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진정 원했던 것이 혁명이었을까”
영화는 15살 소년 미치오가 아버지를 여의고, 미션 스쿨 독립학원으로 전학오는 데서 시작한다. 아버지를 잃은 충격으로 말더듬 증세가 심해진 미치오는 따돌림을 당하지만, 중성적인 외모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합창반 소프라노 야스오가 그의 곁에 선다. 친구가 된 두 소년은 합창반 지도 교사를 믿고 따르는데, 사토미라는 여인의 방문으로, 그가 과거 학생운동 전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폭탄 테러를 벌이고 도움을 청하러 온 사토미가 경찰에 쫓기다 그들 앞에서 자폭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방학 동안 목소리를 잃고 학교로 돌아온 야스오는 합창대회에 나가 혁명가를 부르자며 학생들을 선동하기 시작한다. 미치오는 그런 야스오의 목소리가 돼준다.
<놀라운 20세기>라는 TV 다큐시리즈를 만들던 93년부터 오가타 아키라 감독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생각 하나가 있었다. “이렇듯 잔인한 역사가 개인의 정신에 그리고 행동에 대체 얼마만한 영
베를린이 사랑한 감독들 [5] - 오가타 아키라
-
“선정적이라는 비판만은 못참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그들에겐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 폴커 슐뢴도르프는 새 영화 <리타의 전설>(Die Stille Nach Dem Schuss)에서 ‘무너진 장벽, 그뒤’를 이야기하고 있다. 서독 적군파의 테러리스트 출신인 리타는, 동지들이 제3국으로 떠날 때 동독에 머물기로 결심한다. 테러금지협정이라는 걸림돌 때문에 리타를 공개적으로 보호할 수 없는 비밀경찰은 그녀에게 새 이름과 새 삶을 제공한다. 동독으로 건너간 리타는 서독을 동경하는 타티아나와 친구가 되지만, 새로운 신분도 그녀에게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리타의 전설>은 ‘테러리스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그 흔한 로맨스와 스릴도 없이, 줄곧 건조하고 냉정한 스토리텔링을 구사하고 있다. 독일 현지에서 호평과 혹평을 오가며, 가장 많은 화제를 불러모은 작품. 장벽이 무너진 이후의 독일사회를 리얼하게 그린 작품이 없었던 만
베를린이 사랑한 감독들 [4] - 폴커 슐뢴도르프
-
“목표는 센세이션이 아니라 캐릭터다”
‘미식축구’는 오래도록 정치와 전쟁을 이야기해 온 올리버 스톤에게 구미 당기는 소재가 아닐 수 없다. 필드에서 뛰고 뒹구는 선수들의 모습은, 사생결단으로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의 모습이며, 구단주의 권력과 돈, 언론의 스피커가 뒤엉킨 거대 스포츠산업은 정치판에 흡사하니 말이다. 개인기 과시나 지나친 승부욕을 경계하고 팀 스피리트를 강조하는 코치, 가업으로 물려받은 구단을 어떻게 굴리면 돈이 될지가 유일한 관심사인 구단주의 만남은, 처음부터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다. 팀이 연패의 늪에 빠지고 선수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실려가자, 구단주는 오만한 신참을 쿼터백 자리에 앉히고 완치되지 않은 선수들을 필드로 불러내는 등 독단으로 새 진용을 짠다. 코치와 구단주가 사사건건 부딪치고, 팀닥터까지 구단주편에 서면서, 갈등의 골은 깊어간다.
<애니 기븐 선데이>(Any Given Sunday)는 맹수가 우글거리는 거칠고 삭막한 ‘정글’의 이미
베를린이 사랑한 감독들 [3] - 올리버 스톤
-
“자유에 관한 영화가 자유를 줬다”
“폴란드 감독인 내가 지금 베를린에 심사위원으로 와 있고, 다음달엔 오스카상을 받으러 미국으로 간다. 이건 좋은 징조다.” 올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이자, 오스카 평생공로상 수상자인 안제이 바이다는, 그의 영화가 국경을 넘어 다른 민족까지 관객으로 포섭해 왔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있었다. 평생을, 민족과 사회에 대한 걱정에 바친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 얘기에 믿음을 싣게 된다. 안제이 바이다는 자신의 레지스탕스 경험을 영화화한 <세대>로 데뷔해, 폴란드 민족진영의 주도로 일어난 바르샤바 봉기를 다룬 <지하수도>, 2차대전 직후 민족 내부의 이념 갈등을 그린 <재와 다이아몬드> 등을 내놓았다. 70,80년대 사회 상황을 현실적으로 담아낸 <대리석의 사나이> <철의 사나이>도 빠뜨릴 수 없는 대표작이다.
이번 베를린영화제에 ‘오마쥬’의미로 특별 상영된 99년작 <판타데우스>(Pa
베를린이 사랑한 감독들 [2] - 안제이 바이다
-
-
베를린, 거장에게 바친다
올 베를린영화제는 유난히 거장을 사랑했다. ‘오마쥬’라는 주석을 단 특별상영 프로그램 중에는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잔 모로의 작품도 있었지만, 동·서양을 대표하는 노장 두 사람의 신작이 나란히 올라 이채를 띠었다. 폴란드의 역사, 민주주의, 자유에 대해 예술적인 통찰을 보여준 안제이 바이다 감독, 그리고 휴머니즘의 영화들로 74편의 긴 필모그래피를 이룬 성실파 이치가와 곤 감독이 그들이다. 안제이 바이다의 <판타데우스>는 폴란드에서 <타이타닉>을 앞질러 6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경이적인 작품. <도라 헤이타>는 이치가와 곤 감독이 구로사와 아키라 등 30년 전 동지들과 함께 쓴 시나리오를 뒤늦게 영화화한 것이다. 이들은 칠순, 팔순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영화에 대한 열정과 의욕을 과시해, 베를린에 모여든 젊은 영화인과 기자단을 감동시켰다.
늘 논란을 몰고 다닌다는 점에서, 이들보다 한수 위인 올리버 스톤과 폴커
베를린이 사랑한 감독들 [1]
-
<피플>은 지난해 현존하는 가장 섹시한 남자로 리처드 기어를 꼽은 바 있지만, 대표적인 남성 섹스심벌로서 그의 전성기는 아무래도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일 것이다.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1977), <아메리칸 지골로>(1979), <브레드레스>(1983)로 이어지는 일련의 출연작들에서 기어는 뭇여성들을 사랑의 포로로 만들 정도로 용출하는 성적 매력을 과시했던 것. 당시 건장한 체격을 무기로 곧잘 정면 누드를 보여줘 화제를 모았던 그는 일부로부터는 노출증 환자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테일러 핵포드가 연출한 <사관과 신사>는 길들여지지 않은 ‘섹시 가이’ 기어의 이런 전성기적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영화다. ‘청춘 스타’ 존 트래볼타가 거절한 역을 물려받은 기어는 이 영화를 발판삼아 스타로의 본격적인 진입로로 껑충 뛰어오르게 되었다.
알코올 중독자에 호색가인 아버지 밑에서 불우하고 외로운 소년기
신사는 알을 깨고 나온다, 리처드 기어의 <사관과 신사>
-
‘나만의 컬트’라는 말이 있다. 남들은 시큰둥한 영화를 극장에서 몇번씩 보고 비디오로 출시되면 한두세번 더 보게 되고, 그것도 모자라 왠지 마음이 울적하거나 싱숭생숭해지면 가끔씩 ‘땡기는’ 영화.
나에게도 이런 영화가 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에단 호크, 줄리 델피 주연의 미국영화 <비포 선라이즈>. 사실, 감독이나 주연을 보면 그렇게 눈길을 끄는 영화도 아니다. 이 작품 이후로 뭐하는지도 모르는 신인감독에, 그냥 평소 나쁘지 않게 생각하던 정도의 주연배우들. 인생을 움직인 영화로 꼽히기엔 아무래도 미약하다. 아무렴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 즉 고다르, 베리만, 브레송에 비하랴! 하지만 영화보기는 보통의 예술작품 감상과는 다른 것 같다. 마치 ‘물’과 ‘밥’ 같은 영화가 있는가 하면, 반찬 같은 영화들도 있다. <비포 선라이즈>는 내게 별미 같은 영화이다.
이 별미 영화와는 대부분 첫 만남부터가 특별하다. 마치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하는 것처럼
특별한 날, 특별한 음식 같은, <비포 선라이즈>
-
스파이크 없는 <노팅힐>을 수긍하기 어렵듯, 송강호 없는 <넘버.3>를 상상하기 힘들듯, <신혼여행>에 엄춘배가 없다면 너무 허전할 거다. 신혼여행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꽤 여러 겹의 복선으로 엮어낸 <신혼여행>은 분명히 범죄스릴러 모양새지만, 능청맞은 조연들의 좌충우돌이 본론과 여담을 흐려놓을 만큼 맛깔스런 영화다. 엄춘배가 연기하는 송충호는 교명이 너무 노골적인 ‘남녀혼합교’ 신자. 개량한복을 입고 근엄한 표정으로 말도 안 되는 주문을 외우고는 변태성교에 돌입한다. 강도강간 전과가 밝혀져 용의자 조사를 받는 데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엉터리 주문을 외우고 앉아 있는 그를 보노라면 조형기, 권해효, 박상면의 얼굴이 겹쳐 떠오른다. 웃기는 조연은 더 있다. 신혼여행팀에 잘못 끼어든 중년 이인철-신신애 부부의 고뇌에 찬 정사도 외면하기 힘들며, “저도 뭔가 조사를 받아야 될 것 같아서 왔는데요”라며 괜히 경찰서를 기웃거리는 호텔 보이 역의
신혼여행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신혼여행>
-
<GO>의 친구들은 엉망진창이다. 로나는 천연덕스럽게 아스피린을 환각제로 속여팔아 엄청난 매상을 올리고, 사이몬 패거리는 고급 스포츠카를 훔치고 살인 미수를 저지르고 호텔에 불을 낸다. 순둥이로 보이는 클레어는 거칠고 막돼먹은 마약 딜러와 사랑에 빠진다. 그래도 이 아이들을 어찌 할 것인가, 하고 걱정할 건 없다. 벼랑 끝을 향해 무모하게 질주하는 것 같지만 이들 누구도 죽지 않고 누구의 영혼도 망가지지 않는다. 다만 이들은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 전야를 보낼 따름이다. 아직 현실에 발붙이지 않은 이들에겐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다. 치명적이긴 하지만 그 가능성이야말로 젊음의 매력이다. 다시 아침이 돌아오면 이들은 멀쩡하게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진짜로 걱정스러운 건 오히려 안팎이 다른 ‘어른’ 버크다. 법과 제도를 상징하는 경찰 버크는 아담과 잭을 끄나풀 삼아 마약파는 아이들을 소탕하려 하지만, 정작 그는 불법인 피라미드 판매로 치부하려는 인물이다. 위선덩어리인
미국 10대들의 ‘탈주의 욕망’ 판타지,
-
옆집에 킬러가 이사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인 야드>는 할리우드영화의 오랜 흥행공식인, 한줄로 요약되는 컨셉을 갖고 있다. 잔잔한 수면 위로 파문을 일으키며 튕겨나가는 조약돌처럼 외부의 충격은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을 불러온다. 그리고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사연들이 순간순간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원제인 ‘The Whole Nine Yards’는 ‘엄청난 행운’을 일컫는 말인데, 그런 축복을 받자면 어느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도입부에서 주인공 오즈의 가정을 만신창이로 설정한 것은 멋진 보상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인 것이다.
치과의사 오즈는 시카고 출신이지만 아내를 따라 몬트리올에 눌러앉았다. 번듯한 직장과 아담한 집이 있지만 장인이 남긴 엄청난 빚에 눌려 허덕이는 오즈의 가정은 좀처럼 햇빛이 들지 않는다. 남편이 죽기만 바라는 아내, 장모와 함께 산다면 이 남자를 동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게다. 여기서 살인청부업자 지미 튤립의 등장은 오
할리우드영화의 오랜 흥행공식, <나인 야드>
-
“나는 다른 누군가로 변하고 싶다. 그래서 인생의 신성한 마지막 순간 이렇게 말하리라. 그것은 복수였다고.” 남자로 변장하고 북아프리카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다음, 혼돈스런 격정으로 출렁대는 삶을 살다 요절한 이자벨 에버하트는 이렇게 썼다. 하지만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티나 브랜든에게 남장은 앙갚음도 시위도, 울혈진 그 무엇도 아니다. 브랜든이 남자로 행세하는 동기는 투명하고 천연스럽다. 좋아서, 편안해서, 즐거워서, 사내의 차림새로 거울을 볼 때 자신이 덜 낯설어 보여서다. 그래서 애인 라나에게 ‘양성’임을 고백하는 순간 브랜든은 변명한다. “사실보다 훨씬 복잡하게 들릴 거야.”
그러나 누구도 해칠 의사가 없는 정직한 몸짓이 경천동지할 위협으로 둔갑하는 부조리한 세계에서 브랜든은 기어코 박멸돼야 할 역병이 되어 가혹한 징벌을 받는다. 백인여성과 사귀었다는 이유로 40년 전 피살된 버지니아의 흑인 청년 에멧 틸처럼. 그러나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진 1993년 실화를
노동 계급 젊은이들의 청춘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