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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단절과 접촉의 공간, 조현나 기자의 <지느러미> <군체> <호프>

과거부터 근미래까지, 올해 개봉한 한국 SF는 여러 시간대의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 대체로 한국이라는 장소성을 강조하는 대신 그 속의 인물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단절되는지가 화두다. 강렬한 액션 시퀀스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시선이 가는 곳은 인간과 돌연변이 혹은 외계 존재가 날을 세우는 와중에도 작은 틈을 통해 서로 조우하는 찰나였다. 그 대면이 의미하는 바를 <호프> <지느러미> <군체>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잔해 속의 이종들

<호프>

세 작품은 다른 방식으로 폐허를 묘사한다. <호프>부터 살펴보자. 재난이 벌어진 이후의 시점에 범석(황정민)은 몇몇 증언만 들은 뒤 사건 현장에 곧바로 접속한다. 범석의 발길이 닿는 골목마다 인적 대신 사체가 즐비하고 원통 형태의 커다란 구멍이 뚫린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랜 시간 사건을 일으킨 대상 없이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감각만을 범석과 나란히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뒤로 외계인 아이도보르(테일러 러셀)가 등장해 범석과 대적할 때 요철처럼 두드러지는 신이 있다. 총을 겨눈 순간 도망치는 아이도보르가 범석과 짧게 시선을 주고받는 때다. 눈물을 흘리는 아이도보르를 범석이 멍하니 쳐다보고 실제 몇초에 불과할 이 신은 슬로모션으로 연출된다. <호프>에선 미지의 존재에 대한 이해의 노력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이미 습격이 오간 상태이기에 소통이 무의미한 적으로 서로를 판단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외계 존재는 필요 이상의 살의를 띤 채 상대를 학살한다. 그러나 아이도보르와 시선을 교환한 이후로 범석은 미지의 존재의 의중을 파악해보려 하고, 그런 시도를 꾀하는 이는 <호프>에서 범석이 유일하다시피하다.

<지느러미>의 배경은 디스토피아에 더 가깝다. 심화된 기후 위기와 환경오염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미래의 통일 대한민국엔 인공 장벽이 세워졌다. 돌연변이인 오메가들은 장벽 밖에서 바다를 청소하며 생을 유지한다. 청소 도중 종종 사상자가 발생하기에 바다 역시 오메가에겐 또 다른 장벽으로 기능한다. 오메가에 관한 숙지가 부족한 상태에서 공무원인 수진(김푸름)은 그들을 감시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수진의 시선을 경유해 바라본 오메가들은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메가의 특성이 드러난 신체 부위만 가린다면 인간 세계에 섞여들어도 구분하기 어렵다. 오메가인 미아(연예지)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인간 세계에 스며들었다. <지느러미>의 가장 비현실적인 시공간은 낚시터다. 이곳에서 인간들은 더이상 실재한다고 확언하기 어려운 물고기를 좇는다. 오메가를 따라 낚시터에 들어온 수진은 물고기가 아닌 직원 미아를 바라본다. 탐색하듯 둘의 시선이 겹치고 얼굴이 오버랩되는데 이때만큼은 시간의 흐름도 무색하게 느껴진다.

수진은 범석과 일면 유사하다. 범석이 그랬듯 오메가를 바라보는 수진의 얼굴엔 단순한 적대감 이상의 호기심이 서린다. “그렇게 위험해 보이진 않던데”라던 수진의 말은 미아가 사망한 이후에야 비로소 입증된다. 정체를 들킨 미아가 사살되고 나서야 수진은 미아와 처음 접촉한다. 정확히는 미아가 소유하던 자기 아버지의 일부, 본인의 뿌리이자 정체성과 다름없는 지느러미를 손에 쥔 후에야 말이다. 아이도보르는 <호프>에서 인간 형체에 가장 가까운 외계인이다. 사망한 아이도보르를 해부하려 시도하고, 마을 청년이 보관하던 어린 외계인의 사체를 본 뒤 범석은 둘이 가족이었을 것이라며 아이를 잃은 슬픔이 습격의 원인이라고 추측한다. 사건과 사건 사이, 피사체 혹은 시공간이 정지된 상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인물들에게 연민과 같은 감정이 스며들 틈이 주어진다.

껍데기의 교류

<군체>

<군체>의 배경은 폐쇄된 건물이다. <부산행>의 기차에 비견할 법한데 <군체>에선 수평, 수직과 같은 공간의 특성이 적극 적용되진 않는다. 오히려 영철(구교환)로 인해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 즉 ‘신인류’들이 생존자들의 또 다른 장벽으로 기능한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좀비들은 교상을 통해 감염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진화의 과정을 거친다. 층층이 나뉜 건물에서도 좀비들은 정보 공유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들은 영철의 지시 없이는 단독 행동이 불가한 껍데기에 다름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망자와 같은 좀비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개별자 영철, 그에 맞서는 생존자 세정(전지현)이다. 세정에게도 생존자 동료들이 있지만 이들은 세정이 영철과 상반된 윤리관을 두고 다투는 자리에 도달할 장치로 소비되고 사라진다. 마치 신인류와 인간을 대변하듯 마주한 영철과 세정은 의견 합일에 실패한다. 그리고 영철이 사망하고 그에 따라 좀비들이 전부 정지한 이후에야 사건이 일단락된다. 세정에게 최후의 연대자가 되어주는 건 건물 밖의 생존자 설희(신현빈)다.

세 작품 속 인간들은 모두 타종과의 화합에 최종적으로 실패한다. <군체>에서 좀비들간엔 완벽한 소통이 실현되지만 그만큼 인간과의 상호작용은 불가해진다. 영철의 사망 이후 좀비의 해독, 혹은 인간과 좀비의 상호작용의 가능성은 원천 차단된다. 연상호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유독 선악 대비가 뚜렷한 <군체>에서 영철과 좀비들은 반드시 처단해야 할 존재가 되며 결국 같은 인간종인 세정과 설희 사이에만 연대가 가까스로 형성된다. <지느러미>에서 유일하게 교류의 여지를 보인 수진과 미아의 관계 또한 미아의 죽음으로 완전히 어그러진 채 마무리된다. 이중 <호프>는 타종에 관한 이해의 발판을 가장 확실하게 마련해둔 작품일 것이다. 중반 이후 영화의 주체는 인간에서 외계인으로 조금씩 전이된다. 외계 존재의 시점숏이 등장하는 동시에 결말부에선 자막까지 추가해 이들이 지구에 불시착하게 된 상황을 설명한다. 외계인들은 추락하는 함선을 목격한 뒤로도 작게나마 미래의 희망을 모색해보려 한다. 그러나 이들의 언어를 읽어낼 길이 없는 범석과 성애(정호연) 일행은 여전히 혼란스러워한다. 외계인들이 지구의 개척자가 되려 하는 순간 주민들 앞엔 호포항 이상의 황폐한 황무지가 도래하지 않을까.

<지느러미>

<지느러미> <군체> <호프>는 동시대의 시대상을 소화한 결과물이다. 박세영 감독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 경험한 감염에 대한 공포심을, 연상호 감독은 AI와 집단지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홍진 감독은 전시 상황이 임박한 세계의 불길함이 작품을 시작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힌다. 극 중 외계 생명체, 돌연변이, 감염자들의 위치는 같은 해 개봉한 유사한 주제의 작품들과 결을 달리한다. 가령 외계 존재로 좁혀볼 때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묘사한 외계인과 인간의 관계, <디스클로저 데이>에서 미지의 존재를 소환하는 방식은 앞의 세 작품이 타종을 묘사하는 것과 다르다.

빠르게 와해되며 비접촉이 일반화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타인을 감각할 유일한 장소는 인간의 신체뿐인지 모른다. <호프> <지느러미> <군체>는 이 전제를 느슨하게 공유하면서도 이를 긍정적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소통의 시도는 끝내 실패하고 신체를 매개로 한 타인의 감지는 공포심, 적대심으로 인해 흔적처럼 남은 신체의 일부를 통해서만 가능할 뿐이다. 연대가 실현될지언정 그것이 포용하는 개체의 범위는 넓지 않다. 오늘날 타자와의 교류는 무엇을 통해 가능해지는가. 진정한 소통을 이뤄낼 수 있는가. 단절과 접촉, 무엇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질문의 답이 달리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