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서현 배우가 연기한 보미는 관객에게 가장 낯선 탈북민일 것이다. MZ세대라 젊고 밝으며, 부모가 일찍 북한에서 중국으로 이주해 중국에서 태어났기에 북한에 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혜선(김민하)과 놀이공원에 놀러가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영화 <주토피아> 머리띠를 쓴다. 보미는 맑고 산뜻하며 미국 문화도 꽤 잘 알고 있다. 삶이 무겁고 힘겨운 혜선과 여러모로 대비된다. 관객에게 생소한 만큼 안서현 배우에게도 보미는 낯선 캐릭터였다. 돌이켜보면 그는 늘 나이보다 훨씬 더 성숙한 캐릭터를 표현해왔다. 7살 땐 <하녀>에서 가정의 비극을 똑똑히 지켜본 딸 나미를, 14살엔 슈퍼 돼지를 구하기 위해 강원도 산골을 떠나 씩씩하게 뉴욕을 누비는 <옥자> 속 미자를 연기했다. 그래서 나이와 자연스럽게 일치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일은 오히려 쉽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배우 인생에서 처음 겪는 일인지도 모른다.
- 시나리오를 읽을 때 가장 기대되는 장면은 무엇이었나.
감독님이 다큐멘터리를 연출하셨던 분이라 날것의 느낌이 강했는데 오히려 새롭고 좋았다. 혜선이 보미와 함께 체험학습에 나가 올리브영에서 립스틱을 구매하고 바르는 장면이 있다. 두 인물이 여태 하지 않았던 일탈을 시도하는데,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재밌고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포스터로도 등장했다. (웃음)
- 두 캐릭터가 함께 무언가를 처음 시도하는 신이 많다. 이를테면 하나원에 온 첫날 풍선껌을 씹어보고 풍선을 불어본다. 처음 만난 사이라 어색하기도 하지만 풍선껌 하나만으로 웃음을 터트리고 서로 가까워진다. 그 모습에 관객도 두 캐릭터에게 마음이 열린다.
촬영 일정 자체가 길지 않고, 두 캐릭터가 하나원에 처음 입소했듯 배우인 우리도 그곳에 처음 가게 되어 어색함을 느꼈다. 자연스럽게 어색함이 카메라에 담긴 것 같다.
- 보미는 하나원에 들어와서 처음 사진을 찍을 때부터 표정이 밝아서 어두운 표정을 지었던 혜선과 대비된다. 부모가 북한에서 중국으로 오래전에 이주했고 보미 자신은 중국에서 태어났기에 북한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것으로 그려진다.
어느 나라든 이주 2세대 특유의 다채로운 느낌이 있다. 보미도 그런 특징을 갖고 있다. 게다가 나이가 어려 MZ세대 특유의 밝고 해맑은 면을 지닌 동시에 내면의 단단함도 갖고 있다. 보미 역시 한국으로 넘어오는 과정이 분명 고되고 힘들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밝음을 가졌다. 고통과 슬픔을 알지만 굳은 마음을 가졌기에 오히려 가라앉지 않는 것이다. 샤론 최 시나리오작가와 캐릭터에 관해 논의할 때도 “보미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라고 해석했다. 보미의 밝음 속에는 단단함과 사랑이 있다.
- 그간 나이에 비해 성숙한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다. <하녀>의 나미도 <옥자>의 미자도 신체 나이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하다. 어쩌면 보미는 안서현 배우의 나이에 꼭 맞는 첫 캐릭터가 아닐까.
맞다. 나는 항상 나이보다 성숙한 역할을 연기해왔다. 인간 안서현이 가진 톤도 꽤 차분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별명이 할머니일 만큼 애늙은이스러운 감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해맑은 역할을 해보니까 오히려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아 정말 어색했다. 그럼에도 현장 스태프들이 보미 역에 잘 어울리고 귀엽다고 해주셔서 명랑한 캐릭터가 괜찮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사연 있는 어린이를 많이 연기해와서 내게는 <하나 코리아>가 굉장히 도전적인 작품이었다.
- <하나 코리아>는 여성배우들간의 호흡이 영화의 시작점이자 마지막인 영화이다. 이번 영화는 기존 작업과 어떻게 달랐나.
영화 내용도 여성 중심이지만 현장 스태프들도 여성이 정말 많았다. 어느 날 현장에서 대기하며 의자에 앉아 있을 때 주변을 둘러보니 다 여성 스태프, 여성 배우들이었다. 내가 “우리 현장에 여자가 많다. 정말 좋다!”라고 말했더니 민하, 주령 언니가 동시에 “그러니까!”라고 신나서 함께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난다. 이런 촬영 환경이 자연스럽게 연기에도 반영됐던 것 같다. 마음으로만 품든 눈빛으로 드러나든 여성끼리의 끈끈한 감정이 카메라에 담겨 여자들이 만들 수 있는 감정선이 잘 보이는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
- <옥자>로 글로벌 프로젝트를 경험했기에 외국어가 들려오는 현장이 익숙할 듯하다. 그럼에도 <하나 코리아> 현장을 <옥자>와 비교한다면.
<옥자> 때 궁금한 게 생기면 바로 봉준호 감독님에게 여쭤봤다면, 이 프로젝트의 프레데릭 쇨베르 감독님은 오히려 배우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어 하셨다. 대사들이 실제 한국에서 자주 쓰는 말인지 물으셨고,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바꾸어도 좋다고 하셨다. 자유롭게 의견을 반영해주시기도 해서, 영화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강했다.
-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나 캐릭터가 있나.
인상 때문인지 아직 악역은 안 해봤다. 요즘 ‘맑은 눈의 광인’ 캐릭터가 핫한데, 그런 악인을 연기할 수 있다면 내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