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민 감독은 최근 몇년 사이 한국 영화 팬들의 눈길을 끈 이름이다. 2024년 2월 극본을 쓴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을 공개한 김다민 감독은 몇주 뒤 독립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이하 <막걸리>)를 개봉하며 인상적인 데뷔의 순간을 만들어냈다. 창작자 집단은 그의 재능을 더 빨리 발견했다. 군대 내 그늘진 곳을 강렬한 드라마로 풀어낸 <D.P.>를 연출하고, 크리에이터로서 고등학교 남학생들의 폭력으로 얼룩진 감정을 다룬 <약한영웅 Class 1> <약한영웅 Class 2>를 기획총괄한 한준희 감독은 2023년에 이미 김다민 감독과 작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홍대에서 처음 만나 돈까스를 먹으면서 하고픈 이야기와 대중이 보고 싶어 하는 것 사이 균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두 사람은 곧 균형점을 찾기에 이른다. 바로 수상한 인력사무소인 ‘거미인력’을 통해 청년 혁준(이재욱)이 시급 50배에 달하는 고수익 알바를 소개받아 악몽 같은 노동 현장에 투입되는 <꿀알바>란 균형점이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온 스크린 섹션에 초청된 <푸른길> 연출자로서, 또 <꿀알바>의 크리에이터로서 부산을 찾을 한준희 감독과 <꿀알바>를 연출한 김다민 감독을 만나 크리에이터의 일과 신인감독의 무게, 한국 영상문화 업계의 현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준희 안녕하세요, 영화와 시리즈를 찍고 있는 한준희입니다. 2021년에 <D.P.>로 넷플릭스에서 첫 시리즈를 만들었고, 그 뒤에 <약한영웅 Class 2> 크리에이터로 작업을 이어왔고 최근에는 김다민 감독과 함께 <꿀알바>라는 작품, 그리고 제 연출작 <푸른길>까지 쭉 넷플릭스와 같이해오고 있습니다.
김다민 안녕하세요. 넷플릭스에서 <꿀알바>를 연출한 김다민입니다. 저는 넷플릭스에서 <살인자ㅇ난감> 각본을 썼고 그다음에 한준희 감독님을 만나 <꿀알바>를 연출했습니다.
- 먼저 넷플릭스와 함께 한국에 들어온 크리에이터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그간 크리에이터 역할을 해온 한준희 감독에게 그 역할과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크리에이터는 기존 창작 생태계의 연출자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한준희 미국에선 쇼러너, 크리에이터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고착화된 시스템은 아직 아니고, 정의를 찾아가는 중인 것 같아요. 보통 저는 연출자가 있고 옆에서 감독을 서포트하는 역할이라고 말하는 편인데요. 감독이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을 때 제가 가진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재단사가 맞춤옷을 만들듯 옆에서 세팅하고 조언하는 사람입니다.
김다민 <꿀알바>는 규모가 있는 작품이고 좋은 배우들, 스태프들과 함께했어요. 그럼에도 저 혼자였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고 어떻게 상대의 마음을 돌릴지 난감했을 텐데 감독님이 항상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주셔서 저는 진짜 맞춤 정장을 받은 느낌이었어요.
- 한준희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열린 크리에이티브 아시아에서 “업계에서 감독 데뷔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제작사 쇼트케이크를 이끌면서 자신의 연출작뿐만 아니라 젊은 창작자들이 발돋움할 수 있도록 판을 키우고 있습니다. 개인 연출자를 넘어서 크리에이터 역할까지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궁금한데요.
한준희 크리에이터, 기획총괄, 쇼러너, 어떤 이름을 붙이든 고백하자면 너무 힘든 일이에요. (웃음) 그 역할들이 즐겁거나 그러진 않아요. 어떤 순간에는 그냥 내 것만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다만 <D.P.>를 하고 나서 감독, PD, 작가 등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내가 믿어주면 데뷔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어요. 거창한 책임감에서 크리에이터 역할을 시작한 건 아니고, 저도 계속 재밌는 작품을 하고 싶고, 재밌는 작품을 보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내가 더 많은 분들에게 재단사처럼 맞춤 정장을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웃음) 다만 크리에이터 역할을 언제까지 계속할 지는 모르겠어요. 에너지도 들지만 <약한영웅 Class 1> <약한영웅 Class 2>부터 <당신의 맛> <꿀알바>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아웃백>(가제)까지 5편을 쭉 그런 방식으로 해오면서 늘 딜레마를 느끼거든요. 어느 선까지 감독님들과 호흡을 맞춰야 할 것인가, 내가 좋은 길라잡이로서 작품에 도움이 되고 있는가를 항상 고민해요. (김다민 감독을 바라보며) 요즘 데뷔하기 너무 어렵지 않나요?
김다민 많이 어렵죠. 전 <꿀알바> 대본을 너무너무 재밌게 봤고 연출을 너무 하고 싶었지만 “제가 이만큼 해봤기 때문에 할 수 있어요”라고 얘기할 경력이 없었어요. 어떤 방식으로든 이 부분이 설득돼야 자본이 투입되고 작품이 만들어지는 실질적인 큰 허들을 넘길 수 있지만요. 투자하기로 한 넷플릭스 안에서도 믿을 만한 제작사와 크리에이터 한준희 감독님이 있었기에 진짜 묘한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같이 <꿀알바>제작에 용기를 내준 게 아닌가 생각해요.
한준희 겸손하게 말했지만, 넷플릭스를 설득한 건 김다민 감독의 각색고였어요. 경민선, 이신지 작가의 좋은 글을 김다민 감독이 더 잘 설득이 되도록 써줬어요. 거기에 저는 보증인 같은 존재죠. 감독, 작가, PD가 굉장히 훌륭한 무언가를 만들어줄 것이고 제가 보증을 서겠다고 말하는.
김다민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요즘 데뷔 허들이 무척 높다고 생각해요. 저는 <살인자ㅇ난감>으로 운 좋게 시작했어요. 지금은 아무리 좋은 아이템을 갖고 있어도 시스템 안에서 어떤 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관해 항상 동료 신인감독들과 얘기를 나눠요.
한준희 조금 일찍 시작한 제 연배의 감독들, 그리고 저도 마찬가지 상황이에요. 극장, OTT, 방송 채널 등 생태계가 시시각각 바뀌어요. 큰 범주에서 보자면 유튜브까지 모든 창작자가 얼마나 치열한지…. 하, 우리가 적응해가고 있나 싶죠.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넷플릭스를 비롯해 없던 OTT 플랫폼들이 등장하고 어느 순간 유튜브, 그리고 숏폼, 릴스까지…. 저는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사실 다 재밌어요. 어떤 영상을 보면 영화적인 게 뭐지, 우리가 하는 것만 영화적인 것인가, 이런 결과물들은 영화적인 게 아닌가 싶어요. 계속 더 공부해야 한다고 느껴요.
크리에이티브 아시아(Creative Asia)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동안 넷플릭스 코리아가 국내외 신진 창작자를 위해 여는 행사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상위원회네트워크(AFCNet), 미국영화협회(MPA)와 공동 기획에 참여하고 영상문화 업계의 현직자들이 연사로 나서 자신들의 노하우와 경험을 공유한다. 올해 3회를 맞은 크리에이티브 아시아에 한준희 감독은 마스터클래스를 열어 창작을 꿈꾸는 이들과 소통했다. 이외에도 <가능한 사랑>의 김지용 촬영감독, <퍼펙트 데이즈>의 구니에다 레이코 공동 프로듀서, <범죄도시>를 연출한 강윤성 감독, <고백의 역사>의 남궁선 감독, 미쟝센단편영화제 수상작 <선희이모>를 연출한 위은경, 손광민 감독도 마이크를 잡았다.
- 너른 이야기까지 아울러주셨는데요 언급한 김다민 감독의 각색고가 어땠을지 궁금한데요. 한준희 감독은 “<꿀알바> 연출자를 신인으로서 가장 큰 에너지를 낼 수 있는 감독을 모시고 싶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김다민 감독의 전작을 보고 어떤 특장점을 발견했나요.
한준희 김기재 넷플릭스 코리아 크리에이티브 이그제이젝티브가 굉장히 똑똑하고 유능하고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있다고 얘기했어요. <살인자ㅇ난감>을 쓴 분이라 이름만 듣고 전 남자 분일 줄 알았어요. 실제로 만났는데 저보다 훨씬 젊은 여성 작가님이라 ‘아, 내가 이렇게 또 편견을 갖고 지내는구나’ 깨달았죠. 실제로 대화를 나눠보니 김다민 감독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막걸리> 속 동춘이(박나은)가 크면 이 모습이지 않을까 싶을 만큼 상상의 범주가 넓고, 제가 생각할 수 없는 방식을 늘 생각해내는 분이었어요. <막걸리>를 보고 난 다음엔 시스템의 범주에서 조금 날카롭게 삐져나온 작품이라 훨씬 더 많은 예산이 드는, 시스템 내부로 그 결을 가져오면 충돌과 함께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졌어요. 그런 찰나에 <꿀알바>대본을 받았고, 김명진 쇼트케이크 대표와 누가 이걸 제일 잘 연출할까 고민하다 김다민 감독을 떠올려 대본을 드렸죠.김다민 그때 <막걸리> 개봉을 막 준비 중일 때였어요. 그리고 3년 전에 이곳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준희 감독님이 <막걸리>를 보셨어요. 상영 전까지만 해도 ‘이 작품을 보면 감독을 안 맡기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고민을 담아 “연출 제안에 관해 마음대로 하셔도 좋고, <막걸리>를 보시고 편하게 생각하세요”라고 문자를 보냈어요. (웃음)
한준희 그런 이상한 문자를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웃음) 그때만 해도 김다민 감독은 분리를 계속 말했어요.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결의 작품들이 있고, 상업적인 작품이 있다고. 전 ‘같이 가져갈 수 있는 거 아닌가, 같이 가져가야지’라는 입장이었어요.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과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 사이의 균형은 5:5일 수도 있고, 6:4일 수도 있고, 8:2일 수도 있어요. 그 비율이 때론 자본과 비례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꿀알바>는 그 두 가지 측면을 같이 가져갈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어 제안을 했고, 김다민 감독이 각색고를 기가 막히게 써줬어요. 넷플릭스 코리아는 좋은 얘기이고 재밌지만 조금 위험하다고 했죠. 왜냐하면 이야기 자체가 일상적인 얘기는 아니니까요. 근데 김다민 감독이 또 그걸 한큐에 정리를 해줬어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2024)
김다민 감독이 연출한 첫 장편영화로,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프리미어로 공개돼 오로라미디어상을 받고, 그해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돼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이 작품에서 김다민 감독은 발효된 막걸리에서 나오는 공기 방울이 엉뚱한 초등학교 4학년 동춘에게 메시지를 보낸다는 독특한 상상력을 펼쳤다.
- 김다민 감독은 <꿀알바>를 위해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김다민 극 중 소재가 된 알바 중 안 해본 일은 다 해보려고 했어요. 그래야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물류센터에서 정기적으로 계속 일했다면 힘들었겠지만 집 근처 물류센터는 지원해두면 그때그때 인력이 필요할 때 연락을 주는 곳이라 스케줄이 맞을 때만 갈 수 있었어요. 인기가 높아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서너번 가서 직접 일했어요.
한준희 작품을 하면서 대본을 쓰고 그런 설정이 있다고 해서 바로 해보겠다고 하는 건 굉장히 과감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려운 일이고요.
김다민 글을 쓸 때 항상 답답한데 고민되고 글이 안 풀릴 때 앉아서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 노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일하러 가면 노는 게 아니라 열심히 준비하는구나 생각되잖아요.
한준희 요즘 AI에 뭐든 물어볼 수 있잖아요. 물류센터에 가면 어떻게 되니 물어본 다음 답변을 보고 글을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가서 며칠 동안 일해보면서 뭐라도 건져보려는 참 연출자의 자세였습니다.
- 이외에 <꿀알바>의 한끗을 위해 크리에이터 한준희, 연출자 김다민 감독이 깊이 논의한 장면이 있을까요.
김다민 에피소드마다 되게 비전형적이라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어요.
한준희 예를 들면 우유 배달?
김다민 그렇죠. 1부에 크리처가 등장하고, 3부 우유 배달도 크리처스러운 연출을 펼치려다 공간을 변주하기로 한준희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한준희 3부에 우유를 배달해야 하는 건물 전체가 회전해요. 그 세트를 지어야 하는데 힘들었죠. 감독님이 하고자 하는 그림은 어떠한 솔루션이 있어야 한다면, 스태프 입장에서 준비할 게 많고 어려움이 컸는데 전 그 발상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감독님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 상상을 구현하는 데 있어 제 역할은 PD들에게 “김다민 감독이 하고자 하는 건 이런 것 같아. 그러니까 한번 준비를 해보자”라고 얘길 나누는 것이었어요.김다민 한정된 시간 안에서 세트를 만들어서 바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의 작동을 해봐야 하니까요. 많은 설득이 필요할 때 한준희 감독님이 확신을 심어주었어요.
- 전작도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좀비물, 로맨스와 같은 선명한 장르적인 즐거움을 주던 넷플릭스 초기 작품과 달리 <D.P.>는 군대 내 인권문제를 다뤄서 사회적인 논의를 촉발했는데요. <소년심판> <참교육> 등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낸 넷플릭스 시리즈의 신호탄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김다민 감독은 <D.P.>를 보고 같은 창작자로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김다민 그땐 한준희 감독님과 아는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순수 관객으로 작품을 봤고 솔직히 충격이었죠. 이야기의 밀도가 너무너무 강한데, 버디무비 장르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다루고, 이 변주 안에서 마지막에 세게 때려버리니까요. 이제는 한국의 미래가 넷플릭스 그리고 이 감독님에게 있는 건가 생각했어요. (웃음) 그래서 실제로 뵀을 때도 그거 어떻게 하셨어요, 저거는 어떻게 하셨어요, 많이 여쭤봤어요.
한준희 <D.P.>는 넷플릭스의 초기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접근 자체는 <꿀알바>와 비슷했어요. 제가 가진 화두는 군대의 어두운 면이었고, 시청자가 보기에 불편한 지점이 분명히 있었어요. 그 화두를 전달하려면 보시는 분들이 보고 싶어 할 요소를 함께 보여줘야, 한 숟가락에 다 떠드실 수 있지 않을까 판단했죠. 장르적으로 익숙한 버디물 그리고 코미디, 액션, 멜로 등을 가져온 이유예요. 하고 싶은 화두를 녹이기 위해서 많은 장르적 외피를 씌웠어요. 사회적인 이슈나 화두를 거창하게 던지려고 했다기보다 다 같이 재밌게 보고 나서 ‘우리 더 해볼 만한 이야기가 있지 않아?’란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어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휘발되는 작품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덜 휘발되는 작품을 늘 하고 싶어요.
- 김다민 감독이 극본을 쓴 <살인자ㅇ난감>을 보면 악인을 향한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한준희 감독님이 실제로 좋아하는 <살인자ㅇ난감>의 서사 혹은 이번에 김다민 감독과 같이한 <꿀알바>에서 특별히 애정하는 순간이 있다면 짚어주세요.
한준희 저는 <살인자ㅇ난감>의 원작을 너무 좋아했어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이미지로 구현할 것인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했거든요. 원작은 귀엽게 디자인한 인물들이 흉포한 짓을 저지르는 모습을 컷 바이 컷으로 보여주는 게 특징이에요. 작가의 특성을 어떻게 시리즈도 각색해서 보여줄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정말 재밌게 봤고 원작의 인물들이 이렇게 생생하게 보일 수 있구나 싶었죠. 사실 저는 <막걸리>의 엔딩을 좋아해요. 보는 사람이 서늘해지는 순간을 김다민 감독이 잘 포착해요. 이번 <꿀알바>에도 김다민 감독만의 날것을 볼 수 있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리고 엔딩도 굉장히 좋아요.
김다민 저도 <살인자ㅇ난감> 원작의 엄청난 팬이었어요. 19세관람불가였지만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를 다닐 때 참지 못하고 실시간으로 봤어요. 원작 팬들의 의견은 늘 ‘왜 영상화가 안되는 거야? 너무 재밌는데? 언제 누가 만들어주지?’였어요. 저 역시 그런 팬 가운데 한명으로서 작가를 제안받았을 때 원작의 많은 특장점들을 영상으로 풀어갈 사람만 있으면 되겠다고 생각하며 어렵지 않은 마음으로 집필에 들어갔어요. 동시에 제가 주인공 이탕(최우식)처럼 청년세대기 때문에 디테일을 많이 살리고자 했어요.
- 처음 넷플릭스로 작품을 공개했을 때를 기억하나요. 김다민 감독은 3년 전에 <막걸리>로 오로라미디어상을 받은 부산에서 <꿀알바>를 상영해서 기분이 남달랐겠습니다.
김다민 장편영화를 들고 부산국제영화제에 너무나 가고 싶었기에 데뷔작 <막걸리>상영 전에 악몽을 많이 꿨어요. 초청됐다는 연락을 받고 계속요. 그것도 수치심을 유발하는 여러 종류의 창피한 악몽들이었어요. <꿀알바>의 경우, 만드는 동안 고생을 많이 했으나 배우들, 한준희 크리에이터, PD 등 다 함께 부산에 오게 되어 기쁨이 더 컸어요. 여전히 걱정은 많지만요. (웃음)
한준희 제가 옆에서 건강한 긴장감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어요. 당연히 걱정되죠. 저도 걱정돼요. 저도 <푸른길> 상영할 때 상상의 나래를 펼쳤어요.
김다민 저는 항상 최악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웃음)
한준희 계속 그럴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래도 첫 상영하기 전보다는 김다민 감독이 아주 살짝 느긋해진 것 같아 다행이에요.
- 한준희 감독은 <D.P.>를 처음 공개했을 때 어땠나요.
한준희 정말 많이 긴장했어요. 왜냐하면 그전엔 시리즈를 연출한 적이 없었거든요. 저를 포함해 영화 스태프들이 300분 분량의 6부작을 몸에 익지 않아 영화를 찍던 속도로 촬영했어요. 게다가 공개 즈음에 ‘군대 이야기라 아무도 안 보면 어떡하지’란 걱정에 휩싸였어요. 모 아니면 도 같았죠. 작품을 공개하던 날, 코로나19 감염 의심으로 자가 격리를 했어요. 식당에서 국밥을 먹었는데 마침 확진자가 나와서 하루이틀간 자가 격리를 했거든요. 공개되면 배우들과 같이 보려고 했는데 방문을 잠근 채 배달음식을 시켜서 혼자 볼 수밖에 없었어요. 혼자 보면서도 스스로 ‘재밌는 것 같은데?’ 생각하며 밤 10시까지 정주행했던 기억이 나네요.
- 기억에 남는 피드백도 소개해주세요.
한준희 지인이 커뮤니티에서 봤다고 알려줬는데, “<D.P.>를 넷플릭스 코리아의 정체성 같은 시리즈”란 글을 읽고 정말 감동했어요. 넷플릭스에 <D.P.>보다 훨씬 스코어가 많이 나온 작품이 많이 있지만 기록으로만 재단하지 않고 <D.P.>를 좋아해준 분이었던 것 같아요. 연출자인 저와 제작사뿐 아니라 넷플릭스 입장에서도 이 작품을 왜 했고 어떤 소기의 성과를 가져갔는지 그렇게도 표현될 수 있다는 점이 기분 좋았습니다.
김다민 제가 뿌듯했던 건 원작의 팬분들이 좋아했다는 거예요. 이 작품의 결에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좋은 의견들이 기억에 남아요. 또 원작을 전혀 모르고 이 작품으로만 봐주시는 분의 ‘이런 이야기가 있다니’란 피드백도 너무너무 뿌듯하죠.
- 쉽지 않은 소재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두 창작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싶어요. 창작자로서 소신이 있나요.
한준희 전 재미없으면 못 견디는 것 같아요. 물론 하늘 아래에 새로운 게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다들 무언가 닮아 있는 이야기들일 수도 있지만, 어떤 한 구석이라도 다르길 바라요. 예를 들면 <D.P.>에선 군대 얘기를 많이 안 하는 요즘엔 그것이 오히려 새롭지 않을까, <약한영웅 Class 2>도 처음엔 남자아이들이 싸우는 얘기라고 느끼겠지만 다를 수 있고, <푸른길>은 투수와 포수가 직구로만 승부하듯 공을 주고받으며 마지막까지 딴 길로 안 새는 이야기라 새로울 수 있다고 봤어요. 작업에 있어서 새로운 기분이 들고, 리스크가 있다면 그걸 해소하면서 작품을 만들어나가야지 저는 재밌다고 느껴요. 리스크가 전혀 없는 얘기는 재미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리스크를 해소하면서 잘해나가는 게 창작자의 역할이 아닐까 해요.
김다민 정말 심사숙고해서 20년에 한 작품을 내놓을 수도 있지만, 직접 부딪히면서 “이런 얘기는 관객들이 어떻게 보세요?”, “전 이런 걸 연출하고 싶었는데 어떠세요?”를 계속 쌓아가고 싶어요. 그러다보니 시도하지 않은 장르에 도전하고 싶고요. 물론 제가 하고 싶은 얘기와 또 사람들이 같이 좋아해줄 수 있는 얘기는 앞으로도 계속 찾아가긴 해야 할 텐데요. 어느 하나가 0인 작품은 없을 것 같아요.
- 지난 10년간 영상 그리고 영화 드라마 업계가 급변했습니다. 두분이 생각하는 시리즈와 영화의 미래도 살짝 여쭤볼 수 있을까요.
김다민 한치 앞을 모르겠는걸요. (웃음) 감독님이 먼저 얘기해주세요.
한준희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란 노래 가사(김국환의 1991년곡 <타타타>.-편집자)와 비슷한 상황이에요. 다 알면 재미가 없겠죠. 제가 데뷔한 지 10년이 됐지만 모르겠어요. 예전에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갈 때 영화가 망한다, 영화의 방향이 많이 바뀔 거란 말이 많았으나 그러지 않았어요. 넷플릭스 같은 OTT가 세상에 나오면서 영화의 정체성은 달라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시대가 바뀌면서 매체가 많고 적어질 뿐, 보는 분에게 재미와 감동,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작품을 만드는 기본적인 방식은 변함이 없어요. 그래서 변화에 계속 잘 적응하면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김다민 요즘은 프로젝트에 어느 정도 AI를 쓰는 등 여러 논의가 나와요. 일주일 단위로 상황이 변하는 가운데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미래까지 예상할 수 없겠으나 기술은 항상 발전했어요. 영화와 드라마의 역할이 뭐였는지 계속 고민하다 보면 결국 사람들은 이야기를 보고 싶어서 극장에 온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다가와요. 이야기는 구전되다가 연극도 됐다가 영상으로도 변했고, 이야기는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갔어요.
- 넷플릭스 코리아가 10주년을 맞은 기념으로 오늘 대담을 나누었습니다. 두 창작자에게 넷플릭스와의 작업은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도 들려주세요.
한준희 넷플릭스 코리아가 10년, 저도 감독 데뷔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어느 분기점부터 따로 또 같이 작업하는 파트너가 되어 제가 하고자 했던 결과물들을 만들 수 있었어요. 플랫폼과 감독의 사이가 늘 좋을수는 없지만 항상 서로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좋은 작품을 같이 만들기 위해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됐어요.
김다민 창작자로서 실질적으로 체감한 건 넷플릭스가 엄청 큰 확성기란 점이에요.
한준희 맞아요. 멋진 말이다!
김다민 지금 <꿀알바> 티저 예고편이 올라왔는데, 또 본편이 공개되면 실시간으로 전세계 사람들한테 확성기로 이 작품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의미인 것 같아요. 넷플릭스와 작업하는 창작자는 제작 초반에 넷플릭스 코리아로 가서 설명을 들어요. 그때 “더빙 작업이 필요하니 뒤의 시간 좀 벌어주세요”라는 얘기도 들었어요. 근데 실제로 넷플릭스 작업을 경험해보니 그 말이 백번 이해가 가요. 그런 작업을 거쳐 작품이 전세계 사람들한테 보여질 수 있으니까요. 그 자체가 의미가 커요.
- 마지막으로 두분이 공개할 작품에 관해 소개해주세요.
김다민 넷플릭스 시리즈 <꿀알바>가 10월30일 오후 5시에 공개됩니다. <꿀알바>는 청년 혁준이 빚을 갚기 위해 시급 50배 이상의 알바를 알선하는 수상한 거미인력 사무소에서 일을 받아 노동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지옥 같은 알바 현장들이 펼쳐질지 같이 기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한준희 11월20일 공개되는 <푸른길>은 두 형사가 전력을 다해 범인을 끝까지 쫓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재미있게 봐주십시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