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돌아가셨다. 오고 말고는 네가 알아서 해라.” 아무리 내놓은 자식이라도 부모의 부고 문자를 외면하긴 어려운 법이다. 무지개 깃발 옆에서 무지개 현수막을 온몸에 휘감은 휴대폰 배경 사진의 주인은 장만옥(양말복)이다. 설상가상 후배들과 싸우고 20년 넘게 운영해온 퀴어 바 레인보우의 영업난을 피할 수 없던 그는 결국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오래전에 떠나온 고향 이반리로 향한다. 하지만 귀촌도 쉽지 않다. 남은 가족들은 여전히 그에게 무심하거나 뾰족한 눈총을 보내고, 그의 전남편 철주(박완규)는 이장직을 맡아 온 동네를 마음대로 군림한다.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는 덤. 어딜 가든 수군거리는 소음이 배경음악처럼 만옥을 따라다닌다. 여기까지 보면 <이반리 장만옥>은 여느 퀴어영화의 온도처럼 현실성 높은 사회고발적 성격을 좇아갈 것만 같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 키 낮은 담장 너머로 소문이 무성해지고, 만옥의 회귀를 누구도 환영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무기 삼아 협박하는 빌런의 등장부터 영화는 완전히 다른 노선을 취한다. 바로 장만옥을 이장 선거에 출마시켜버리는 것이다. 조금은 허무맹랑해 보일지언정 영화는 최전방에 중년 레즈비언 여성을 내세운다.
기묘하게도 이 시대는 장만옥을 원한다. 현재 이반리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나. 조금이라도 이장 철주의 눈 밖에 나면 그의 심술에 따라 불합리한 처사를 감내해야만 한다. 이장에게 쓴소리를 한 복숭아밭 허씨는 5월 판매 일정을 잘못 안내받았고, 만옥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기용한 이웃들은 만옥을 쓰지 말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받았다. 어디 그뿐일까. 이장은 주민들에게 매달 마을발전기금을 내라고 독촉하지만 그것이 어디에 얼마큼 쓰이는지 일체 보고하지 않고, 독거노인 가정을 방문 케어하거나 도로 방지턱을 수리하는 등의 실질적인 업무는 손놓고 있다. 그러니까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던 것이다. 혁명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혁명을 기다리는 민중의 갈망이. 솔직히 말하면 어느 누구도 장만옥을 시원하게 반기지 않았다. 이건 사실이다. 동시에 모두가 납득했다. 물불 안 가리고 이장을 뒤집어엎을 사람은 장만옥밖에 없다는 걸. 이것 또한 사실이다. 시대의 결핍이 변하니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요구 사항도 마침내 변화한다.
김철주 타도를 외치기 시작한 사람들은 하나둘 힘을 보탠다. 만옥을 이방인 취급하는 이에게 “그래도 걔가 어릴 적부터 똑 부러지긴 했자녀~” 하는 중국집 사장님의 방어부터, 역량대로 돌아가며 맡아보는 선거대책본부장의 전략, 스텝이 하나도 맞지 않는 이웃들의 유세댄스까지 모든 여성들의 어설프지만 촘촘하고, 엉성하지만 진심뿐인 승부수가 단계별로 쌓여간다. 하지만 그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행동 없이는 그저 힘없는 탁상공론에 그칠 뿐이다. 진짜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혁명과 체제 변화가 너무도 필요한 장만옥의 절실함이고 간절함이다. 마을에서 으뜸으로 성깔이 고약한 박 여사가 볼멘소리를 흘린다. “여편네가 뭔 이장을 한댜?” 그리고 김 이장이 수리하지 않은 방지턱에 휠체어가 걸려버린 박 여사에게 만옥이 말한다. “이장 자리에 남녀가 어딨슈? 일을 하거나 일을 안 하는 이장만 있지.”
충동적이고 우악스러운 장만옥은 어떤 면에서 시골 생태계를 뒤흔든다. 평화롭던 동네에 긴장감을 높이고 불편한 균열을 만든 여자. 누군가는 필시 장만옥을 이렇게 해석하리라. 하지만 흙탕물이 일어난 자리에 시간이 흘러 모든 게 가라앉고 나면, 그 어느 때보다 맑은 물이 고이기 마련이다. 이전보다 더 투명해진 시야 안으로 더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가 선명히 들어오고야 만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수면 위로 올라온 궁극적인 진짜 문제는 ‘누가’ 직면하게 할 것인가. 최종 질문을 앞에 두고 <이반리 장만옥>은 주인공 만옥이나 그의 중년 이웃이 아닌, 청소년 퀴어 김재연(성재윤)을 내세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이를 쿨하고 멋진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 일찍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해본 사람.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 이반리에서 재연이 만옥의 아지트를 물려받은 건 낭만적인 우연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이 시골 마을의 차별과 억압을 견뎌본 삶의 동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이반리 장만옥>이 어린 세대에게 부여하고 기대하는 힘이기도 하다.
아웃팅과 협박을 일삼는 이장은 결국 반대 시위를 이끌어낸다. 만옥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피켓 문구 사이로 그의 얄미운 목소리가 퍼진다. “이게 현실이야 현실.” 과연 그럴까. 아직은 김철주의 독재가 우리의 당연한 현실이고, 만옥과 재연이 바라는 것은 허상이고 거짓일까. 퀴어, 자유, 평등, 해방과 같은 단어는 순진무구하다 못해 너무 이르게 도착해버린 언어들일까. 그때 이반리의 땅이 급격히 요동친다. 오색찬란한 무지갯빛 깃발로 무장한 트랙터. 장만옥을 연호하는 사람들. 혁명과 저항, 불굴과 변혁의 가치를 아는 어린 여자들은 명랑하고 경쾌한(그래서 나도 같이 달려나가 뛰어들고 싶어지는), 격렬한 매드맥스를 기어이 연출해내고야 만다. 살아남는 그 자체가 투쟁인 이들은 연대와 연결로 쟁취해낸다. 여태껏 이러한 자유로운 풍경을 부지런히 지워온 이들에게 만옥이 말한다. “나도 시방, 내 현실을 한번 보여주려고.”


