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래도 난 새 천년의 시작을 내년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새 천년 시작하자마자 답답하고 끔찍스런 일만 계속되어 우울증 증세마저 도지는가 싶더니 이젠 같은 원고를 두 번씩이나 쓰게 되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진다. 며칠 전 원고 써달라는 전화받고 죽기보다 쓰기 싫은 것을 뭐라도 하는 게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되지도 않는 글을 적어 보냈더니 오후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내 인생의 영화’는 비디오 소개 코너인 만큼 비디오로 출시된 영화만 대상이 되지 비디오로 출시되지 않은 영화를 소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써달란다. 애당초 내가 쓰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정한 원칙도 아니며, 더구나 <TABOO>가 비록 합법적으로 출시되진 않았지만 불법적으로나마 출시(?) 혹은 카피되어 돌아다녔던 포르노 영화인데… 애당초 나는 ‘내 인생의 영화’라고 꼽을만한 영화를 고민 끝에 대충 이런 글을 써 보냈었다.
…공개적으로 밝히기에 남세스럽긴 하
[내 인생의 영화] 꿩 대신 닭이라고…, <스미스씨 워싱톤에 가다>
-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을 이끄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대표적인 여성작가 루이사 발렌수엘라의 단편 <탱고>에는 ‘소냐’라는 이름으로 낮과 밤을 달리 사는 여성이 등장한다. ‘산드라’ 아니 ‘소냐’는 탱고를 추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남성들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을 기꺼이 호흡한다. 분명 춤은 그녀에게 새로운 육체를 가져다주었고, 무대 위에서의 은밀한 교환은 그녀를 누구보다 당당하게 만든다. ‘댄스’ 영화가 스토리의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매번 끊이지 않고 만들어지는 것에는 위와 비슷한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댄스 영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은 춤을 통해 변신한다. 엇비슷한 공식이지만 변신의 과정 속에는 파트너로 등장하는 남성과의 갈등과 화해가 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춤을 통해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선다. 이 묘한 공식이 춤이라는 해방구를 통해 재현되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이다.
<살사>에서도 이러한 전개는 마찬가지다. 스토리를 놓고 보자면, 적절한 우연(알고보니
살사 댄스가 뿜어내는 열기와 쾌락, <살사>
-
‘성인용’ 애니메이션이라는 딱지의 가치는 기괴한 상상력에 의해 발동 걸린 성적자극의 강도와 비례한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양념이 폭력. 성적 자극과 폭력이 어떤 비율로 섞이느냐에 따라 요리의 맛은 천차만별이다. <헤비메탈 F.A.K.K.2>이 선택한 비법은 줄리의 말랑하고 뽀얀 살결 위에 빨간 가죽 띠를 두르고 칼을 쥐어주는 것이다. 여전사가 전면에 등장하지만 페미니즘과는 거리가 멀다. 모든 시선이 아슬아슬한 의상 사이로 향하기 때문. ‘성인용’을 딱히 원하는 고객이 아니라면 <헤비메탈 F.A.K.K.2>는 영양식이라고 보기 힘들다.
<헤비메탈 F.A.K.K.2>는 1981년 미국에서 제작되어 2천만달러의 흥행수입과 2백만개 이상의 비디오 판매고를 기록한 <헤비메탈>의 속편격인 작품. 원작은 사이먼 비슬리, 에릭 탈보트 그리고 제작자이기도 한 케빈 이스트만이 함께 만든 만화 <용광로>다. 성인 잡지 <팬트하우스>의
‘성인용’ 애니메이션, <헤비메탈 F.A.K.K.2>
-
늘 좀더 새로운 재료 찾기, 혹은 익숙한 재료를 낯설게 요리할 방법 찾기에 골몰하는 할리우드가 주목한 신소재 하나. 바로 <에어 콘트롤>이 파고든 관제사들의 세계다. <에어 콘트롤>의 시작은 96년 <뉴욕타임스 선데이 매거진>에 실린 기사로 거슬러올라간다. 다시 프레이가 쓴 그 글은 관제탑 업무와 스트레스와 불안에 시달리는 관제사들에 대한 것이었다. <히트> <파이트 클럽> 등을 제작한 중견 프로듀서 아트 린슨은 일 자체의 극적인 위험과 직업상 독특한 생활문화를 갖는 그들의 세계가 새로운 소재라는 판단에서 이내 영화화 판권을 확보했다. 인기 TV시리즈 작가 글렌과 레스 찰스 형제가 시나리오를 맡았고, 감독 제의를 받은 마이크 뉴웰은 <도니 브래스코>를 마치고 원래 쉬려던 계획을 접고 합류할 만큼 흥미를 보였다.
뉴웰의 말을 빌리자면 <에어 콘트롤>은 “비행기 충돌이 아니라 사람들의 충돌”을 다루는 코미디.
사람들의 충돌을 다루는 코미디, <에어 콘트롤>
-
-
불륜의 격정에 사로잡힌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하여 그녀의 남편을 살해한다. 그러나 일단 살인이 실행되고나자 스토리는 전혀 예측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남자는 격정과 의혹 사이의 좁은 길로 나 있는 미로에 빠져 허우적댄다. 저 여자는 혹시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나를 유혹한 것이 아니었을까? 익숙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플롯이다. 만약 <블랙잭>을 떠올렸다면 당신의 한국영화 사랑은 감동적이다. <보디히트>? 정답들 중 하나일 뿐이다. 충분치 않다. 이 플롯의 원형은 <이중배상>과 <빅 슬립>이다. 그렇다면 <이중배상>과 <빅 슬립>의 공통점은? 두 영화 모두 레이먼드 챈들러의 손끝 아니 머릿속에서 나왔다.
바바리코트깃을 세우고 줄담배를 피우며 나직한 쉰 목소리로 짧게 말하는 남자가 있다. 그는 세상에 닳고 닳은 인간이고, 사랑을 믿지 않는 냉소적인 남자이며, 돈을 받아야만 움직이기 시작하는 사설탐정이다. 그
[할리우드작가열전] 추악한 얼굴의 천사, 레이먼드 챈들러
-
20세기를 당당히 자신들의 세기로 규정한 미국인들에게 2000년 1월1일은 또다른 미국의 세기가 시작하는 시발점으로서의 의미가 오히려 커 보였다. 그래서인지 미국 전역에서 실시된 특별행사들의 주제도 대부분 그들의 위대한 역사와 밝은 미래를 주제로 하는 것들이었다. 문제는 WTO회의중에 이미 한 차례 폭동을 경험한 시애틀이 새해맞이 행사를 취소한 데 이어, 뉴욕의 타임스퀘어 또한 테러리스트들의 목표가 되고 있다는 뉴스가 그런 밝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이다. <Late Show>의 데이비드 레터먼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지난 12월29일 방송에서 타임스퀘어 행사에 참가하겠다는 관객을 향해, 새 밀레니엄의 첫 테러 희생자 후보가 된 것을 축하한다는 간담이 서늘한 농담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험악한 분위기에도 12월31일 뉴욕의 핵심인 타임스퀘어는 새 천년을 성대하게 맞이하기 위해 별러온 인파들로 인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아침 9시부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
<환타지아2000> 뉴욕 관람기
-
밀레니엄의 의미를 적어 달라는 몇몇 원고 청탁에 밀레니엄이란 밀레니엄 밀레니엄 하는 말로 한몫 잡으려는 장사꾼들이나 밀레니엄 밀레니엄 하는 말로 현실의 문제를 덮으려는 정치꾼들에게나 필요할 거라는 독설을 채워 보냈다. 21세기가 된다고 파시스트의 뇌가 갑자기 민주주의적으로 바뀌는 게 아니고 21세기가 된다고 결식아동에게 갑자기 밥이 생기는 게 아니며 21세기가 된다고 갑자기 예술에 대한 검열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면 우리가 밀레니엄이니 21세기니 하는 것에 별다른 의미를 둘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나 역시 21세기 도입부는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지난 세기말 내 몸에 침입한 독감균은 여전히 내 몸을 지배하고 있다.
기억의 범주 안에서 몸이 아파 병원에 가본 일이 한번도 없는 나로선 지난해 독감이 두 번씩이나 내 몸을 점령했다는 사실이 영 개운치 않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 식은땀을 흘리며 나는 이제는 사라진 어린 시절의 질병 공포를 떠올린다. 그 시절 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지성
-
우리 집 앞에는 굉장히 커다란 비디오대여점이 있다. 이번에 <씨네21>에서 우수 비디오숍 콘테스트를 하면서 일정한 실사기준에 의해 채점한 성적표에 따르면 바로 이 대여점이 4등이다. 좋은 비디오대여점을 가까이 두고 있는 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얼마만한 행운인지는, 이 곳에 이사온지 얼마 안돼 곧 알게됐다. 예전에 나의 비디오대여점 출입은 대체로 개봉관에서 빠뜨린 신작들을 건지자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비디오 3만편을 소장하고 있는 이 대여점을 드나들면서 목적이 다양해졌다. 개봉관에서 빠뜨린 신작영화 줍기, 내가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연보를 체크해가며 한편씩 봐치우기, 신작 위주의 개봉관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고전들 찾아 보기. 영상자료원이나 사설 시네마테크를 찾아다닐 시간 여유가 없는 나는 ‘내 인생의 영화’들 상당수를 이 비디오숍에서 빌려보았다. 물론, 70년대 이전 한국영화나 세계영화사의 고전 리스트가 몹시 빈약한 한국 비디오산업의 얄팍함을 일선의 비디오숍들이 결코
[편집장이 독자에게] 비디오숍 콘테스트를 진행하며
-
여자 친구인 마르쥬를 자동차에서 쫓아내버린 필립은 이상할 정도로 말이 없었다. 아랑은 오히려 그편이 잘 되었다 싶은 마음도 들었다. 이젠 아무 것도 신경쓸 필요도 없이 그냥 달리자. 그리고 푸른 바다 위로 떠오를 새로운 태양을 가슴에 안고, 저 추접스러운 녀석과는 영원히 바이바이 해버리자. 그런 아랑의 마음을 담은 자동차는 달리고 달려 동해안에 닿았다. 뿌옇게 밝아오는 백사장에는 드문드문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크크크큭, 드디어 도착했군.” 뒷자리에서 뒤틀린 필립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런데 말이야. 이건 뭔가 아닌 것 같아.” “뭐야? 제 시간에 도착한 것만도 감사해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 대꾸하던 아랑은 역겨운 입김이 귀밑으로 스며들어오는 걸 느꼈다. “아니야. 내가 원했던 것은 말야. 새 천년의 첫 태양을 보면서 첫 번째 섹스를 하는 거야. 그런데 이게 뭐냔 말이야. 네 녀석 때문에 계집년을 놓쳐버렸잖아.” 아랑은 벌컥 화를 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소리야?
[이명석의 씨네콜라주] 태양은 아득히(하)
-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은 내 주변에 새로운 영화 패거리들을 끌어 모으는 또 하나의 좋은 바람잡이가 되었다.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명보극장엔 의욕에 찬 젊은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는데 조감독이었던 배창호와 신승수는 물론 당연했고 재야 운동권의 장선우(본명 장만철)가 <바람불어 좋은 날>을 보고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결심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는 서울고등학교 후배로 내동생 영호와 동기동창이었다. 또 이미 영상시대에서 인연을 맺었던 김홍준이 매일 빠지지 않고 극장에 들리더니 서울대학교의 영화 서클 얄라셩의 멤버 박광수 등을 바람몰이로 몰아와 그때 인사를 나누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는 훗날 프랑스에서 만나 내 조감독이 되었다. 그들의 8mm영화를 본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다. 서툴면서도 신선한 아마추어의 비린내 같은 느낌은 훗날 내 영화 <바보선언>의 중요한 아이디어가 되었다.
편집광적 기질이 다분한 김홍준은 틈만 나면 어두운 극장 안에 잠입해
이장호 [39] - 이장호 사단이 형성되다, <바람불어 좋은 날>
-
영원한 ‘벤처 감독’ 장선우의 성행위예술이 스크린 위에 펼쳐지기 시작하자, 아줌마는 공연히 지 꼬라지가 돌아봐진다.
축 늘어진 어깨 밑에, 난데없이 펑 솟아올랐다간 또 하염없이 늘어지는 남산 밑에, 좆도 가진 거 없으면서 무모하기 짝이 없는 비옥한 남쪽나라가 반도처럼 펼쳐지는 아줌마의 대동여지도는, 그로테스크할지언정, 결코 ‘거짓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은막 위에 어른거리는 저 그로테스크한 그림자들도 거짓말이 아닐 수 있겠네.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거시기에 “숟가락으로 퍼낼 만큼 물이 고였다”는 Y의 독백 앞에서, 결코 젖지 않는 방수형 거시기의 소유자인 아줌마의 열등감이 고개를 들고야 만다. 날 때부터 방수형은 아니었다. 내 죄 아닌 니 죄에 얽매여…. 어쨌든 아줌마라면, 거시기에 “물이 고인 것으로 착각할 만큼 바세린을 발랐다”라는 대사가 더 실감났을 거다. 도대체 거시기가 무슨 그릇인 양 물구나무 서지 않는 다음에야, 아무리 한참 물오르는 이팔청춘이라도 퍼낼 만큼 물이
[아줌마, 극장가다] 포르노, 아줌마도 한다,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