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겐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자리한 공간을 짚어내고, 세상의 공허함을 발견하는 환각과 다름없는 능력이 있다. 나는 그 지점이 매우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데드라인>과 인터뷰에서 마샤 실린슈키 감독이 전한 말이다. 그는 자신의 장편 데뷔작 <다크 블루 걸>(2017)에서도 세계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에 일찌감치 주목한 바 있다. 다만 <다크 블루 걸>에선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촬영 기법을 택했다면 <사운드 오브 폴링>은 소녀들의 시점숏을 경유해 현실, 환상, 꿈을 넘나드는 이미지를 기묘하게 결합한다. 이 이미지의 총합이 가리키는 것은 세대별 여성이 경험한 학대와 억압의 기억, 죄책감, 생존의 위협, 갈망과 같은 극한의 감정이다.
1910년대를 살아가는 알마(하나 헤크)는 금발의 개구진 소녀다. 자신과 비슷한 외형에 똑같은 이름을 지닌 소녀가 죽은 듯 소파에 앉아 있는 사진을 통해 알마는 죽음이란 개념을 처음 접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알마는 전쟁의 상흔과 희생된 여성들을 차례로 목격하며 죽음의 실체를 깨닫는다. 한편 에리카(레아 드린다)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40년대를 살아가는 인물로 자신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1980년, 동독에서 살아가는 앙겔리카(레나 우르첸도브슈키)는 자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내보인다. 삼촌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인해 자괴감을 느끼고 스스로를 부정하는 단계에 이르기도 한다.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이후 2010년대를 살아가는 렌카(라에니 가이젤러)가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렌카는 이사를 간 후 종종 감지되는 불쾌한 시선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한다.
영화에선 네 소녀의 삶을 연대순으로 서술하는 대신 교차편집으로 번갈아 보여준다. 수십년의 시간차를 지닌 알마, 에리카, 앙겔리카, 렌카의 삶의 형태는 전혀 다르게 묘사되지만 이들이 처한 불합리한 상황과 이것이 야기한 여성들의 트라우마는 자주 오버랩된다. 시골 농촌의 노예제도,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적 학대, 강제 불임 수술, 매춘과 같은 사건들은 세대를 이어 후손들에게 이어진다. 계급이 사라졌을 지라도 가부장적 세계의 규칙은 잔재하며 여성들을 향한 잔혹한 행위는 여전히 반복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샤 실린슈키 감독은 타협 없이 상황을 묘사하고 고발한다.
농장의 하녀, 노동자 등 사회적 지위가 낮은 인물들이 영화의 중심에 선 이유는 마샤 실린슈키 감독이 발견한 한장의 사진에서 비롯됐다. 공동 각본가인 루이제 페터와 독일 함부르크의 엘베강 근처 농장에서 여름을 보내던 그는 우연히 1920년에 찍힌 사진을 손에 넣었다. 사진 속 세 여성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고 서 있었는데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구도의 모습이었다. 마샤 실린슈키 감독과 루이제 페터는 100년 전 같은 자리에 서 있었을 여성들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며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에 관해 말이다. 실린슈키 감독은 평소 열악한 환경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농장 노동자를 비롯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사진이 촉발시킨 상상과 100여년의 독일 역사의 자료 조사를 거쳐 알마, 에리카, 앙겔리카, 렌카라는 인물을 완성했다.
실린슈키 감독은 많은 역사 기록에서 여성들의 삶은 제외되어 있고 사진 속 세 사람의 정체도 결국 알아낼 수 없었다고 전한다. <사운드 오브 폴링>은 빈칸으로 남겨져 있던 여성들의 서사를 가감 없이 채워넣는다. 어머니, 할머니를 포함한 주변 여성들이 겪는 핍박을 목도해온 소녀들은 그것이 본인과 자식, 손녀에게 대물림되는 상황을 지켜본다. 그들은 명백한 시대의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목격자다. 영화는 그 지점을 놓치지 않는다. 역사가 도외시했을지언정 여성들은 세대를 거쳐 공유하는 트라우마와 상흔의 기억을 상기하고, 증언한다. 그렇게 자신을 가시화한다. 여성들의 흉터를 통해 이들의 존재감과 욕망을 보여주고자 한 실린슈키 감독의 도발적인 시도는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다. 앞으로 실린슈키 감독이 보여줄 여성 캐릭터와 그들의 행보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꿈결 같은 이미지”, 영감의 출처는
마샤 실린슈키 감독은 시각적 요소를 중심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창작자다. 미국 출신의 사진작가 프란체스카 우드먼으로부터 <사운드 오브 폴링>이미지의 영감을 받았다고 실린슈키 감독은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우드먼은 1950~80년대에 활동한 젊은 여성 사진작가인데 주로 흑백필름을 활용해 자신을 모델 삼아 여성성, 존재의 불안정함 등의 주제에 주목했다. 우드먼의 사진에 드러난 “유령 같으면서도 명료한, 꿈결 같은”(마샤 실린슈키) 이미지에서 받은 영감을 영화로 구현하기 위해 실린슈키 감독은 파비안 감퍼 촬영감독과 다양한 기술적 논의를 이어갔다. 여러 종류의 렌즈를 사용한 것은 물론이고 핀홀 카메라까지 활용해 <사운드 오브 폴링>의 여러 장면을 구현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