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얘기 좀 해봐요(Entertain me).” 조나 힐의 테라피스트이자 미국의 유명 정신과 의사 필 스터츠는 내담자가 자리에 앉자마자 말한다. “죽는소리하지 말라”는 농담 섞인 진담도 그의 입버릇이다. 직업이 직업인 만큼 세상 하직하고 싶다는 사람들을 지겹게 상대한 탓이다. 비극에 귀 기울이기에 앞서 당장 실천 가능한 수칙들을 알려주는 상담 기법으로 많은 환자를 돌본 그와의 인연을, 조나 힐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 옮겼다.
그런 의미에서 <스터츠: 마음을 다스리는 마스터>(2022)는 조나 힐이 자신의 오랜 우울을 카메라 앞에 솔직하게 꺼내는 고백록과 다름없다. 스케이터들의 거리 문화를 동경하던 유년기를 회상한 연출 데뷔작 <미드 90>(2018)에서처럼 자전적인 요소를 한껏 갖춘 차기작인 셈이다. 공동 각본가, 제작자, 그리고 주연배우로 참여한 <유 피플>(2023)도 작가의 ‘정체성’을 반영한다는 면에서 그 맥락을 이어간다. 거기서 조나 힐은 흑인 여자 친구와 결혼하기 위해 그녀의 가족과 어우러지려는 백인 남성을 연기했다. ‘깨어 있는’ 힙합 팟캐스트 진행자여도 사적인 영역에 들이닥친 문화적 충돌에는 어찌하지 못한다. ‘인종 갈등판 <위험한 상견례>’라 불러도 무방한 이 작품이 호평과 혹평을 두루 받은 까닭은 하나다. 불편한 상황을 반복적으로 밀어붙여 기어코 구사해낸 코미디. 바로 그 점을 향한 반응이 나뉘었다. 캔슬 컬처의 명암을 돌이킨 신작 <부메랑>도 그 갈림길을 피해가기 어려울지 모른다. 미투 이후를 살아가는 유명인의 불안이 엄살 아닌 것으로 비치려면 더 진정성 있는 농담이 필요할 테니까(참고로 조나 힐에게도 사생활 논란이 있었다. 그의 전 애인이 그와 나눈 문자메시지를 공개하며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폭로했다).여기까지 살폈을 때 선명해지는 건, <미드 90>과 <부메랑>사이에 낀 감독 조나 힐의 두 번째 영화 <스터츠: 마음을 다스리는 마스터>가 그의 다음 작법을 예고했다는 짐작이다. 신음하는 대신 웃겨달라는 의사의 부탁에 조나 힐은 직업인으로서도 응했다. 그는 각본 안에서 문제를 마주하되 너무 심각해지지 않았다. 물론 코믹한 제스처부터가 회피성으로 읽히기 좋다. 할리우드의 백인 남성 스타라는 특권적 위치에서 나이브함이 비롯되었다고 비판한대도 말이 된다. 다만 조나 힐 유머의 뿌리에는 언제나 자조가 배어 있었다. 그건 창작자로서의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다큐멘터리에서 의사도 조언하지 않았나. “연약한 자신을 감추고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공허를 도화지로, 허기를 먹이로, 약점을 무기로 전환한 이상 조나 힐의 작업은 지속될 전망이다. 일단 그의 후속 연출작 <컷오프>는 부모로부터 재정적 지원이 끊긴 부잣집 남매 이야기라고 한다. 어떤 특혜와 그로부터의 단절을 유희 거리로 삼는 태도는 이제 감독 조나 힐의 트레이드마크로 거듭나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