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의 감독이기도 한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위원장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왼쪽부터). Ⓒ정상진
지지난해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한국과 일본 영화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장손>의 제작과 개봉 과정을 술회하며 은근히 한국영화계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본 학생들은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를 비롯한 각종 기관의 제작 지원 방식에 관심을 가지며 부러워했다. 하마구치 류스케, 미야케 쇼 등 수많은 젊은 세대 감독들이 약진하는 일본영화계를 흠모하고 질투하던 나로서는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듣자 하니 일본은 유니재팬과 일본영상산업진흥기구(VIPO) 같은 기관들이 있지만 제작 지원은 전혀 없다시피 해서 제작비 마련이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만들고 나면 다양한 미니시어터가 있어 개봉은 비교적 수월한 편이라 했다. 나는 반대로 말했다. 한국에서는 다양한 제작 지원이 존재하기에 많은 독립영화가 만들어지지만 개봉하는 영화는 아주 소수일 뿐이라고. 영진위 지원 중심으로 운영되는 한국의 독립영화와, 미니시어터를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일본의 독립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한일영화관의 여행’ 일정으로 도쿄를 방문했다. 일본 개봉을 목 빠지게 기다려온 나로서는 설레는 일이었고 일본 관객들이 <장손>을 어떻게 봐줄지 그리고 일본영화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했다. 첫째 날에 극장 스트레인저에서 개막 행사와 첫 상영을 마치고, 다음날 오전 일본 커뮤니티시네마센터의 이와사키 유코의 안내로 시부야 인근의 미니시어터 투어를 진행했다. 제일 처음 방문한 ‘유로 스페이스’는 시부야에서 상징적인 극장으로 상영뿐만 아니라 배급과 제작까지 지속해오고 있다. 그들은 일본의 새로운 감독을 발굴하고 양성한다는 멋진 자부심을 보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방문한 ‘이미지 포럼’은 40년 동안 ‘이미지 포럼 페스티벌’이라는 유명한 실험영화제를 운영하며 가장 독창적이고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상영하고 있었다(5시간이 넘는 <해피 아워>는 여기서 단관 개봉했다). 그리고 2층에는 교육기관을 만들어 창작자를 양성하고 있는데 극장 디렉터인 가도와키 겐지도 이곳에서 실험영화를 전공했다고 한다. 시부야역 빅카메라 건물에 자리한 ‘르 시네마’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곳으로 수준 높은 예술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마치 씨네큐브를 연상케 하는 르 시네마는 접근성이 좋아 많은 관객들로 붐볐다. 약 두 시간 동안 대여섯곳의 미니시어터를 방문했는데, 모든 극장이 각자 다른 개성을 지녔고 그 극장의 특성에 맞는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좀처럼 영화가 겹치는 일이 없기에 시부야의 상당히 많은 미니시어터들은 서로 불필요한 경쟁 없이 각자가 선호하는 영화를 틀고 있었다. 관객은 자신의 취향껏 극장을 선택하고 이들의 충성스러운 관객이 되어 반대로 극장을 유지하게 하는 구조였다. 단관 개봉이라 해도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다. 도쿄 개봉으로 시작해 각 지방으로 순회상영이 이어지고 만약 독립영화라고 하더라도 입소문을 크게 타기 시작하면 멀티플렉스로 확대되어 100만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사무라이 타임슬리퍼>). 일본은 미니시어터를 중심으로 평등한 배급과 상영 기회를 제공해 끊임없이 새로운 세대의 감독들을 길러내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단적으로 말하면 독립영화계는 영진위의 지원에 기생하고 있다. 영진위의 지원 없이는 제작도 배급도 상영도 어려운 실정이다. 매년 영화제의 관객은 늘어나지만 독립영화 개봉 관객수는 줄어들고 있다. (나를 포함해) 독립영화인들은 영진위의 지원에 안주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영진위로부터 독립할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는 우리의 존엄을 지키기 위함이고 미래세대를 위한 선배의 책임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동료들이 하고 싶은 영화를 하며 먹고살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한편 상업영화계는 견리망의(見利忘義, 눈앞의 이익을 보면 의리를 잊음)에 빠져 더 이상 영화에 미래는 없다고 한탄한다. 그러다 최근 2년 만에 천만 영화가 나왔다고 다시 희망을 이야기하는데, 나는 이를 신기루로 볼 뿐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위원장과 일정을 함께했다는 것이다. 아흔에 가까운 연세에도 카메라를 들고 여전히 한국영화를 걱정하고 있다.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를 보면 수많은 유명 인사가 나온다. 하지만 나는 엔딩 장면에서 극장 객석에 앉은 김동호 위원장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한국영화의 미래를 묻고 있다. 김동호 위원장은 임권택 감독을 비롯한 한국의 수많은 감독을 세계로 소개하며 한국영화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리고 한국영화계의 선배로서 필요할 때는 궂은일을 맡아 희생해왔다. 그런데 그 혜택을 받은 수많은 영화계 선배들은 지금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언론에서는 ‘넥스트 봉준호’를 찾으며 지난 몇년간 칸영화제에서 한국영화를 볼 수 없는 상황을 걱정스럽게 보도한다. 그 이유가 비단 한국영화의 질적 하락만의 문제일까. 물론 나도 정답을 모르거니와 영화제의 이름값으로 영화의 가치를 판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구로사와 기요시의 후배와 제자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며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지속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영화의 문제는 진정 넥스트 봉준호의 부재 때문일까. 넥스트 봉준호를 찾는 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그렇다면 ‘넥스트 김동호’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넥스트 봉준호를 위해선 먼저 넥스트 김동호가 필요한 건 아닐까.
이 글은 아주 편협하고 치기 어린 한 창작자의 단편적인 고찰이다. 반박 시 여러분 말이 맞고 나 또한 말이 앞서지 않게 다음 영화나 잘 만들겠다. 다시 돌아와서, 이번 한일영화관의 여행은 우물에 갇혀 있던 미숙한 나의 식견을 넓혀준 감사한 행사였다. 이런 귀한 자리를 마련해준 한국예술영화관협회와 일본 커뮤니티시네마센터 관계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특히 이번 행사를 주도한 주희 아트나인 이사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그녀의 헌신 덕에 행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민간으로 시작된 이 행사가 다음번에는 영진위의 국제 교류 사업으로 다양한 국가에서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