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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소비츠 하면, 먼저 악동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매번 엉뚱한 기행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악동. 첫 장편 <증오>로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을 때 그는 천재로 추어올려졌다. 방리유 청춘들의 삶에, 사실적으로 참신하게 접근해간 <증오>에는, 전복의 에너지가 있었다. 그러나 카소비츠는 ‘천재’가 되길 거부했고, 자신에 대한 기대를 조롱하듯, <암살자(들)>이란 애매한 영화로 칸에 돌아왔다. 킬러들의 일상 속에서 세대간의 단절과 미디어의 폭력성을 이야기하려 했다지만, 자극적인 화법으로도 지루함과 거부감을 불러일으켰고, 이런 작품에 맹공을 퍼붓는 기자들에 맞서, 그는 영화제 기자회견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크림슨 리버>. 우생학과 나치즘이라는 심각한 이야기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타일로 포장한 이 영화는, 카소비츠의 지향점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어떤 것도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 것
“관객에게 봉사하는 영화다”...<크림슨 리버>선보인 마티유 카소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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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최고의 감독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김홍준 | 거장들의 세기가 저문 마당에, 현존 최고의 감독을 꼽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존 포드, 오즈 야스지로, 루이스 브뉘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로베르 브레송 중 한명이라도 살아 있다면, ‘현존’ 최고의 감독으로 주저없이 꼽았겠지만. 차라리 도박하는 심정으로, 데뷔를 앞둔 아시아(동쪽 끝 일본에서 서쪽 끝 이란까지)의 모든 감독 중 미지의 그 누군가가 현존 최고의 감독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정성일 | 허우샤오시엔. 자신의 인물들에 대한 예의, 이야기를 향한 시선, 역사에 관한 근심, 그 안에서 종종 영화의 이미지조차 넘어서는 작가의 자아,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창조의 경이. 내게서 타르코프스키 이후 ‘가장 심금을 울리는’ 예술가.
-무인도에 갇혀 10편의 영화밖에 볼 수 없다면.
=정성일 | 무인도에 가지고 가고 싶기 때문에 이 명단은 ‘내 삶의 걸작’ 리스트가 아닙니다. 가지고 가서 위로받고 싶은 명단이라는
김홍준·정성일의 종횡4담 [6] - 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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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광, 영화사와 결별하다
오즈와 존 포드와 고다르와 대결하지 않는 영화광, 영화사에 대한 콤플렉스를 깨끗이 지운 영화광, 대신 카메라를 들고 학교와 거리를 누비는 영화광의 시대가 왔다. 백과사전식 영화 교양에 몰두한 전 시대의 영화광은 이제 몰락의 운명을 걸을 것인가. 새로운 영화광들이 만들 영화세상은 어떤 것인가.
김 | 우리 세대엔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절망과 환상이 있었다. 지금은 환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취향과 기호만이 있을 뿐이다. 그땐 취향과 기호를 떠난 공감대가 있었다. 다르면 적대시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개인 취향이 다르고 좋아하는 영화가 달라도, 별 문제는 아니었다. 계급적 차이도 없었고. 토론이 벌어져도 싸움은 없었다. 끼리끼리 모여야 한다는 생각도 안 했다. 고다르든, 안토니오니든, 파스빈더든, 그들을 좋아하는 순간, 우린 한울타리 안에 있었다.
정 | 트뤼포는 ‘내가 내일 종신형을 받는다 할지라도 누군가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공격한다면
김홍준·정성일의 종횡4담 [5] - 영화광·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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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영화, 디지털 종교에 투항하다
디지털 신화가 목청 높이 외쳐지고 있다. 무엇보다 할리우드가 디지털의 가능성을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 몇몇 진지한 시네아스트들도 디지털에서 영화의 미래를 보고 있다. 인터넷 비지니스라면 남부럽지 않은 한국에선 디지털이 거의 종교적 신뢰를 얻고 있다. 과연 디지털은 셀룰로이드를 대체할 것인가. 대체한다면, 그 이후의 영화도 우리가 영화라고 알고 있는 것과 동질의 것일 수 있을까.
김 | 산업적 측면에서 디지털의 효용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매체 민주화다. 극장용 영화 못지않은 화질의 영화를 디지털로 찍는다는 건 기술적으로 산업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감독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볼 때 나는 배급에서 산업적 통제가 여전하리라고 본다. 유통방식의 외양만 바뀌는 것일 뿐이며 디지털이 만인이 영화를 찍고 만인이 즐기는 시대를 가져오리라는 기대는 섣부르다. 세번의 새 테크놀로지가 등장한 경험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8mm가 등장했을 때 사
김홍준·정성일의 종횡4담 [4] - 21세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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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영화, 세계영화사 새로 쓴다
80년대 후반부터 서구 영화인들을 찬탄케 한 아시아영화들은 세기 전환기에 이르러 더욱 빛나고 있다. 산업은 할리우드 손을 떠나지 않더라도 미학적으로는 이미 아시아영화의 시대가 온 게 아닌가. 21세기의 영화사의 본론은 아시아영화가 쓰게 되는 건 아닌가. 그곳에 과연 한국영화도 발견될 것인가.
김 | <와호장룡>을 최근에 봤는데, 캐릭터 속에서 한국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영웅담이라 느껴지지 않고 한국영화의 알레고리, 한국영화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혀질까, 궁금했다. 직관이니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아시아영화라는 느낌이 전혀 안 들었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었다는 걸 몰랐어도, 홍콩의 무협영화 전통에 학술적으로(정서적으로가 아니라) 정통한 서구감독이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았을 거다.
정 | 난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세번 봤다. 그런데 두 장면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지붕 위를 뛰어 추적하는 장면과 대나무(대나무
김홍준·정성일의 종횡4담 [3] - 아시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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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업론은 비만, 영화문화는 발육부진
한국영화에 관한 담론을 지배해온 문화산업론은 인터넷 비지니스의 활황과 더불어, 더욱 기세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영화문화는 어떤 발전을 이루었는가. 미진한 미학적 성취, 진정한 시네마테크와 필름아카이브의 부재, 대학 영화관련 학과의 과다와 영화학의 부진이 빚는 극심한 불균형 등 한국 영화문화의 왜소화를 초래한 주범은 혹시 문화산업론이 아닌가.
김 | 한국영화계를 과연 문화산업이 지배하고 있는지부터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국영화가 자본주의적 사고를 하기 시작한 것도 90년대라고 생각한다. 그 이전 제작시스템은 식민지 반봉건사회 비슷한 것 아니었나 싶다. 때론 국가독점자본주의 성격도 있었지만. 반면 지금의 한국영화 현실은 문화적인 양상에서마저도, 후기 자본주의적 모습이 보인다. 자본주의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이 꼭 그 산업이 완숙한 단계에 진입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금 한국영화의 문제를 문화산업론으로 파악하는 것은
김홍준·정성일의 종횡4담 [2] - 문화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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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영화광의 근심, 21세기 영화의 그 우울한 스펙터클
선도 교사들의 눈을 피해, 모자를 눌러쓰고 극장 한켠에서 숨죽인 채 은막에 투사되는 빛의 향연에 넋을 잃었던 두 고등학생이 있었다. 두 사람은 어느 극장에서 스치듯 비켜가기도 했고, 독일문화원에서 얼굴을 마주보기도 했다. 그의 한 사람은 구회영이란 필명의 영화평론가 그리고 본명의 감독이 됐고, 영상원 교수,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 영화진흥위원이란 감투를 한꺼번에 쓰게 됐다. 다른 한 사람은 <키노> 편집장과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쳐 며칠 전 백수, 그러니까 순수 평론가가 됐다.
김홍준과 정성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한국에 영화의 시대가 막 도래했을 때, 그리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그들이 관객의 곁에서 영화의 아찔한 매혹을, 영화의 아득한 깊이를, 이전엔 들어보지 못한 섬세하고 세련된 언어로 들려준, 관객의 친구, 영화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많은 감투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그들은 영
김홍준·정성일의 종횡4담 [1]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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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쫓아다니는 파파라치들은 앞으로 안전거리 확보에 신경 좀 써야 할 것 같다. 화나면 뭐가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뉴욕포스트>와 <뉴욕 데일리뉴스>에 따르면, 이탈리아 빌라 보르게즈에서 스코시즈의 <뉴욕의 갱들>을 찍고 있던 디카프리오는 ‘성가신’ 파파라치를 보고는 “손에 잡히는” 무엇인가를 집어던졌다고 한다. 실은, 카메라가 몰려오자 컵에다 거름을 담아 내던진 것. 날아오는 물건에 얻어맞을 만큼 사진사가 잘못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너무 혼잡스럽게 사진을 찍어대서 앰뷸런스가 지나는 것을 방해할 지경이었다”고 레오의 ‘절친한 친구’는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옆에 있던 카메론 디아즈는 그저 소리만 질렀다고 한다. 단역 배우 한명은 입원을 하기도 하는 등 이날의 소동은 대단했던 모양. 스코시즈는 당일 촬영을 엑스트라 배우들에 대한 “배려”로 중지했다고 한다.
디카프리오, `성가신` 파파라치에게 거름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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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가 이제 ‘반칙왕’보다는 ‘바른생활 사나이’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송강호와 이영애가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양승규)로부터 의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명예수사관으로 위촉된 것. 지난 1월부터 ‘명예조사관제도’를 추진해온 이 위원회의 관계자는 “이영애와 송강호가 출연한 <공동경비구역 JSA>가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데다 이영애의 경우 의문의 총격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수사관 역할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이미지에 맞고 위원회 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에도 부합한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지난 8일 ‘명예수사관’ 역을 수락한 이영애와 송강호의 정식위촉식은 이달 말 또는 내달 초 열릴 예정이다. 두 사람은 앞으로 의문사진상규명위의 명예조사관으로 국민들에게 의문사 관련 제보를 요청하는 홍보대사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송강호는 “평소에도 사회운동이나 환경운동 등에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는 수락 소감을 남기고 <공동경비구역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명예수사관으로 위촉된 이영애,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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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정치를 위해 영화를 버릴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BBC"가 보도했다. 그가 의지를 갖고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정치’라 함은 바로 캘리포니아 주지사 출마. “그 일에 관해 난 수차례 생각해왔다. 나는 정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라며 그는 영화 속에서 발휘하던 파워를 현실세계에 행사할 꿈에 부풀어 있다. 영화경력에 기꺼이 종지부를 찍을 의사가 있음을 밝히며 “캘리포니아의 리더십 부족”을 지적하는 등 미 언론과의 접촉에서 정치가로의 변신을 널리 알리고 다니는 것이 그의 요즘 행보. “나는 최근 10년간 돈을 벌고 영화를 찍는 일보다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일을 할 때 내게 더 큰 즐거움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할 땐 영판 정치인이다. 배우 출신 정치가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1980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로널드 레이건. 주지사에 당선될 경우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로널드 레이건의 뒤를 이어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정치경력을 쌓기 시작하는 배우 출신 정치가가 되는 셈
정치를 위해 영화를 버릴것을 고려하는 아놀드 슈워제네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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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계의 황금기를 일구었던 원로감독 홍성기씨가 2월3일 타계했다. 홍성기 감독은 86년 고혈압으로 쓰러진 뒤 오랜 와병 끝에, 2월3일 오전 11시20분경 경기도 수원시 자택에서 78년의 생을 마쳤다. 우연의 일치지만 마침 EBS <한국영화걸작선>에서 그의 <춘향전> 방영을 30여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고, 갑작스런 별세로 이 방송은 뜻밖에 고인에 대한 추모의 자리가 됐다. 홍성기 감독은 80년대 이후 연출에서 손을 떼고 충무로와 별 왕래가 없었던 데다가 오랜 투병생활로 칩거해온 터. 임권택 감독은 “멜로드라마를 많이 찍으면서 신상옥 감독과 함께 당대 한국영화를 열성적으로 이끌던 분이 오랫동안 작품활동 안 하다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조의를 표했다. 삼성서울병원에 5일간 마련된 빈소에는 고인과 오래 함께 작업했던 심우섭 감독, 방기환 조명감독 등 평소의 지인들을 중심으로 김수용, 임권택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이 다녀갔고, 장례는 지난 2월7
한국멜로의 황금시대, 별이지다, <춘향전>의 홍성기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