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은 프로태거니스트로 경찰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그의 영화 세계에서 경찰 캐릭터는 서사를 진행시켜나가는 프로태거니스트인 동시에 참혹한 이미지에 접근할 권한을 지닌 관찰자로 기능했다. <추격자>의 엄중호(김윤석)는 서울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에서 일한 전직 형사이기에, 그간 몸에 익힌 수사 감각을 이용해 연쇄살인범 지영민(하정우)을 쫓을 수 있었다. <곡성>의 전종구(곽도원)는 곡성파출소의 경사로서 마을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살인, 사망 사건들을 접한 뒤 딸에게도 같은 징후가 나타난다는 걸 알아차린다. 이런 관점에서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를 단순히 SF영화로만 지칭할 것이 아니라, <추격자> <곡성>과 더불어 나홍진 감독의 ‘경찰영화 3부작’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홍진 감독에게 경찰 남성 주체는 범상치 않은 사건을 볼 수 있는 눈의 권한을 갖고 있으며, 사건의 전말을 알아내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을 심문할 권리를 지녔고, 그 위치 자체가 그가 서사를 엮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호프>의 프로태거니스트 고범석(황정민)은 한국의 DMZ 부근 작은 마을 호포항에 외계인이 나타난 절멸의 상황을 수습하려 나서는 출장소장, 즉 경찰이다. 처음에 그는 마을 청년 고성기(조인성)의 신고로 육중한 소가 쓰러져 죽은 현장을 본 뒤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읍내로 경찰차를 몰고 나간다. 하지만 이후 벌어지는 이야기는 사건의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나홍진 감독은 경찰의 시선을 경유하되 긴장이 부드럽게 진정되거나 조금이라도 약자가 승리하는 모습을 결코 재현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그런 순진한 선형적 서사에 관심이 없는 연출자이다. 대신 그는 경찰을 한국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가 뭉쳐진 결절들을 자기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자, 그리고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죄를 저지르는 인물로 경찰을 호출한다. 범석은 이 혼란의 근본적인 원인인 어린 외계인을 사냥한 양배(음문석)에게 따져 묻고 그의 집을 탐문하지만, 실상 그는 외계인이란 절대적 타자와의 충돌 혹은 긴장을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과 다름없이 이리저리 섞이며 우왕좌왕한다.
훌륭한 비주얼에 비해 메시지를 간과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호프>의 정치성은 여기에서 감지된다. 시스템이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범석은 피아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능한 존재이고, 후배 안 경장(이상진)이 면장의 조카란 이유로 쉽게 경찰이 될 만큼 이 사회의 체계 자체가 총체적으로 후진적이라는 점. <호프>가 이야기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시스템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로 호포항은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고안된 무대가 된다.
흥미롭게도 나홍진 감독은 장편영화 연출 데뷔 이래로 이러한 ‘시스템 없음’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해왔다. <추격자> 속 지영민의 무자비함이 극한으로 드러난 ‘개미슈퍼 신’이 가능한 건 그를 뒤따라가던 경찰 한 사람의 무능력에 그치는 게 아니라, 경찰 조직 자체가 서울시장의 인분 테러로 인한 사회의 압력을 수습하느라 일의 경중을 따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홍진 감독의 시선에서 이 사회의 체계는 혼란이나 부정을 수습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들도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막히게 된다. 그 봉쇄의 상태는 호포항 부근에 깔린 지뢰, 울타리, 산불로 인해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 등으로도 감지된다. 게다가 시스템은 <추격자> 속 서울시장 테러처럼 겉과 속이 다른 일종의 허위성을 지녔기에 사회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새로운 작인이 되기도 한다. 나홍진 감독은 이런 세태를 섣불리 낙관적 시선으로 대하기보다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연출자다. <호프>속 읍내에 걸린 “정의 복지 사회 국가를 만들자”라는 내용의 플래카드는 우스운 구호일 다름이며, 정의도 복지도 이곳엔 영원히 부재할 것만 같다.
“바닥의 카펫을 누군가 갑자기 잡아당겨 빼낸 느낌, 또는 계산의 공식이 갑자기 사라진 듯한 느낌은 한국 근대성의 지속적인 특징이었다.” 1997년 IMF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 한국을 찾아 여러 가정을 방문하고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미국의 인류학자 낸시 에이블먼은 한국 사람들이 자신들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술회할 때 끊임없이 부단히 변할 수밖에 없었고 언제나 ‘배가 떠난 느낌’, ‘뒤처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에 주목했다. 그는 이곳 한국에서는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변화’가 벌어지기에 그에 적응하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흐름으로 만들려는 인지의 방식이 특정한 서사로 발전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멜로드라마란 과잉된 서사가 한국에서 발달했다고 그는 분석한다. 그의 분석에 동의하며 이러한 감정 구조는 2000년대 이후 <올드보이>를 기점으로 폭력이 함께 떠안고 있다고 덧붙이고 싶다. 미래를 낙관할 수도, 안온하게 현재에 머물 수도 없는 감정 상태, 그리고 일종의 찢겨진 주체성은 신체를 찢고 난도질하는 서사들을 낳았고, 알 수 없는 구조나 힘에 의해 삶이 불안정해지는 순간들을 스크린에 새기게 만들었다. <혈의 누>(2005), <추격자>(2008), <악마를 보았다>(2010)와 같은 영화가 극한의 폭력적인 이미지를 통해 현대인들이 평소 공기처럼 느끼는 불안을 극장에 묶인 채 강렬하게 경험하게끔 만들 것처럼. 그리고 나홍진 감독은 이러한 한국영화의 폭력성이란 주제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며, 여전히 이러한 이미지와 주제에 천착하고 있다.
다만, 나홍진 감독이 폭력적인 이미지의 수위를 점점 더 높여가고 ‘시스템 없음’이란 테마를 거듭하면서 자기 환원적인 구조 안에 관객을 데려다놓고 그들을 소진시키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말하자면 그는 경찰 이외의 캐릭터들을 타자화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의 영화를 본다는 일은 현실보다 더한 끝없는 절망이 이어지는 시간들을 객석에 앉아 고집스럽게 견디는 일에 다름 아니며, 잠깐의 한숨은 주변 인물들을 전면화하고 희화화하는 장면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닌가. 난데없이 시작되어 끝없이 이어지는 추격 장면 신 사이사이를 채우는 것은 노년의 삶과 비위생을 바로 등치시킨 듯 보이는 해술(임현식), 얼굴근육을 지나치게 씰룩거리며 (안 경장의 표현대로) 바보로 지목되는 양배가 책임지는 우스꽝스러운 농담들이다. 그것마저 사랑과 연대라기보다 타자를 조롱하고 주변화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호프>를 보고 나면 경찰이란 프로태거니스트를 통해 일종의 안전한 거리에 머물면서 낮은 곳과 경사진 곳에 자리한 타자를 장면화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최후의 의문이 남는다. 마치 “색깔이 콩이랑 팥이랑 섞였는데 아무튼 드럽다”라는 평가를 받는 외계인과 같이, 그가 시선을 일치시키는 경찰 이외의 인물은 시체이거나 타자의 타자로서만 스크린에 등장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호프>는 해외 관객에게만 이질적인 영화가 아니다. 경찰 프로태거니스트를 제외한 모두가 타자화되어 있기에 한국 관객에게도 <호프>는 총체적으로 낯설고 이질적인 영화로 다가온다. <호프>를 나홍진 감독의 경찰영화 3부작이라 할 때 그의 정치성은 진화하는가, 답보 상태인가. 주저하겠지만 결국엔 후자라고 답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