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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s’ Talk] “관객이 자기 자신마저 잊어버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 <오디세이>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 ➀

크리스토퍼 놀런과 박찬욱, 두 거장 감독은 오랫동안 영화화하길 염원했던 이야기를 최근에야 현실화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약 20년 전 <인썸니아> 이후 영화 <트로이>를 연출하기 위해 프리프로덕션에 돌입해 자신만의 트로이 목마를 구상했으나 스크린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가 구상한 이미지는 그러나 머릿속에서 쉬이 사라지지 않았고, 이번 신작 <오디세이>를 통해 막 세상에 나왔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 역시 오랜 시간을 견뎌내 탄생했다. 박찬욱 감독은 원작 소설 <액스>의 영화화를 위해 2010년 판권을 확보하고 오랫동안 영화로 만들려고 노력하다가 15년 만인 지난해에 영화를 공개했다. 영화감독이 오랫동안 머릿속으로 그려온 이미지는 결국 세상에 나오게 되는 것일까. 그 과정은 창의성과 집념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일까. <오디세이> 개봉을 기념해 내한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과 박찬욱 감독이 만났다. 두 거장은 대화 중 서로의 작품을 향해 존중을 표하면서도 놀라운 기억력으로 사소한 디테일을 끄집어내며 영화로 대화하는 즐거움을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매혹되었던 이야기와 이미지를 결국 영화로 탄생시킨 창작자로서의 끈기를 들려주었다.

크리스토퍼 놀런, 박찬욱(왼쪽부터).

박찬욱 한국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이것도 하나의 여정인데, 영화를 홍보하는 과정은 너무 힘들어서 영화감독으로서 모든 과정을 사랑하지만 좀 피하고 싶기도 한데요, 감독님은 어떠세요?

크리스토퍼 놀런 매우 공감하는데요. 저도 덜 좋아하는 과정이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감독님과 함께 앉아 있으니 참 좋은데요. 오랫동안 감독님의 팬이었습니다. 영광입니다.

박찬욱 아이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메멘토>(2000)를 본 이후로 언제나 팬이었습니다. 영화의 스케일이 점점 더 커지면서 좋아진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인데 놀런 감독은 그 일을 해내고 있는, 영화 역사에 있어 드문 케이스의 연출자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의미가 큽니다. 제가 감독님을 영화감독으로서 존중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같은 감독으로서 스케일이 커지면서도 계속 즉흥성과 개성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감독님의 말을 들으니 더욱 기쁩니다.

박찬욱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이 납니다. <동조자>를 찍을 때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만났는데 <오펜하이머> 때의 경험을 얘기하면 감독님과 일하는 게 얼마나 황홀한 체험인지, 감독님의 아이맥스 카메라가 자신의 코앞에 와 있는 순간이 얼마나 황홀했는지 얘기해주었습니다. 그때 로버트의 표정이 아주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아이맥스 카메라가 굉장히 시끄럽고 거대해서 코앞에 갖다놓으면 배우들은 모든 관심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걸 분명히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그 순간을 진실하게 경험해야 하죠. 감독님도 같이 일해봐서 아시겠지만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정말 대단한 아티스트이고 그처럼 위대한 예술가와 협업한다는 건 정말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박찬욱 <오디세이> 얘기를 해보자면, 저는 오프닝부터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바다에 목마가 있고 트로이의 기사들이 달려오는 오프닝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름답고 너무나 사람을 홀리는 이미지여서 그 장면이 훨씬 더 길기를 바라게 되더군요. 숏이 더 길고 더 많고 목마 장면이 10분 정도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영화의 시작부터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그 이미지를 오랫동안 간직해왔는데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약 20년 전 워너브러더스에서 제작한 <트로이>(2004)의 연출을 맡을 뻔했지만 무산된 경험이 있습니다(볼프강 페테르젠 감독이 연출을 맡고 배우 브래드 피트, 에릭 바나가 주연했다.-편집자). 당시 영화를 준비하는 동안 트로이 목마를 어떻게 다룰지, 어떻게 표현할지 많이 생각했었는데요. 전통적으로 묘사되어온 방식, 즉 바퀴가 있고 사람들이 쉽게 트로이 성 안으로 끌고 들어갈 수 있는 목마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디세우스의 속임수를 이미 알고 있는 관객에게 어떻게 목마를 설득력 있게 보여줄지에 관해 매료되었죠. 그러면서 떠올린 이미지는 모래 안에 반쯤 파묻힌 목마였습니다. 영화 <혹성탈출>(1968)에 나오는 자유의 여신상처럼 파도에 파괴되어가는, 몰락한 기념비 같은 모습으로요. 그러자 트로이 목마가 제게 아주 뜻밖의 방식으로 다가왔습니다. 트로이인들은 목마를 성 안으로 가져가기로 결정하고, 그 안엔 병사들이 가득하다는 건 지금으로선 믿기 어려운 역설적인 이미지가 되었고, 제가 수년 동안 간직해온, 언젠가는 꼭 영화로 찍고 싶었던 이미지로 남았습니다. 아마 감독님도 이처럼 오랫동안 마음속에 상상해온 이미지가 있을 듯합니다.

<오디세이>에 영감을 준 또 다른 고전 <혹성탈출>(1968)

우주비행사 조지 테일러(찰턴 헤스턴)는 지구를 떠나 초광속도로 여행 중이다. 우주에서의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지구 시간으론 2700년이 더 흘러 3978년이 되었다. 주인공 조지 테일러와 일행은 이름 모를 행성에 불시착해 우주선에서 내리고 곧바로 원숭이 무리에 쫓기게 된다. 이 행성에선 원숭이가 말을 타고 총을 쏜다. 원숭이들은 행성을 다스린다면 인간과 유사한 원시인들은 마치 야생동물처럼 살아간다. 영화 <혹성탈출>은 이 행성이 실은 핵전쟁이 벌어진 이후 미래의 지구였다는 점을 반전으로 삼는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언급한 해안가 모래에 깊이 박혀 녹슬어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그 반전의 강력한 펀치라인이며,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반전의 이미지 중 하나다.

사진제공 유니버설 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