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점보다는 비디오와의 악수를 꿈꾼다
2000년, DVD를 둘러싼 할리우드의 고민? <버라이어티> 최근호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관계자들이 밝힌 향후 전망을 싣고 있다. 일단 미국 내 상황은 실용적인 DVD 플레이어가 속속 선보이고 있는데다 가격도 저렴해지는 추세라 DVD 타이틀 시장을 형성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상태. 문제는 국내시장과 맞물려야 할 해외시장이 할리우드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조한 유럽시장 성적에다 아시아지역의 불법복제가 겹치면서 <매트릭스>와 <미이라>가 전세계적으로 100만개 정도 팔렸는데도 전체적인 할리우드의 해외 판매시장 수익은 겨우 5% 상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할리우드는 낙관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워너브러더스 홈비디오 대표 워런 리버파르브는 “DVD 플레이어의 가격이 계속 하락하고 더 많은 스튜디오들이 DVD 시장에 참여하면서 소프트웨어가 늘어날 것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유러피언컵 축구
DVD시대, 어디까지 왔나 [2]
-
안방에서 만끽하는 디지털 세상
바야흐로 디지털 세상이다. 개념이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디지털 혁명은 성큼 우리 생활 가까이 와 있다. 영화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 디지털의 가공할 위력은 안방에서 극장의 느낌을 만끽하며 영화를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물론 TV나 모니터 크기의 한계 때문에 극장의 대형 스크린에서 보는 스펙터클은 덜하겠지만 안방극장으로서의 기능은 더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다.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영상매체 DVD(Digital Versatile Disc). 많은 사람들이 '그건 또 무슨 첨단기기지?'라고 생각하는 동안, 이미 DVD를 둘러싸고 마니아문화가 성황이다. 컴퓨터통신이나 인터넷엔 DVD동호회도 셀 수 없을 정도고, 이들을 상대로 마케팅을 벌이는 관련업체도 부지기수다. DVD가 뭔지, 궁금하다면 컴퓨터통신이나 인터넷에 들어가보라, 거기엔 또다른 세상이 있다!
CGV강변11에서 마케팅 일을 하는 조홍석씨도 DVD 마니아다. 뻔한 월급쟁이지만 한
DVD시대, 어디까지 왔나 [1]
-
“미국영화는 엔터테인먼트가 먼저 유럽영화는 영혼이 먼저다”
<맨 온 더 문>의 시사가 있던 지난 2월18일은 밀로스 포먼의 생일이었다. 같은 날 열린 기자회견은 기자들과 영화제 스탭들의 생일축하곡 합창으로 유쾌하게 시작됐다. 97년 <래리 플린트>로 금곰상을 수상한 그는 한껏 여유로운 모습으로, 새 영화 <맨 온 더 문>에 대한 연출의 변을 늘어놓았다. 이 작품은 ‘미국적인’ 한편 ‘반미국적인’ 실존 인물을 통해 미국사회를 반추한다는 의미에서, <래리 플린트>의 연장선상에 있다. <허슬러>의 발행인 래리 플린트에 이어, 밀로스 포먼의 낙점을 받은 이는 70년대에 활동한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만. 밀로스 포먼은 스스로를 코미디언으로 인정하지 않은 코미디언 카우프만의 고민과 자연인으로서의 나머지 생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웃음을 만들기 위해 평생 노력한 한 코미디언의 비애를 절절히 담아내, 코미디와 드라마의 경계를 탄력있게 넘나
제50회 베를린영화제 결산 [5] - 밀로스 포먼 인터뷰
-
“단순한 얘기일수록 표현하기 힘들다”
장이모의 베를린 귀환은 일단 성공적이었다. 50년대 연인의 사랑이야기 <집으로 가는 길>은 단순한 이야기가 발휘할 수 있는 감동의 극한을 시험하는 듯했다. 중국의 전통, 고유한 정서와 이미지가 어우러진 구식 러브스토리에 이상하게 가슴이 짠해졌다는 고백은 국적을 막론하고 관객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터져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我的父親母親)은 두 연인의 애틋한 사랑이라는 자칫 심심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섬세한 심리의 결을 녹인 유려한 영상에 담아낸, 소박한 동시에 화려한 영화다. 추억의 빛은 결코 바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인지, 오늘이 건조한 다큐 느낌의 흑백인 반면, 어제는 황홀한 만큼 아름다운 총천연색이다. 영화는 아버지의 부고를 들은 아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만나는 데서 시작한다. 어머니는 병원에서 마을 길목까지 관을 둘러메고 걸어오는 전통 장례 절차를 고집한다. 아들은 간소하게 무리없이
제50회 베를린영화제 결산 [4] - 장이모 인터뷰
-
-
"오슨 웰스는 내게 감독을 꿈꾸게 했다"
“로제 바딤이 오늘 죽었다. 내 사랑을 담아,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 잔 모로(72)의 허스키 보이스가 커다랗게 울려퍼지자 장내는 숙연해졌다. 올 베를린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을 받는 그는, “유러피언 시네마의 산증인인 잔 모로에게 이 상을 바칠 수 있어서 영광”이라는 집행위원장의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이 모든 기쁨을 로제 바딤 감독과 함께 하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프랑스 기자들이 불어를 써달라고 요구하는 등 사소한 신경전이 있었으나, 기자회견 자리에서만 4개국어를 구사해보인 잔 모로의 대답은 명쾌했다. “내 어머니는 영국인이고 아버지는 프랑스인이다. 주지시켜줘서 고마운데, 날 그냥 유럽인으로 생각해달라(Let’s be European.)” 불확실한 사실을 들먹인 이들은 잔 모로의 즉각적인 정정 발언에 주춤해야 했고, 마땅찮은 질문을 한 기자들은 은근슬쩍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장은 그렇게 온통 ‘마담 모로’에게 압도당하는 분
제50회 베를린영화제 결산 [3] - 잔 모로 인터뷰
-
“베를린은 중국 영화인들의 희망”
50주년을 맞은 베를린영화제가 심사위원장 자리에 공리를 앉힌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88년 <붉은 수수밭>에 금곰상을 안기면서, 겨우 데뷔작을 내놓은 장이모와 공리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선사했으니, 베를린영화제로서는 ‘우리가 발굴하고 키웠다’는 자부심이 과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 중국영화계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은 공리는 12년 전의 감회를 되살려, 모리츠 드 하델른 집행위원장의 제안을 수락했다. 안제이 바이다, 마리아 파레데스, 월터 살레스 등 8명의 쟁쟁한 다국적 심사위원단을 이끄는 중책을 맡아, 상당한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영어와 독어를 못한다는 것이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공리는 중국 전통의상을 응용한 화려한 의상과 기품있는 언행으로 영화제 내내 ‘페스티벌 레이디’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공리가 출연하고 선 자오 감독이 연출한 <브레이킹 더 사일런스>는 ‘공리에 대한 오마주’의 의미로 공식 프로
제50회 베를린영화제 결산 [2] - 공리 인터뷰
-
할리우드의 패기, 유럽과 교감하다
공공장소에도 영어 표지판 하나 없는 이곳 독일에서, 수천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나 영어할 줄 알아”하고 외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2월20일 밤, 열이틀의 행사를 마감하는 폐막식 자리에서 금곰상 수상자 폴 토머스 앤더슨이 독일어를 모른다고 사과하자, 관객이 보인 반응이다. “정말?” “예스!” 마치 록 공연을 방불케 하는 열기로 유럽 관객과 교감한 할리우드의 젊은 감독은 그제야 “이건 정말 환상적인 일이다. 심사위원 모두에게, 그리고 베를린에 감사한다”고 달뜬 얼굴로 소감을 전했다. <매그놀리아>의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은 수상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스타였다. 그는 이미 관객이 가장 많은 찬사를 보낸 작품을 만든 감독, 배우를 제치고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거의 유일한 할리우드 감독이었다.
“오스카가 저버린 영화, 우리가 살렸다”
금곰상 이외의 관심거리도 있었다. 심사위원장 공리가 본선에 진출한 장이모에게 과연 상을 주겠
제50회 베를린영화제 결산 [1] - 수상작 리스트
-
케빈 코스트너와 케빈 레이놀즈, 이 두 케빈은 서로 제법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스타와 감독 사이로 알려져 있었다. 최소한 <워터 월드>(1995)를 제작할 당시 편집과 내용에 대한 의견 차이로 인해 영화의 개봉을 불과 석달 남짓 남겨두고 레이놀즈가 메가폰을 손에서 놓기 전까지는. 90년 로빈 후드의 모험담을 다룬 영화를 만들겠다는 여러 영화사들로부터 제의를 받은 코스트너가 굳이 모건 크리크사의 <의적 로빈 후드>(1991)에 출연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이 프로젝트에 레이놀즈가 감독으로 내정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코스트너는 레이놀즈의 액션 시대극 <라파 누이>(1994)에 제작 총지휘(executive producer)로 참여하기도 했다. 레이놀즈의 감독 데뷔작인 <판당고>는 바로 이 두 케빈의 이 같은 ‘우정’의 출발점이라고 보아도 좋을 그런 작품이다.
<판당고>는 정치 연설 작가로 일하다가 뒤늦게 영화에 눈을 돌린 레
청춘은 전쟁을 잠식한다, 케빈 코스트너의 <판당고>
-
‘내 인생의 영화’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어떤 영화로 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제의를 받는 순간부터 한 영화에 대한 이미지가 쫙 펼쳐졌기 때문이다. 바로 주윤발의 <첩혈쌍웅>이다. 수백편의 영화 가운데 내 인생의 영화를 주저없이 꼽을 수 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영화감독으로서 나는 행운아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그것이 내가 영화를 업으로 삼은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주인공의 인생을 끊임없이 동경해왔다면 말이다.
지금부터 나는 어쩌면 개인적인 고백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입만 다물고 있으면 평범한 대학 시절을 보냈다고 오해(?) 받을 수 있을 텐데 괜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80년대 중반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에 들어간 연극영화과. 그곳의 강의실에서는 어렵고 지루한 영화 이야기만 반복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교수님과 선배들이 훌륭하다고 칭송하는 <시민케인>을 보고, 불행
한달 용돈을 털어 바바리를 사입고, <첩혈쌍웅>
-
<종합병원 The Movie 천일동안>은 제목대로다. 90년대 중반의 인기 TV드라마 <종합병원>을 영화화했으며, “천일 동안 지속된 사랑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라는 주인공 시완의 대사처럼 두 남녀의 눈물나는 사랑을 그린 멜로다. 드라마 <종합병원> <우리들의 천국>을 연출했던 최윤석 감독이 사랑의 삼각대를 세울 공간으로 종합병원을 택한 건 “기존 멜로 영화들은 주인공의 직업을 낭만적으로 포장하고 그가 속한 공간에 충실하지 못했다”라는 반성 때문이다. 또한 은수와 승현이라는 대조적인 캐릭터를 빌려 한국 멜로 영화가 소홀히 해온 여성성에 대한 통찰을 시도한다.
<…천일동안>의 두 여주인공 승현과 은수는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승현은 완벽한 의사로 성공하기 위해 여성성을 포기한 인물이다. ‘명예남성’이고 싶어하는 승현은 여성을 마치 콤플렉스처럼 여기며, 후배 은수에게도 같은 길을 요구한다. 작은 실수를 저지른 은수에게 승현은
여성성에 대한 통찰, <종합병원 The Movie 천일동안>
-
‘그 푸른 바다를 헤엄치던 고등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현재를 회한하는지도 모른다. 옛 사랑이라는 과거에 발목잡혀 사는 영훈과 딸만을 바라보고 사는 진영을 비롯해 네 남자의 삶에는 결핍의 공간이 들어앉아 있다. 옛 감정을 들춰내게 하는 조동진의 노래처럼, <산책>에는 젊은 날에 대한 향수가 은근하게 펴져 있다. 눈물젖은 <편지>로 전국 200만 관객을 울렸던 이정국 감독은 <산책>에서 중년의 고개를 넘는 남자들의 일상을 묽고 엷게 담는다. 화인(火印)의 역사와 희화화한 현실비판, 인공의 사랑이 빠진 자리에 남은 건 볼품없는 일상뿐이다. 이 남자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에 연민이 어려있는 건, 그들 어디엔가 그가 숨어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감독은 소재의 일상성을 지나치리만치 평이한 영화언어로 담아냈다. 평범한 인물, 평범한 이야기가 곧장 영화 전체를 장악해버린 것이다. 등장인물을 비롯해 현실의 일상성을 영화로 재현함에
중년의 고개를 넘는 남자들의 일상,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