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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픽션보다 재연에 가까운 - <힌드의 목소리> 카우테르 벤 하니아 감독

- 힌드의 음성을 처음 들은 후 바로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적신월사가 인터넷에 공개한 짧은 발췌본에서 힌드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절박한 열망이 마음속에서 일었다. 가장 먼저 힌드의 어머니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가 여전히 애도 상태에 있었던 터라 과정이 쉽진 않았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좋은 대화가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믿는다. 힌드의 어머니가 매우 큰 용기를 내줬다. 그는 대단한 여성이자 작품의 가장 큰 지지자다. 당시 우리가 나눈 대화의 전체를 내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가 당부한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힌드 말고도 수많은 어린이들이 가자 지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 영화가 책임 규명과 정의 실현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된다면, 부디 끝까지 작업을 포기하지 말아달라.”

- 그다음 적신월사에 연락했나.

이스라엘에 의해 사망한 구호 요원의 숫자는 집계조차 어렵다. 이들은 너무나 혹독한 대가를 치렀고 많은 동료를 잃었다. 요원들 역시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했다. 그래서 이들의 증언을 확보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실제 인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알아야 할 모든 정보를 전해 들었다. 요원들의 증언을 들으며 그날 그 사무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구체화할 수 있었다. 이들의 증언이 시나리오를 낳았다.

- 영화가 힌드의 실제 음성을 사용한 방식을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하고 싶다. 먼저 거친 사운드 푸티지를 영화에 그대로 활용했다.

적신월사로부터 70분 분량의 전체 녹취본을 받았다. 라얀의 살해, 힌드와의 대화, 구급차의 폭격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이 음성파일에 담겼다. 그 녹취본을 중심에 두고 영화를 만들어갔다. 내가 기리고 싶었던 마음, 관객이 듣고 기억해주길 바랐던 모든 요소가 힌드의 목소리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음질 개선을 고려한 때도 있었다. 실제로 사운드디자이너와 함께 수차례 마스터링 여부를 두고 긴 회의를 반복했을 정도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의 태도를 종종 떠올렸다. 다큐멘터리는 취재원에게 보정된 자료를 요구하지 않는다. 만약 <힌드의 목소리>가 다큐멘터리만큼 현실을 바로 보는 영화라면, 남아 있는 녹음본을 그대로 사용하는 편이 맞다고 판단했다. 편집의 측면에서 보면 이 음성은 다소 비효율적이다. 힌드는 상황상 어쩔 수 없이 “구조해달라”와 같이 거의 똑같은 문장을 수없이 반복한다. 유사한 문장이 되풀이되면 관객이 지칠 공산이 크다. 그래도 힌드의 목소리가 반복돼 울려 퍼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 힌드의 음성이 등장할 때 수차례 오디오 주파수의 곡선으로만 화면을 채운 점도 인상적이다.

그러니까 이 아이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영상 없이 소리만 존재하는 순간 사건이 지닌 긴급성을 드높일 수 있다. 날것 그대로의 감정이 필요했고, 가공되지 않은 자료를 들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온전히 전달되기를 바랐다.

- 이미 오프닝 시퀀스에서 영화에 사용된 통화 내용이 실제 녹음본임을 명시하지 않았나. 그런데 영화는 굳이 한번 더 이 통화 내용이 힌드의 음성임을 강조한다. 실제 상담원인 오마르 알캄과 라나 하산 파키의 목소리가 들어 있고, 휴대폰 화면 속에 적신월사 직원들의 당시 분투도 뉴스 화면처럼 재생된다. 이 사건을 대하는 당신의 윤리적 원칙과 맞닿은 연출인가.

지금 내 필름메이킹의 본질을 질문했다. 영화를 구상하던 때가 떠오른다. 먼저 어떻게 바라볼지를 고민했다. 내가 견지할 수 있는 모든 관점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 채 하나씩 견주어봤다. 핵심은 소녀의 목소리를 들은 후 이 작은 영혼을 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 이들의 입장에 서는 것이었다. 즉 적신월사의 관점이 영화가 지녀 마땅한 시선이었다. 이후 적신월사의 요원들을 어떻게 촬영할지를 고민했다. 이들이 카메라 앞에 서서 사건 당일을 증언하는 인터뷰 모음집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가 되는 일은 원치 않았다. 힌드를 구할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살아 있던 그때를 ‘재연’(Reenactment)하는 것이 중요했다. 사실 위험한 발상이다. 관객은 배우들을 픽션 안에서 연기를 수행하는 객체로 바라보기 마련이니까. <힌드의 목소리>는 엄밀히 말해 픽션이 아니다.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픽션도 아니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리겠지만,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 영화에 필요한 개념은 철저한 재연이었다. 그래서 배우들에게도 연기보다 재연에 가까운 대사 처리를 요구했다. 사건 당시에 오갔던 대화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재연하도록 주지했다. 배우가 재연의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촬영을 중단할 정도였다. 실제 음성을 넘어 영상 아카이브까지 삽입한 이유도 위와 같다. 이전까지 영화가 제시한 현실보다 더 정밀한 기록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힌드의 목소리>는 적신월사가 어떤 체제 안에서 구조 작업을 하는지 정밀히 탐구하는, 프로세스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인명구조에 필요한 수많은 행정적 절차가 답답한 동시에 수반될 수밖에 없는 과정임을 분명히 하고, 이를 오마르와 마흐디의 갈등을 통해 첨예하게 묘사한다. 오마르에게 이입하다가도 마흐디의 결정이 불가피하다는 구조를 이해하게 되는데.

유혈 사태만이 폭력이 아니다. 절차 또한 폭력이 될 수 있다. 적신월사의 임무는 생명 구조다. 만약 한국에서 수화기 너머 한 아이가 살려달라며 애원하는데 8분 거리에 구급차가 있다면, 당장 구급차를 보내지 않았겠나. 하지만 팔레스타인에선 불가능했다. 오마르와 마흐디, 두 사람은 모두 힌드를 구하고자 했으나 그 방식이 서로 달랐다. 절차로 인해 한 사람이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 또 다른 사람은 얼마나 가혹한 도덕적 딜레마를 강요받는지 드러낼 뿐이다. 마흐디가 이미 희생된 동료의 사진을 가리키며 “이 벽에 새로운 사진이 또 추가된다면, 난 일을 그만둘 거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후 현실의 마흐디는 정말 사표를 냈다. 그는 자신의 팀을 보호하기 위해 가진 권한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의무를 다했다. 절차를 따랐지만, 이스라엘은 최소한의 절차조차 존중하지 않았고 구급차를 폭격했다.

- 적신월사 직원들이 SNS에 영상 업로드를 두고 영상의 편집 방식과 게재 시점에 관해 설왕설래하는 장면에 주목하고 싶다. 현실의 참극 앞에선 재현 방식의 선정성에 관한 논의조차 사치라는 걸 즉각 느꼈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힌드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소셜미디어는 가자 지구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언론인은 이스라엘에 의해 출입과 취재가 금지돼 가자 지구에 들어갈 수 없고, 팔레스타인의 언론인들은 매일 목숨을 잃고 있다. 그래서 가자 지구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비극과 죽음을 스스로 촬영 중이다. 현실이 그렇다. 피해자들이 직접 가족과 이웃의 죽음을 촬영해 고통을 공표한다. 소셜미디어는 스크롤 한번이면 수많은 정보가 파편적으로 발산된다. 그곳에 오래 머물수록 시각적 자극에 무감각해지고 웬만한 감정엔 동요하지 않게 된다. 소셜미디어가 지닌 공간적 특성을 영화라는 매체와 대비해 성찰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를테면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구급차와 자동차의 이미지, 휴대폰 속 이미지는 모두 사람들이 SNS에서 마주한 그림이다. 그러나 스크롤의 속도 탓에 이미지 이면에 있는 거대한 비극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관객들이 영화의 서사를 모두 거친 후에 그 이미지들을 다시 본다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의 참사를 인식할 것이다.

- 지금도 가자 지구와 우크라이나, 이란 등지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고 있다. 정치적 우경화는 혐오와 학살의 주동자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모두가 쉽게 무력감에 빠지는 시대다. 이런 현실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어쩌면 나 스스로가 비극의 공범일지도 모른다는 수치심마저 들곤 한다.

나 역시 그 무력감을 동력 삼아 이 영화를 만들었다. 무력감 속에서도 분노를 직시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하게 되어 참 기쁘고 보람차다. 우리는 이미 <힌드의 목소리>를 전 세계 곳곳에서 상영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상태다. 특히 세계 각국의 의사 결정권자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애썼다. 유엔에서 상영회를 열었고, 미국 의원들과 영국 상원, 유럽 의회를 위한 상영회도 성사시켰다. (1월 기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를 대상으로 한 상영도 예정되어 있다.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총을 든 자가 독단적이고 폭력적인 규칙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는 없지 않나. 우리 아이들과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영화를 만드는 내내 나는 무력감에서 출발한 이 작품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를 촉구했다.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 설 때마다 “이제 <힌드의 목소리>는 관객의 것이니, 부디 이 영화를 잘 활용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실제로 적십자사, 적신월사, 옥스팜 등 수많은 NGO 단체가 상영회를 주도하고 있다. 바라던 대로 행동과 변화를 향한 촉구가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 당신이 믿는 영화의 힘은 무엇인가.

어떤 국가나 사람을 기억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영화나 문학 등 예술만 한 것이 없다. 영화가 선사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바로 공감이다. 공감 능력을 상실한 사회에서 우리는 영화를 통해 다시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를 통해 증언할 수 있다. <힌드의 목소리>를 관람한 순간부터 관객은 이 비극의 증인이 된다. 증인이 되었다면 마땅히 행동에 나서야 한다. 오랜 기간 영화를 만들어왔지만, <힌드의 목소리>는 내게 영화의 힘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흔히들 영화를 현실도피의 수단이라 생각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만큼은 현실을 각성시키는 매개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