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의 얼굴에서 그가 살아온 흔적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성폭행의 경험을 지워버린 마릴린 먼로는 순진무구한 백치미로 최고의 섹스심벌이 되었으며, 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톰 크루즈는 성공한 여피의 초상으로 미국 젊은이들에게 꿈의 대변자가 되었다. 현실보다는 환상에 가까워야 하는 직업. 그러므로 배우의 얼굴은 시간이나 기억에 침범당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조지 클루니(38)는 다르다. 나이보다 몇년을 앞서는 그의 얼굴에 팬 깊은 주름에는 삶의 고난이 묻어난다. 그 때문일까. TV시리즈 <ER>의 다정한 소아과 의사 로스 역으로 스타덤에 올랐고, <쓰리 킹즈>에 함께 출연한 배우 마크 월버그가 “내가 왜 그를 좋아하는지 알아요? 너무나 잘생겼기 때문이에요!”라고 말하며 졸졸 따라다니는 이 미남배우는 영화 속에서 항상 고달픈 삶의 자취를 품고 다닌다. 그는 인생의 밑바닥에 좀더 가까운 사람이다.
<ER>에 처음 등장했던 94년, 클루니는 벌써 10
영화왕국 ‘그레이 킹’, <쓰리 킹즈>의 조지 클루니
-
고단한 삶을 새빨간 루주와 매니큐어로 가린 연화. 힘들어서 피신한 조그마한 레코드 가게에서 네명의 남자를 만난다. 끊어질 듯 위태로운 삶의 줄 위에 서 있기는 이들도 매한가지나 그들은 태연스레 기타의 줄감개를 매만지며 음을 고르고 있다. 도돌이표 따라 제자릴 맴도는 것 같아 연화는 더딘 보폭에 지루함을 느끼지만 ‘영화’가 끝나고 ‘산책’이 시작될 쯤이면 그들 곁에 나란히 선다. 그때까지는 혼자 좋아라 앞서기도, 뒤를 돌아보느라 처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잔잔히 흐르는 수면 위로 통통 튀어 오르는 물고기 같은 느낌이에요. 연화는 제가 지금까지 맡은 역할들 중에서 가장 영화적인 캐릭터죠.” 연화 역을 맡은 박진희가 자세히 소개하는 <산책>은 ‘보는’ 영화가 아니라 ‘듣는’ 영화다.
“혹시 제가 너무 오버하지 않았나요?” 영화를 미리 본 주위 사람들이라면 박진희에게서 한번쯤 시달렸을 만한 질문이다. “내면을 그냥 통째로 드러내선 안 되고 묻어나야 하는데 힘들더라구요.” 상스
“웃으면 밉상되는데”, <산책>의 박진희
-
94년 <쇼생크 탈출>로 미국 평단의 찬사와 아카데미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한 데뷔전을 치뤘던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41). <쇼생크 탈출>은 스티븐 킹 원작 영화 중 최고의 수작으로 꼽혔고 아카데미 7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그를 단숨에 A급 감독 대열에 올려놨다. 하지만 성공한 감독의 다음 행보는 뜻밖에 오랜 침묵이었다. 작가 겸 감독으로 널리 알려진 다라본트는 제작부 조수, 세트담당, 배우 등을 두루 거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 <나이트메어3> <플라이2> <프랑켄슈타인> 등이 그의 각본이다. <쇼생크…> 이후 5년의 침묵을 깨고 내놓은 신작 <그린 마일>은 역시 킹의 소설이 원작. 선량하면서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흑인 사형수와 간수장의 관계를 통해 인간다움의 의미를 묻고 있다. 6천만달러의 <그린 마일>은 제작비 2배가 넘는 수익을 올리고 아카데미 4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두편의 영화가
<그린 마일>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
-
지금은 노안이어서 책을 읽기가 쉽지 않지만 한창 때의 나는 독서광이었다. 그동안 몇번씩 이사하면서 많은 짐들이 사라지고 새로 생겼지만 책에 대한 애착만은 집요해서 아직도 20대 젊은 시절의 책까지 모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영화 <과부춤> 이후 나는 경제적인 불안을 잊기 위해 다시 책벌레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체언어에 대한 책을 읽다가 문득 무릎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순간 기묘한 영감과 함께 아주 아름답고 깨끗한 이미지의 성적 충동을 느꼈다. 나로서는 신선한 체험이었다. 그것은 스무살 무렵 읽었던 김승옥의 단편소설에서 가장 신비한 섹스의 이미지로 비너스의 멘스가 뛰어나게 묘사된 것을 발견했을 때처럼 아주 강렬하고 신선해서 무릎이라는 단어에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고 며칠을 거기에 집착했다. 마침내 영감의 샘물에서 ‘무릎과 무릎 사이’라는 싱싱한 제명을 길어올리고 말았다.
나는 이 제명을 생각해내는 순간 마치 노다지를 발견한 광부처럼 가슴이 두근거려 그뒤
이장호 [46] - '무릎'이란 단어에서 시작한 <무릎과 무릎 사이>
-
-
잔 다르크는 거대한 하나의 유혹이다. 15세기 이래로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수정되고, 문학이 되고, 영화가 되고, 심지어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그것은 프랑스 밖의 이방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928년 덴마크의 칼 드레이어는 <잔 다르크의 열정>을 완성했다. 프랑스인들은 자신의 영웅을 가로챘다고 분개했지만 이 영화는 곧 드레이어의 대표작이 됐다. 당대의 이론가인 루돌프 아른하임은 이 영화를 가리켜 “재판정은 초상화의 전시장”이 아니라며 클로즈업의 남발을 비판했지만, 감독은 자신이 매혹된 세계를 관객에게 직접 보여주기를 원했다. 스스로 명명한 ‘현실화된 신비주의’는 매혹의 이중성을 의미하는 말이다. 세속과 구원 사이에 놓여 있는 ‘잔’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하지만 도저히 현실의 카메라로 접근할 수 없다는 드레이어의 판단은 온통 클로즈업으로 가득 찬 화면을 만들어놓았다. 이러한 특성은 이후 영화에서도 나타난다. <흡혈귀> <오데트> <분노
고전 속에 빛나는 새 세기의 시선, 뤽 베송의 <잔 다르크>
-
‘깡통 로봇’이 아니라니깐요
1926.<메트로폴리스>의 마리아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1926)에 등장하는 로봇은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마리아의 복제인간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탄생 초기에는 금속으로 구성된 몸체가 잠시 드러나지만, 곧 마리아와 똑같은 외모를 지니고 붙잡혀 있는 진짜 마리아 대신 노동자들 앞에 나타나 폭력을 부추긴다. 마리아 로봇은 지금 보아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세련된 감각의 메카닉 디자인을 지니고 있다. 이 놀라운 시각적 이미지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로봇이 영화 속에서 오로지 악역만 담당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듯하다. 어쨌거나 할리우드에서는 1950년대가 되도록 깡통 땜질 수준의 로봇 디자인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메트로폴리스>의 마리아 로봇은 분명 시대를 초월한 독보적인 존재였다.
1956.<금지된 세계>의 로비
셰익스피어 희곡 <폭풍우>(Tempest)를 각
사라지는 로봇 영화, 로봇 100년 [2] - 로봇 캐릭터
-
인간에 가깝게 더욱 가깝게
SF 영화의 잔치상은 한번도 빈곤한 적이 없었다. 우주여행, 시간여행, 외계인, 괴수, 신무기, 미친 과학자 등등…. 그 중에서도 로봇은 언제나 인기있는 주인공이었다. <터미네이터> 등 로봇 캐릭터가 영화판을 누비고 다닌 것이 불과 10년도 안 됐는데, 어느새 스크린에서 로봇들의 모습은 쑥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80년대 중반경 SF문학쪽에서부터 움트기 시작한 사이버펑크 바람이 삽시간에 SF영화의 콘텐츠를 물갈이해 버린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처음엔 CG의 발달에 힘입어 시각효과로 관객을 사로잡았고, 나중에는 가상현실이라는 내러티브 그 자체가 가진 무궁무진한 스토리의 가능성들로 사람들의 흥미를 계속 붙들었다. 결국 로봇이라는 고전적 SF 아이콘은 이 거대한 변화 속에서 확고부동의 자리를 보전하기가 버거웠던 것이다.
이제 SF 영화는 온통 현란한 가상현실과 우주모험 시나리오로 채워지고 있으며, 최근 그 틈을 비집고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사라지는 로봇 영화, 로봇 100년 [1]
-
<지우개 따먹기>는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처럼 교실 안 아이들의 싸움을 통해 권력의 해부도를 그린다. 자그맣고 겁많은 영훈은 강산과의 지우개 따먹기에서 매번 이기지만 뚱뚱하고 힘쎈 강산이 윽박지르는 바람에 자기 지우개까지 빼앗기고 만다. 그럼에도 힘이 부치는 영훈은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한다. 영화는 영훈의 이야기에다 경찰에 쫓기는 운동권 대학생 누나의 이야기로 정치적 함의를 부풀린다. 마르크시즘 서적을 쥐고 집을 빠져나가던 누나는 영훈에게 지우개 하나를 건네며 꼭 이기라고 웃어준다. 초등학생 만화가, 디자인 수업, 사운드그룹 활동을 하다 서울예대 영화과에 들어간 민동현은 스토리보드 작성과 리허설, 비디오 촬영 등 사전준비 작업을 철저히 마치고 촬영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영화를 찍으면서 적잖은 장애물을 헤쳐와야 했다. 전쟁과도 같았던 그의 제작 뒷얘기는 영화지망생들에게 영화만들기의 쓴맛과 단맛을 미리 맛보게 해준다.
이스트만 단편영화제작지원
이스트만 단편영화 만들기 [2]
-
촬영전투, 기쁨과 절망의 좌충우돌
엉뚱한 소리일 수도 있지만, “단편영화는 미래의 영화”라는 앙드레 바쟁의 유명한 전언은 단편 영화의 서글픈 운명을 암시한다. 미래를 꿈꾸는 자가 현실의 궁핍함을 견뎌야하듯, 단편영화 작가는 현재의 한기(寒氣)를 참아내야 한다. 그래서 단편영화 작가들은 언제나 목이 마르다. 군소 단편영화제가 많아지고 대중의 인식이 확산되면서 단편영화의 존재감은 전보다 훨씬 두터워졌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기획에서 유통까지, 단편영화에 짐지워진 숙제는 속시원히 풀린 게 없다. 관객과의 만남이 빈번해지고 인디스토리나 미로비전 같은 배급사의 노력으로 해외영화제 나들이가 잦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급시스템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다. 영화만들기는 온전히 작가들의 몫이다. 아직까지는 단편영화 작가가 지원을 요청할 만한 곳이 별로 없다는 게, 아쉽지만 우리의 현실이다.그런 풍토에서 이스트만코닥 단편영화 지원제도는 거의 파격에 가깝다. 이스트만은 35mm필름 1만자를 제공하고
이스트만 단편영화 만들기 [1]
-
“동지들과의 30년 전 추억을 되새기며”
일본을 대표하는 네 감독이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구로사와 아키라, 기노시타 게이스케, 고바야시 마사키, 그리고 이치가와 곤(84).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앉힌 건 ‘죽어가는 일본영화를 살리자’는 사명감. 1969년 스튜디오의 쇠락과 함께, 침체에 빠진 일본영화를 구하기 위해, 이들은 인디 영화사 ‘네 기사의 모임’을 만들었고, 함께 연출할 요량으로 <도라 헤이타>의 시나리오를 썼다. 그러나 구로사와 아키라가 <도데스카덴>의 참담한 흥행 실패로 크게 상심하자, 나머지 세 사람은 합의 하에 이 기획을 접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이제 세상을 떠난 동지들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이치가와 곤은 그 영화 <도라 헤이타>를 30년 만에 완성해냈다. 74번째 작품.
<도라 헤이타>는 마약과 매춘과 강도의 도시 호리소토에 급파된 치안감사 사무라이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고헤이타라는 이름을 두고 ‘도라 헤이타
베를린이 사랑한 감독들 [7] - 이치가와 곤
-
“애정이라는 마법이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
우연일지 몰라도, 올 베를린에서 프랑스 감독들은 그다지 환대받지 못했다. 파스빈더의 희곡을 영화화한 <타는 바위에 떨어지는 물>의 프랑수아 오종이 “평가절하됐다”는 것은, 독일 언론의 자백이기도 하다. <작은 도둑> <귀여운 반항아>의 클로드 밀러(58) 역시 신작 <마법사의 방>(La Chambre Des Magiciennes)으로 “새로움이 없다”는 매질만 당하다가, 국제예술영화평론가협회(FIPRESCI)상을 수상하는 데 그쳤다. <마법사의 방>은 그러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메시지와 디지털 카메라 촬영 등의 신기술이 결합한, 주목할 만한 영화다. 그간 캐릭터 중심의 영화를 만들어온 클로드 밀러 감독은, 이번에도 소외되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그 영혼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인류학자 클레어는 논문을 준비하다 까닭 모를 구토와 설사, 어지럼증에 시달리고
베를린이 사랑한 감독들 [6] - 클로드 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