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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식물이 인간을, 인간이 식물을 수용하는 시간 - <침묵의 친구> 일디코 에네디 감독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사는 일디코 에네디 감독의 집은 건물 4층에 위치한다. 따로 정원이나 텃밭은 없다. 소박한 서재를 넓히는 거대한 창문이 있을 뿐이다. 이맘때면 야생 벚나무 한 그루가 투명한 캔버스를 물들인다고 한다. “구름 위에 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벚꽃이 만발한다.” 실내에서도 하늘을 누빌 수 있는 방에서 나와 서울에 도착한 감독은 다행히 꽃길이 내다보이는 숙소에 머문다며 안도했다. 그를 지난해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또 한번 내한하게 한 영화 <침묵의 친구>는 그런 식으로 인간과 친밀하게 지내는 식물들을 가리킨다.

- 지난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한국 관객들과의 추억은 어떻게 간직하고 있나.

첫 부산 방문이었다. 굉장히 단기간이었지만 여러 영역의 영화계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 관객은 영화를 향한 존경심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체감했다. <침묵의 친구>를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상영했을 때는 유머러스한 장면에서 웃음이 많이 터져 나왔는데, 한국 관객은 집중력이 남달랐다. 영화를 볼 때의 마음가짐이 다른 것 같더라.

- 어린 시절 식물들의 의사소통에 관한 연구를 다룬 기사를 스크랩해뒀고, 여전히 간직 중이라고. 청소년기에 유심히 바라본 소재를 수십년이 흘러 영화화한 셈이다.

숨겨왔던 관심사를 다시 꺼냈다기보다 한 주제를 오래 조사해온 결과다. 식물들의 의사소통에 관한 연구는 80년대부터 있었지만 2000년대에 특히 붐을 이뤘다. 요즘 관객에게는 식상하지 않을까 염려도 했으나 막상 작업에 돌입하니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 영화에는 1900년대, 1970년대, 그리고 2020년대까지 세 가지 시간대가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최신의 역사를 먼 과거와 나란히 두겠다는 선택은 어떻게 내렸나.

더 많은 시대를 다룰 수 있었으나 러닝타임을 고려하면 3개로 추리는 게 최선이었다. 식물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바뀌는 시점을 골랐다. 1908년에는 신세대가 등장했다. 인간이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다는 순진함을 간직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반면 1970년대는 인간이 자연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지를 다시 고민한 격동의 시기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를 다시 비우게 했다. 침묵 속에서 우리의 우선순위를 재정렬할 수 있었다. 그래서 2020년을 영화의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외로운 과학자 토니(양조위)가 고요한 정원에서 과거로 가는 시간의 문을 열었다고 말하고 싶다.

- 다른 시대, 다른 주인공, 다른 질감의 화면이 등장하는 세편의 영화를 찍는 듯한 기분도 들었을 것 같다. 각 챕터로부터 어떤 재미를 느꼈나.

영화를 세편 찍는 것 같다는 말은 우리 촬영감독과 미술감독이 한 얘기이기도 하다. (웃음) 나는 각각으로부터 재미를 느꼈다기보다는 그 셋을 잇는 편집 과정이 아주 즐거웠다. 어떻게 편집할지 정해두고 찍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영화에서 셋을 유기적으로 오가는 리듬을 찾아야만 했다. 셋이 서사적으로 이어지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인물간에 연관을 맺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오직 감각적인 이음새를 발견하기 위해 편집에 굉장한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하나를 바꾸면 앞뒤로 많은 것이 바뀌어야 했기 때문이다. 내 땀과 눈물이 들어간, 아름다운 작업으로 기억하고 싶다.

- 이러한 일종의 ‘다성성’은 <나의 20세기>(1989), <매직 헌터>(1994)와 같은 초기작에서도 돋보였다. 하나의 관념을 전하기 위해 복수의 환경을 제시해 그 차이와 유사성을 밝히는 일을 자연스럽게 여기는지.

그렇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인간의 뇌가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듯하다. 창작은 머릿속에 오만가지 복잡한 생각이 오가는 일이니까. (웃음) 다른 까닭은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에 있다. 우리의 습관이나 인간의 전통 같은 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다. 모두 수십년간 켜켜이 쌓인 것이다. 그래서 나 또한 과거의 우물을 파서 그 안에 고인 여러 층위를, 현재 너머를 들여다보는 것을 선호한다.

-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2017)에서는 꿈으로 연결된 남녀를, <내 아내 이야기>(2021)에서는 아내를 의심하는 남편을 통해 보여줬듯 <침묵의 친구> 속 세 인물도 결국 타인과 접촉하며 인식을 확장해나간다. 그러나 그 관계의 향방이 서사의 중심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 방향성 자체를 문제시하는 게 <침묵의 친구>가 다루고자 한 주제이기도 하다. 인간의 현실, 식물의 현실, 시간의 현실은 모두 다르다. 그럼에도 각각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 또한 <내 아내 이야기>는 단순히 부부 사이의 질투를 그린 게 아니라 ‘우리가 정말 누군가를 꿰뚫어볼 수 있는가’를 질문하는 영화였다. <침묵의 친구>는 거기서 나아가 인간이 서로를, 인간이 식물을 파편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어도 괜찮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 사실을 수용하면서 공존해야 한다.

- 제목에도 쓰인 ‘침묵’이라는 키워드가 그 성질을 대변한다. 작품의 청각적인 지향점도 궁금하다.

제목이 <침묵의 친구>이고 그게 곧 식물을 뜻하지만, 식물은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 (웃음) 그들도 사방의 소리를 듣고 미세한 소리를 낸다. 꽃에게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려주면 꽃가루를 더 많이 생산한다는 얘기도 있다. 그래서 영화에도 온갖 종류의 소리를 넣었다. 자연스럽게 수집한 새소리, 바람 소리도 있고, 인위적으로 만든 상상의 소리도 있다. 뿌리가 뻗어나가는 소리 같은 게 그 예다. 그런 소리가 이미지와 결합했을 때, 인물의 대사를 대신해 관객의 후각이나 촉각까지 자극하길 바랐다.

- 미지를 향해 다가가려는 인간의 습성 또한 당신의 오랜 테마다. 이는 영화를 만드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침묵의 친구>를 연출하는 동안은 무엇을 익혔나.

내가 <침묵의 친구>를 만들면서 뭔가 배운 것이 있다면, 그건 자연이나 식물에 관한 지식이 아니다. 사람이 자연과 식물을 대하는 자세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지켜볼 수 있어 좋았다. 나와 함께한 스태프들이 점점 마음을 열고 영화 속 주제에 관해 대화하더라. 그들이 천천히 달라진 것이다. 그 변화를 목격하는 게 무척 아름다운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