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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그 눈빛, 그리고 그 입꼬리 – 제시 버클리의 배우론

지금 제시 버클리는 <햄넷>으로 무수한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독식 중이다. 또 시상식 시즌과 <브라이드!>의 개봉이 겹쳐 어제는 <햄넷>으로 로스앤젤레스 극장에서 상을 받고 오늘은 런던에서 <브라이드!>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등 세계 각국에서 신출귀몰 중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그의 수상 소감과 화보, 인터뷰 기사를 하나씩 챙겨보던 중 문득 제시 버클리가 동시대 지구에서 상을 받고, 현재에 관해 이야기하는 일이 생경해졌다. 연기와 실제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햄넷> 속 제시 버클리가 분한 16세기 말, 17세기 초의 여성 아녜스에게 몰입했다는 뜻이 아니다. 여태 스크린과 TV 속 제시 버클리는 당대(當代)의 사람이었던 적이 드물다. <X를 담아, 당신에게>나 개봉을 앞둔 <브라이드!>는 1차 세계대전 이후가 배경이다. <주디> <미스비헤이비어> 등의 영화는 1960, 70년대를, <체르노빌>은 1986년을 다룬다. 2020년대를 다룬 <로스트 도터>에서조차 그는 레다(올리비아 콜먼)의 20년 전 과거를 연기했다. 두편의 호러, <이제 정말 끝낼까 해>나 <멘>에선 묘하게 지구의 자장을 비껴난 차원의 현실을 살았고,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공개한 단편 <유령을 찍는 법>에선 아예 사후 세계를 누볐다. 다시 말해 배우 제시 버클리는 관객과 다른 시공간에서 숨을 쉬어왔다.

비전형적인 여성을 대표하다

<로미오와 줄리엣>

제시 버클리는 영국의 왕립연극학교(Royal Academy of Dramatic Art, RADA)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비비언 리와 이멜다 스탠턴, 앤서니 홉킨스앨런 릭먼이 졸업한 저명한 드라마 스쿨이다. 따라서 버클리 또한 선배들처럼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조지 버나드 쇼, 나폴레옹 침공 시절의 19세기 초 러시아와 체르노빌 원전 참사가 발생한 20세기 말 소비에트연방을 오가는 데 무리가 없다. 또 버클리는 아일랜드 억양이 강한 배우지만 런던과 글래스고, 미국 중서부의 악센트까지 모두 마스터한 테크니션이기도 하다. 제아무리 배우가 시대와 국적을 초월해도, 시대극(Costume Drama)은 캐릭터의 궤적과 이를 연기한 배우 모두에게 일정한 틀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대극 속 버클리(의 연기)는 정전을 파괴한다. 그게 시나리오든 희곡이든, 버클리의 지문(地文)에는 자기만의 주석이 덧붙는다.

영국 국립극단이 제작한 사이먼 고드윈 연출의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2021)이 일례다. 조시 오코너가 로미오, 제시 버클리가 줄리엣을 연기하는 이 연극은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로부터 한순간도 벗어나지 않는다. 줄리엣은 변함없이 가문의 원수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지고 끝내 자결한다. 하지만 버클리의 줄리엣은 전에 없던 방식으로 움직인다. 가령 관객은 줄리엣의 유명한 2막 독백인 “오 로미오, 로미오, 왜 그대는 로미오인가요? 아버지를 부인하고 그대 이름을 거부해요”*에 거스를 수 없는 숙명 앞의 한탄을 기대할 터다. 하지만 버클리는 이 대사를 기가 차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뱉는다. 이 줄리엣에게 운명의 장난은 자꾸 풀려 거추장스러운 신발끈 정도의 하중이다. “번개처럼 발 빠른 말들이여, 질주하라”로 시작하는 3막의 독백은 또 어떠한가. 버클리는 첫날밤을 기다리는 줄리엣의 애타는 마음을 주술을 외듯 낮게 읊조린다. 흡사 줄리엣이 우주를 겁박하여 양과 음의 원리를 주재하려는 듯 보인다. 이처럼 그는 오랫동안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도상이 굳어진 줄리엣을 자신의 공력으로 새로 쓴다. 버클리의 줄리엣은 운명을 탓하지 않는다. 덕분에 관객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줄리엣의 이면을 고민할 수 있다. 귀족가의 영애라는 신분이 줄리엣의 인생을 구성하는 여러 정체성 중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면? 줄리엣이 첫사랑의 신열에 그저 타올라 짜증을 이기지 못해 폭주하기로 결심했다면? 이는 버클리가 줄리엣보다 5년 앞서 연기했고, 줄리엣보다 300살쯤 어린 인물인 <전쟁과 평화>의 마리야 볼콘스카야를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톨스토이의 원작 소설과 마찬가지로 드라마 속 마리야는 오빠 안드레이를 존경하고, 폭압적인 아버지에게 굴종하는 여성이다. 하지만 버클리는 그 안에서도 새로운 한끗을 찾아낸다. 폭발의 순간은 쉽게 허락되지 않았지만, 버클리표 마리야의 기저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용암이 들끓고 있었다.

<로스트 도터>

<로미오와 줄리엣> <전쟁과 평화>는 제시 버클리가 영문학의 유산을 자기만의 관점에서 전복한 사례다. 이후 제시 버클리는 다양한 시대극에서 숫제 인습을 거부하는 여성들을 독점했다. 그는 <전쟁과 평화> 다음으로 선택한 드라마 <타부>(2017)나 에마 모팻의 단편영화 <워털루에서의 전투>(2019)에서도 19세기의 여성을 연기했다. <타부> 속 제시 버클리가 분한 로나는 주인공 제임스 딜레이니(톰 하디)의 계모이자 자신의 야망만큼 상대로부터 당한 만큼 앙갚음해야 직성이 풀리는 배우다. <워털루에서의 전투>는 워털루 전투 직후 영국군의 시쳇더미에서 군복을 입고 무장한 채 사망한 여성들이 많이 발견됐다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출발한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버클리는 성별을 감춘 채 전장에 나선 동성 파트너를 찾아 나섰다가 그 자신도 남성 군인으로 위장해 프랑스군을 사살하려는 여성 엘런으로 등장한다. 20세기 초반으로 넘어오면 <X를 담아, 당신에게>의 로즈가 기다리고 있다. 영국의 신실한 프로테스탄트 마을 리틀햄프턴에선 아일랜드에서 이사 온 로즈가 모두의 눈엣가시다. 늘 머리는 산발인 데다 남편이 죽고 난 뒤 흑인 남자 친구와 동거하며 마을에 파란을 일으킨다. 입엔 걸쭉한 욕지거리나 파인트 사이즈(568ml)의 맥주를 달고 살아 순경으로부터 “여자가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핀잔을 듣는다. 버클리는 <라스트 포스트>(2017)에서 우아하고 순진한 군인의 아내를 연기하게 되자 “분홍색 매니큐어를 칠하는 여성을 연기한다는 사실에 익숙해지기까지 몇주가 걸렸다”라고 웃어 넘길 정도로 중산층 여성에게 요구되는 여러 가치를 연기하는 데 관심이 없다. 그가 연기한 여성들은 의외로 저항의 기치를 높이 드는 투사가 아니다. 다만 시대와 불화한 채 공동체와 거리를 둔 자신을 수치스러워하지 않을 뿐이다. 다수 속에서 이물질처럼 존재하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으며, 사회의 규준에 맞춰 스스로를 검열하는 데 에너지를 쏟기보다 자신의 길을 가는 데 몰두한다. 어쩌면 차라리 ‘너드’에 가까운 인물들인지도 모른다. 버클리가 연기한 시대극 속 여성들은 배역을 응시하는 배우의 태도와 맞물며 서로를 날아오르게 만든다.

이는 버클리가 분한 비교적 현대의 여성들에게도 통하는 자질이다. <로스트 도터>의 레다는 분명 두딸을 사랑하지만 질식을 부르는 육아의 부담을 저버리고 몇년간 혼외 연인과의 가출을 택한다. 레다는 가정을 등진 시기 동안 학자로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만 자신의 선택을 변명하지 않는다. 버클리가 주지하려는 여성성은 페미니즘적 주제를 장르영화로 시청각화한 <멘> <위민 토킹> <와일드 로즈> 등에서도 형형하다. 이 기사에선 다른 작품들에 비해 언급 기회가 적은 조 마칸토니오의 단편영화 <홍등>(2017)까지 언급하고 싶다. 버클리는 이 작품에서 홍등가의 성노동자 켈리를 연기한다. 자신이 돈을 벌면 포주인 연인과 새 삶을 꾸릴 수 있다고 믿는 켈리 앞에 오랜 고객 벤이 안정된 미래를 약속하며 청혼해온다. 직관적으로 비유하자면 이 작품에서 버클리의 연기는 <무뢰한>에서 전도연이 열연한 김혜경과 맥을 같이한다. 누군가는 하류 인생이라고 비난하지만 이들은 삶에 닳지 않았다. 고난 속에서도 어떻게든 자기 본위로 삶을 채비하려 분투하고, 낯선 선의 앞에 일순간 흔들리다가도 자기 연민에 함몰되는 스스로가 혐오스러워 감정의 회로를 차단한 채 노동에 몰두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의 전구에도 환희와 동경의 빛이 반짝이기 마련이다. 버클리는 12분짜리 영화에서도 그 누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눈빛에 담아낸다.

그 눈빛, 그리고 그 입꼬리

<햄넷>

12살의 제시 버클리는 여자 기숙학교에 다니며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학교에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토니 등 주로 남성주인공을 연기하며 재능을 발산했지만 교사인 수녀들은 끊임없이 그를 “정숙하라”, “남자보다 똑똑한 척 굴지 말라”라며 단속했다. 음악과 연기를 모두 소화하는 종합 예술인이 되고 싶었지만, 21세기 초 아일랜드엔 유사 이래 최대 경제 호황이 닥쳐 의사나 변호사가 장래희망이 아닌 청소년을 루저 취급했다. 마침 예술학교 입학에 좌절한 버클리는 홧김에 뮤지컬 <올리버!>의 주인공을 뽑는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인 <아이드 두 애니싱>(I’d Do Anything)에 출전한다. 를 통해 생중계된 이 방송에서 버클리는 심사위원들로부터 “숙녀답지 못하다”는 여성혐오적 심사평을 받았지만 끝내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우승 실패를 아쉬워한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오페라의 유령> <캐츠>)와 프로듀서 캐머런 매킨토시는 버클리에게 RADA의 4주 셰익스피어 코스를 제안한다. RADA의 단기 수학을 마친 이후 버클리는 심기일전해 정식 과정에 입학했고 2013년 졸업했다. 이후 그의 셰익스피어 전성시대가 펼쳐진다. 주디 덴치와 <겨울 이야기>에서 공연했고, 주드 로와 <헨리 5세>에서 호흡을 맞췄다. 그리고 2016년, 의 <전쟁과 평화>에 캐스팅되며 그에게도 ‘필모그래피’가 생겼다. 2026년 3월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을 생각하면 버클리는 매체데뷔 10년 사이에 수많은 족적을 남긴 셈이다.

<햄넷> 속 제시 버클리의 연기가 수훈받아 마땅한 이유는 단지 뛰어나서만은 아니다. 지난 10년간 버클리가 스크린과 TV에서 축적해온 여성들의 총람이 응축된 연기이기 때문이다. 아녜스가 마녀의 자식이라는 마을 사람들의 낙인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걸을 때, 참척지변 앞에 신경계가 끊어질 듯 절규하다가도 마침내 애도가 가능한 심신에 도달해 슬며시 미소 지을 때. 관객은 거짓말을 전혀 할 줄 모르는 버클리의 눈빛에 마음을 내주고 치우쳐 상행하는 버클리의 입매에 도리 없이 항복한다. 버클리의 연기를 분석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신체 기관이 이 입꼬리다.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오른쪽 입매가 왼쪽에 비해 훨씬 깊이 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버클리가 오른쪽 입꼬리만 올리며 아랫입술을 내리고 두 앞니를 드러내면 이는 필시 유혹의 뉘앙스를 함유한다. 아녜스가 셰익스피어(폴 메스칼)와 처음 대화할 때, 줄리엣이 로미오를 처음 알아봤을 때, 레다가 혼외 연인 하디(피터 사즈가드)를 처음 만났을 때. 버클리는 어김없이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씩 웃는다. 그리고 현실의 버클리는 생후 8개월 된 첫딸을 떠올리기만 해도 오른쪽 입꼬리가 자연히 올라간다. 임신 6주차부터 <햄넷>을 촬영하기 시작한 그는 지난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BAFTA) 무대에 올라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남겼다. “만사에 불복종하고 세상에 호기심을 품은 여성이 될 수 있도록 독려해준 매니저, 고맙습니다. (중략) 그리고 딸아, 네가 한명의 젊은 여성으로서 그 미치고, 복잡하고, 거친 야성 그대로 세상에 속할 수 있도록, 엄마는 앞으로도 세상의 틀에 복종하지 않을게.” 제시 버클리가 지난 10년간 새긴 여성들의 얼굴이 단절 없이 이어지리란 예감이 든다.

* 기사 속 <로미오와 줄리엣> 대사는 모두 <로미오와 줄리엣>(최종철 역, 민음사 출간)에서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