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센스>를 찍는 동안 배우 오아연은 방전된 여자를 연기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했다. <곤지암>에서 공포 체험단의 막내였을 때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의병이라는 정체를 숨기고 게이샤로 위장했을 때도 이런 아이러니는 경험하지 못했다. 한순간 화면에 생기를 불어넣고 퇴장하는 것과 달리 주인공으로서 극을 이끈다는 건 숨을 죽인 채로도 매 순간 새로워져야 하는 일이었다.그가 첫 주연작에서 분한 유나라는 인물은 빚만 남기고 병상에 누운 아버지, 무속신앙에 기대는 어머니를 뒀다. 그러다 일터에서 수상한 웃음치료사를 마주한다. 무표정의 유나가 얼굴 근육을 다시 쓰기까지, 배우 오아연은 무기력의 정도를 고민했다. 모든 답은 동료들 덕분에 찾았다는 그는 마지막 장면에서 온전히 유나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결국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한점의 후회도 남지 않는다고.
- 첫 주연작 개봉을 오래 기다려왔을 것 같다.
<넌센스>로 처음 극을 이끌어보는 경험을 했다. 이 정도의 책임감과 긴장감도 처음이다. 그만큼 많은 분들에게 그동안 보여주지 못한 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 설렌다.
- 영화 <곤지암>,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작지만 선명한 배역을 소화했다. 반대로 <넌센스>의 유나는 회색빛 주인공이다.
조단역을 할 때는 캐릭터 플레이에 집중하다 보니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편이다. 하지만 주인공으로서 유나는 독특한 행동을 잘 하지 않다 보니 배우로서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불안했다. 만약 누군가가 영화관이 아닌 곳에서 건너뛰기 버튼을 누르며 <넌센스>를 본다면 내 표정이 10분 뒤에도, 그다음 10분 뒤에도 똑같아 보이지 않을까 싶을 만큼. 그렇게 흔들릴 때마다 감독님과 박용우 선배님이 ‘좋았어, 괜찮아, 이대로 하면 돼’라며 중심을 잡아주셨다. 혼자서는 절대로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 관객은 프로페셔널한 손해사정사로서 유나를 처음 만난다. 굽 있는 구두를 편한 운동화로 갈아 신고 고객을 만나러 가는 모습이 흥미로웠는데, 그외에도 유나를 설명하기 위해 마련한 디테일이 궁금하다.
영화에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유나에게 식이장애가 있다고 설정했다. 중간중간 명치를 만지는 행동을 자주 했다. 외형적으로도 많이 피폐해 보이길 바라서 체중을 5kg 감량하고, 의상도 최대한 볼품없이 입었다. 유나에게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만 남아 있을 뿐, 삶을 지탱하는 믿음이 결여된 상태이니 일 외에는 열과 성을 쏟을 에너지가 없을 테니까.
- 유나가 신발을 바꿔 신듯 집에서 촬영 현장으로 나가기 전 거치는 루틴이 있다면.
<니모를 찾아서>에서 이름을 따온 반려묘 니모에게 꼭 인사를 하고 나간다. 고양이가 집 안 어디에 숨어 있든 일단 찾아내 눈을 맞추면 ‘그래, 내가 널 먹여살려야지!’ 하게 된다. (웃음) 그럼 기분이 좋아진다.
- 반면 유나는 엄마(오민애)로 인해 집에서도 편치 못하다. 그가 유일하게 짜증과 원망을 쏟아내며 표정을 드러내는 인물이 엄마이기도 한데, 모녀 사이를 표현할 때 더 욕심낸 부분이 있나.
유나가 엄마에게도 살가운 딸은 아니지만 그나마 엄마와 있을 때는 밖에서 타인과 있을 때보다는 친밀해 보여야 했다. 엄마에게 감정적으로 쏟아내는 장면은 오히려 편한데, 엄마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 그 미묘한 간극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오민애 선배님의 눈을 보기만 해도 자연스러워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걱정 인형처럼 ‘어떡하지’를 연발하는 나를 매번 다독여주셨다.
- 순규 역의 박용우 배우와는 또 다른 케미스트리가 필요했다. 순규를 의심하다가 그에게 기대고 싶어 하는 유나의 심리가 어렵지는 않았나.
유나는 순규를 믿기보다 순규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믿고 싶었던 게 아닐까.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건들이 순규를 향한 의심을 부러뜨렸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유나가 순규를 100% 신뢰하지는 않기에 결국 경찰에 정보를 전할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 유나는 순규에게 자신이 처한 “긴 농담 같은 상황”을 터놓은 뒤 잠시 미소를 되찾는다. 카메라는 이 밝은 표정을 아주 잠시 비출 뿐인데, 이때 유나가 어떤 얼굴이길 바랐나.
유나는 순규를 계속해서 의심해야 하는 상태이니 그 앞에서 항상 긴장한다. 그런데 순규에게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만큼은 순규가 아닌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 장면에서 처음으로 유나는 자기 자신에게 향해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후련해지는 표정이기를 바랐다.
- 그 후 펼쳐지는 진실 게임 신은 무척 밀도 높은 감정을 요하는데, 단 두번의 테이크 끝에 오케이를 받았다고.
유나와 순규가 진실 게임을 할 때 사용한 장난감 인형이 예상치 못한 시점에 튀어오르려고 해서 모든 스태프가 다시 찍어야 하는 게 아닌가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그때 용우 선배님이 집중력을 놓지 않은 덕에 이 공간에 선배님과 나만 있는 것처럼 느껴지더라. 시간의 제약이 컸지만 그 힘에 이끌려 몰입한 기억이 난다.
- 라스트신에서 유나는 아빠에 관한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희비가 뒤범벅된 채로 석양을 마주한다. 어떤 결말이라 여기며 촬영했나.
그전까지 유나의 원동력은 부모를 향한 원망과 책임감이었는데, 마지막에는 그것마저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증오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나 자문하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터져나오는 유나의 웃음은 순규가 치료에 성공한 결과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장면 촬영에 앞서 순규와 대면한 다른 배우들의 웃음을 미리 찾아봤다. 그 느낌이 내게도 묻어나기를 원했다. 감독님도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하셨고, 그 순간에는 내가 진짜 유나가 된 것 같아서, 어떠한 아쉬움도 없는 장면이다.
- 배우로서 기대하는 올해의 라스트신이 있다면.
<넌센스>의 흥행과 더불어 많은 분이 ‘오아연’이라는 배우를 다시금 상기해주셨으면 한다. 내년에는 유나와 전혀 다른 결의 배우 지망생 캐릭터를 맡은 영화 <메소드연기>로 인사드릴 예정이니 기대해주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