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터뷰] 한로로가 말하는 노래와 노랫말

- 4월2일 EP 《애증》을 발매했다. 어떻게 만들어진 음반인가.

애증을 주제로 삼은 앨범을 만들어야겠다는 큰 그림을 먼저 그렸다. 이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 고민하다가 ‘애’(愛)를 담은 <게임 오버 ?>, ‘증’(憎)을 담은 <1111>을 실었다. 리스너들이 지금 자기 심경에 맞는 곡을 찾아 듣거나 두곡을 반복해 들으면 계획했던 애증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내가 전하려는 메시지에 감응한 듯한 반응을 많이 건네 듣는다. 무한히 반복되는 애증을 받아들이되, 미움 받을 용기와 사랑할 용기를 함께 쟁취하겠다는 감상을 전해 들었다.

- 그간 발매한 EP는 제목에 ‘비행’, ‘집’ 등 시각화가 분명한 단어가 들어갔다. 이에 반해 ‘애증’은 무형의 감정이라 앨범 구상부터 애를 먹었을 것 같은데 상처투성이의 얼굴을 택했다.

오히려 부담이 적었다. 애증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우리 삶에 녹아든 감정이지 않나. 커버의 경우 상처 분장을 얼굴 왼편에 몰았다. 이 역시 애와 증의 구분이다. 하필 커버를 찍는 날 무척 피로했는데 왼쪽 눈두덩이에 어울리는 아이홀까지 운 좋게 생겼다. (웃음)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 《애증》을 만들었다. 일상에 익숙하게 침투한 감정을 건드리되, 이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끔 유도하는 소재를 찾다가 애증, 즉 애와 증의 반복이 딸려나왔다. 지금 이 노래가 얼마나 쉽게, 또 편하게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을지를 고심한다.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싶어서 음악을 시작했는데, 노래가 나만의 것에서 그치면 곤란하지 않나. 소통을 통해 쌓이는 유대를 지속하고 싶다.

<1111> 뮤직비디오.

- 《애증》에 수록된 두곡 모두 뮤직비디오가 나왔다. <게임 오버 ?>에선 노재원 배우와 연기했고, <1111>엔 무용수들의 퍼포먼스가 돋보인다. 모든 뮤직비디오 기획회의에 원곡자로서 직접 참여한다고.

이전까지는 나 혼자 출연하는 뮤직비디오가 많았지만 이번엔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좀더 범위를 확장하는 기획이 필요했다. 혼자라면 불가능했을 그림을 노재원 배우와 전문 무용수들이 함께 그려줘서 한계를 타파할 수 있었다.

<게임 오버 ?>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주할 수밖에 없는 감정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를 미워하기도, 누구로부터 미움을 받기도 한다. 지극히 인간다운 이야기를 잘 표현해줄 얼굴에 노재원 배우가 1순위로 떠올랐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처음 알게 됐는데, 영화나 시리즈가 아닌 뮤직비디오로 이 배우를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에 캐스팅 제의를 넣었다. 배우 본인도 이 곡의 내용이 자신의 이야기 같다며 흔쾌히 출연을 결정해주었다. 노재원 배우 필모그래피 사상 최초의 뮤직비디오 출연이다.

- 두 뮤직비디오 모두 이전에 비해 스케일이 커져서인지 한 팬이 “맨날 뛰어댕기는 뮤비만 보다가 인기 많아져서 잘되니까 지원 많아진 모습 너무 보기 좋다”라는 댓글을 달았더라. (웃음)

<입춘> <거울> <금붕어>…. 그땐 뮤직비디오에서 달리는 나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 내 안의 불안이 커서 일단 뛰었다. 지금보다 어렸고 아무것도 자신할 게 없는 내가 그 곡 속에 살아 있다. 방황하며 흔들리는 청춘들이 무얼 바랄까.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게 들 것이다. 그런 정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뮤직비디오 안에서 울며 좌절하고 무작정 달린 거다. 올해로 데뷔 4년차다. 그동안 리스너들과 소통을 하며 전에 비해 내가 하려는 음악에 믿음이 생겼다. 내 세계에 대한 믿음이 견고해지니 다른 게 보이더라. 현실로부터 도피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았다. 죽기 말곤 현실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데, 그건 싫었다. 나도 살고 내 곁의 사람들까지 살리고 싶었다. 확실히 이번 앨범이 여러모로 내겐 도약이다.

- 사운드 측면에서도 《애증》이 도약인가.

<사랑하게 될 거야>와 <0+0>, 이 두곡이 특히 많은 사랑을 받은 후 나온 신보다. 앞선 두곡이 품은 따스한 분위기를 유지할지, 아니면 <거울> 같은 곡에서 보여줬던 파괴적인 정서를 노래할지 고민이 컸다. 갈등 끝에 이른 결론은, 적정선을 찾자는 것이었다. 지금껏 고수하던 내 이야기를 전하되 파격까지는 아닌, 접근성을 낮추되 만드는 이의 재미는 잃지 않는 절충점. 그 안에서 사운드를 탐구했다. <1111>은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부서지는 정서를, <게임 오버 ?>는 <비틀비틀 짝짜꿍>의 에너지에 음악이 풍기는 사이버틱한 무드를 살리고자 했다. 후회 없이 만든 앨범이다.

<게임 오버 ?> 뮤직비디오.

- 어떤 싱어송라이터는 음악의 창작 의미를 전달하는 걸 꺼리고 수용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그런데 뮤지션 한로로는 거리낌 없이 창작 의도를 설명하고, 리스너들 또한 당신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독해한다. 생산자와 수용자 모두가 거대한 해석의 장 안에서 음악으로 유희하는 듯하다.

내 언어를 세상과 나눈다는 관념이 중요하니 주저할 게 없다. 그리고 내가 점점 과감해진다. <입춘>을 냈을 때만 해도 솔직한 심경을 가사에 적기엔 내가 너무 소심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움직이는 걸 목격하며 생각이 변했다. 이젠 그 움직임을 바라고 노래를 짓는다. 그래서 노래를 더 잘 만들어야 한다. 한로로 음악의 강점이 자기 상황에 맞춰 작품을 ‘해석’하고 이를 공유하는 방식에 있다고 본다. <0+0>에 관해서도 반려동물, 연인, 곁을 떠난 친구 등 수많은 해석이 댓글창마다 달리는데, 리스너들이 이를 공론장으로 만들어 서로 소통하는 풍경을 지켜보면 그저 행복하다. 내가 솔직해지면, 좀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음악이 요동칠 수 있다. 나와 리스너들을 감싸는 동그라미가 점점 커진다. 마치 내가 양파가 된 듯한 기분이다. 까도 까도 계속 나올 수 있도록 리스너들이 껍질을 벗기는 거지. (웃음) 예전 같았으면 “모두가 쉬운 마음으로 나를 미워하지만 몇초 뒤면 사라질 감정엔 관심 없어요”(<게임 오버 ?>)라는 가사를 절대 못 썼다. 날 미워하지 말라고 풀어내면 또 모를까. 그런데 솔직해지니 담대해졌다. 점차 한로로와 한지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기분이다.

- 양자의 경계가 허물어지려면 한쪽이 더 움직여야 할 텐데.

한지수가 한로로에게 가까워지고 있다. 오랫동안 한로로는 한지수의 두 번째 자아였다. 한로로가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파하려고 뛰는 반면 한지수는 그렇게 살지는 못했다. 그런데 한지수가 솔직해지니 한로로의 소통 반경이 넓어진다. 글로 분출할 때, 그 글에 멜로디를 얹어 노래할 때, 그리고 그 노래를 무대 위에서 분출할 때 단계별로 점점 힘이 커진다. 그 힘을 알아 이제는 공연에서 모든 힘을 터뜨리는 게 거대한 목표가 됐다. 무대 위에선 없던 충동이 막 솟구친다.

- ‘아기 록스타’라는 별명이 무대를 통해 나오지 않았나.

그 별명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다. 이제 27살인데. (웃음) 진짜 열심히 노력한다. 관객들에게 살아 있다는 감각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무대에 오른다. 공연 끝에 관객들에게 살아 있길 잘했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 관객들과 눈도 맞추고 호응도 열심히 유도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단 한순간을 위해 한 장소에 모여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그 느낌을 극대화하는 공연을 만들려고 애를 쓴다.

- 한로로의 가사를 구성하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우선 거의 모든 노래가 구어체고, 해요체의 존댓말 종결어미를 사용한다. 청자와 화자의 위치를 상정하고 언어를 조탁해가나.

나를 낮추고 들어갈 때 노래로 부드러운 권유가 가능하다. 모든 노래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떨 땐 음악이 프레젠테이션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믿는다. 전하려는 말이 있고 청중이 존재한다. 이때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힘주어 전달하기 이전에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떠신가요?’로 완곡하게 다가가면 수용자들이 이 노래가 나를 품어준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언젠가 좀더 강도가 센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날이 온다면 지금 생각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다. 그래도 현재의 나는 이야기의 전달을 넘어 리스너의 회신까지 원한다. 답을 들으려면 좀더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편이 낫다.

- 청자와 화자의 측면에서 ‘너’와 ‘나’, 자타의 개념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점도 주목하고 싶다. <거울>을 시작으로 <사랑하게 될 거야> <생존법> <0+0> 같은 노래에서 ‘나’와 ‘너’가 마주보는 이미지를 사용했고 이때 ‘너’의 의미에 관해 분분한 해석을 낳았다.

데뷔 초반엔 가사 안에 속마음을 털어내고 싶었다.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혹은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중점에 두고 가사를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너의 위치에 나를 가져다놓았다. 그러다 조금씩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겨 <하루살이><0+0>같은 노래가 나왔다. 나도, 나의 친구도, 혹은 이 노래를 듣고 있을 미지의 타인도 영면을 꿈꾼다면, 나와 너를 넘어 알지 못했던 누군가에게까지 위로를 던질 수 있다. 그건 내가 음악에 입히려는 ‘동질감’과 맞닿아 있다. 같은 지구에 사는 이상 우리는 동질의 감정을 느끼기 마련인데, 그걸 어느 순간 모두가 부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편 가르기도 쉽고, 소란도 쉽게 이는 세상이다. 같은 성질의 마음을 맞춰가려는 시도 자체를 간과하는 현실이 차갑고 아프다. 타인의 상처에 무감각해지고 무심해지더니 그 아픔마저 질타하는 세계의 흐름을 음악으로 중재하고 싶다.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세상이지만 너는 곧 나다. 우린 결국 같은 존재라는 걸 계속 노래하려고 한다.

- <사랑하게 될 거야>는 발매 당시보다 근래 역주행하며 아직도 순위권에 안착해 있다. 왜 이 곡이 시차를 두고 사랑받을까.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 사람들이 은연중에 아는 거다. 미움과 증오가 번지고 사랑이 커질 수 없는 게 현실이지만 사랑만이라도 붙들고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이 노래를 향한 지지에 모이는 듯하다.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미래형 어미지만, 사랑이 이긴다는 확신이 있으니 그 이후를 단정할 수 있다.

- 한로로의 가사를 시적(詩的)이라고 평하는 리스너들이 많다. 특히 <0+0>을 두고 이 논의가 가장 많이 나왔는데, ‘여름 코코아’, ‘겨울 수박’ 등의 가사를 보면 확실히 이미지와 이미지를 연결하는 기술이 우리의 일상적 감각을 벗어나는 측면이 많다. 언어와 관념을 조합할 때 무엇에 유의하나.

의미 부여를 자주 하다 보면 번뜩번뜩 스치는 영감이 많다. 또 나와 같은 세상을 사는 시인들은 똑같은 오브제를 두고 얼마나 달리 표현하는지 탐독하며 세상을 마주하는 시야를 넓히고자 노력 중이다. 뜬구름 잡는 식의 조어, 있어 보이려는 단어 선택은 지양한다. 말하려는 요지에서 벗어나는 표현은 수용자들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현실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한로로만의 한끗을 낼 수 있는 표현을 일상에서 줄곧 연습한다.

- 혹시 내가 너무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건 아닌지 고민해본 적은 없나.

어릴 때부터 곧잘 의미를 부여하며 살았다. <게임 오버 ?>에 “풀린 신발끈에도 넘어지지 않는 날이 있듯”이라는 가사를 썼다. 걷다가 신발끈이 풀리면 그냥 묶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신발끈을 정리하며 어떻게든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어기제로 여기며 마음을 다잡는 거지. (웃음) 만사를 확대해석하며 사는 건 아닌가 돌아보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 과정을 거쳐 만든 음악이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니 이를 강점으로 활용하겠다는 다짐을 최근에서야 굳혔다.

- 작사가로서 비유나 상징을 활용한 운문적 문장이 산문적 문장에 비해 메시지를 담기 용이한가.

정확히 말하면 운문적 문장이 불편하지 않다. “밥을 먹었다”로만 문장을 마무리하는 게 잘 안된다. 누구랑 밥을 먹었고 무슨 이야기를 나눴으며 밥맛이 어땠으므로 오늘 하루는 어떤 감정으로 보냈다라고까지 서술해야 흡족하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비유나 상징을 자꾸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계속 압축해나간다. 3분이라는 시간 제약 안에서 계속 무언가를 줄이다 보면 차마 덜지 못한 문장의 정서를 어떻게 녹일지 고민하고.

- 그런 점에서 소설 <자몽살구클럽>을 쓸 때 속이 시원했겠다. 시에 비해 문장이 훨씬 서술적이니까.

소설 <자몽살구클럽>의 O.S.T 개념으로 나온 EP가 《자몽살구클럽》이다. 줄이는 것만 하다가 한 이야기를 늘리고 확장해본 건 처음이었다. 중간이 없는 거지. (웃음) 어렵고 재밌었다. 더하지 못한 말까지 음악에 담아낼 수 있는 경험도 독특했고. 소설을 쓸 땐 영상을 글로 풀어내는 인상이 강했다. 바다에 관한 문장을 쓸 때면 저절로 내가 그리려는 바다의 영상이 머릿속에 재생됐고, 명확한 이미지를 글로 풀어내다 보니 이를 노래로 바꾸는 과정도 훨씬 용이했다.

- 개인 유튜브에서 진행 중인 토크쇼 콘텐츠 <당신의 밤은 나의 밤과 같습니까>가 시즌2를 맞이했다. 게스트와 함께 소소한 액티비티를 즐기고, 활동 후엔 게스트에게 호스트로서 직접 자작시를 낭송하는 포맷이 시그니처로 자리 잡았는데.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분야의 사람을 초청해, 같은 인간으로서 지닐 수밖에 없는 고민을 다른 방식으로 타파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초반엔 내가 말주변이 워낙 없어 걱정이었다. 시 선물은 게스트가 왔으니 뭐라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다. 글쓰기를 좋아하니까 시를 써보자는 대략적인 아이디어였는데, 게스트의 이름을 제목으로 헌정시를 쓰는 포맷으로 굳어졌다. 잔잔한 물결 위에서 유영하듯 즐기는 시간을 만들고자 하니 부담이 줄었다. 게스트들도 도란도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이 오랜만이라 좋았다는 후기를 전한다.

- 언제나 스스로를 ‘오늘을 살아가는 청춘들을 위로하기 위한 싱어송라이터’라고 소개한다. 앞으로도 이 수식이 유효한 음악을 하고 싶나.

그 마음만은 변치 않고 가져가려 한다. 청춘이 연령 개념이 아니지 않나. 내 마음이 푸르고 봄이면 청춘이고, 설령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청춘의 정신을 가질 힘과 용기를 주는 아티스트로 오래 기억되고 싶다. 그렇게 살려면 내가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야겠지. 이미 나도 동생 팬이 훨씬 많아졌다. 인간 대 인간으로 세대차를 좁히는 건 점점 어려워질 거다. 그럴 땐 이소라 선생님이나 자우림, YB 선생님들…. 선배 뮤지션들이 오래전 발매한 곡이 여전히 생명력을 갖는 걸 보며 용기를 얻는다. 나도 언제가 됐든 어느 세대를 만나든 2022년에 발매한 《입춘》이 몇번이고 재조명되길 바란다. 그런 음악을 계속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