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하는 순간부터 “뭐야, 뭐야” 장내가 술렁였다. 26번 최녕환과 27번 박건하가 형제처럼 닮았기 때문이다. 더 놀랄 일이 벌어진다. 상황은 택시 안. 승객 역의 최녕환이 앉자마자 운전기사 역의 박건하가 “제 발로 굴러들어올 줄이야?”라며 심각한 분위기를 만든다. 단 몇초 만에 쫓고 쫓기는 범죄자와 형사의 관계를 만든 것이다. 상대의 카리스마에 당황한 최녕환이 “네가 그 새끼구나…”라며 시간을 벌어보지만 박건하가 결정타를 날린다. “네가 그 새끼일 줄 알았냐?”라며 마스크를 벗는 액션으로 또 다른 상황을 만들어낸 것. 이날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 박건하는 심사위원들에게 가장 많이 호명됐다.
왼쪽의 2번 장예윤은 무엇이 앞에 있다고 상상하며 ‘후~’ 불고 있을까? 바로 동그랑땡이다. 마트 시식 코너에서 실적을 올려야 하는 직원이 동그랑땡을 파는 상황, 그런데 하필이면 47번 이규아가 맡은 손님은 깐깐하기 그지없다.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열심히 굽는 자와 맛이 이상하다며 자꾸 뱉는 자의 신경전이 이어질수록 장내에는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것만 같았다.
창의력 100, 난도는 200. 듣자마자 빠른 두뇌 회전을 필요로 하는 즉흥연기 상황은 최익환 숭실대학교 영화예술전공 교수(왼쪽 두 번째)가 짰다. 근미래, 결혼식 대기실, 타투숍, 약사, 살인마, 신부 등 수많은 공간과 직업이 등장하는 복잡한 상황이라 한달 전부터 준비했을 것 같지만 즉흥에는 즉흥. 전날 떠오른 아이디어로 하나씩 만들어갔다고. 최익환 교수는 대학연기배틀을 구상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만큼 누구보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무대를 지켜본 관객이었다.
특명, 엘리베이터가 멈췄음을 표현하라! 57번 최홍근이 먼저 몸을 흔들며 자세를 낮추고 닫힌 문을 낑낑거리며 여는 행동을 한다. 이번엔 8번 설혜인이 무릎을 굽히고 비상벨을 누르며 “여기 사람 2명이 갇혔어요”라고 차분하게 도움을 구한다. 다양한 상황의 특징을 파악하고 자신만의 디테일을 축적하는 것이 좋은 배우가 되는 길 중 하나라는 걸 알게 한 순간이다.
“눈빛이 좋다.” “몸을 잘 쓰네.” “목소리가 독특하다.” 무대의 참가자만큼 심사위원들도 바쁘다. 눈은 눈앞의 무대에 고정한 채 떠오르는 감상을 종이에 빠르게 채워간다. 이날 누군가는 앞으로 함께하고 싶은 배우를 만났을지도 모른다.
과감한 공간 변경으로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팀은 42번 임준혁과 39번 송효은이다. 저승에 간 남자 친구가 몸을 키우고 싶다며 헬스트레이너인 여자 친구를 찾아 현실로 온 상황. 식단 이야기가 나오자 송효은이 생선 가득한 낚시터를 말했고, 임준혁이 곧바로 “왔다, 물고기가 진짜 많네”라고 받아쳤다. 단숨에 헬스장을 낚시터로 바꿔버린 두 사람의 호흡에 박수가 터졌다. 상대의 의도를 재빨리 캐치하고 천연덕스럽게 이어가는 배우의 자질이 반짝인 순간이다.
2라운드 마지막은 슬픈 눈의 두 남자가 맡았다. 18번 신동준과 19번 김주형에게 주어진 상황은 아련하다. 연인이었던 두 남자. 한 남자가 죽어 유령이 된 뒤에도 인간과 유령은 한집에 산다. 이제 인간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고, 유령은 연인의 새로운 사랑을 응원해주고 싶다. 인간 역의 신동준이 이어폰을 끼고 앉아 작은 방의 분위기를 만들자 유령 역의 김주형이 그 옆에 바짝 붙어 앉아 내밀한 관계를 드러낸다. “우리가 함께 듣던 이 노래를 나눠 들을 사람이 생겼다”며 미안해하는 인간과 웃는 얼굴로 괜찮다며 다독이는 유령. 둘만 있는 듯 집중한 두 배우의 연기에 객석도 덩달아 고요해졌다.
눈여겨본 참가자를 호명하기 위해 무대로 나온 윤가은 감독이 쑥스러워하자 참가자들이 응원의 환호를 보냈다. 그러자 감독은 “스스로를 많이 축하해주고, 못한 게 있다면 눈물 흘리면서 ‘다음에는 잘해야지’ 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응원을 돌려줬다. “잘 보고 잘 들으려고 한 배우”를 기준으로 그가 선택한 참가자는 22번 오채욱, 31번 박채영, 41번 송지예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