마자 국정원 심문을 여러 번 거치지 않나. 숙희는 혜선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행동을 한 셈이다. 묻지 않아도 그 삶이 어땠을지 알기 때문일 텐데, 숙희를 연기할 때 초점을 맞춘 부분도 그 점이다. 설명이 많은 인물이 아니니 혜선을 바라보는 눈빛과 호흡에 마음을 담으려 했다. 말투의 경우 혜선과 보미(안서현)가 구사하는 함경도 사투리가 훨씬 어렵고, 평안도 사투리는 옛 서울 사투리 억양과 비슷해 비교적 자연스럽게 접근했다.

- 숙희에게도 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극 후반 한강 장면에서야 그 일부를 담담히 꺼내 보이는데.

한강에서 촬영할 때는 혜선이 먼저 아기처럼 울기에 그 상황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얘가 이런 애가 아닌데, 그동안 얼마나 참은 걸까. 내가 뭘 어떻게 해줘야 하는 걸까.’ 당황하며, 고민하며 임했다. 우리가 감정을 다듬을 수 있도록 모두가 기다려줬다. 덕분에 영화에는 배우들이 조금 절제한 상태에서 원테이크로 소화한 버전이 담겼다. 2년 전이지만 잊지 못할 날이다. 신도 우리 맘을 아는 건지 약간의 구름을 띄워 햇빛을 막아줬다.

- 요즘 김주령이 하고 싶은 것은.

지금 이 순간 최대한 즐겁게 사는 것! 현장에서 오케이를 듣고 나서도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드라마를 찍으며 그 버릇이 사라졌다. 주변에서 들리는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하니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에 우선 만족할 줄 알게 되었달까. 그러니 연기도 한결 재밌어지더라. 이렇게 나 자신과 더 잘 지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