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은하간 범죄 인도 협정’이 체결된 것은 매우 최근의 일이다. 이로 인해 나와 스컬리 요원은 FBI가 수십년간 좇던 문제의 범인을 체포할 수 있게 되었다. 범인의 심문은 극비리에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름이 공표되었을 때 지구인들이 받게 될 엄청난 충격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문 막바지에 피해 당사자로부터 탄원서가 날아왔고, 범인을 은하계 바깥으로 추방하는 것으로 수사는 종결되었다. 이 심문 기록은 ‘협정’에 의해 24시간 내에 자동소각될 것이다.
멀더: 당신은 지금까지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 중 가장 선량한 종족으로 알려져왔다.
E.T: 나는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다. 선하게 보든지 그러지 않든지 하는 것은 당신들의 판단일 뿐이다.
멀더: 스스로 기만적이라 여기지 않았나? 그렇게 착한 눈빛으로, 그 어린 소녀의 몸 속에 끔찍스런 독소를 주입하다니.
E.T: 운이 없었을 뿐이다. 아니 바보처럼 나의 꾐에 넘어갔던 그녀의
[이명석의 씨네콜라주] 포이즌 배리모어 사건
-
일전에 모 대학 교양국어 교과서에 ‘디즈니 만화의 여성상 분석’과 ‘멜로 영화 비판’에 대한 글을 실어도 좋겠냐는 전화를 받았다. 내 글이 무슨 신경숙의 <풍금이 있는 자리>도 아니고, 굳이 교과서에 영화 글을 실을 때야, ‘아버지의 업보를 탈피하라’ 라든가 ‘끔찍이 잘해주는 남자를 찾는 것이 못되게 구는 남자를 피하는 것만큼이나 여성을 수동적이고 비주체적으로 만들어간다’하는 소리들이 뭔가 이야기거리가 되긴 되었나보다. 그래서 드는 생각. 의식적이든 무의적이든 영화 평론가라는 업을 가지고 카산드라의 머리카락을 뻗치고 살면서도 이 땅의 남성을 향해 얼굴을 돌린 적이 없구나. 남자들도 땅 좁고 사람 바글바글대는 대한민국에 태어나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일 텐데 왜 아직까지 관심이 없었을까? 그렇게 생각하고보니 요즘 한국영화의 기류 속에 남성 주인공들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한때 멜로 영화의 홍수 속에 ‘한석규, 박신양’으로 대표되는 ‘잘해주는 남자’가 여성관객의 영원한 오빠
최근 한국영화들에 나타난 남성상
-
캐롤린 버냄양.
아니 아네트 베닝씨.
<아메리칸 뷰티>에서 당신을 만나뵙고 난 뒤, 저는 자위란 무엇일까, 좋은 걸까, 나쁜 걸까,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단도직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아줌마에게 <아메리칸 뷰티>는 자위에 관한 영화였습니다. 레스터 버냄, 그러니까 케빈 스페이시는 그 영화에서 두번이나 딸딸이를 칩니다. 한번은 샤워하면서, 한번은 마누라인 당신 옆에서.
그런데 당신은 한번도 치지 않았습니다.
물어보고 싶습니다. 안치고 싶을까?
이문열의 대하소설 <변경>에 묘사된 자위의 두 장면이 생각납니다.
하나는 청춘남들의 ‘떼 딸딸이’였습니다. 공장다니는 10대들이 기숙사 방에 누워 호르몬을 분출하기 위한 내기를 합니다. 딸딸이 쳐서 누가 더 멀리 정액을 쏘나. 요이 땅. 열심히 칩니다.
하나는 주인공의 누나인, 형편없는 조연인 영희의, 아주 문학적인 ‘춤2입니다. 혼자, 남몰래, 오메 누가 볼라 부끄러워라 은밀히 추
[아줌마, 극장가다] 버냄양, 안 치고 싶어요? <아메리칸 뷰티>
-
"2차원적 캐릭터, 관심 없다"
-전작 <히트>를 두고 대히트를 예감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결국 그렇지 못했다.
=러닝타임(171분)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주말 하루 통상적으로 3회 상영할 수 있는 영화를 2회밖에 못 틀었으니. 미국 내에서 7500만달러∼8천만달러를 벌었고, 해외에선 그 두배 정도 벌어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비디오와 DVD로는 꽤 장사가 됐다고 했다. 아쉬움은 있지만, 그 정도도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부분의 감독들은 처음부터 거대한 스크린에 보여줄 요량으로 영화를 만든다. 비디오와 DVD의 활성화가 다행스런 점도 있지만, 대형 스크린에서 영화를 틀고 보여주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누구나의 이상이다. 관객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오리지널 명화보다 컬러 복사기의 수십번째 프린트를 더 좋아하는 이는 없지 않나.
-액션영화 감독으로 명성을 쌓아왔는데, 실화에 근거한 리얼한 사회드라마를 만들었다.
=한가지 선택만 가능한 건 아니다.
마이클 만 [2] - 인터뷰
-
-
칼날 위의 삶, 감독은 실수할 수 없다
마이클 만은 시시한 이야기를 재미있는 영화로 만드는 재능이 있다.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가 나왔던 <히트>는 강력한 스타 카리스마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사실 시시한 영화다. 수많은 영화에서 써먹었던 형사와 범죄자의 대결 구도에 전문가의 윤리의식 문제를 입힌 것일 뿐이지만, 또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는 허장성세에 가까운 것인지만, 이 영화는 굉장한 흡인력이 있었다. 담배회사의 압력으로 시사프로그램 <60분>의 중견기자와 제보자가 겪었던 시련이라는 실화를 소재로 한 <인사이더>도 미국인들에게는 그리 새롭고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대기업의 이익과 개인의 도덕이 대립하는 이야기 구도에 굉장한 힘을 불어넣는다. 시시한 이야기에 웅장한 배경을 입히고 성격파 배우의 뛰어난 연기를 끌어내는 만은 현대 미국영화 감독의 계보에서 가장 뛰어난 세부묘사와 시각 표현력을 지닌 감독으로 평가받
마이클 만 [1]
-
아시아 영화연대, 중심은 한국
무엇을 꿈꾸고 있나
지난해 <쉬리>로 흥행판도를 뒤흔든 강제규 감독은 올 2월 국내 최대 벤처투자사인 종합기술금융(KTB)과 전략적 제휴를 맺어 한국영화산업 지형재편의 기폭제가 되었다. KTB가 강제규필름에 57억5천만원을 투자하고 지분 20%를 갖는 조건. 절대 투자액이 파격적인 것은 아니지만 강제규필름과 KTB의 제휴가 폭발력을 갖는 것은 공모주를 모으고 코스닥에 등록한다는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주식 공모를 시작하면 예상주가를 최하로 잡아도 1500억원 많게는 3천억원까지 재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사실 KTB와의 제휴가 아니더라도 이제 강제규 감독은 돈이 없어 할 일을 못하는 상황은 일찌감치 뛰어넘었다. 큰폭의 재편기를 맞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강제규 감독은 “영화산업이 자본 중심에서 창작주체 중심으로 바뀌면서 건강한 생산구조와 풍토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대기업과 창업투자사 등
벤처시대 충무로 3인방 [5] - 강제규
-
국제 프로젝트 1, 2호 나가신다
무엇을 꿈꾸고 있나
우노필름 대표에서 싸이더스 부사장으로 직책이 바뀌었지만 차승재씨는 변함없이 “나는 영화제작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본인의 표현을 빌리면 차승재씨는 비유컨대 공장장이 된 것이다. 냉장고 하나 사는 일까지 직접 나서야 했던 우노 시절과 달리, 전문경영인이 관리를 전담하게 돼, 프로듀서 일에 전념할 수 있는 지금이 차라리 마음 편한 점이 있다고 한다. 충무로를 놀라게 한 로커스와 우노의 합병도 영화를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차승재씨의 변. 엔터테인먼트의 산업화가 한국이 제일 뒤져 있어 이 상태로는 외국 엔터테인먼트회사가 침투할 경우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 만일 외국계 매니지먼트회사에 사정해야 배우 캐스팅이 가능한 상황이 온다면 영화 만들기 자체가 힘들어진다는 얘기다. 싸이더스가 영상콘텐츠와 매니지먼트를 겸하는 것도 그런 이유. 요컨대 기업을 못하면 영화도 못하는 상황에서 내린 결론이라는 것이다.
벤처시대 충무로 3인방 [4] - 차승재
-
성장가능성 100%, 투자자는 내가 고른다
무엇을 꿈꾸고 있나
시네마서비스를 창립했을 때 강우석 감독의 지상목표는 “스크린쿼터 없어져도 한국영화를 걸 수 있는 극장배급망 확보”였다. 서울극장 곽정환 회장과 손잡고 <투캅스2> <편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주유소 습격사건> <텔미썸딩> 등 잇단 히트작을 내놓으면서 배급사로서 시네마서비스의 위치는 확고해졌는데 이는 올해 20여편의 영화를 배급하는 데서도 확인된다. 외화까지 포괄해서 직배사와 맞먹는 배급력을 갖춘 회사를 만든다는 강 감독의 계획은 어느 정도 실현된 셈. 그러나 강 감독의 고민은 시네마서비스가 배급사일 뿐 아니라 투자사라는 데 있다. 자체 자본만으로 굴러가는 회사는 아니기에 강 감독은 늘 또다른 투자자를 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들여왔다. 과거엔 삼성, 대우 등 비디오회사를 중심으로 한 대기업이 파트너였고 최근엔 삼부파이낸스, 국민기술금융, 산은캐피탈 등
벤처시대 충무로 3인방 [3] - 강우석
-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라스베이거스를 떠났던 터라 마이크 피기스의 뉴욕행 발걸음은 제법 가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불과 350만달러의 제작비만을 가지고 빠듯하게 작업해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완성해낸 그를 맞이한 프로젝트는 대본료로만 무려 300만달러를 지불한 조 에스터하스(<원초적 본능> <쇼걸>의 작가)의 값비싼 시나리오였다. 피기스는 외도를 주제로 한 원안의 기본 골격만을 유지한 채 에스터하스의 시나리오를 완전히 자기 식으로 고쳐놓았고, 자존심 센 할리우드의 ‘스타 시나리오 작가’ 에스터하스는 크레디트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줄 것을 요구했다. 뻔하디 뻔한 불륜의 이야기에 피기스 감독 특유의 도회적 감성을 한껏 불어넣어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원 나잇 스탠드>이다. 이 영화 역시 그의 전작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처럼 섹스, 고독, 죽음, 욕망을 연주하는 도시의 심포니이긴 하되, 전작에 비해 더 가벼우면서 덜 우울한 곡
삶은 오렌지다, 마이크 피기스의 <원 나잇 스탠드>
-
코미디란 무엇인가. 나의 미국행 화두는 이런 것이었다. 수오 마사유키의 <함께 춤추실까요>나 작가 리처드 커티스의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등의 영국 코미디, 혹은 리안의 데뷔작 <결혼피로연> 등에 달아오른, 한번도 장편영화을 만들어보지 못한 감독 지망생의 경쟁심에 미국행은 크게 기인했다. 우리도 우리식의 우아한 코미디를 만들어볼 수 없을까라는 고민의 시작은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쯤 거의 나당연합군을 물리치러 황산벌에 나가던 계백의 그것처럼 내딴에는 거의 역사적 사명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미국에 와서도 아무도 코미디는 이것이다라고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서른다섯이라는 나이에 누구에게 크게 가르침을 받는다는 기대는 없었으나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누군가 던져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수업시간마다 서툰 영어로 훌륭한 코미디를 만드는 게 꿈이다라고 아주장해도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았다. 공부가 고독한 건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이것이 코미디다! <뜨거운 것이 좋아>
-
철도원이란 직업을 ‘천명’으로 여기고 자기의 전부를 걸었으나, 남은 거라곤 쓰라린 회한뿐임을 깨달은 노인의 허망한 미소. <철도원>의 감독 후루하타 야스오과 주인공 다카구라 겐은 이미 20년 전 <엑기>(驛)에서 그 쓸쓸한 삶의 미소를 예감했다. <엑기>의 미카미는 이미 그때 삶의 허방을 보았다. 그는 철로를 미끌어지는 기차가 그렇듯, 인생의 키를 쉽게 움직일 수 없음을 알았다. 마치 작정을 한 듯 모든 건 그의 기대에 어긋나 있다. 특수사격대로 발령받은 그는 순순히 조직의 명령을 따르지만 그 결과로 ‘백정경찰’이란 비난을 듣는다. 그로 인해 미카미는 회의에 빠지지만, 그의 총에 죽는 범인의 숫자는 늘어만간다. 또한 그는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이라고 생각한 기리코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게 된다. 기리코와의 결합을 위해 경찰직 사퇴를 결심한 직후에 그는 기리코의 집에 숨어 있던 그녀의 첫사랑을 사살한다. 언제나 그랬듯 그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쓸쓸한 삶의 미소, <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