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OBITUARY] 더없이 따뜻했던 배우 최불암을 기리며, 배우 최불암(1939~2026)

영원한 수사반장이자 국민 아버지,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 1939~2026)이 지난 10월29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살. 지난해 3월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재활에 힘써왔으나 최근 건강이 악화돼 입원 치료 중 눈을 감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한국형 수사물의 시초 격인 <수사반장>과 국내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로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그는 한국인의 희로애락을 품은 얼굴로 성실하게 배우 생활에 임했다. 67년간 안방의 아랫목 같은 존재로 선물 같은 작품을 남기고 떠난 배우 최불암의 시간과 영화 대표작을 돌아보았다.

배우 최불암이 2026년 10월29일 영면했다. <전원일기>에서 22년간 부부로 호흡을 맞춘 배우 김혜자는 슬픔을 삼키며 인사를 건넸다.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너무 그리운 사람이니까. 저 사람에 대한 추억 다 기억할 거예요.” 감사하게도, 그는 선물 같은 작품들을 많이 남기고 떠났다. 생전의 성실함은 남겨질 사람들을 위한 또 다른 배려였을까.

정의로운 수사반장이자 서민적인 아버지의 대명사가 되기 이전, 그는 연극 연출의 꿈을 먼저 품었다. 그의 성장 배경에는 예술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버지 최철은 해방 후 언론사와 영화사를 설립, 두편의 영화 <수우>(1948) 와 <여명>(1948)을 제작했고, 어머니 이명숙은 명동에서 김수영, 박인환 등 문인들을 단골로 둔 주점 ‘은성’을 운영했다. 연극 연출가가 되기 위해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으나 그의 평생의 업은 연출이 아닌 연기가 되었다. 1959년 연극 <햄릿>으로 처음 무대에 올랐고, 1967년 KBS 특채 탤런트로 선발되기 전까지 국립극단에서 연극 활동을 이어갔다.

최불암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유독 노역을 자주 맡았다. <수사반장>의 박 반장과 <전원일기>의 양촌리 김 회장만 하더라도 실제 나이보다 10~20살은 많은 인물들이었다. 중후한 목소리와 예리한 관찰력으로 그는 수많은 노역을 거뜬히 소화했다. 드라마 데뷔작 <수양대군>(1967)에서 노년의 김종서 장군을 연기할 때 그는 20대였지만, 노장군의 기품과 기개는 20대의 배우가 표현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세월의 무상함과 번뇌를 품은 노승을 연기했던 <파계>(1974), 속세를 떠난 가야금 명인으로 예인의 아우라를 보여준 <문>(1977)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 최불 암은 배역을 가리지 않았다. 최불암의 노역 연기를 말할 때 드라마 <제1공화국>(1981)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1989)에서 그는 80대의 이승만 전 대통 령을 연기했는데, 실제 인물의 말투와 발성, 목소리의 떨림과 갈라짐, 특유의 표정과 자세까지 모사에 가깝게 표현해내 역대 최고의 이승만 연기라는 평을 들었다.

인물이 살아온 시간을 체화한 듯한 최불암의 연기는 과장이나 인위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붙든 것은 외적 조건을 넘어서는 캐릭터의 정수였다. 그의 연기는 리얼했고, 그 리얼함이 서민적 인물과 만났을 때 연기의 맛은 깊어졌다. 화면 안에서 그의 손짓 하나, 고갯짓 하나에도 인물의 생활이 배어 있다. 흐르는 냇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연기다. 그 중심에 드라마 <수사반장>과 <전원일기>가 있다. 18년간 방송된 <수사반장>(1971∼89)과 22년간 방영된 국내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1980∼2002). 두 작품은 최불암을 한시대를 대표하는 얼굴로 만들었다.

한국형 수사물의 시초 격인 <수사반장>은 시대의 아픔과 화두를 녹여낸 에피소드로 정의 사회 구현에 대한 열망을 담았고,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실천하는 박영한 반장은 <수사반장>의 메시지 그 자체였다. 박 반장은 당시 한국 대중문화에서 보기 드문 형사 캐릭터였다. 서양의 형사들이 바바리코트에 파이프 담배를 물고 멋있게 사건을 해결했다면, 최불암의 박 반장은 서민적이 었다. 셔츠의 첫 번째 단추는 늘 풀려 있고, 양복 재킷 윗 주머니엔 언제나 담뱃갑이 들어 있어 사건이 미궁에 빠졌을 때나 해결됐을 때 수시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땀을 닦는 흰 손수건도 담배만큼이나 상징적인 소품이었다. 그 조합은 모던하면서도 한국적이었다. 격식을 차리지 않으면서도 권위 있고, 정의롭되 차갑지 않은 박 반장을 사람들은 좋아했다.

<전원일기>는 최불암의 또 다른 얼굴을 만들어냈다. <전원일기>의 김 회장은 농촌 공동체의 어른으로서 마을의 중심을 지키는 인물이었다. 자식 때문에 속을 끓이고 아내에겐 퉁명스럽기도 한 김 회장은 당대의 평범한 아버지상을 대변했다. 가족과 공동체, 세대간의 갈등과 화해를 담아낸 드라마에서 김 회장은 박 반장과 함께 실재하는 인물처럼 다가왔다.

최불암의 대중적 인기는 1990년대 초반 그를 주인공으로 한 ‘최불암 시리즈’가 유행한 것으로도 설명 가능하다. 당시 초등학생들은 너도나도 ‘최불암 시리즈’를 외우고 ‘파하~’ 하는 웃음을 따라했다. 친근한 국민 배우의 행보는 1997년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마도로스 박’에서 또 한번 흥미로워졌고, 2011 년부터 14년간 진행한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에선 자연인 최불암으로 카메라 앞에 서서 전국 각지의 식문화를 전해 주는 안내자를 자처했다. 편안한 모습으로 시골길을 걷고 밥상 앞에 앉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던 그의 눈빛과 목소리는 푸근하고 다정했다.

그는 시청자와의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긴 시간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그가 이제 멀리 떠났다. KBS 특집 다큐 <밥상 지기, 최불암 당신을 기억합니다>에서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전했다. “웃어도 하루 슬퍼도 하루. 주어진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그저 묵묵히 그 시간을 살아갈 뿐이지요. 돌아보니 저에게도 모든 순간이 선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냇물처럼 자연스럽고 아랫목처럼 뜨뜻했던 배우. 그는 그렇게 우리 곁에 머물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