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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완벽한 변신보다는 조금씩 다른 - 제14회 무주산골영화제와 ‘넥스트 액터’ 이혜리

- 올해 무주산골영화제의 ‘넥스트 액터’로 선정됐다. 소감이 궁금하다. 언제 처음 제안을 받았나.

비하인드가 있다. 지난해 초쯤 백은하배우연구소의 백은하 소장님의 유튜브 채널 <백은하의 주고받고>에 나갔다. 그 인터뷰가 정말 좋았는데, 백 소장님도 좋은 시간으로 생각하셨는지 무주산골영화제를 함께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당시 예정된 팬 미팅이 있어 스케줄 문제로 어렵다고 설명을 드리면서 “내년을 ‘찜’해놔도 될까요?”라고 했다. (웃음) 나는 계획형이어서 빨리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번 무주산골영화제 참여가 내게는 사실 1년짜리 장기 프로젝트였다.

- 넥스트 액터로 선정된 배우들은 백 소장과 특별 책자를 출간한다. 그동안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을 텐데, 그 경험이 어땠나. 낯섦이었을까, 아는 곳에 다시 간 듯한 익숙함이었을까.

처음엔 내 필모그래피를 돌아보지 않고도 책을 출판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해보니 출연한 지 5년이 넘은 작품들은 기억에서 많이 흐려져 있었다. 작품들을 모두 천천히 하나하나 봐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작품들을 보니 그 속에 있는 내가 너무 낯설었다. ‘저런 장면이 있었나’ 싶은 순간도 많았다. 주연배우로 등장한 첫 작품인 JTBC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의 경우, 아예 기억이 나지 않아서 시청자 모드로 보았다. (웃음) 작품을 끝내고 나면 내 작품을 볼 기회가 특별히 없는데, 이번 프로젝트 덕에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 인터뷰를 준비하며 그간 혜리 배우가 맡은 캐릭터들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응답하라 1988>의 덕선, <빅토리>의 필선, <선의의 경쟁>의 제이는 모두 의지가 강하고 상황을 만들어가는 주도적인 인물이란 점이 크게 다가왔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작품의 서사도 다르지만, 흐지부지하게 행동하지 않는 캐릭터들이다. 배우로서 왜 이런 캐릭터들을 자주 연기했는지 생각해본 적 있나.

주체적인 인물을 연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필모그래피가 사실 자신의 가치관과 자신이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들을 대변한다는 걸 명확하게 느꼈던 순간부터는 수동적인 캐릭터보다 능동적인 인물을 선택하려 했다. 소극적인 캐릭터를 연기할 경우에는, 그 친구가 왜 그렇게 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를 신경 써서 표현하려 했다.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한 건 영화 <판소리 복서> 때부터다. 그 작품 이후로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찾아가려 했다. 그리고 영화 <빅토리> 이후부터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인물을 연기하겠다는 생각이 명확하게 들었다.

- <빅토리>가 큰 전환점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 경험과 생각들이 쌓여서 그 시기에 배우로서의 생각이 확립된 것 같다. 사실 <빅토리>는 내가 한번에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었던 작품이다. 당시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고, 사투리도 내겐 너무나 큰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시작하기 두려웠달까. 그렇지만 촬영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큰 위로와 응원을 받는 듯 느꼈다. 배우로서 큰 전환점이자 분기점이 된 작품이다.

- <빅토리>를 선택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고 했지만, 관객으로선 넓은 트레이닝바지를 입고 춤을 추는 추필선이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워 보였다. 혜리 배우의 연기는, 무언가를 보여주겠다고 용쓰기보다 자연스럽게 배우의 몸을 통과해서 나오는 무엇이다. 열정적인 캐릭터들을 표현하되 어떻게 이런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걸까.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하다. 최대한 자연스럽고 내 모습처럼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과정이 제일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 순간순간 감정에 빠져 연기하는지, 철저한 계산 아래 연기하는 스타일인지도 궁금하다. <빅토리>에서 서울살이하던 필선이 거제로 돌아와 식탁에 앉아 집밥을 먹다가 눈물을 흘린다. 부끄러운 듯 웃으며 황급하게 눈물을 닦는 손의 움직임은 마치 집에 돌아온 아이 같고, 표현되는 감정도 진짜처럼 느껴져 따라 울게 된다.

순간순간 감정에 빠져서 연기하는 편인데 장단점이 있다. 망할 때도 있고, 좋은 장면이 탄생할 때도 있다. (웃음) 그럼에도 내가 추구하는 방향은 전자다. 계산이 빠르고 스킬이 뛰어나지 못해서 후자로 가면 계산한 티가 너무 날 것 같다. 그래서 늘 전자를 택한다.

- 결과물은 자연스러워야 하지만, 카메라 뒤에선 노력이 필요한 게 연기가 아닐까.<판소리 복서>에서 장구를 치고, <빅토리>에선 춤을 통해 캐릭터를 표현하는 등 몸을 쓰는 연기에 많이 도전했는데, 그때의 경험도 들려주면 좋겠다.

무언가를 배워서 습득해야 하는 연기이기에 시간을 많이 들인다. 짧으면 2개월, 길면 3~4개월간 연습하려 한다. 물론 캐릭터마다 테크닉을 완벽하게 표현해야 하는 경우와 아닌 때가 있다. <판소리 복서> 속 민지는 장구를 치지만 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나 <빅토리>의 필선은 거제에서 계속 살아온 친구라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해야 한다. 그래서 들이는 시간이 다르다. 그런 테크닉들은 연습을 많이 해놓아야 현장에서 연기할 때 신경이 덜 쓰이는 타입이다. 완성이 덜된 채로 연기하면 자유롭지 못한 기분이 든다. 내가 가수 출신이라 그렇다. 가수들은 자다가 일어나서도 공연할 수 있게 연습한다. 몸에 저장해두었다가 일종의 버튼을 누르면 바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그래서인지 나는 캐릭터의 부수적인 설정을 몸이 기억하도록 시간을 많이 들여 연습해야 편안하다고 느낀다. 반면 연기는 하나하나 계산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집중해서 표현하려고 한다.

- 연기한 캐릭터들을 보면 활기, 열심, 열정, 노력, 능력 등 키워드가 떠오른다. 관객은 실제 배우의 내면도 그러하리라 짐작하기 마련인데 상관관계가 있을까.

최근작 중에서는 <선의의 경쟁> 유제이가 나와 제일 가깝다. 두루뭉술한 걸 선호하지 않고 예민하고 섬세한 편이라 오히려 유제이쪽에 가깝다.

- <선의의 경쟁>의 유제이를 본인과 닮은 캐릭터라고 표현했지만, 기존에 연기해오던 캐릭터와는 뭔가 달랐다. 어두운 면을 끄집어내는 경험이었을 텐데 어땠나.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의 내면과 외면이 동일한 속도로 나이 먹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이제 30대 초반이지만, 지금이 지나면 40대가 될 것이다.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늘 어느 시점엔 이전과 다른 모습을 표현하고 싶다고 느꼈다. 내가 준비가 되어 있고, 또 그런 작품이 내게 온다면 꼭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마음먹으면서. 그래서 유제이를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촬영할 때부터 <선의의 경쟁>이 공개되면 사람들이 놀라겠다는 생각을 했다.

- 이전과 다른 캐릭터를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 했나.

서른을 넘길 때 든 생각이다. 이건 꼭 나이 때문이 아니라 데뷔한 지 13년이 됐을 때라 생각한 지점이기도 하다. 그동안 나는 다 다른 모습을 보여드린다고 했지만, 보는 이들이 비슷하게 느껴 지겨울 수도 있지 않을까. 서서히 다른 걸 해나가고 싶었다. 완벽한 변신이라기보다 조금씩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었다.

- 다음엔 기존과 다르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정말 감사했고, 내 선택에 참 뿌듯했다. 사실 다른 결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어려울 거란 이야기를 주변으로부터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내가 참 어려운 선택을 잘했구나 싶어 뿌듯함을 느꼈다.

- 배우는 늘 다음 단계를 결정하는 삶을 살아간다. 혜리라는 배우가 그간 몸으로 체득한 기준이 있나.

분명히 있다. 다만 모든 작품은 운명이자 타이밍이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편이다. 결단을 빨리 내리는 편이고, 시리즈의 경우 1부를 읽으면 연기하고 싶은 작품과 아닌 작품을 바로 가린다. 영화의 경우, 시나리오를 본 바로 그날 알아차린다. 그리고 스토리나 캐릭터에 향해 불편한 마음이 들면 어렵겠다는 기준도 있다. 나 자신이 설득이 되지 않으면 연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판단이 빠르고 판단의 기준이 자신에게 있는, 본인을 믿는 배우인 듯하다.

다른 배우들도 그렇지 않을까.

- 가장 빠르게 만날 수 있는 혜리 배우의 다음 작품을 소개해준다면.

<그대에게 드림>이란 시리즈이고 7월쯤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 <미스터 주부퀴즈왕>, 시리즈 <경이로운 소문> <트리거>를 연출한 유선동 감독님 작품이다. 유선동 감독님이 정말 꼼꼼한 성격이고, 나도 꼼꼼해서 서로를 이해하는 경지에 다다라서 현장에서 오히려 정말 잘 맞았다. 감독님이 이 정도로 꼼꼼하시다니, 나는 이 정도로 더 신경을 써야겠다 마음먹는, ‘꼼꼼 대결’이랄까. (웃음) 내가 연기하는 주이재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캐릭터다.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영화감독 대신 <6시 내고향>과 같은 방송프로그램의 리포터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15년 만에 영화감독의 꿈을 이룬 첫사랑과 만난다. 부산 출신이라 사투리 연기도 해야 했다. 내가 생각하는 주이재가 멋진 점은, 생활 밀착형 방송프로그램의 리포터 일을 정말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꿈꾸던 삶이 아닐지라도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리포터가 된 34살의 주이재는 영화감독을 꿈꾸던 19살의 주이재의 눈빛을 그대로 갖고 있다.

- 무주산골영화제 개막식에서 ‘넥스트 액터 셀프 트레일러’가 최초로 공개될 예정이다. 어떤 느낌의 트레일러인지 귀띔해줄 수 있나.

철저히 관객에게 해석의 권한을 드리는 트레일러다. 어떠한 대사 없이 내 얼굴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을 때 관객이 어떤 마음을 느낄지 궁금한 마음에서 출발해 연출의 방향을 잡고 직접 연출하고 출연했다.

- 연기만 하다가 연출을 직접 해보니 어땠나.

정말 어려웠다. (웃음) 역시 사람은 자기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제 더 이상 감독님들을 재촉하지 않으려 한다. 배우로서 현장에서는 여러 아이디어를 내곤 하는데, 연출자로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건 매우 무게가 실리는 일이란 걸 이번에 절실히 느꼈다. 촬영 당시 스튜디오가 집처럼 거실과 방으로 나뉜 곳이었는데, 거실 대신 복도였으면 좋겠다는 내 말 한마디에 스태프들이 6시간 동안 벽을 세워서 넓은 거실을 복도로 만들어주셨다. 감사하면서도 많이 죄송했다.

- 그렇게 어렵게 세트를 바꿔가며 만든 결과물을 보니 어땠나.

아주 만족스러웠다. (웃음)

<NEXT ACTOR 넥스트 엑터> 특별 전시

장소 최북미술관 기획전시실

일자 6월4~7일

최북미술관에서 무주산골영화제 넥스트 액터 배우 혜리에 관한 특별 전시가 열린다. 화보와 인터뷰 영상은 물론, 개인 소장품과 여러 기록물이 함께 전시된다고 하니 무주산골영화제를 찾는 관객이라면 들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