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나인 줄로만 알았어. 미안해.” 우리에게 문화적 촉매제가 있다면 그건 배우 이정은일지 모른다. 낮게 가라앉은 톤, 사각거리는 허스키함, 그리고 모든 것을 하릴없이 내려놓게 만드는 온기까지, 사람들은 이정은의 음성 앞에서 몇번이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많은 이들은 이정은을 엄마의 따스함으로 기억한다. <동백꽃 필 무렵> <당신이 잠든 사이에> <눈이 부시게> <조명가게>등에서 가족을 관통하는 보편적 정서를 생명력 있게 그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그의 전부는 아니다. 오직 어머니로만, 모성의 품으로만 그를 설명하기엔 무언가 부족하다. 짝짝이 눈썹으로 감초 역할을 자처했던 <변호인>에서부터 정 많고 푼수 같은 무당 서빙고의 모습(<오 나의 귀신님>),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장르를 뒤집어버린 문광의 위압감(<기생충>), 제도와 권력을 익숙함으로 재출력해냈던 , 은닉된 진실을 속도감 있게 추적해가는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윤보민까지 그는 넓고 다채로운 프리즘을 지녔다. 따라서 이정은의 목소리와 표정, 뒷모습과 손짓 등에 마음이 움직이는 건 그가 어머니의 이미지를 지녀서가 아니라 자갈밭 같았던 삶을 그대로 수용하고 끌어안아왔기 때문이다.
김미조 감독과 함께한 <경주기행>또한 그렇다. 장주(공효진)와 갈등하고, 영주(박소담)에게 편지를 쓰고, 동주(이연)와 애정결핍을 씨름하는 그 과정에 울음이 차오르고 마는 이유는 그가 또 한명의 어머니를 연기해서가 아니다. 옥실이 8년 동안 붙들고 살아온 슬픔, 억울함, 비탄이 이정은의 이름으로 체화되어 우리에게 도달하기 때문이다. 삶의 굴곡을 이해한 명석한 배우가 우리 곁에 존재하는 덕에 우리들은 한번 진하게 울어젖히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 앞으로 걸어간다. 슬픔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슬픔은 사람을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을까. 딸을 잃은 옥실의 얼굴로 끝까지 가본 자만이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글에서 배우 이정은과의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