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실은 장장 8년 동안 딸을 잃은 순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지만 피폐하거나 무기력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시간이 멈춘 사람을 연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 가까웠나.
멈춰 있다는 게 생명력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옥실은 인생의 목표를 이미 결정해놓았기 때문에 멈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목적의식은 굉장히 분명하다. 오히려 그것이 그의 활력이 될 수도 있다고 봤다. 이번 여행 역시 옥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여행이다. 그의 말마따나 식구들을 다시 살게 하는 전환점이기에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에너지가 넘친다. 오히려 피폐한 것은 외형에 있다. 머리를 다듬지 않고 늘 비슷한 옷을 입는 모습. 경찰도 말한다. 생활의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 가족이라고. 그런 은밀한 가족이 여행을 하면서 묻어두었던 기억을 끄집어내기 시작한다. 그럴수록 옥실의 에너지는 더 강해진다.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를 찾아내는 책임감
- 글로 만난 옥실을 처음 보았을 때 가장 중요하게 부여하고 싶었던 이미지가 있었나.
나는 작품을 선택할 때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는 큰 목표를 세워놓고 선택하지는 않는다. 방송과 영화를 오가면서도 어떤 이야기를 더 보고 싶은지를 생각했다. 이런 이야기가 세상에 필요한가, 같은 질문으로. 물론 배우가 그런 기준을 확고하게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콘텐츠와 영화, 문화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좋은 이야기를 발굴해야만 한다. <경주기행>은 배우로서 나를 도전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그동안 비교적 안정감 있는 작품 안에 있었다면, 이번에는 처음으로 규제나 제재 없이 끝까지 가보는 인물을 연기했다. 어려움 속에서 하나의 화두를 던진 작품이다.
- 좋은 이야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좋은 이야기에 대한 정의는 감독, 제작자, 관객 등 입장마다 다를 텐데, 이정은 배우에게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관객은 배우의 연기를 통해 이야기에 진입한다. 이 이입으로 극을 마치 자기 이야기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나는 다정함이 내재된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사람들이 나를 통해 조금이라도 세상의 온기를 느끼길 바라기에 그런 작품을 선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시나리오를 읽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다정함이 발휘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과연 우리는 이 피폐한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어떤 다정함을 발휘할 수 있을까. <경주기행>은 슬픔을 단편적으로 무마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목적지에 함께 가봐야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전 필모그래피에서는 내가 제3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바라봤다면, 이번에는 나를 더 많이 투영해서 남겨진 가족들의 아픔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접촉하는 역할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어려웠다. 8년 동안 한자리에 멈춰온 사람을 연기하는데 어느 누가 쉽게 자신할 수 있겠나. 하지만 그저 노력해보는 것이다. 여러 삶을 통과해보면서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런 숙제가 나에게 많이 남았다.
- 작품을 선택할 때 일종의 사회적 책임감이나 소명의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해왔다. 솔직히 말하면 배우로서 ‘선한 영향력’이라는 명분 아래 안정적인 역할을 주로 해온 것 같다. 하지만 배우라는 직업은 악인도 해봐야 무엇이 선한지 알 수 있다.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요한, 이연, 박소담 배우 등 어떤 역할이든 전면으로 과감하게 표현하는 이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 조금 더 대담하게 선택해도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면 결국 선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 옥실은 ‘딸을 잃은 엄마’라는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인물이다. 슬픔과 복수심뿐 아니라 허술함과 욕망, 충동과 유머도 있다. 옥실의 슬픔을 유지하면서도 이런 예외적인 면을 어떻게 드러내고자 했나.
초반에 감독님과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렇게 심각한 일을 겪은 가족이라고 해서 매 순간 심각할 수만은 없을 거라고. 옥실에게 목적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 가족에게는 목적 이전에 경주에 가서 여행인 척 알리바이를 만들고 제사를 지내려는 계획이 있다. 그 과정에는 가족이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는 필연적 변수들이 생겨난다. 이런 순간은 우스꽝스럽게 보여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가장 안심할 때 우리의 삶은 다른 방향으로 꺾인다. 그런 모순이 이 장르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 자체가 계속 변주하는 장르다. 밖에 나갔다가 사고가 나면 순식간에 장르가 바뀌지 않나. 누군가에게 좋은 말을 들으면 멜로드라마가 되기도 하고. 그런 현실 세계를 생각하면 이 가족의 기행이 딱 하나의 색깔을 띨 수는 없다고 봤다. 그게 진짜 삶이다.
- 김미조 감독은 옥실이 자식의 수만큼 다양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세딸을 대하는 옥실의 태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각각의 딸과 어떤 관계를 만들었나.
동주(이연)는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한다. 그런데 엄마 입장에서는 너무 뻔한 것을 묻는 철부지처럼 느껴진다. 장주(공효진)나 영주(박소담), 심지어 막내 경주(황현정)까지도 옥실에게 그런 것을 묻지 않는데 동주는 자기 뜻대로 살아가면서도 계속 사랑을 확인하려 한다. 엄마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는 없다. 물론 이 여행에서 동주가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가 계속 기본적인 사랑을 확인시켜줄 수만은 없다. 그런 것을 묻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는 아이들도 있으니까. 그저 “산모기 사납다” 같은 말로 다독여줄 뿐이다. 장주는 집안의 대소사를 나누는 큰딸이다. 실제로 효진씨는 현장에서 내가 다루지 못하는 부분까지 리드하고 진두지휘했다. 어떻게 보면 장주가 옥실과 더 비슷하다. 전체의 밸런스를 잘 맞춘다. 영주는 실제 소담씨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말없이 관망하면서도 적재적소에 기지를 발휘한다. 소담씨는 전체를 위해 자신이 가진 대담함을 잠시 눌러놓는, 배려심이 많은 배우다.
- 정말 동주만의 생각일까. 구박받는 모습을 보면 엄마가 다른 딸들보다 동주에게 더 쌀쌀맞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야 동주가 사랑받지. (웃음) 엄마 품에서 소외될수록 동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응원을 받는다. 이연씨의 인기가 아주 높던데? (웃음)
- 공효진 배우와 모녀지간이 된 건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이후 두 번째다.
공효진 배우는 정말 베테랑이다. <동백꽃 필 무렵>에서 연기할 때와 <경주기행>에서 연기할 때, 효진씨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도 달랐다. 이번엔 완전한 내 편이라는 느낌에 가까웠다. 효진씨는 리딩 때부터 장주에 대해 굉장히 구체적으로 구상해왔다. 예를 들어 옥실과 장주가 크게 싸우는 장면에서 “내가 아빠 유골함 고르고 수의에 이름 썼을 때 엄마가 ‘난 너 있어서 산다’ 그렇게 말해줄 줄 알았어”라는 대사가 있다. 그건 효진씨가 직접 만들어낸 대사다. 리딩 현장에서 그렇게 말하고 싶다고 의견을 내더라. 영화 전체에 담긴 효진씨의 얼굴도 참 좋다. 여러 감정을 지닌 얼굴이라 배우로서 무척 부럽다. 사실 예산이 크지 않아서 배우들에게 러브레터를 보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나는 영화가 제작되길 조용히 기다렸는데 장주와 영주한테 각각 전화가 왔다. “엄마, 나한테 이 시나리오가 들어왔는데 진짜 너무 좋다. 엄마 하는 거 맞죠? 맞죠?” 계속 묻더라. 그래서 나 때문에 하지는 말고 시나리오가 좋으면 하라고 말했더니 “엄마 때문에도 하징~” 하더라. (웃음) 그렇게 세딸이 모였을 때 <경주기행>은 만들어져야만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도 운때가 있다.
- <동백꽃 필 무렵> <당신이 잠든 사이에> <눈이 부시게> <조명가게> 등에서 다양한 엄마 역을 그려왔다. <경주기행>의 옥실은 그동안 연기해온 엄마와 어떤 점에서 달랐나.
이번에는 개인의 갈등보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도달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엄마에게 갈등이 너무 많으면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 엄마는 이미 가고 싶은 곳이 전제되어 있는 사람이라 목표가 명확하다. 다만 그것을 막는 사건들이 계속 벌어지고, 옥실은 그 안에서 대처하면 되는 것이다. 목적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정지되어 있는 순간에도 나는 계속 생각했다. 어떻게 그놈을 잡아서 죽일까. 어떻게 이 한을 풀까. 그것이 옥실에게는 굉장히 중요하니까.
슬픔을 그리는 얼굴
- 이 작품에서 가장 위험하게 느낀 장면은 무엇이었나. 잘못 연기하면 영화 전체의 균형이 무너질 것 같다고 느낀 장면이 있다면.
두 가지가 있었다. 먼저 과거의 장면들이다. 영화 초반 딸의 죽음이 나오는 순간 관객들은 이미 구체적인 감정선을 예상한다. 감독님과도 그 예상치를 넘지는 말자고 이야기했다. 감정적으로 너무 호소하지 말자고. 과거의 편린이 현재의 진로를 방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여러 버전으로 촬영했지만 마지막을 위해 많이 절제했다. 또 하나는 계획했던 일이 실패했을 때다. 범인을 놓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 자칫하면 잠시 쉬어가는 구간처럼 보일 수 있었다. 그러면 긴장도가 확 떨어진다. 나는 배우가 계속 생각하고 있으면 그것이 분명 전달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비를 쓰고 돌아다니는 순간에도 옥실처럼 계속 목적을 생각했다. 말이 없어도 발걸음은 항상 선두에 있었다. 그게 내 마음의 속도다. 놓친 사람을 찾아내야 하는데 뒤처져 있으면 또 놓칠 수 있지 않나. 그래서 위치와 걸음이 중요했다. 옥실과의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 옥실에게 복수는 정말 목적이었을까. 아니면 8년 동안 멈춰 있던 삶을 다시 시작하기 위한 명분이었을까.
옥실에게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결과가 나쁠 것이라고만 생각하면 하지 못한다. 살아가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살려고. 사적인 보복을 옹호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옳지 않은 일에 대해 왜 우리는 쉽게 넘겨버리라고 하는지 질문해볼 필요는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다, 라는 말처럼. 그냥 넘어가버린 것들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
- 김미조 감독과는 <오마주>부터 인연을 이어왔다. 김 감독의 단편적·독립영화적 감각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첫 상업영화의 주연으로 만났을 때, 김미조라는 연출가에게서 어떤 점이 다르게 다가왔나.
김미조 감독의 <갈매기>를 굉장히 좋게 봤다. 그 영화 역시 피해를 입은 여성이 끝까지 가는 이야기다. 누가 믿어주든 믿어주지 않든. 나는 그때부터 감독님의 힘이 이런 데 있다고 생각했다. <경주기행>을 하면서도 그 생각을 몸소 체감했고. 감독님은 형식과 장르가 달라져도 일관된 질문을 하는 사람인 것 같다. 감독님이 계속 이렇게 진보해나가면 좋겠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감독은 없다. 감독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 형식과 그릇이 달라질 뿐이다. 김미조 감독 역시 앞으로도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갈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김미조 감독과 가장 오래 논의했던 장면은 역시 복수를 이행하는 마지막 장면일까.
그렇다. 스스로 나에게 질문했다. 정확히는 자기 의심을 했다. ‘내가 옥실의 감정에 감히 도달할 수 있을까.’ 시나리오에 이미 마지막 장면이 쓰여 있는데도 실제로 내가 그곳까지 갈 수 있을지 의심했다. 체력적인 문제보다 감정의 문제였다. 배우는 눈앞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처럼 생생하게 연기해야 한다. 범인을 앞에 두고 질문하는 그 순간을 내가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를 계속해서 물었다.
- 자기 의심? 의외의 말이다.
자기 의심은 늘 있다. 연차가 높다고 해서 불안이 없는 건 아니다. 이미숙 선배님도 어디선가 이렇게 말했다. “나도 떨려. 티를 안 낼 뿐이지.” 결국 해야 하니까 해내는 것이다. 촬영 당일까지도 계속 나를 의심했다. 그런데 산에 올라가서 변요한 배우를 본 순간, 백상현을 마침내 마주한 그때 마법 같은 순간이 만들어졌다. 만족이라는 말까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순간에 확실히 느껴지는 감정이 있었다. 옥실이 오랫동안 누적해온 그 감정이었다.
- 옥실은 결국 오랜 시간 준비해온 질문을 범인 앞에서 꺼내지만 그 어떤 것도 묻지 못한다.
백상현과 일대일로 대적한 옥실은 오랫동안 지녀온 질문지를 꺼낸다. “왜 그랬어?” “경주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뭐야?” “어떻게 책임질 거야?” 김미조 감독과 그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실제 한 범죄 다큐멘터리에 나온 피해자 가족의 모습을 담은 것인데 그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촬영 내내 질문이 담긴 쪽지를 가지고 다녔다. 옥실이 되기 위해서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 질문이 굉장히 중요했다. 하지만 정작 질문을 하진 못한다.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상대가 대답하지 않을 것도 알고 있고, 그 대답도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질문지를 한번 꺼내본다. 유가족이라면 가장 사무치게 궁금해할 질문이니까. 나는 특히 “용서하게 될까봐 두려웠다”라는 옥실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나는 내가 미지근한 사람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옥실은 불타올라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더라. 그래서인지 그 말이 계속해서 내 안에 남았다.
- 최근엔 가족주의적인 이야기를 전형적이거나 지루한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족의 내밀한 속마음을 고백하는 <경주기행>은 어떤 의미일까. 배우 이정은의 역사적 의미로 되짚어본다면.
옥실과 세딸의 이야기가 현실적인 느낌을 전하지 못하면 결국 장르적인 사건으로만 보이고 말았을 것이다.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건 좋은 글과 그 글을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체득한 배우들의 힘이다. 그런 점에서 세딸의 영향이 굉장히 컸다. 옥실이라는 인물 역시 딸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에 장주, 영주, 동주가 빚어낸 엄마와의 관계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 기둥이 온전히 만들어졌기에 모든 사람이 가족 내 자신의 위치를 대입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옥실은 끝까지 가본 사람이다. 누가 믿어주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와 상관없이 자신이 가야 하는 곳을 정확히 도달해본 사람이다. 내게는 그게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실제로 살아내보니 그 과정이 배우의 삶에 얼마나 필요한지 알게 됐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