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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춤은 내가 하는 말 - <소영의 노력> 오재형 감독, 출연자 김소영, 정희정

10년 전, 재형과 희정은 서울문화재단 시민기자단의 일원이었다. 각자 공연이나 전시 리뷰를 쓰다가 한달에 한번씩 모여 다음 기삿거리를 의논했다. 회의 때 얼굴을 마주하는 것 외에는 사적으로 얽힐 일이 없었다. 계속 그럴 오재형, 정희정, 김소영.줄 알았다. 무심코 서로를 팔로한 SNS에서 공통된 관심사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수년 만에 먼저 연락한 건 희정이었다. 현대무용을 전공한 뒤 특수체육학으로 박사과정을 밟으며 장애인들에게 무용을 가르쳐온 그에게는 “철학이 맞는 반주자”가 필요했다. 그가 온라인상에서 지켜본 재형은 취미로 피아노를 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장애인 인권을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장애 예술, 특히나 무용은 결과만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는 무수한 약속들이 있다. 팔을 어떻게 뻗을지, 등퇴장은 어떻게 할지, 리듬은 어떻게 맞출지 등 여러모로 합이 맞아야 하는 것이다. 장애인 무용수들이 그 순서를 외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람이 음악에 맞추기 어렵다면, 음악이 사람에 맞추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우리 옆에서 라이브로 연주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가 연출한 전작 <피아노 프리즘>을 보고 팬이 된 데다 평소 SNS에 따뜻한 관점이 드러나는 글을 올리던 재형이라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소영, 정희정, 오재형(왼쪽부터).

희정의 제안을 받은 재형은 잠시 머뭇거렸다. 홀로 행사를 치러본 적은 있지만 반주자로 섭외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피아노를 오래 쳐왔지만 “실력은 여전히 아마추어”라는 점도 맘에 걸렸다. 하지만 희정에게 중요한 건 실력이 아니었다. 장애인과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자세였다. 의도를 파악한 재형은 희정의 손을 잡았다. 공연의 메이킹필름을 찍어달라는 희정의 부탁에 카메라도 챙겼다. 그길로 향한 연습실에서 소영을 만났다. 재형의 눈에 소영은 공연을 넘어 영화의 주인공이 되기에도 충분해 보 였다.

“김소영이라는 사람에게는 일종의 ‘관종력’이 있다. (웃음)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출연자와 시간을 들여 라포르를 쌓아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소영과 만나자마자 친해졌다. 그 점에서도 소영이 흥미로웠지만, 여성 버전의 <피아노 프리즘>을 구상하며 작업에 임한 것도 있다. 나는 피아노에, 소영은 무용에 뒤늦게 재미를 붙여 무대에까지 오르게 되는 과정이 닮지 않았나. 나는 비장애인, 소영은 뇌성마비 장애인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 차이에 주목해보고 싶기도 했다.”

춤은 내가 하는 말

오재형 감독의 이야기처럼 소영은 20대 후반에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2019년 한 복지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희정이 그 수업의 강사였다. 혼란스러운 청년기를 통과하며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는 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은 채 살아온 희정은 수업이 끝나고서도 적극적으로 ‘한번 더’를 외치는 소영이 내내 신경 쓰였다. 몇년간 대학원과 병원을 오가며 연구에 집중하는 동안에도 그랬다. 그러다 2023년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 공고를 읽고 소영에게 전화했다. “나랑 이거 해볼래?” 소영의 답은 당연히 “좋아요”였다. <소영의 노력>이 조명한 시점이 바로 그 준비 기간이다. 소영은 왜 그리 춤이 좋았을까?

“솔직히 난 글을 잘 못 쓴다. 문법도, 맞춤법도 안된다. 다 고쳐야 한다. 수정받아야 한다. 내가 말을 해도 다들 못 알아듣는다. ‘한번 더 말씀해주세요’ 같은 부탁을 듣곤 한다. 오늘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는 이미 다 말했는데도…. 그런데 춤은 다르다. 내가 춤을 추면 무용하는 사람들은 알아듣는다. 이런 말 하면 엄마가 또 놀리겠다!”

그가 춤에 한껏 진지해지면 어머니가 놀리곤 한다고, 소영의 대답을 들은 재형이 덧붙였다. “한번은 소영이 춤은 핏줄 같다고 하자 어머니가 그러셨다더라. “핏줄이 뭐냐, 핏줄이!” (웃음) 어머니는 관심 없는 것처럼 하시면서도 소영의 활동을 다 보고 계신다.” 그러니까 춤은 소영에게 언어다. 그 자신이 가장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도구다. 아무나 그럴 수는 없다. 영화에도 몇번 언급되는 것처럼, 소영은 영락없는 무대 체질이다.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해본 희정이 자부했다.

“무수한 생각을 갖고 무대에 오르면 나를 버리기 힘들다. 내가 관객에게 어떻게 보일지, 정해진 동작을 다 해낼 수 있을지 떠올리다 보면 군무를 펼치는 무용수 중 한 사람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반면 소영은 관객 앞에서 떠는 것과 별개로 생각을 내려놓는 걸 잘한다. 그에게는 어떤 결핍이 있지만, 그만큼 솔직한 전달력이 있다. 무아지경에 빠질 줄 안다고나 할까.”

다만 소영은 칭찬을 경계한다. 2026년이 되어도 영화에 찍힌 2023년에 그랬던 것처럼 찬사를 듣는 게 겁난다. “의기양양해질까봐” 그렇다. 그럼에도 희정은 소영을 더 칭찬하고 싶다. 언젠가 소영은 말했다. 춤을 추기 전까지는 한번도 다른 누군가에게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소영이 다시 그 시절을 곱씹었다. “이거 해, 하지 마, 혼난다” 같은 꾸지람만 들어왔다고. 그래서 “칭찬이 좋은데도 어색하다”고.

보물 상자와 요술 램프

영화는 무대에 올라 박수 세례를 받는 소영의 모습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재형은 파티가 끝난 다음에도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소영에게 카메라를 건넸다. 공연을 대비하고, 공연 실황을 옮기는 것만으로는 영화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재형의 판단에 희정도 동의했다. “소영의 삶에 큰 서프라이즈가 있었지만, 그것으로 인생이 뒤집어지지는 않는다. 소영은 공연 전과 비슷하게 살 것이다. 그래도 좋게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이 남은 것이다.” 조금 긴 에필로그처럼 붙는 소영의 셀프 비디오가 영화의 후반부를 장식한 이유다. 물론 소영은 자기 자신을 찍는 일이 편치만은 않았다. “남의 카메라니까 무서웠지! 어떻게 들고 다니지? 바닥에 떨어뜨리면 어떡하지? 누구나 그런 걱정이 들 거다.”

노파심은 있었지만, 소영은 성실한 촬영감독으로 분했다. 혼자 장난치고, 엄마와 대화하고, 일터에 나가고, 집회에 들르고, 공원에서 춤추는 자신을 그때그때 기록했다. 소영이 라디오 애청자로서 퀴즈를 속속 맞히는 순간도 그렇게 영화에 수록되었다. “이렇게 찍는다고 영화가 되겠느냐”고 타박하는 어머니의 한마디가 지나간 뒤 나온 노래 퀴즈의 정답은 가수 세븐(SE7EN)의 <열정>, 사자성어 퀴즈의 정답은 ‘우문현답’이었다. 절묘한 타이밍에 편집하던 재형도 키득키득 웃어버렸다고 한다.

요즘은 매주 금요일 밤 KBS에서 방영하는 <성시경의 고막남친>을 즐겨 본다는 소영은 인터뷰 중 스마트폰으로 추천곡을 틀었다. 성시경과 인도네시아 가수 라이사가 함께 부른 신곡 <Heaven Knows>였다. “데려다줘 날 하늘의 꿈으로/ 우리가 상상하던 곳으로 자유롭게 날아.” 감미로운 듀엣 사이로 소영의 목소리가 포개졌다. “이 노래를 들으면, 구름에 떠다니는 것 같다. 앨범 커버에서처럼 연기가 난다. 그러면 몸을 잊는다. 그래서 좋아한다. 이 곡에 춤춰보고 싶다.”

소영은 관객과 그 희열을 나누고 싶다. 희정이 선물해준 경험을 반복하고 싶다. 선생님에게는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산다”고 곱씹은 소영은 희정을 “보물 상자”에 비유했다. “열어보면 추억이 담겨 있는 상자 같은 사람”이라서 그렇단다. 그 추억을 영화로 완성해준 재형은 어떤 존재냐고 물었다. “요술 램프? 지니? 그림도 그리고, 피아노도 치고, 영화도 찍고, 정말 이것저것 하니까!” 참고로 재형은 이번 작품의 음성해설도 작성했다.

이제 <소영의 노력>이 개봉한다. 소영은 처음 제목을 듣고는 ‘내가 노력을 했나?’ 의심했다. 실은 아쉽기도 하다. 2024년 제16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무대에 오를 때는 모든 게 현재진행형으로 다가왔는데, 정식으로 개봉을 한다니 이 여정의 최종장이 가까워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런 소영을 재형과 희정은 열심히 달래는 중이다. 또 어떤 기회가 생길지 모른다고 응원하면서. 소영이 깨고 싶지 않은 꿈이 지속되기를, 삶이 더 넓은 무대가 되어주기를, 세 사람 모두 소원하고 있다. 희망에도 노력이 필요한 법. 그 기운이 스크린 너머로 전염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