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나리오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처럼 괴팍한 취향을 가진 한량을 제외하고는. 그러나 의외로 <차이나타운>을 쓴 사람이 로버트 타우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꽤 된다. 거의 모든 시나리오 작법서에서 이 작품을 ‘시나리오의 교과서’로 꼽고 있는 까닭이다. 과연 양파껍질 벗기기와 미로찾기로 점철된 플롯에는 묘한 흡인력이 박동하고 있고, 캐릭터의 묘사와 주제의 울림 또한 핍진하기 이를 데 없는 명품이긴 하다. 졸역서인 <시나리오 가이드>의 표현을 빌리면 “단순한 스토리를 매우 복잡 미묘하고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냄”으로써 시나리오란 곧 “작가와 관객이 함께 벌이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걸작이다.
타우니는 <차이나타운> 덕택에 전세계 시나리오 작가(지망생)들 사이에서 흠모와 추앙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이런 지위와 명예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무슨 소리냐고? 그는 배우 지망생이었다. 그리고 그가 시나
[할리우드작가열전] ‘타우니, 배우가 돼라’, 로버트 타우니
-
미인의 짝은 역시 미남인듯. 이국적인 외모로 CF계를 누비던 신인 모델 오지호가 영화 <미인>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비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나영의 피부상태를 관찰(?)하던 모 화장품회사 광고, 아침 출근을 준비하던 회사원으로 출연한 굿모닝증권 광고, 박지윤의 뮤직비디오 <가버려>가 오지호의 대표작. 여균동 감독의 <미인>에서 그가 맡을 역은 권태로운 일상에 파묻혀 사랑을 잊고 살던 남자로, 우연히 만난 누드모델과 폭풍 같은 사랑에 휘말리면서 그녀의 몸에 집착하게 된다.
오지호, 영화 <미인>의 주인공으로 캐스팅
-
BB(브리지트 바르도)와 더불어 육감적인 매력으로 수십년간 영화팬을 사로잡은 CC(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환갑이라는 나이에 영화 밖 활동을 개시하기로 했다. 최근 UN의 한 관계자는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를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친선대사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카르디날레는 17살에 미인대회에 출전한 것을 계기로 연기를 시작했고,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에 출연하는 등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활약해왔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유네스코 친선대사로 임명
-
지난해 할리우드 최고의 파워를 자랑한 연예인은 누굴까. 월간 <포브스>는 줄리아 로버츠의 압승을 선언했다. 인터넷, 잡지, TV, 라디오, 신문 등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고 또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은 스타가 바로 줄리아 로버츠였단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지난해 <노팅힐>과 <런어웨이 브라이드>를 히트시키고, 동료 배우 벤자민 브랫과 목하 연애를 즐기느라, 어느 누구보다 공사다망했다. 5천만달러를 벌어 최고 수입자 12위에 오르기도. 한편 수입 부문 1위는 4억달러를 번 조지 루카스 감독으로 발표됐다.
할리우드 최고의 파워는 줄리아 로버츠
-
-
세기의 연인 디카프리오가 험한 꼴을 당했다. 타이에서 디카프리오의 마스크를 쓴 배우 하나가 할복 자살 연기를 선보인 것이다. 촬영과정에서 타이의 자연환경을 파괴해 비난을 산 영화 <비치> 프리미어가 열리는 타이의 극장 앞에서 시위대의 살벌한 퍼포먼스가 펼쳐진 것. 남의 나라의 귀한 자연을 훼손하는 등 무책임한 제작과정에 참여한 것을 부끄러워하라는 내용이다. 디카프리오 자신은 이미 “영화 촬영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모두 최선을 다했다”고 해명한 바 있지만, 타이의 환경운동가들은 제작사와의 법정 싸움을 불사할 태세다.
디카프리오, 환경운동가들에게 비난을 사다
-
<와> <바꿔>의 테크노 가수로 더 친숙해진 이정현이, 오랜만에 영화로 돌아온다. <꽃잎> <마리아와 여인숙> <침향>에 이은 이정현의 네 번째 영화는, ‘하이 테크노 고교 호러’라는 화려한 수식을 단 <하피>(감독 라호범, 제작 미라신코리아)로, 공식 제목은 “영화보기와 인터넷의 동시 진행을 위해” 도메인 주소와 일치시켰다는 <www.HARPY.co.kr>다. 남녀공학 고교의 영화동아리 학생들이 호러 단편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겪는 사건들을 다룬 영화. 학생들이 찍으려던 영화의 스토리는, 촬영장인 외딴 별장에서 현실로 눈앞에 펼쳐지고, 점차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이정현은 여기서 혼자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등 재주는 있지만, 동아리 멤버들과 잘 융화하지 못하는 폐쇄적인 성격 때문에 따돌림당하는 수연을 연기한다. 유일한 친구에게서 외면당한 다음부터, 완전히 다른 얼굴로 돌변한다고.
이정현, ‘하이 테크노 고교 호러’ <하피>로 돌아오다
-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를 살피다 보면, 낯선 이름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케빈 스페이시, 덴젤 워싱턴, 숀 펜, 러셀 크로 등 연기파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배우들과 함께 눈에 들어오는 할아버지, 리처드 판스워스. 이름은 좀 생소하지만 얼굴은 많이 본 듯한 이 노배우는, 최근 여든의 나이에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아카데미 사상 최고령 후보라는 기록을 세웠다.
판스워스를 아카데미 후보에 올려놓은 작품은 데이비드 린치의 99년작 <스트레이트 스토리>. 형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낡은 트랙터 하나로 아이오와에서 위스콘신까지 횡단하는 머나먼 여정에 나서는 초로의 노인 앨빈 스트레이트가 그의 분신이다. 다툼 끝에 10년 이상 소식을 끊었던 형을 찾아가면서, 오랜 불화를 사죄하듯 느리고 고통스러운 트랙터 여행을 고집하는 노인의 지난한 여정은 실화에 바탕한다. 린치는 처음부터 판스워스를 주인공으로 내정했다고. 하지만 오랜 스턴트 생활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둔부 수술을 앞두
아카데미 사상 최고령 후보, 리처드 판스워스
-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에 대해서 나는 전혀 모르고 있을 때였다. 어리둥절한 내 모습에 전영록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 이장호 감독님께서 외인구단을 모르시다니, 한국영화 볼짱 다 봤네요. 그 유명한 외인구단을… 아마 요즘 애들 치고 안 읽은 애들 없을 걸요.”
농담인가 진담인가? 나는 전영록이 떠벌려 과장하는가 싶었다. 마침 영화아카데미 1기 출신인 김소영이 눈에 띄었다. 지금은 한국영상원의 교수가 되었지만 당시엔 영화아카데미 1기를 막 수료하고 미국으로 유학가기 전이었다. 내가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에 대해 묻자, 그녀 역시 아주 유명한 만화여서 요즘 아이들은 물론 대학생들도 거의 안 본 사람이 없다고 덧붙였다. 무안했다. 내가 이렇게 세상을 모르고 살았나? 이렇게 현실에 어두웠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TV 출연을 끝내고 사무실에 돌아오자마자 조감독들에게 물어 보았다. 그들 역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장호 [47] - <공포의 외인구단>제작착수와 <어우동>기획까지
-
철학하면 뜰 수 있다는 소중한 교훈을 새로 얻은 아줌마는, 요즘 영화만 봤다 하면 그걸 바로 세속철학으로 가공해서 팔아먹고 있다. 근데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장바닥에서 근육을 불렸다면, 아줌마 철학의 헬스클럽은 설거지통 앞이다. ‘반칙왕과 21세기’라는 오늘 강의와 관련해서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은, 그러므로 설거지통한테 가서 물어봐야 한다.
자화자찬은 천성적으로 싫어하는 아줌마답게 누구와는 달리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아줌마 극장경 1장 1절. 인간은 누구나 레슬링 선수다. 자궁 밖은 곧바로 사각의 링이다. 여기서 사각은 四角이 아니라 死角이다. 벗어나면 죽음뿐인, 그 안에 있어도 언제까지나 사각사각 다가오는 죽음의 발자국소리를 들어야 하는, 자신이 링 위에 오르기 전부터 게임의 콘티가 거지반 짜인, 아무리 묘기를 부려도 수익은 저승사자 같은 흥행사의 몫으로 돌아가는, 그 링 위에서 대부분의 우리는 정통파로 출발했다가 반칙왕으로 늙어간다. 몰랑몰랑하던 생가죽은 울트라타이거마스크
[아줌마, 극장가다] 아줌마를 상사병으로 몰아넣은 <반칙왕>
-
중년의 위기는 새로운 주제는 아니다. 콩가루 집안의 신포도 초상화 역시. 부인은 딴 남자와 눈이 맞았고, 남편은 실업자에다 퉁명스럽고 자기혐오에 빠진 10대 이야기를 처음 들어본 사람? 어머니, 아버지, 아이들이라는 단어 대신 그 여자, 그 남자, 사고뭉치라는 단어가 가득 찬 집의 이미지에 대해서 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토드 솔론즈의 <해피니스>가 머리 위를 휙 지나가고, <아이스 스톰>의 차갑던 겨울 위에…, 음 거기다 조금만 더 써보자. 대한민국 어디쯤엔가… <해피엔드>도 있었군. 그러고 보면 이혼율 50%의 시대(적어도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는)에 무너져가는 집이라는 것 자체가 진부한 문화적 아이콘일지도 몰라. 그런데도 <해피엔드>를 보고 <아메리칸 뷰티>를 보니 무언가 꿈틀하는 게 스쳐지나간다. 양쪽 모두 똘똘한 신인감독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이라서 그런가. 가만가만. 정장을 빼입고 생계라는 미명하에 의기양양하게 차를 모는
치정 vs 치정 + α, 그 차이는? <아메리칸 뷰티>
-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겁없이 이런 영화를 만들다니, 도대체 현실감각이 있는 사람일까? <구멍>은 안성기라는 A급 배우를 기용한 것 이외에 사실상 상업적 고려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영화다. 또 김국형(36) 감독은 현실적 한계를 예상하고 작정이라도 한 듯, 주류 시스템에서 한발짝 물러난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게다가 앞으로도 계속 ‘제멋대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벼르고 있으니, “지금처럼 하면 몇년 안에 폐인 될 것”이라는 주변의 걱정도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김국형 감독은 단호하다. “현실인식은 바뀔 수 있어도 가치관, 영화관은 변할 수 없다. 내 방식대로 해보고 싶다. 이런 영화 만들기가 내 몫이라면, 이대로 계속 가야겠다는 생각이다.”
<구멍>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을 보인 이래 개봉 일정을 잡지 못해 난항을 거듭하다 지난 3월4일에야 가까스로 서울 4개관, 지방 6개관에서 단출하게 개봉했다. 결과는 ‘예상을 크게 빗나지 않아’ 관객 수를
게릴라 방식으로 만든 정통 문법의 영화 <구멍> 감독 김국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