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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전게임 그래픽과 매끈한 3D 애니메이션을 가로지르기 - 엄영식 감독과 원작자 가스파드 작가가 말하는 <전자오락수호대>

가스파드, 엄영식(왼쪽부터).

- 웹툰 작가 가스파드를 알린 데뷔작 <선천적 얼간이들>이 일상을 만화화했다면, <전자오락수호대>는 게임 속 세계 뒤편을 상상한 판타지 활극이다. 작품을 구상한 계기는.

가스파드 평생을 게이머로 살아왔다. 멀미가 심해 1인칭 슈팅 게임을 피하는 걸 빼면 거의 모든 종류의 게임을 다 하는 편이다. 특히 어렸을 때는 8비트 게임부터 전형적인 RPG 게임까지 다 좋아하는 오락실 키드였다. 그때부터 있었던 게임에 관한 호기심, 의문들을 눈 굴리듯 키워온 게 <전자오락수호대>의 기반이 되었다. 일상물로 웹툰을 시작한 만큼 독자들이 내게 무얼 기대하는지 알아 새로운 스타일의 신작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우려도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걸 독자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마음으로 작품을 구체화했다.

엄영식 나는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의 세포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하고 나서 비로소 웹툰 시장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 더 관심을 가져보려던 차에 로커스 스튜디오 내 스토리개발팀 팀장님이 <전자오락수호대>를 추천하셨다. 아무 정보 없이 작품을 보기 시작했다가 독특한 그림체에 시선을 빼앗겨 중간에 멈추지 않고 쭉 봤는데, 그동안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없던 비주얼을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화면에 픽셀로 된 캐릭터와 그렇지 않은 캐릭터가 공존하는 장면이 얼마나 신선할지 기대되었다. 꼭 해보고 싶다고 회사에 제안했다.

가스파드 로커스 스튜디오로부터 <전자오락수호대>를 영화화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딱 한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왜?’ (웃음) 나쁜 의미가 아니라, 순수하게 궁금했다. 작품이 한창 연재되던 시기도 아니었고,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기에 훨씬 수월한 원작이 더 있을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분들이 이런 용맹한 도전을 감행하려는지 알고 싶더라. 내가 사는 부산까지 로커스 스튜디오 분들이 찾아와 미팅할 때도 그리 여쭈었다. 사실 만화가에게 애니메이션화 제안은 마치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 같은 것이다. 누군가는 산타에게 선물을 받았다고 하는데, 내 앞에는 절대 산타가 나타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전자오락수호대>라는 작품으로 산타를 만날 줄은 몰랐다.

엄영식 작가님의 궁금증에는 내가 답할 수 있을 듯하다. 재밌는 웹툰은 많다. <전자오락수호대>도 재밌어서 영화화하고 싶었다. 다만 내게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작품을 영화화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전자오락수호대>만의 이미지를 실사영화로 구현하는 것은 쉬이 떠올리기 어렵다. 절대 그 느낌 그대로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인 내게는 <전자오락수호대>가 산타 같은 작품이었다.

고전게임 부서의 패치.

- 주인공 패치가 모바일게임 부서에서 고전게임 부서로 좌천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인 만큼 한 작품에 고화질의 3D 게임 그래픽과 투박한 도트 게임 그래픽이 공존한다. 웹툰으로, 또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기까지 많은 연구가 필요했을 듯한데.

가스파드 말보다 그림 한장이 더 설득력이 있을 때가 있다. 이 만화로도 그런 효과를 내고 싶었다. 처음에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픽셀을 찍어볼까 했는데, 인물의 표정이나 동작 등을 그리는 데 제한이 클 것 같았다. 독자가 작품 자체에 몰입하게 하려면 그런 한계를 안고 가서는 안될 듯해 네모난 도트를 찍은 느낌이 나는 포토숍 브러시를 만들었다. 이 브러시를 적용해 그림을 그리니 설득력이 생기더라. 이 정도라면 웹툰 연출이 가능하리라는 확신으로 작업했다.

엄영식 비슷한 결로 고민했다. 컨셉에 충실하되 인물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픽셀 사이즈를 정하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이었다. 관객에게 패치가 고전게임 부서로 강등되었다는, 즉 바닥에 떨어졌다는 인상을 주려면 패치의 외모부터 픽셀 그림체로 한방에 설명해야 했다. 주인공에게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동기가 부여된다는 걸 말없이 비주얼로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목적 중 하나였다.

- 캐릭터디자인에 있어서 흥미로운 건 안구 표현이다. 주요 인물들을 제외한 마을 주민들의 경우 네모난 픽셀 형태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눈과 동공을 묘사했다. 그 밖에도 뭉게구름의 테두리나 찻잔에 피어나는 김까지 각진 모양으로 마무리했다. 이러한 작화의 매력을 느낀 대목이 있다면.

가스파드 기본적으로 망설이지 않고 고전게임의 키치함을 살리려 했다. 고전게임 부서라는 배경 자체가 어떻게 보면 유배자들의 공간인 데다 마땅한 이름이나 눈 디자인조차 부여받지 못한 캐릭터가 많다. 보기에는 아무런 개성이 없어 보여도 파고들다 보면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뉘앙스를 전하고 싶었다.

엄영식 원작이 그렇게 했으니, 애니메이션에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만 여겼는데, 작가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숨은 의도가 더 잘 이해가 된다. 주역이 있다면 조역도 있고, 비중이 큰 이야기가 있다면 작은 이야기도 있으니까. 하지만 덜 중요한 사람은 없다. 그런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원작이었다.

가스파드 웹툰을 그릴 때 브러시 자체의 한계를 느끼곤 했는데, 그 제약에서 오는 리듬이 좋을 때가 있었다. 예를 들어 화창한 하늘에 예쁜 구름이 떠 있거나, 바다가 펼쳐진 가운데 석양이 지는 장면은 세밀한 묘사 없이도 브러시만이 낼 수 있는 분위기로 힘 있는 그림이 되었다. 한편 영화를 보며 ‘내가 웹툰에서 하고 싶었던 게 저런 것이었지’ 싶은 부분도 있었다. 애니메이션에서 3D로 구현된 픽셀이 너무 예뻐 보였다. (웃음) 컵과 같은 작은 소품들이 특히 그랬다.

엄영식 캐릭터는 최대한 원작과 유사하게 그리더라도 배경이나 소품은 도트 게임의 이미지와 멀리 떨어진 3D애니메이션만이 할 수 있는 믹스매치를 시도해보고 싶었다. 연기는 어떻게 하지? 물은 어떻게 하지? 절벽은 어떻게 하지? 픽셀이 얼마만큼 드러나야 할까? 이 모든 질문에 답해가는 과정이 도전이고 실험이었다. 원작자인 가스파드 작가님에게 연락해 묻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귀찮게 굴면 안될 것 같았다. (웃음) 스태프들과 최대한 우리끼리 고민해보자고 했다.

모바일게임 부서의 패치.

- 그 세계를 누비는 주인공 패치에게 오래된 게임을 구하는 일은 곧 자기 자신을 구하는 일이다. 그가 어떤 여정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나.

가스파드 능력적인 성장보다는 내면적인 성장에 초점을 맞춘 여정을 그렸다. 어떻게 보면 패치는 능력에 있어서는 이미 완성형이다. 관건은 힘의 크기보다 방향이었다. ‘패치’(patch)라는 이름부터가 잘못된 걸 고치고 나아간다는 정의를 담고 있는 관념적 게임 용어다. 이 캐릭터가 어디로 나아가야 임무를 완수했다고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스토리를 짜려고 노력했다.

엄영식 패치가 나와 닮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혼자가 편하고, 누군가에게 도움받는 것이나 피해주는 것을 불편해하는 점이 말이다. 사람이 오래 살다 보면 무너지기 마련인데, 그때 나의 부족한 부분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채워주는 이들이 생기더라. 패치에게도 그런 이들이 생기길 바라는 심정으로 임했다. 기획 단계에서 인물의 성장 포인트를 질문받을 때도 같은 답변을 했다. 혼자인 인물에게 친구가 생기고 동료가 생기는 이야기를 만들겠다고.

‘용검전설’ 속 용사.

- 그 동료 중 하나가 ‘용검전설’의 새로운 플레이어인 ‘용사’다. 게임 화면 뒤의 실제 플레이어는 어떤 모습일지 짐작하게 하는 캐릭터다.

가스파드 원작에서 드러낸 적은 없는데, 개인적으로는 용사를 플레이하는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 게임을 해보는 어린아이일 거라고 설정했다. 게임이 뭔지 아예 모르고 살다가 아빠의 서재에서 먼지 쌓인 게임기를 발견해 ‘용검전설’을 플레이하지 않았을까? 나도 5, 6살 때 처음 빨간 쿠션으로 된 의자가 있는 오락실에 가본 순간을 아직 기억한다. 어떤 요소가 있어야 좋은 게임인지, 나쁜 게임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을 때는 게임의 버그마저도 재밌게 느껴진다. 그때만 느낄 수 있는 순수한 즐거움을 용사에 투영했다.

엄영식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겁을 준 바람에 오락실에 가본 적이 없다. 지금도 게임은 거의 하지 않는다. 게임에 대한 조예와 지식이 깊지는 않아도, 결국 세상 사는 이야기로 이 세계관을 이해했다. 내게는 용사가 세상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존재로 보였다. 패치의 입장에서 보면 용사는 ‘용검전설’에 있어서는 안되는 인물이다. 게임의 규칙을 따르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렇기에 오히려 선입견도, 고정관념도 없다. 다만 애니메이션을 연출하는 입장에서는 용사가 아이처럼만 비칠까봐 경계한 측면도 없지 않다. 편견 없음이 단지 동심에 의한 것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김서영 성우에게도 용사를 충분히 귀엽게 표현하되 너무 어리게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패치와 전서구(왼쪽부터).

가스파드 전서구를 연기한 엄상현 성우도 인상적이었다. 애니메이션에서 잘 표현되길 바란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전서구의 발랄함이었다. 원작에서도 전서구의 입담이 구수하고 재밌어 보이게 하려고 애썼는데, 연출과 연기 덕분에 그 점이 돋보인 것 같다. 관객들도 즐겨주셨으면 한다.

엄영식 내가 추가로 언급하고 싶은 캐릭터는 들개들이다. 작업 초반에는 무조건 패치에게 이입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들개들에게 몰입했다. 애니메이션이 실사영화와 다른 점 중 하나가 스토리보드를 영상화해서 내부 시사를 거친 뒤 본격적인 제작에 돌입한다는 것인데, 그때는 성우들에게 목소리 연기를 맡기기 전 단계라 내가 직접 레퍼런스 삼아 대사를 녹음했다. 당시 들개들 목소리 연기를 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거렸다. 내 삶이 힘든 게 꼭 내 탓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스치는 장면이라 그랬던 것 같다. 이후 들개들의 이야기를 원작과 다르게 풀어갔는데, 지금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에게도 손을 내밀면 그들이 사회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걸 암시하고 싶었다.

들개들.

- <전자오락수호대>의 음악도 게임음악의 영향을 짙게 받은 듯하다.

가스파드 평소 칩튠(chiptune)으로 불리는 장르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전자오락수호대>원작을 작업할 때도 8비트 사운드의 음악을 많이 들었다. 웹툰에 그런 배경음악을 넣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곤 했다.

엄영식 다행히 원작의 엄청난 팬인 박준현 음악감독을 모실 수 있었다. 원작의 상징과도 같은, 가스파드 작가님이 만든 오프닝곡도 살렸다. 그래도 엔딩곡만큼은 팬심을 담아 새롭게 창작해보고 싶다고 해서 전적으로 맡겼는데, 비트펠라하우스가 참여한 멋진 곡이 탄생했다.

- 모두의 애정으로 완성된 <전자오락수호대>를 마침내 극장에서 선보이는 소감은.

엄영식 제작비가 가치 있었는지, 내 일이 가치 있었는지 고민하곤 한다. 누군가 이 영화를 보며 행복했다면 가치가 생기는 것이라 믿는다. 문제를 극복해나갈 때마다 힘들고도 재밌었다.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한 발짝 성장할 수 있었기에 감사하다.

가스파드 다수에게 사랑받지는 못할지라도 나와 통하는 소수가 좋아해주는 작품이라면 끝까지 해내겠다는 다짐으로 <전자오락수호대>를 연재했다. 나 또한 그 기간에 심신의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애니메이션 개봉이라는 일이 벌어졌다. 독자들의 오랜 관심에 감사하다. 나 또한 로커스 스튜디오의 팬으로서 후속작을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용검전설’ 플레이 화면.

사진제공 로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