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분기 극장에 관객이 돌아왔다. 영진위가 4월29일에 발표한 ‘2026년 1분기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1분기 전체 관객수는 3190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3.2% 늘었다. 2025년 1분기 관객수는 2082명, 올해 1분기 관객수는 3190명으로 약 1천명 가까이 늘었다.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다. 1분기 기준으로 <왕과 사는 남자>의 관객수는 1573만명, 4월29일 기준으로 누적 관객수 1673만명을 기록했다. 이로써 <왕과 사는 남자>는 역대 관객수 1위인 <명량>의 1761만명을 이어 역대 관객수 2위 자리에 올랐다.
관객이 극장을 찾으면서 한국 영화산업의 전체 매출도 뛰었다. 2026년 1분기 매출액은 318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극장이 올린 매출액 2004억원과 비교해 58.7%가 증가했다. 1분기 매출액 절반가량은 한국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일으켰다. <왕과 사는 남자>는 이 시기 1518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이는 전체의 47.7%에 해당한다.
1분기 관객수 2위는 김도영 감독의 <만약에 우리>이다. 2025년 12월31일에 개봉한 이 작품은 2026년 1분기에 관객 247만명을 동원하였고, 매출액 244억원을 기록했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 불과 재>는 <만약에 우리>에 이어 1분기 관객수 3위에 올랐다. 2025년 12월17일에 개봉한 이 작품은 해가 바뀌어도 꾸준히 관객을 불러모으며 1분기 동안 218만명, 4월17일 기준 누적 관객수 6744만명을 동원했다. 관객수는 <만약에 우리>보다 적지만 특별관에서 많이 상영된 까닭에 매출액은 <만약에 우리>보다 높은 265억원을 기록했다. 1분기 관객수 4위는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로, <왕과 사는 남자>와 일주일 간격을 두고 개봉한 이 영화는 관객수 198만명, 매출액 200억원을 올렸다. 뒤이어 필 로드, 크리스토퍼 밀러 감독의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1분기 흥행 5위에 올랐다. 123만명이 이 작품을 관람했으며, 매출액은 141억원으로 집계됐다.
2026년 1분기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인 2020년 이후 매출액과 관객수 두 가지 지표에서 모두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를 영화산업 전체가 고르게 회복했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1분기 관객수 1위와 2위에 오른 영화 사이의 간극이 크기 때문이다. 2위인 <만약에 우리>의 관객수는 1위인 <왕과 사는 남자>에 비해 1300만명 이상 차이가 난다. 영진위는 이번 보고서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영화제작 감소로 개봉작이 줄어들면서 특정 영화 한편의 흥행 성과에 따라 시장 규모가 좌우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라고 분석하고 있다. 즉, 1분기에 <왕과 사는 남자>를 관람하기 위해 관객이 극장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이들이 2분기, 3분기에도 극장을 찾을지는 미지수란 의미다.
관객수 1, 2위 모두‘쇼박스 영화
2026년 1분기는 명실상부 ‘쇼박스의 시간’이었다. 제작자 A는 “올해는 쇼박스의 해라고 다들 이야기한다”라고 말했다. 영진위의 ‘2026년 1분기 한국 영화산업 결산’에 따르면, 1분기 전체 매출액 3180억원 중 절반이 넘는 매출이 쇼박스의 작품에서 나왔다. 올해 1분기 쇼박스가 올린 매출액은 1763억원으로, 1분기 한국 영화산업 전체 매출에서 55.4%를 차지했다. 1분기 쇼박스 영화들이 동원한 관객수는 1822만명으로, 이는 전체 관객수의 57.1%에 해당한다. 이 결과는 <왕과 사는 남자>와 <만약에 우리> 두편의 영화로 거둔 성과이며, 쇼박스가 배급한, 4월8일 개봉한 이상민 감독의 <살목지>의 성적은 반영되지 않았고, 사전 시사 관객수가 일부 집계돼 반영됐을 뿐이다. 관객수 80만명이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살목지>는 4월29일 기준 213만명의 관객을 극장에 불러모았으며, 매출액 219억원을 기록했다.
영화계에서는 “짝수 해에 쇼박스는 무적”이란 말이 있다. 쇼박스는 2026년 <왕과 사는 남자>로 관객몰이를 한 것처럼, 2024년 1분기에도 장재현 감독의 <파묘>를 배급해 1100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했고, 배급사 순위 1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쇼박스의 올해 상반기 라인업은 <만약에 우리> <왕과 사는 남자> <살목지>그리고 연상호 감독의 신작 <군체>로 짜여 있다. 칸영화제 비경쟁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된 <군체>까지 손익분기점을 넘긴다면 쇼박스는 그야말로 올해 ‘풍년’을 맞이하는 셈이다.
멜로드라마와 사극, 그리고 공포. 기성 감독 두명과 신인 감독 한명. 쇼박스가 올해 선보인 세 영화의 면면은 다양함에도 관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인들은 여러 각도의 분석들을 내놨다. “쇼박스가 최근에 시사회를 많이 여는 전략을 썼다. 사전 시사와 일반 시사를 공격적으로 열다시피 했다. 영화에 대한 인지도와 선호도를 쌓기 어려운 시대잖나. 이젠 광고로도 한계가 있다. 그러다 보니 전통적인 구전 효과를 노린 것이다.” 제작자 B는 쇼박스가 시사회를 통해 입소문을 타는 전략을 썼다고 설명했다. 설 연휴를 목표로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휴민트><넘버원>중에서 개봉 이전 관객수가 가장 높은 작품은 <왕과 사는 남자>이다. 영진위 통합전상망에 따르면 <왕과 사는 남자>사전 시사 관객수는 2만9천명으로, 1만4천명인 <휴민트>의 배 가까이 된다. 이는 개봉 이전 관객수가 2만명 정도인 <넘버원>보다도 9천명 많은 숫자다. 이와 관련해 쇼박스측은 “사전 시사 전략을 중요하게 진행한다”라고 인정한다. “요즘은 관객들이 워낙 신중하다. 이는 영화산업에만 국한된 문화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쇼핑을 하거나 음식 배달을 시킬 때도 실구매자의 리뷰를 모두 찾아보잖나. 그러다 보니 블라인드 시사에서 반응이 안정적으로 나올 경우 시사회를 열어 영화 자체를 마케팅 수단으로 쓴다.”
또 다른 영화인들은 쇼박스의 기업 구조에 주목하기도 했다. 제작자인 이은 영화인연대 회장은 “극장을 갖고 있는 기업들이 영화배급도 하고 수익률 좋은 제작사들을 사들였다. 그러다 보니 안이해졌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대형 극장 체인이 없는 쇼박스나 NEW는 극장에 기댈 수가 없다 보니 더 치열하다. 쇼박스의 성공 요인을 업계에서는 다들 그렇게 얘기한다”라고 설명했다. 영화감독 C 역시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나고 나서 쇼박스의 절박함이 우리 같은 감독들에게도 들려왔다”라고 말한다. “쇼박스는 그룹 내에서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다른 대형 투자배급사들은 누적 적자가 심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몸을 움츠리는 때였다. 오히려 쇼박스는 ‘우리는 투자 계속한다. 우리에게 와달라’는 사인을 몇년 전부터 보냈다. 어찌됐든 그렇게 제작을 시작한 작품 수가 코로나19 팬데믹 전처럼 많지 않으니까 더 신경을 많이 쓰고 고민한 결과가 지금 쇼박스에 돌아온 것이다.”
‘투자배급사가 신규 영화에 투자한다.’ 영화산업이 위축되면서 이 명제를 지키는 투자배급사가 많지 않다. 이런 가운데 쇼박스는 본분을 다한다는 게 영화인들의 평가다. 제작자 B는 “요즘 롯데엔터테인먼트와 CJ ENM이 신규 영화 투자를 잘 하지 않는다. 그나마 라인업을 갖추고 있는 곳은 쇼박스와 NEW뿐”이라고 설명한다. 영화감독 D는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은 점점 신규 투자를 하려는 듯한 분위기지만 <호프>가 개봉하기 전에는 움직이기 쉽지 않다”라고 업계 분위기를 들려주었다. 제작자 B는 “쇼박스와 NEW로 신규 영화들이 많이 몰린다. 그렇다고 두 회사가 몇십편씩 투자할 수 없으니 경쟁이 훨씬 심하고 가능성이 높은 작품으로 치열하게 결정한다”라고 설명한다. 제작자 A 역시 “지난 2년 동안 작품 극장용 영화를 놓지 않고 지속적으로 밀어붙인 건 쇼박스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CJ ENM은 박찬욱 감독의 작품이나 데이터로 확실하게 증명돼 있지 않으면 투자 결정을 안 내리고 있다”라고 했다. 영화감독 D도 “CJ ENM이 과거 흥행했던 프로젝트들의 후속작을 만들고 있다. <타짜: 벨제붑의 노래> <공조3> <국제시장2>가 대표적”이라고 설명한다.
제작자 A는 “쇼박스는 일관되게 극장영화를 지켜온 세월이 있기 때문에 한눈팔지 않고 자연스럽게 축적돼온 저력이 있다”라고 말한다. 저력은 인력에서 온다. 제작자 A는 “다른 투자배급사들에 비해 인원 변경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인원 변동이 적다는 건 리스크를 더 끌어안거나 도전하는 데 과감하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실제로 쇼박스측에서도 “사람이 자주 바뀌는 회사가 아니다”라고 인정한다. ‘짝수 해에 쇼박스는 무적’이란 업계의 농담처럼, 쇼박스는 <파묘>와 <왕과 사는 남자>로 2024년과 2026년에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2025년에는 다소 어두웠다. 2025년에는 전체 배급사 순위 6위로, 전체 관객수 192만명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영진위 ‘2025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하지만 부진했던 성과를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실패를 끌어안는 쇼박스의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반면 CJ ENM의 경우, 인원 변동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몇년 전 영화를 개봉한 영화감독 D는 자신과 함께 일하던 CJ ENM 인력들이 모두 바뀌었다고 말한다. 제작자 A는 비슷하게 쇼박스를 “특정 투자배급사와 비교해 블라인드 시사회의 결과에 비교적 덜 패닉하는 곳”이라고 묘사했다. 심지어 “<파묘>의 블라인드 시사 점수가 그렇게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데이터가 흥행에 만능이라면 누구든지 극장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투자배급사로서는 데이터를 무시할 수만은 없는 딜레마가 있다. 하지만 쇼박스는 그들이 생각하는 영화의 완성도를 뚝심 있게 높이려고 한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제작자 A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오면서 과거에 쌓아놓은 몇십년간의 데이터는 다 소용없어진 면이 있고 패러다임 자체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쇼박스는 긴 안목을 가지고 영화의 완성도에 먼저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포진돼 있다”라고 설명한다.
천만 영화가 나왔지만 영화계 문제는 여전
<왕과 사는 남자>가 관객수 1600만명을 넘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4월9일 영화인연대는 ‘2026년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와 대책’ 정책 제안 기자회견을 열었다. 극장을 찾는 관객의 발길이 반짝 늘었으나 영화계 전체의 회복을 위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시점이라고 판단해 열린 기자회견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은 “일본영화 <국보>가 일본에서 1천만 관객을 모으는 데 수개월이 걸린 반면, 국내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불과 31일 만에 도달했다”라고 지적했다. 기자회견 이후 이은 회장은 <씨네21>의 취재에 “<왕과 사는 남자>는 하반기까지 장기상영하면 관객수 천만명을 목표로 할 수 있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스크린에 집중해서 빠르게 성적을 올렸다”라고 밝혔다. 그는 단기 성과에 매몰된 극장 운영 행태에 비판적이다. “극장이 단기 이익에 의존하다 보니 <왕과 사는 남자>를 많이 상영하느라 일찍 상영을 떨어뜨린 <휴민트>는 넷플릭스에 빠르게 팔리면서 홀드백이 점점 깨지는 것이다. 과거부터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지금의 어려움이 왔다.” 그는 “단기 이익만 좇다가 극장이나 업계 전체가 구조적으로 나빠지는 현상은 우리나라가 가장 압도적”이라며 멀티플렉스 극장의 수많은 스크린이 한 영화만 상영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스크린 집중 제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프랑스 정부가 스크린독과점을 막기 위해 6개 이상의 스크린을 둔 극장에서 같은 영화를 20~30% 이상 상영할 수 없도록 법으로 금하는 것처럼 말이다.
<변호인> <강철비> 시리즈를 연출한 양우석 감독은 가까운 미래에 극장의 문제가 더욱 도드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30년이면 극장의 절반 정도가 건물 임대 재계약 시점을 맞는다. 극장 스크린이 지금의 반으로 줄 경우, 그땐 어떻게 할 건가.” 그는 또한 창작자와 투자배급사가 풀어나가야 하는 문제도 짚었다. 양우석 감독은 “정부에서 추경 편성을 통해 영화산업에 여러 지원책을 쓰는 데 정말 감사하다”라는 한편 “이번 추경까지 포함해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 수십편 늘었으나 오히려 산업 내에서 신규 기획을 많이 안 하다 보니 영화계가 지원작 수를 채울 수 있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라고 말한다. 올해 1분기 영화계의 호조가 앞으로도 잘 이어질 수 있을까. 많은 영화인들은 장밋빛 미래를 그리기엔 영화계에 산적한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좋은 성적이 들려온 지금이야말로 영화계 전체가 머리를 맞대야 할 적절한 시기임이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